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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재속프란치스코 야고바형제회 원문보기 글쓴이: 세베리노
우리들이 알고 있는 조국의 산천은 다음과 같은 특색을 지니고 있다. 지리적 판단으로 보았을 때 동고서저(東高西低) 형이다 동쪽은 높고 가파르며 반면 서쪽은 낮고 긴 사면으로 이어진다. 또한 대부분의 물 길은 동에서 서쪽으로 흘러 인문적 환경의 소산인 촌락이 구성되면서 결국 도시문화를 가꾸어 온 것이다. 물 길 따라 사람들은 모여 살면서 문명을 만든다. 문명이란 결국 지리적 형편에 맞춰 사람 중심에 삶의 터전을 만든 것이다. 문명을 벗어나야 비로서 원시의 빛을 발견 할 수 있으며 그 빛을 통하여 순수한 생명과 그 가치가 지니고 있는 고유의 평화를 가슴으로 안아 볼 수 있다. 박해란 나름대로 국가를 지키려는 정치인들이 정치적 소산이었다. 그러나 실학을 통하여 새로운 세계가 있음을 깨닫게 된 선지자들은 학문적 고찰의 틀에서 벗어나 천주라는 진리의 세계에 눈을 뜨게되고 이를 종교로 받아 들인다. 그리고 억압에서 자유로 독점에서 분배를 통한 평등을 갈망하던 백성들에게 까지 그 뜻들이 전해지자 천주의 뜻은 들불처럼 타 오른다. 들불의 중심에는 내포지방이 있었으며 그곳에는 전교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걸출한 이존창이란 인물이 있었던 것이다. 그를 통하여 많은 이들이 천주와 소통의 길로 나서게 된다. 그의 영향은 결국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라는 소년들을 사제의 길로 이끌었다. 그 만큼 내포지방은 한국 천주교의 못자리로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 내포지방에 살던 많은 천주교인들은 문명을 버리고 원시의 세계로 향했다. 박해를 피하기 위하여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들을 버리고 가파르고 험준한 산속으로 숨기 위하여 동진하던 중 그들이 만난 곳이 바로 차령산맥 줄기 언저리였던 것이다. 높고 깊은 첩첩산중에 교우촌을 만들고 각종 옹기와 숯을 구워 팔아 가며 연명했던 곳, 성거산(聖居山)! 우연에 일치였을까? 성스러운 사람이 기거하는 산이란 이름이 성지로서 의미를 더 깊게 만든다. 야고바트레커들은 2월 성지순례를 위하여 문명에서 길들여진 이런저런 것들을 버리고 겸손과 가난한 마음으로 원시의 빛이 가득한 성거산을 찾아 나섰다.
성거산을 성지를 순례하기 위하여는 성지를 상징하는 문장(紋章)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성지를 개발하면서 성지관리측에서는 다음과 같은 뜻으로 상징물을 만든 것이다. 붉은 십자가는 순교를 뜻하고 검은 초록색은 죽음, 무덤 밑 보라색 선은 보속과 통회를 표현하고 있다. 이는 순교자들의 무덤을 참례할 적마다 보속과 통회하는 마음을 갖자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성거산 성지의 중심은 칼레 신부님이 사목 본거지로 삼았던 소학골 교우촌으로서성거산 일대에만 6개의 교우촌이 형성되어 있던 곳이라 교우촌의 역사, 문화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노란색 초가집을 그려 넣었다. 차령산맥에 위치한 성거산 성지는 해발 579m 높은 고지대에 위치한다. 험준하여 사람들이 살기에는 열악한 환경을 지닌 곳이다. 이런 지형적 특성을 표현하고자성거산 성지란 글씨를 山자로 형상화 한 것이다. 성거산 아래에는 아름다운 저수지가 다섯 개나 있어 산과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어 물과 조화라는 뜻을 표현하고자 성자 ㅇ 받침을 파란색으로 하였고 산(山)’자의 붉은 받침 ‘ㄴ ’은 박해시대에 순교자들을 죽일 때 망나니들이 사용했던 칼을 상징하며 성(聖 )지(地)라는 단어의 ‘성’자중 ‘서’는 성당의 지붕을 뜻하는 즉 교회(ECCLESIA)는 “믿는 자들의 모임” “하느님 백성들의 모임”이라는 뜻을 함축적으로 표시 한 것이다. 노란색 ㅇ 받침은 평화를 상징한다.(자료: 성지제공)
남 안성 IC로 빠져 나온 차량은 곧장 입장을 지나 성거산으로 오르는 마을을 가로질러 성거산 가파른 길로 오르기 시작하였다. 구비구비 이어지는 가파른 길 저 아래로 다섯 개의 저수지가 마을과 산과 들과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한다. 차를 제 2주차장에 세운 후 단체사진을 촬영한 후 북사면 비탈길로 내려 섰다. 잔설로 길은 미끄러웠다. 조심조심 짚어 나가며 성모광장 야외 미사 터전을 지나 제2 줄무덤 앞에 섰다. 보석과 통회의 마음으로 조심하며 제대앞어 모여 섰다. 조촐한 제물을 차린 후 박기상 안토니오 형제님께서 헌주한 후 절을 그리고 다 함께 배례를하고 기도와 성가를 통하여 차례의 의식수순을 밟아 나갔다. 날은 차지도 바람도 없는 봄날의 기운이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야고바트레커들의 성지참례와 트레킹 일기는 은총의 연속이었었다. 모질던 바람도 비도 눈도 출행하는 당일이 돌아 오면 항상 언제 그랬나 싶듯 고요와 평온의 일기가 도왔다. 그래서 늘 일기에 관하여는 자만심이 깃든다. 그러나 이점에 대하여는 경계해야 할 일이다. 하루 전 우리들이 참례할 지역에 대한 일기예보에 대하여 살폈었다. 천안 입장, 진천, 안성 지역은 다 봄날을 예보하고 있었다. 상춘하기 좋은 날, 성지 원시적 안부도 역시 봄기운이 가득 서려 있었다.
이쪽이 고향이신 실비아 자매님도 큰절로서 참례에 참여하셨다.
참례 마친 후 다섯구역으로 나누어 (반포, 방배 1,2구역, 양재, 의료) 참가 자매님들의 서명을 한 새 집을 순교자들께서 보기 좋으신 장소 나무에 메달았다. 마닐라 삼끈으로 아래 위를 붙들어 메어달고 문을 열어 모이를 수북하게 담아준 후 다시 닫아 걸었다. 새들은 이 모이와 집을 이용하여 산란한 후 부화하여 개체수를 늘려 숲을 건강하게 가꾸는데 일조할 것이다. 그리고 숲은
건강한 모습으로 생태의 다양성을 만들어 사계를 순환하며 창조적 질서의 진리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삶의 가치를 함양시켜 주실 것이다. 하느님의 반영인 일체의 만물들...... 천지동근(天地同根), 하늘과 땅은 같은 뿌리인 것이다. 오전 시간은 그리 넉넉하지 않다. 서둘러 제1 줄무덤으로 걸음을 옮겼다.
제1 줄무덤으로 가기 위하여 성모님 앞을 지나치면서 성모님 모습을 앵글로 잡았다. 성지 전체를 아우르며 보실 수 있는 장소에 계신 모습이 인상적이다.
제2 줄무덤과 달리 제 1 줄무덤은 볕이 좋아 전체 분위기가 온화해 보였다. 참례를 위한 준비를 마친 후
제대에 다들 모여 섰다. 통회와 보속의 마음으로 예를 갖춘 후 절을 드리고
기도와 성가를 다함께 부르며 순례의 심연속으로 침잠되어 갔다. 성가소리와 어울린 새소리는 성지가 지니고 있는 속내를 드러 내 준다. 지고 지순했던 천주의 사랑을 위하여 척박하고 험준한 이 산맥줄기를 찾아 살았던 순교자들의 삶, 오늘날 우리들은 금년 시복이란 영광으로 다시 맞이하게 된다. 다함께 찬양하고 축복하며 감사 할 일이다.
참례 예절과 새집 달아주기와 모이 주기 일부만 끝낸 후 미사참례 관계로 산중턱에 있는 경당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다시 오르는 길을 걷고 있는 트레커들의 발걸음이 경쾌하게 보인다.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면서 무수하게 경험하게 되는 걷는 길, 그 목적은 다 다를 수 있다. 좋아서, 싫어서, 어쩔 수 없어서, 다가 가기 좋은 길도 있지만 때로는 죽어도 가기 싫은 길을 가야할 길도 있는 것이다. 어느 길에 서 있던 그 선택과 그 길을 가꿔야 하는 몫은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길 중에 가장 좋은 길은 사랑의 길과 평화의 길과 용서의 길이 아닌가 한다. 이런 뜻을 함축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길이 바로 신앙의 길이다. 신앙의 길 중에서 좀 더 세련되게 나눔을 실천하려는 의지를 갖는 것이 바로 프란치스칸적인 삶인 것이다. 무엇이든 혼자 이루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형제적 친교는 소중한 것이다. 함께 지향하는 선상에 항상 도반과 같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길은 수월해 지는 것이다.
사부님의 영성이 중요한 일은 바로 미처 우리들이 깨닫지 못한 일들을 사부께서 많은 스스로 선택한 철저한 회개와 고행을 통하여 예수그리도에 관한 실체를 깨닫게 된 것이다. 우린 사부님이 체험한 결과물인 영성적 교육을 통하여 우리 또한 어떤 자세로 예수그리스도를 향해 다가 가야 하는지의 깨달음을 얻어 나가는 기간이 바로 양성교육 기간이다. 새소리가 참 맑게 울려 퍼진다. 차를 타고 성거산 성지 사제관이 있고 경당이 있는 장소로 옮겼다. 11시 미사가 야고바 트레커들 때문에 지체 되었다. 미리 전화를 드리자 우리들이 도착할 때까지 미사 시간을 미루시겠다는 연락을 주셨다. 감사 드리고 마음속으로 아멘을 아멘을 속삭였다. 그래도 미사 시간 만큼은 제대로 시간을 지켜야 하는 것인데.... 세심한 주의와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반성의 마음으로 성호를 긋는다.
정지풍 아킬레오 성지 주임신부님은 국제 크리스찬 예술가 협회 회원으로서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을 개최및 참여하신 화가의 길을 걷고 계신 신부님이시다. 성지와 경당등등도 신부님의 감성들이 고스란히 깃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래의 그림은 신부님의 순교의 한과 순교의 맥이라는 작품이다.
회장께서 친히 도로앞 까지 나오셔서 마중해 주셨다. 사무장님과 이 지역 본당에서 나오신 봉사 자매님들의 따뜻한 안내로 지하 온돌방 경당으로 입당한 후 미사를 참례 할 수 있었다. 1층에 경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따듯한 온돌방에서 미사를 참례한 후 바로 그곳에서 도시락을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신부님께 감사드린다.
성체성사에 이어서 파견성가를 부른 후 성지와 관련하여 신부님의 성지 소개 말씀이 계셨다.
그리고 트레커들은 따듯한 온돌방에 앉아 식사 나눔을 하였다. 각자 준비한 도시락을 꺼내 먹으며 온돌방처럼 훈훈한 형제적 나눔이 이어졌다. 식사를 끝낸 일행은 1층 경당에서 간략한 기념촬영을~~~
그리고 다시 성지로 돌아 가 남은 새집과 모이를 주기 위하여 떠나려 하자 신부님께서 사제관으로 초대해 주셔서 사제관으로 들어가 커피를 마시며 5월에 있을 야생화축제와 더불어 미사를 정식으로 초대를 받았다. 이 또한 야고바트레커들에게는 하느님의 은총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참여를 약속드린 후 신부님과 사무장, 평신도회장과 인사를 나눈 후 버스에서 기다리는 야고바 트레커들에게 돌아 와 다시 성지로 향했다.
새집을 달아 주고 있는 요세피나 자매님과 도미나 자매님이십니다.
방배 2, 양재, 의료구역 순으로 새모이와 집을 달아 주고 성지 곳곳에 모이를 놓아 주었다.
기념촬영을 한 후 다음 행선지인 엽돈재까지 차량으로 이동하였다. 엽돈재는 충남에서 충북으로 넘어가는 차령산맥상에 위치한 재로서 입장에서 진천으로 넘는 재인 것이다. 성거산에서 배티부근으로 이동 동선이었던 교우들의 도피 동선이 바로 차령산맥 등줄기었다. 성거산 정상에서 능선길을 따라 걸으면 엽돈재를 넘어 서운산으로 그리고 배티성지가 있는 배티재까지 길은 이어진다.
포졸들을 눈을 피해 다녔던 그 길을 걷고자 하는 것이 2월중 성지순례 트레킹 코스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하여 엽돈재에서 서운산 정상을 오른 후 청룡사로 내려 서려고 엽돈재로 이동한 것이다. 불편하신 형제, 자매님들은 청룡사로 바로 보내 드리고 남은 일행들은 엽돈재에서 서운산 방향으로 올라 트레킹을 시작하였다. 봄 체취가 자꾸 몸에 달라 붙는 느낌이 느껴지는 봄날이다.
간혹 북사면에는 잔설이 녹아 얼음을 만들어 놓은 곳이 있어 불편했지만 대부분 사진처럼 낙엽이 푹신하게 깔려 있는 길이었다. 얕으막한 언덕을 올라서면 다시 평지 산길이 이어지다, 얼마 후 다시 오름길이 나온다. 그러나 그 길이가 적당하여 숨을 고르지 않아도 길을 열어갈 수 있는 아름다운 트레킹 길이 펼쳐진다. 능선에서 바라 본 동서 좌우, 참으로 산이 깊다.차령산맥에 붙어 있는 충북 진천방향 고을 이름이 백곡(百谷)면이다. 얼마나 계곡이 많았으면 지명이 백곡일까! 백곡면에는 구수리란 마을이 넗게 퍼져 있다. 물길이 아홉길, 산이 깊으면 물길도 여러갈래가 생긴다. 물이 많으면 옥답이 농산물 수확을 풍년으로 이끌어주니 살기 좋은 고장이 된다. 그래서 생전에 살기 좋은 곳이라하여 예로부터 이곳을 생거진천이라 부른 것이다. 홀연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순교자들이 숨죽이며 다녔던 길을 걸었다. 숨기 좋은 곳이라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들이셨던 선교사제들께서 또는 최양업 신부께서 성거산이나 배티 골짜기에 은거하시며 성사와 전교를 위하여 애를 쓰셨던 것이다. 한국에 있는 성지중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성거산 성지 그리고 차령산맥 동선상에 있는 배티성지는 깊은 골짜기에 있다. 두 개의 성지 골짜기에 교우촌을 만든 사람들은 내포평야에 살던 평화를 사랑하는 백성들이었다. 이존창 선조의 전교에 감화되어 천주학쟁이의 신분을 갖고 살던 평민들이었다. 그러나 정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또는 당시 동북아지역을 휩쓸던 강대국들의 침략과 개방의 요구에 정책적으로 강행한 쇄국정책 등등과 관련하여 박해의 빌미가 순교자들은 문명을 버리고 동진하여 깊은 산골에 교우촌을 형성하며 살아가게 한 것이다. 깊은 산골 덕분에 가장 오래토록 남아 있던 교우촌이었던 성거산과 서운산 자락 교우촌들 그들이 소통하며 걸었던 산길을 봄향과 빛에 취해 다정한 마음으로 걷는 길을 행복했다. 늦은 출발이 일몰 후가 걱정이었지만 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보름달이 휘엉청 트레커들의 발길을 비쳐줄 것이니 무슨 염려를 하랴 산속 길을 걸으며 만나게 될 보름달, 이 또한 은총이지 않겠는가! 그러나 다행이도 청룡사 부근에 이르러 땅거미는 내려 앉기 시작하였다.
그 덕분에서운산 자락 은적암 내려 서는 산길 모퉁이에서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었다. 해는 내일 다시 떠 오르기 위하여 지고 있는 것이다. 빛 가운데에 계신 하느님께서도 야고바트레커들에 대한 염려가 안도로 바뀌셨는지 스스로 산넘어로 자취를 감추고 계셨다. 시작에서부터 맺음까지 늘 은총을 받으며 진행되는 순례와 트레킹은 늘 평화가 스며 있다. 그래서 우리들은 걸어서 하늘까지라는 결심으로 참례와 트레킹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참고로 야고바트레커들에 문장을 올려 본다. 참여해 주신 모든 야고바 형제, 자매님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지원반 자매님들에게도 감사드리며 언제나 평화의 나눔을 약속드려 본다. 평화를 빕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꾸벅~~
재속프란치스코 야고바형제회
Jcoba ofs co, kr
평화와 선, 걸어서 하늘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