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입니다.
오늘도 계속해서 8복에 대한 말씀으로 “마음이 청결한자의 복 (2)”에 대한 말씀입니다.
마 5:8 “복이 있도다. 마음이 청결한 자여! 너희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다.”
II. 본다는 것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보면서 삽니다.
정치하는 분들은 출세와 권력을 보며 삽니다.
사업 하시는 분들은 돈을 보며 삽니다.
학생들은 공부를 잘 마치고 좋은 직장 취직하는 것을 바라보며 삽니다.
직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승진하고 돈 벌어 좋은 배우자 만나 결혼해서 집도 사고 아이들 낳아 잘 키우는 것을 바라보며 삽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들도 세상에 살면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것을 보며 삽니다.
예수님 믿는다고 해서 날마다 성경책을 겨드랑이에 끼고 다니며 기도만 하고 건강도 돌보지 않고 가정도 돌보지 않고 돈을 죄악시 하고 출세를 우습게 여기며 명예를 헌신짝처럼 여기면서 살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경쟁 사회이기 때문에 예수님 믿는 사람도 열심히 세상 사람들처럼 살아가야 합니다.
돈도 벌어야 합니다. 출세도 해야 합니다. 명예도 얻어야 합니다. 세계적인 운동 선수도 나와야 합니다. 세계적인 정치가, 사업가, 학자, 사회 지도가들이 나와야 합니다. 이것들을 위해 열심히 피 땀흘려 일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과 크리스챤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세상 사람은 세상만 보고 살지만 크리스챤은 세상과 하나님 나라를 동시에 보면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영적인 나라이기 때문에 영적인 생명이 살아나 영적인 눈이 열리지 않으면 볼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마음에 영접하면 예수님께서 들어오시고 그 마음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이 떨어지는 순간 더러운 죄들이 깨끗이 씻겨 나가 거룩한 심령이 됩니다.
그러면 거룩한 그 심령에 하나님의 생명인 거룩한 영 즉 성령이 임하실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죽은 영적인 생명을 성령으로 재창조 과정을 통해 거듭나게 하십니다.
그러면 죄와 허물로 죽어 있던 영적인 생명이 다시 살아나면서 즉 부활하면서 영적인 눈이 열려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때 드디어 영적인 세계인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 3:3)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즉 죽은 영적인 생명이 성령으로 거듭나야 만, 즉 부활하여야 만 하나님 나라를 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육신의 눈을 가진 사람만이 물질적 세계를 보고, 지식의 눈을 가진 사람만이 정신적인 세계를 보고, 영적이 눈을 가진 사람만이 영적인 세계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물질적인 이 세상과 영적인 저 세상을 함께 보며 살아갑니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는 영적으로 죽어 영적인 소경이 되어 이 세상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입니다.
둘째는 성령으로 거듭나 영적인 눈이 열려서 이 세상과 저 세상을 함께 보며 사는 사람입니다.
영적인 사람에게 있어 이 세상의 삶은 정말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믿음의 삶에 의해서 저 세상의 삶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사람이 되면 세계관이 바뀌고 가치관과 인생관이 바뀝니다. 저 세상을 알기 때문에 이 세상에 있는 동안 무엇이 중요하고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영적인 눈으로 보고 알게 됩니다.
우리가 아이티 선교를 합니다. 그런데 선교는 세상적인 구제와는 다릅니다.
아이티 아이들이 불쌍해서 도와야 한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버림받고 돈으로 팔려나가고 여자들의 인권이 유린당하고 미혼모들이 너무 불쌍해서 이들을 도와야 한다. 이 일은 세상적인 구호단체들 대표적으로 UN에서 하는 말들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눈을 가진 사람들은 이들의 현재 세상에서의 삶뿐만 아니라 이 세상 너머의 영원한 세상에서의 운명을 동시에 같이 봅니다.
그래서 오는 세상에서의 이들의 운명을 바꾸는 데에 목적을 둡니다. 그리고 이 목적 달성을 위해서 이 세상에서 의식주 해결과 교육을 통해 궁극적인 목적인 예수님안으로 이끌고 들어와 영생을 얻도록 도와 주는 것입니다.
즉 이들을 향한 목적이 영생이라면 의식주 지원은 수단인 것입니다.
UN의 목적은 의식주 제공입니다. 즉 구제입니다.
그러니 DFI 목적은 영생입니다. 의식주는 수단입니다.
이것이 구제와 선교의 차이입니다.
그리고 이 분별은 영적인 눈을 뜬 자 만이 가능합니다. 소경은 불가능합니다.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통 구제는 물질적 여유가 있을 때합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 가난한 단체, 가난한 국가는 구제받을 대상이지 구제에 동참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선교는 여유가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유가 없어도 합니다. 선교는 헌금입니다. 헌금은 부자나 가난한 자나 여유가 있거나 없거나에 상관없이 하나님앞에 나올 때 예물을 준비하여 드립니다.
그래서 예수남께서 칭찬하신 헌금은 부자가 드린 거액의 헌금이 아니라 성전에서 루 생활비로 받은 동전 두닢을 다시 하나님께 드린 과부의가 감사 헌금이었습니다. 과부가 하루를 금식하면서 드린 헌금이어서 예수님께서 칭찬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선교는 거룩한 제사입니다. 제사란 자신이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즉 자신을 죽여 하나님앞에 제물로 드리는 것이 제사입니다.
바울이 고백합니다. “나는 매일 죽노라” (고전 15:31).
바울은 날마다 자신이 산 제사의 삶을 살고 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바울은 선교사였습니다. 그래서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고백했습니다.
즉 자신의 생명을 선교 제사의 제물로 날마다 드린 사람이 바울이었습니다.
저는 우리 DFI Korea 회원님들 이 세상과 저 세상을 함께 보며 그래서 아이티 구제가 아니라 아이티 선교에 힘쓰는 그래서 날마다 선교 제사의 제물로 자신을 드리는 귀한 회원님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