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
박석규
고향으로 돌아왔다. 살기 위해 30년을 떠돌며 가졌던 온갖 직업과 생활을 접고 마지막 정착의 의미를 가슴에 담고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유년의 기억과 추억이 남아있는 집과 나무들과 골목을 한 바퀴 돌아보며 나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동안 얻고 잃은 것들은 저기 보이는 월출산 바위들만 하겠지만 인제 와서 그것이 무슨 대수이랴, 내가 이곳에 다시 돌아왔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한 걸,
60년 전에 내가 태어나고 자랐던 10년여 정도 살다 떠나간 이들이 남긴, 처참한 흔적을 보이며 비어 있었다. 흙을 감싸던 석회벽은 대부분 벗겨진 채 너덜거리고 방안으로 들어서면 도배된 방벽들이 손때와 파리똥, 크레용 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다. 대청 건너 남쪽 방은 아궁이에 군불을 때서 따뜻하게 덥히는 구들장이 놓인 방이었는데 아궁이가 있는 부엌은 이미 다 허물어졌고 외부 벽과 아궁이 벽 쪽으로 쥐구멍이 수도 없이 나 있었다.
가지치기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 목백일홍과 목련, 모과나무와 동백, 감나무와 굴거리나무, 매실과 산수유들은 제멋대로 자라 서로 뒤엉켜서 나를 쳐다보았다. 더구나 일년생과 다년생 넝쿨 잡초들이 그들의 우듬지까지 올라가 가지를 조이고 햇빛을 가렸는지 이제 막 이파리들을 떨구고 휴식을 취하는 가지들 중, 죽은 가지들도 많았다.
창고는 쥐의 서식처가 되어 쥐 오줌과 쥐똥 냄새가, 동백나무 사이를 그물망으로 둘러서 만든 빈 닭장에서는 닭똥 냄새가 진동하였다. 버려진 플라스틱 화분과 모판 그리고 파이프, 스티로폼 조각과 상자들이 집 주위에 가득 버려져 있었다. 작은 화단은 잡초들의 천국이 되어 들어갈 수도 없었다.
아, 어디서부터 어떻게 수리하고 다듬어 나가야 할까. 나는 마루에 앉아 해가 잠기는 모습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처마에는 이미 떠나버린 빈 제비집이 네 개나 있었다. 처마 안쪽에 두 개, 처마 바깥쪽에 두 개였다. 어떤 것을 남겨야 할까. 내년에 올 제비는 어느 집을 좋아할까.안쪽은 아늑하고 바깥쪽은 자유로울 것이다.
여름엔 소식도 없던 비가 집수리를 시작하자마자 11월 내내 끊임없이 내렸다. 끝물 고추를 따 가라는 고향을 지키는 친구의 말에 욕심내어 딴 고추를 말리는데 햇볕에 반나절, 방안에서 꼬박 한 달이 걸렸다. 어디서는 말리던 곶감의 꼭지가 다 떨어졌다고 했다. 감들은 반도 따지 못하고 새들의 먹이가 됐다. 진도의 후배에게서 데려온 강아지 이름을 옥금玉琴이라고 불렀는데 2주가 넘어서야 나를 주인으로 알아보고 반기기 시작했다. 집의 외벽을 어느 정도 고치자 12월이 되어있었다.
마을 총회가 있던 날, 마을회관에서 마을 분들을 만났다. 내가 택호를 알기 시작했던 어린 시절, 그분들의 모습은 거의 30대 안짝이었을 거였다. 하지만 이제 아는 분들은 열 분이 조금 넘게 살아계시고 다 돌아가셨다고 했다. 모두 내 손을 잡으며 반가워했지만 가족을 버리고 혼자 돌아온 나에 대한 뒷말은 실패한 인생의 안타까움과 다시 떠날 놈이란 인식이 박혀 있었다.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마을은 오직 적막만이 감돌았다. 구멍 난 창호지 문을 열고 마루에 나서면 집 밖의 도로에 켜진 가로등 불빛이 울타리 너머 매실나무의 형체를 알아보게 할 뿐 주위는 온통 어둠이었다. 가끔 개 짖는 소리가 적막을 깨지만 예전에 집집마다 흘러나오던 이야기나 웃음소리는 이제 들리지 않았다. 어쩌다 밝은 밤하늘이 나타나면 그래도 수많은 별들이 반짝였다. 어린 시절 흐르던 은하수는 이제 보이지 않고 광주가 있는 북동쪽 하늘이 별들은 희미했지만 동남쪽의 별들은 그래도 선명했다. 특히 오리온좌는 맨 먼저 나를 반기고 새벽에 오줌이 마려워 마당에 나서면 달을 따라 서쪽에서 반짝였다. 그쯤이 되면 북쪽의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이아는 북극성을 마주 보며 자리바꿈이 되어 있었다.
잠을 청하기 위해 방안에 누우면 이제 어떤 나무가 내는 바람 소리인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감나무는 휘어져서 되돌아오는 가지들 때문에 세졌다 약해지는 소리를 반복했다. 매실나무는 바람의 세기에 따라 휘하고 휘파람 소리를 냈다. 굴거리는 이파리 사이로 펄럭이는 소리를, 무성한 동백은 바람이 부딪혀 주위를 돌아가는 부드러운 울림소리를 보탰다.
옥금이를 데리고 늦은 오후가 되면 가끔 뒷산을 거닐었다. 월출산 자락에 터를 잡은 탓에 해가 늦게 뜨는 대신, 뒷산 산책길은 그쯤이 되어야 포근한 기운을 감싸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릴 적 날마다 뛰어놀고 올라가고 군불 나무를 베러 갔던 이 길은 지금은 산책길만 제외하고는 갖가지 나무들로 무성해져 버렸다. 산림녹화를 위해 심었던 오리나무는 고목이 됐고 오엽송은 굵고 커져 그 안에 들어서면 햇빛이 들지 않았다. 다만 산책길에 노란 솔잎의 융단을 깔았다. 참나무는 아직도 갈색 이파릴 몇 잎을 달고 나를 내려다보지만 그 길은 상당한 두께의 낙엽이 쌓여있어 밟으면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걸음 폭을 짧게 하곤 했다. 계곡은 더욱 깊게 패어 드러난 나무뿌리들이 흐르는 물과 물소리들의 쉼터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제 돌아와 상처를 원하지 않는 나와 군불을 위해 베어지고 베어져 상처투성이인 저 소철나무와 진달래들 사이에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온 삶을 움직여서 상처를 입은 나와 온몸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견디어 온 나무들 사이에 바람이 불고 있었다.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내 몸이 스러질 때 편안하게 웃을 수 있을까. 참나무에 기대어 하늘을 바라다보았다.
첫댓글 아~ 참 좋은 글입니다
작가와 함께 수십년 빈집을 지켜온 목련나무, 배롱나무, 매실나무들의 엉클어진 모습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