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대한 이중적 시선
뚜렷한 통증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몸이 아프다는 신호가 느껴졌다. 병원에 가면 피 뽑기부터 시작하여 기분나쁜 소리가 나는 동굴 같은 기계에다 나를 집어넣고 온갖 검사를 할 게 뻔하다. 온갖 그래프와 어지러운 숫자와 낯선 의학용어로 표기된 진단서를 바라보며 느낄 불안을 다시 겪고 싶지 않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집 근처 헬쓰장으로 차를 몰았다. 사무실에 가서 석 달 치 결제를 하고 곧장 헬쓰장으로 들어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런닝머신 위에서 걷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각자의 속도와 방식으로 육신을 다루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육중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온갖 기기들 앞에 주눅이 들었다. 우선 혼자서 할 수 있는 러닝머신부터 시작했다. 생각보다 30분은 지루했다. 초 단위로 깜박이는 시계를 바라보다 창문 밖 하늘에 눈길을 주기도 했다. 겨우 30분을 채우고 다리 근육 풀기와 허리 풀기를 했다. 내가 헬쓰장에 자발적으로 등록하다니 몸의 반란은 절대자의 말처럼 강력했다.
팔근육을 키우고 허리 근육을 펴기 위한 운동도 시도했다. 가장 낮은 레벨로 열 번을 당겼다 폈다. 팔을 한껏 당기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내가 스스로 정한 코스가 드디어 끝났다. 딱 한 시간 남짓이다. 하루는 욕심이 나서 과욕을 부렸다가 몸의 역공격을 당하기도 했다. 그 적당한 지점을 찾기까지 시행착오를 겪었다.
샤워를 하고 나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무엇보다 내 몸에게 최소한의 운동을 제공함으로써 도리를 다했다는 뿌듯함이 밀려왔다. 한 달쯤 지나자 몸의 변화가 조금씩 감지되었다. 이유 없이 통증이 닥치거나 어디가 불편한 낌새도 슬그머니 사라졌다.
허약체질로 태어난 나는 운동이라면 질색이었다. 학교가 집과 가까워 십리길을 왕복하며 통학하던 친구들에 비해 운동 신경이 뒤떨어졌다. 운동 신경이 둔하다는 걸 핑계 삼아 걷기나 등산 외에는 달리 시도한 운동 종목도 없다. 자전거를 배워볼까 하다가 온 다리에 든 멍자국을 보고 포기했다. 읽고 쓰기가 일상이자 직업이어도 육신이 잘 견뎌주었다.
잔병치레를 자주 했다. 계절이 바뀌면 목감기가 단골 손님처럼 찾아왔다. 한 한기를 마무리할 즈음이면 온몸의 에너지가 다 소진되어 탈진한 듯 드러누웠다. 그럼에도 큰 수술 한번 하지 않고 무난하게 세월의 강을 건너왔다. 보험금은 한 번도 타보지 못한 채 내가 납입한 돈은 보험회사 빌딩 층수만 높여준 셈이다.
세월은 무심하지 않았다. 어느 날은 허리가 아프고, 어떤 날은 손목이 시큰거렸다. 활자에 파묻혀 살았던 때는 두통이 잦았고 눈은 피로를 호소했다. 안구가 건조하고 편두통이 찾아오는 것은 참을 만했다. 문제는 통증의 급습이었다. 예고도 없이 들이닥치는 통증 앞에 나는 쩔쩔맸다. 달래도 보고 윽박질러도 보았으나 그 녀석은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쳤다. 난감했다.
의사는 운동 처방을 내렸다. 운동이라면 거부하거나 도망가던 내가 아니던가. 실내에서 기계의 명령 체계에 따라 단순한 동작을 반복하는 것은 질색이었다. 숲길을 걸으며 새소리와 바람결을 온몸으로 감지하던 산책의 즐거움을 선호하였다. 사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산책은 몸과 정신의 균형을 잡아주는 최선의 방안이라 여겼으니까.
운동의 효과를 강조하던 지인의 경험을 믿고 힘들게 헬쓰장에 발을 내디뎠다. 몸은 정직했다. 매일 한 시간씩 몸을 위해 시간을 할애하는 만큼 보답했다. 불현듯 찾아오던 통증도 싹 가시었다. 운동을 마치고 나올 때는 심장이 뜀박질하는 박진감도 괜찮았다. 내가 살아있는 생명체란 느낌도 즐기게 되었다. 정신노동에 에너지를 쏟으며 살아온 나는 비로소 몸의 감각과 육체성을 실감하게 된 것이다.
이성만이 인간다움을 증명할 뿐, 죽으면 흙이 될 육신을 애지중지해서 무엇하랴, 라는 말을 숭배하였다. 육십갑자 한 바퀴를 다 돌자 몸은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잉태의 순간부터 하루도 쉬지 않고 펌프질을 한 내 심장은 안녕한가. 감기를 앓고 나면 회복이 더딘 것은 그렇다 치자. 자고 나면 손가락이 굳어 미이라가 된 느낌, 중력의 힘에 밀려 줄어드는 키와 눈꺼풀의 처짐을 보면 내 몸의 유통기한이 다 한 듯하여 난감하다.
몸의 노화를 인정하기로 했다. 차도 오래 타면 부품을 갈고 정비소를 들락거리지 않던가. 머리에 지식을 채우는 것만이 중요했다. 나는 몸의 돌봄이나 투자에는 지독하게 인색했다. 이제 몸이 고장 나면 속수무책으로 병원에 드러눕든지 두 손 들고 항복해야 한다. 내 몸은 주인의 게으름과 무심함에도 잘 참고 견뎌주지 않았던가. 고맙고 감사할 일이다.
치매란 불청객이 찾아와 요양원에서 영어의 몸이 된 어머니. 치매의 습격이 먼저인지, 몸의 몰락이 먼저인지 모르겠다. 이틀이 멀다하고 병원을 찾아가고 몸에 좋다는 온갖 영양제를 먹었지만 몸의 노화는 막을 수 없었다. 잇몸이 망가지자 튼튼하던 이가 다 내려앉았다. 틀니도 소용없었다. 음식을 제대로 씹지 못하니 살과 근육이 다 빠져나갔다.
뼈에 살가죽만 남은 어머니는 자신의 몸이 망가지고 피폐해진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정신을 놓아버린 것을 다행이라 여겨야 하나. 사진을 정리하다가 젊은 날 한복을 입고 찍은 고운 어머니 모습과 마주했다. 맞아, 엄마에게도 젊은 새댁 시절이 있었지. 어머니는 미래의 내 모습이다. 가슴이 아리다. 누군들 늙음을 피해 갈 수 있으랴. 몸의 신호와 아우성에 자주 귀 기울여야지.
도킨스의 주장대로 몸이 유전자를 보완, 운송, 계승하는 생존 기계에 불과해도, 심장이 뛰는 한 나와 동행해야 한다. 몸은 다독이고 손잡고 가야 할 나의 동지이자 운명이니까. 좋았을까.
이운경
2010년《현대수필》로 등단, 2015년《수필미학》평론 등단.
산문집『변방에 피는 꽃』외, 비평집『수필의 진화와 그 스타일』외. 『경산곡곡 스토리텔링』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