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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원주율 파이 (ㅠ)
“열차가 계속해서 도느냐고? … 혹시 너, 무한동력을 생각하고 있냐?”
티브이에서 방영된 음속 열차 하이퍼루프에 관한 동영상과 해설을 본 정훈이 갑자기, 원형 선로를 만들어서 그 위에 자기부상열차를 올려 움직이면 무한하게 돌아갈 수 있느냐고 묻자, 부친 이재성은 잠깐 생각하더니 금세 무한동력이란 말을 끄집어냈다.
아마 이재성도 무한동력에 관해 관심이 있거나 잘 알고 있는 모양이다.
“예, 아버지. 눈치채셨어요? 히히. 자석만 가지고도 어떤 물체를 무한히 돌릴 수만 있다면, 영구기관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아버지가 금방 자기 말 뜻을 이해해주자 정훈은 기분이 좋아서 속내를 터놓고 얘기했다.
“음… 그래! 네 말대로 영구자석만 가지고 물체를 원형궤도를 따라서 무한히 돌릴 수는 있다.”
전자공학을 전공해서 대기업 연구소 부장까지 지냈고, 나중에 무선통신 중계기 제조업체까지 차려서 운영했던 이재성이다. 진중한 성품의 그가 된다고 말하면 분명히 될 것이다.
“아, 가능해요? 자기부상열차처럼 N극과 S극을 서로 교차시키면서 당기고 밀면 되는 거지요? 히히.
정훈이 제가 생각한 기본원리와 아버지가 생각하는 게 혹시 다른가 싶어 재확인해본다.
“음... 한 20년쯤 됐나? 미국에서 제법 규모가 큰 아마추어 발명가 작품 경진대회가 열렸어. 거기서 1등인 금상을 우리 재미교포 청년이 탔었지. 우리 일간지에 제법 큰 기사로 나와서 잘 기억하고 있다.”
이재성이 오래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 그래요? 미국 발명대회에서 1등이면 대단한 건데, 출품한 발명품이 뭐였대요?”
신제품 연구개발이 취미이면서 주특기인 정훈이 토끼 눈을 뜨고 쳐다본다.
“그게 장난감 자동차였어. 외형상으로는 투명한 플라스틱 잘라서 손으로 만들고 바퀴 4개가 달려서 굴러가는 별로 보잘것없는 평범한 장난감 자동차였지.”
“아, 혹시 그게 영구자석으로 작동되는 거 아니었어요? 맞죠!”
“허허, 그래 맞다. 그 장난감 자동차가 네 말대로 영구자석을 이용해서 외부 에너지 공급 없이 굴러가는 무한동력 자동차였다!”
금세 눈치채는 아들이 기특해서 이재성의 얼굴이 환해진다.
“그런데, 조그만 장난감 자동차에 둥근 원형으로 발전기를 만들어 달았어요? 바퀴도 굴리려면 톱니바퀴도 들어가고 아주 복잡하게 만들어야 될 거 같은데요?”
“아니다. 무한동력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만 보여주는 시제품으로, 장난감 자동차는 앞으로만 계속 달려가는 거였어. 발전기도 둥근 원반형이 아니고, 자동차 길이에 맞춘 길쭉한 모양으로 자동차 속에 내장시켰대.”
“직선 구조면… 자석을 앞뒤로 움직이게 했다는 말씀인가요? 직선운동을 기계적으로 원운동으로 바꿀 수는 있으니까. 아, 하! 앞쪽과 뒤쪽에 N극과 S극 자석을 두고, 가운데에 N과 S극이 맞붙은 막대자석을 넣어서, 다른 극끼리의 흡인력과 같은 극끼리의 반발력에 의해 앞뒤로 왔다 갔다 하게 만들었군요! 맞아, 그렇게 하면 되겠네요. 물론 막대자석 바닥의 마찰은 최소한으로 줄이고요. 하하, 그 사람 머리 참 좋은데요? 나는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정훈이 감을 잡고 제 이마를 두어 번 토닥거린다.
“정훈이 니 머리가 와 어때서? 니도 학교 다닐 때 맨날 1등하고 우등상만 타 왔고 마는!”
아들이 자책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정훈의 어머니 구 여사가 위로하며 끼어든다.
“예, 엄마! 그 친구는 드론은 개발 못했어요. 제가 한 수 위에요. 하하.”
“그렇재? 그딴 장난감 맨들어서 돈도 못 벌었을 끼고마는! 호호.”
“아녜요, 엄마! 그 장난감은 엄청난 발명품이에요. 아버지, 그 사람 어떻게 됐는지는 아세요? 물론 발명특허는 출원했겠죠?”
전지도 필요 없이 무한동력으로 움직이는 세계 최초의 장난감 자동차이고, 미국 발명품 경진대회에서 금상까지 탔는데, 모르긴 해도 어느 장난감 회사에서 엄청나게 큰돈을 주고 특허기술을 사 가지 않았을까 싶다.
“그랬대. 발명특허도 출원해 있었고, 유수한 장난감 제조업체들이 접촉했던 모양이야. 그런데, 그 신문 기사가 나고 1년도 안 돼서, 그 사람이 국내에 들어와 대전에 있는 모 국가 출연 연구기관에 연구원으로 근무한다는 기사가 조그맣게 난 걸 본 적이 있다.”
“아~ 대단한 발명이니까, 외국에 뺏기기 전에 국가적인 차원에서 대응한 거 군요. 그럼 그 연구기관에서 무한동력 영구기관을 대신해서 개발했겠네요? 근데, 왜 아직 그런 발표가 없었죠?”
“원리만 안다고 상용화할 수 있는 제품이 금방 만들어지는 건 아니지 않냐? 그 장난감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멈춰 섰겠지. 왔다 갔다 하는 자석의 마찰계수를 제로로 만들 수는 없었을 거니까. 국가 연구기관에서는 우선 그 발명특허를 외국에 뺏기지 않으려고 서둘러 그 사람을 국내로 데려온 것뿐일 것이고! 그때 그 사람 나이가 네 정도였으니까, 지금은 50살도 훨씬 넘었겠다. 허허.”
“거, 봐라. 그 사람 니한테 비하모 암 껏도 아이다! 돈도 안 되는 거 백지 맨들어 가지고, 나라 돈만 축내고 살았는 가베. 호호.”
정훈이 어머니는 아들이 이 세상에서 최고다.
“하하, 엄마는 참! 그 사람, 가만히 놀고 앉아서 평생 봉급 받았으면 잘한 거지 뭘 그래요. 하하하.”
“글쎄… 그 사람이 나중에 어찌 됐는지는 나도 모른다. 박사들이 우글거리는 그 연구기관에서 근무했을 리는 만무하고, 어느 정도 보상금을 받고 다른 일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그때 우리 정부에서 그런 조치를 취한 것은 정말 천만다행한 일이다.”
“막대자석을 앞뒤로 움직인 건 문제가 좀 많아 보이네요. 물론 장난감 자동차에 적용하느라고 그랬겠지만요. 그런데 원통을 구부려서 둥글게 원형으로 만들고 그 안에 N극과 S극이 맞붙은 막대자석을 집어넣어서 자기부상열차처럼 밑에서 전자석 N과 S극을 교차시켜서 돌리면 영구히 회전하지 않을까요? 막대자석이 자력에 의해 부상되어서 공중에 뜨니까, 마찰계수는 별 문제가 안 될 것 같고요. 물론 초기 구동을 위한 전자석의 가동 전류는 필요하니까, 시작 단계에 외부 전력은 조금 들어가겠죠. 그것도, 일단 돌기 시작하면 회전운동을 이용해서 자체에서 발생시킨 전력으로 대체하면 되지 않겠어요? 히히, 그렇게 만들어서는 안 돌아가겠죠? 크크.”
정훈이 제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순한 아이디어는 내뱉었지만, 물리법칙에 어긋나서 불가능하다는 무한동력 영구기관을 그렇게 엉성하게 제작해서 돌아가겠나 싶은가 보다.
시작은 미약하나마, 그 끝은 창대하리라!
“나는 가능하다고 본다! 다만, 그 막대자석의 회전 속도를 일정하게 제어해야 되는 문제가 남는다. 그냥 두면 속도가 무한대로 증가해버리거나 갑자기 감소하거나 들쭉날쭉해서 일정한 속도가 요구되는 발전기의 구동력으로는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
“아, 예. 그런 문제가 있겠네요. 회전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만 있다면, 영구자석에 의한 무한동력은 가능하다는 말씀이지요? 그런데, 아버지는 어떻게 그리 잘 아세요? 아버지도 전에 무한동력에 관심이 많으셨던가 보죠? 하하.”
“정훈아, 니 아부지 말도 마라! 니 낳고 얼마 되지도 않아서부터 그거 뭔지 몰라도, 그거 만든다고 얼매나 연구했는지 아나? 서울 가서 자석이란 자석은 다 사다 놓고, 무슨 베클라이튼가 뭔가 하는 거로 구멍 잔뜩 뚫린 원반 같은 거 만들어 오더 마는, 나중에는 자전거 바퀴까지 방안에 들고 들어왔다 아이가! 호호.”
“아, 아버지가 그러셨어요? 저 낳고 나서면 한참 젊으셨을 때인데, 그럼 아까 그 발명상 받은 사람보다 아버지가 먼저 무한동력을 연구하셨나 보네요? 어쩐지 아버지가 너무 잘 알고 계신다 싶더라고요. 하하. 그런데, 연구 결과가 신통치 않으셨어요? 히히.”
정훈이 역시 우리 아버지다 싶은 모양인지 연신 싱글벙글거린다.
“정훈아, 나한테 영구기관에 관한 자료가 좀 있는데, 서재에 가서 한번 볼래?”
아들과 영구기관에 대한 중요한 얘기를 하는 중에 정훈의 어머니가 자꾸 끼어들어 맥을 끊어놓자, 이재성이 서재로 가자며 슬며시 일어선다.
“와, 그래요? 여기로 가져오면 되지, 나도 좀 보고로! 얼매나 좋은 자료라서 그리 오랫동안 신줏단지처럼 모셔놨는지 한번 구경이나 해봅시다. 호호.”
자기가 괜히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부자간 대화 분위기를 망쳐놓아 미안했는지, 정훈 어머니가 일어서는 남편을 올려다보며 겸연쩍은 미소를 띤다.
어쩌면 별 재주나 기술도 없는 이재성을 하늘같이 떠받들고 우러러보면서 40년 넘는 세월을 뒷바라지하고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전부 복잡하고 어려운 수학 공식들이라 당신은 봐도 눈만 상그럽고 머리만 아플 거요. 허허.”
아내를 무시해서는 아니지만, 바둑도 골치 아파서 안 배우겠다던 정훈의 어머니를 웃음으로만 달래서 홀로 남겨두고, 이재성은 아들을 데리고 서재로 건너갔다.
“너, 원주율 `파이`가 얼마냐?”
“3.141592 요. 더 이상은 안 외우고 있는데, 왜요?”
“그럼, 계산할 때는 어떻게 하냐? 소수점 몇 자리까지 쳐 넣는데?”
“그냥 3.14를 치기도 하고, 좀 정밀한 계산 할 때는 계산기나 컴퓨터에 저장된 `ㅠ`를 쳐 넣습니다. 3.141592654… 어쩌고 하면서 무한대로 가는 무리수잖아요?”
“혹시 계산한 결과 하고 시험이나 실험한 결과 하고 잘 안 맞는 적은 없었냐?”
뜬금없이 원의 지름에 대한 둘레의 비율인 원주율 값을 물어본 재성이, 아들 정훈의 눈 속을 뚫어져라 들여다보면서 또 엉뚱한 질문을 한다.
“예, 가끔 그런 적이 있었어요. 그거야 뭐, 제품의 제작이 잘못돼서 그러지 않았겠어요? 아무리 잘 만들어도 이론과 실제 사이에는 항상 오차가 존재하니까요! 그런데, 그건 왜 물어보시는데요?”
정훈이 부친의 요상한 질문에 기억을 더듬어 몇 번 겪었던 일을 상기하면서도 왜 그런 기초적인 문제를 물어보는지 의아해한다.
대화의 주제와 상관없는 불필요한 얘기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재성의 성격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응, 실은 내가 예전에 그런 경험이 아주 많았다. 고주파 발생기의 LC 공진기를 만들 때, 구성 부품인 코일의 L 값과 커패시터 C 값으로 주파수를 계산하는 공식이 있는데 거기에 `ㅠ`가 들어가 있어. 그런데, 실험의 결과치가 항상 전혀 엉뚱한 값으로 나오는 거야. 그래서 제 주파수에 맞추려면 가변 트리머 커패시터를 병렬로 연결해서 조정봉으로 돌려서 맞추곤 했어.”
“그게 이론과 실제의 오차이지 않아요? 그래서 고급 고주파 발생기는 위상 고착 루프인 PLL 회로에 의한 주파수 합성기 FSS로 만들지 않습니까? 그건 아버지 전문이잖아요! 하하.”
“그것보다 나는, 두 점을 잇는 직선과 면적인 원을 이어주는 중요한 상수 원주율이 딱 떨어지는 숫자가 아니고, 소수점 이하 무한한 숫자로 이어지는 무리수라는 게 마음에 걸린다는 거지! 원이 다시 원주율 `파이`에 의해 구로 만들어지면 평면에서 입체로 연결되는데, 그런 불완전한 `ㅠ`가 매개 상수라는 것이 영 찝찝했었어.”
“그래서요? 뭘 어떻게 하시려고요?”
부친의 세설이 긴 것으로 보아 아버지가 뭔가 나름대로 준비한 것이 분명히 있겠다 싶어 정훈이 얼른 물어본다.
“그때, 네 출산 예정일이 3월 14일이어서 3.14, 원주율 `ㅠ`와 같구나 싶어, 나는 네가 뭔가 그 문제의 정답을 가지고 태어나기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지!”
“예? 제 생일은 3월 16일이지 않습니까? 하하.”
“그래! 이틀이나 늦게 태어나서 내가 얼마나 실망했는지 아냐? 허허.”
“아이고, 아버지! 태어나면서부터 아버지를 실망시킨 이 불효자를 용서해 주십시오. 흨흨.”
정훈이 웃으면서 아버지 앞에 장난을 친다,
이거, 대단한 자부심 지니고 있다는 두 과학자 부자지간의 대화 맞는 거야?
“아니다, 너는 효자로 태어났느니라! 허허.”
“예? 효자라니요? 3월 16일 날 태어나서 실망하셨다면서요!”
“그랬지. 그랬는데, 그 며칠 뒤에 내가 우연히 10의 제곱근을 구한다고 계산기 캘큐레이터로 `루트 10`을 쳤더니 글쎄, 그 해가 3.162277… 로 나오는 거야. 하하.”
재성의 얼굴에 환한 빛이 서린다.
“예? `루트10`이 3.16이에요? 제 생일과 같더란 말씀이죠? 그런데, `루트10`으로 태어난 제가 왜 효자라고 그러시는데요? 10진법의 뿌리 있는 놈이라도 된다는 말씀입니까? 히히.”
“그래서 내가, 혹시 원주율 `ㅠ`가 `루트10`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된 거지! 3.141592..의 무리수보다는 그래도 훨씬 나으니까. 만약 `루트10`이 `ㅠ`면, `ㅠ`를 제곱하면 바로 10이라는 정수가 되고. 그지? 허허.”
“아, 예~ 그러면 좋기는 하겠네요. 그런데, `루트10`으로 계산은 해보셨어요? 하하.”
“해봤지! 전부 다 거의 맞아떨어지더라. 그 후로는 나한테는 `ㅠ`가 `루트10`이 된 거야. 물론 남한테, 너한테마저도 그걸 얘기해줄 수는 없었지. 무슨 수학적으로 풀어서 증명된 건 아니니까! 다만 무슨 연유인지는 몰라도 저 높은 곳에서 너를 통해 내게 그 진실을 알려 준 거라고 믿게 된 거다. 음흠.”
그렇게 말은 하면서도, 수십 년도 더 된 그 이야기를 아들 정훈이 앞에서 밝히는 이재성의 얼굴 표정은 원주율 `ㅠ`는 확실히 `루트10`이라는 자신감에 넘쳐있다.
대졸 신입으로 대기업인 L그룹 방위산업체 연구소에 입사해서 부장 직책까지 수행하며 군용 무전기를 개발했고, 가정용 무선전화기뿐만 아니라 핸드폰도 개발 책임자로 S그룹보다 1년 먼저 시중에 출시했으며, 나중에는 ㈜태성이라는 무선통신 중계기 제조업체를 차려 운영하면서 평생을 무선통신 연구 분야에 종사한 그가, 이제 또 무슨 일을 저지르려고 저러는 걸까?
그것도, 영구자석을 이용한 무한동력 제작이 가능하다고 아들에게 당당하고 자신감 있게 얘기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