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
1. 최근 TV 프로 중에서 가장 흥미롭게 보는 것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 꼬꼬무>이다. 이 프로그램의 장점은 우리가 알고 있다고 하는 사건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알려줄 뿐 아니라 그 사건의 배경 그리고 뒷이야기까지 전달해 준다는 점이다. 우리는 세상을 뒤흔든 사건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제대로 알지는 못한다. 어설픈 지식은 때론 인식의 왜곡을 가져와 문제의 핵심과는 다른 판단을 이끌 수 있다는 점에서. ‘꼬꼬무’는 세상에 대한 정확한 견해를 위해서도 대단히 중요한 언론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2. 유시민이 2021년 전면 개정판으로 발간한 『거꾸로 읽는 세계사』 또한 마찬가지다. 유시민은 1980년대 학생 및 시민운동에 참여하면서도, 틈틈이 저술에 집중하여 『거꾸로 읽는 세계사』 발표했다. 1980대 후반을 기준으로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을 정리한 것이다. 그것을 21세기가 20년 이상 지난 시점에 다시 개정 출판하였다. 새로운 출판은 20세기 후반 격동의 변화를 거친 관점의 변화가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 책의 장점은 ‘꼬꼬무’와 같이 20세기를 휩쓴 가장 영향력있는 사건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영향에 대한 정리라 할 수 있다.
3. 유시민은 20세기의 중요 사건을 11장으로 나눠 간결하면서도 핵심적인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익숙하게 어느 정도 알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20세기의 역사이다. 각각의 사건 모두 장대한 분석을 거친 다양한 저작물들이 나와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러한 방대한 양이 오히려 사건의 진실에 접근하는데 방해가 되었는지 모른다. 진실을 알기에는 너무도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유시민은 스스로 ‘지식의 소매상’으로 평하듯이, 그러한 거대 담론을 쉽고 평이하면서도 중요한 관점을 놓치지 않고 전달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20세기 세계사에 대한 ‘입문서’로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다른 책을 읽지 않아도 사건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가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4. 프랑스의 뒤레푸스 사건, 1차 세계대전, 러시아 혁명, 중화인민공화국의 탄생, 히틀러와 제2차 세계대전, 베트남의 해방 투쟁, 그리고 소련의 해체와 같은 역사적 전환점의 시작과 전개 그리고 결말에 대한 중요한 정보와 해석 그리고 저자의 결론이 곁들여지면서 문제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와 더불어 사건에 대한 해석적 관점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다. 결코 길지 않으면서도 2번 정도 정독한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이러한 역사적 사건의 대해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지식은 확보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5. 그 중에서도 특별하게 관심을 갖고 읽은 부분은 ‘고르바초프’에 관한 내용이었다. 20세기 후반 비록 불안하게 지속되었지만 소련과 동부 유럽의 사회주의 정부가 그렇게 급격하게 몰락할 것이라고 예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한 인물의 등장이 전 세계를 완전히 변화시켰다. 고르바초프가 소련의 서기장으로 취임하고 페레스트로이카(개혁), 글라스노스트(개방)을 선포했을 때 그동안 억제되었던 공산주의 국가들의 민주화 요구가 분출되었고 독일의 통일을 비롯하여 완전히 변화된 세상을 이끌었다. 그럼에도 고르바초프의 역할이나 중요성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그의 중요성을 이야기한 글을 쉽게 만날 수 없었던 것은 오랜 개인적인 의문이기도 하였다. ‘왜 고르바초프의 중요함은 과소평가받을까?’ 이것은 하나의 물음이기도 하였다.
6. 어쩌면 고르바초프라는 인물의 아이러니때문일지도 모른다. 고르바초프는 결코 소련연방을 해체할 의도는 없었다. 하지만 그가 시작한 개혁과 개방이 결국 소련을 해체시킴으로써 세계에 긍정적 변화를 이끌었지만 조국에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긴 것이다. 그러한 점이 그의 중요성을 감소시켰는지 모른다. 유시민의 책을 통해서 고르바초프에 대한 좀 더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영향을 알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아쉬우나마 ‘고르바초프’의 역할을 이해할 수 있었다. 유시민의 말대로 최후의 ‘낭만적인 사회주의자’가 촉발한 세계의 변화였던 것이다. “사회 모든 분야의 폭넓은 민주화가 필요하다.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발전했다면 당연한 여러 어려움을 피할 수 있었을 것임을 우리는 안다. 역사가 준 이 교훈을 잊지 않을 것이다. 사회주의에 내재한 민주주의 형식의 일관된 발전을 이루어야만 생산, 과학과 기술, 문화와 예술의 진보를 이룰 수 있다. 페레스트로이카는 민주주의를 통해서만 구현할 수 있다.”<고르바초프의 글>
7. 저자는 에필로그를 통해 21세기를 추론해본다. 그가 강조하는 세계는 ‘과학기술’의 중요성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두 사람의 위대한 인물을 소환한다. 하나는 현재의 컴퓨터와 인공지능을 가능하게 한 ‘튜링’이라는 과학자와 20세기 가장 중요한 사상가였던 마르크스이다. 인류가 직면한 지구적인 위기는 20세기와는 같으면서도 다른 방식으로 극대화되고 있다. 변화지 않는 타자에 대한 ‘차별’은 20세기와 연속이며, 새로운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은 21세기에 새롭게 확대된 불안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념이나 가치에 대한 접근보다는 물질적인 변화와 과학적 발전을 통하여 해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세기 역사를 통해서도 근본적인 문제는 결국 경제나 환경과 같은 물질적 것들이 핵심이 되었다. 정신적인 문제는 어쩌면 물질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파생한 문제들이었다.
8. 튜링이 촉발하여 발전되고 있는 ‘4차 혁명’의 기술적 진전은 분명 지구적 위기와 맞설 수 있는 최상의 무기일 것이다. 하지만 기술적 발전이 가져올 부정적 결과나 영향에 대해서도 분명한 성찰이 동반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마르크스는 여전히 중요하다. ‘사회주의’의 완성을 예언한 혁명가로서가 아닌, 물질적인 변화와 토대가 정치, 문화, 정신의 변화를 이끌러낸다는 세상에 대한 탁월한 관점이 유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질과 정신의 상호간의 영향 속에서 만들어지는 사회적 구성의 중요성을 정확하게 읽어내고 분석하였다는 점 또한 중요하다. 비록 그가 만난 세계는 19세기였지만 21세기에서도 그의 관점은 여전히 세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9. 새로운 지식의 담론을 만들어내는 책의 중요성은 말할 나위가 없다. 또한 복잡하고 어려운 세상의 지식을 알기 쉽게 전달해주는 입문서의 중요성도 강조할 필요없다. 분명 의미있는 지식임에도 난해함 때문에 전달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죽은 언어일 뿐이다. 지식의 생산자는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소매상의 역할도 크다. 그런 점에서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20세기 세계사를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는 최상의 통로라 할 수 있다. 그의 말대로 인생의 반을 20세기에 산 사람으로서, 나머지 반을 21세기에 살아갈 사람으로서의 역할이다. 그것은 그의 책을 읽는 나에게도 적용되는 말일 수 있다.
첫댓글 - 물질과 정신은 함께 있다. 푸틴의 생각도 경제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 모두 과거에의 회한을 가지고 서로를 이해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상황도 미묘한 시점에서 스스로 살 길을 가야할 처지이다. 평화는 강대국들의 선택이지, 약소국들의 권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역사가 보여주는 교훈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