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부정적 감정을 다스리다.
분노는 좋지 않다.
'감정을 파괴하는 감정'이라 여겨지는 분노는 스트레스는 물론이거니와 두통, 과민성 대장 증후군, 고혈압이나 뇌졸중 등을 불러와 자신의 몸을 상하게 할 수 도 있지만 남을 해치기도 한다.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이 부부싸움이 잦은 가정에서 자라는 400명의 아이들을 5년 동안 관찰한 결과, 이들은 나중에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분노는 감정을 파괴할 뿐만아니라 자신과 타인에게까지 해를 미칠 수 있다. 그리고 분노뿐만 아니라 다른 부정적 감정들도 격발하거나 오랫동안 지속되었을 때 여러 가지로 좋지 않은 결과들을 낳곤 한다. 어떻게 하면 이런 부정적 감정들을 정화 시킬 수 있을까?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프로이트는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생각을 무의식으로 밀어낸다고 말했다. 그리고 무의식으로 밀어낸 원치 않는 생각들이 쌓이고 서로 결합하면서 심리적 에너지를 점점 높여가다가, 급기야 여러 가지 부정적인 형태로 의식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이로 인해 우리는 우울증, 불안증, 신경증에 걸린다. 결국 프로이트는 이러한 무의식적 에너지가 문제를 일으키기 전에 억압된 생각을 제거해야 심리적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그는 우리가 폭력적인 생각을 억누르기 때문에 분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억압된 부정적 감정은 분출해야 한다. 소리를 지르고 샌드백을 때리며 물건을 던지는 행위를 할 때 분노는 정화될 수 있다. 이런 프로이트식 감정 정화법을 '카타르시스(catharsis)'라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사람들이 비극을 볼 때면, 주인공의 비참한 운명에 분노와 부정적 감정이 격렬해지며 이로 인해 마음에 잠재되어 있던 부정적 감정들이 순화되는 카타르시스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정화'를 뜻하는 카타르시스의 원래 의미는 '배설'이다. 쌓인 분노와 부정적 감정을 배설해야 정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1970년대 뉴햄프셔 대학의 사회학자 머리 스트라우스는 프로이트식 치료법을 부부들에게 시행해 보고 오히려 그 반대로 결과가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마음을 정화하기 위해 소리를 지르고 아기 젖병을 배우자라고 생각하고 깨물어 보라고 한 그룹에서 더 심각한 다툼이 지속된 것이다.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 대학의 에브 에베센 연구팀은 인근에 위치한 기업이 조만간 대량해고를 실시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바로 조사에 들어갔다. 직원들은 3년 계약을 하였는데 1년만에 해고가 되는 것이어서 화가 단단히 나 있었다. 연구팀은 한 그룹에게는 기업의 부당한 처사에 대해 얼마나 화가 나는지 토로해 보라고 했고, 다른 그룹에게는 해고와 관련 없는 일반적인 질문을 했다. 면담 후 측정했더니, 감정을 표출한 그룹이 회사에 대해 더 큰 적대감을 표현했다.
위대한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은 울기 때문에 속상해지고, 두들기기 때문에 화가 나고, 떨기때문에 무서워진다."
우리 뇌는 상황을 다각적으로 판단하는데, 그 판단의 근거 중 하나가 생리현상 그 자체이다. 눈물을 흘리고 울음을 터뜨리면 슬픔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뇌가 흘러내리는 눈물과 터져 나오는 울음을 인지해 우리를 더 슬픔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카타르시스 이론은 폐기된 지 오래지만, 아직도 드라마에서는 슬퍼하는 친구에게 "그래, 실컷 울어! 그러면 후련해 질거야"라고 조언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부정적 감정들을 다스릴 수 있을까? 캘리포니아 대학 심리학 교수인 매튜 리버먼은 성인들에게 다양한 사진들을 보면서 사진들의 정서적 측면을 잘 기술하고 있는 단어를 고르는 과제를 내주었다. 참가자들은 사진을 보며 '화난', '겁먹은' 같은 단어를 찾으면 되었다. 연구 결과 불쾌한 사진을 보더라도 그것의 정서적 측면을 적절히 서술할 수 있을 때, 스트레스가 줄어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다른 연구에 따르면, 자신의 감정을 잘 기술할 수 있는 미취학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동들에 비해 감정의 폭발이 적으며, 나중에 학교성적도 더 좋고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더 좋았다. 또한 시험전에 시험에 대한 불안을 글로 서술한 고등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더 좋은 성적을 냈다. 이것은 감정을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기술할 때 진짜 정화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것을 심리학 용어로 '정서 명명하기(affect labeling)'라고 한다. 매튜 리버먼 교수는 여러 연구를 실행한 끝에 감정 정화에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정서 명명하기'이며, 특히 부정적인 정서일수록 효과가 크다고 한다.
'정서 명명하기'를 할 때, 뇌에서 전전두피질의 활동은 증가한 반면 편도체의 활동은 감소한다. 뇌가 동물에서 인간으로, 본능에서 이성으로 방향을 선회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 자체가 무엇인지를 서술할 때 자신도 모르게 '자기절제'가 되고 있는 셈이다.
분노와 슬픔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다. 하지만 살다 보면 통제하거나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기 마련이다. 결국 내 자신을 다스려야 한다. 이때 소리를 지르거나 통곡을 한다면 오히려 부정적 감정이 정화되는 것이 아니라 폭발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격한 부정적 감정이 엄습해 올 때, 가장 좋은 것은 그것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다.
차분히 자리에 앉아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를 적어 보자. 그 감정이 자신에게 주는 부정적 영향이 무엇인지 자료를 찾아 같이 서술해 보면 더 좋을지도 모른다. 혹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었던 소설 속 인물들을 자신의 글 속으로 소환하여 자신의 감정과 함께 춤을 추게 해도 좋을 것이다. 이처럼 글을 쓰는 것은 마음의 평화를 찾는 행위이다.
** 본 내용은 그녀생각(고영성)의 신작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필독(쓰면서 읽다)편'에 있는 내용입니다.
첫댓글 돌처럼님! 오늘도 좋은 글을 올려주셨네요. 동의합니다. 글쓰기는 감정다스리기에 매우 좋은 도구인 듯합니다. 우리 모두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글쓰기를 통해 표현하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할 듯합니다. 감사합니다.
촛불님 댓글 감사합니다.
정서적 측면의 글쓰기를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무엇보다 일기가 가장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일기만이 자기 자신에게 가장 솔직해질 수 있는 수단일 테니까요.
필리아님 일기쓰기는 매우 좋지요.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은 부정적감정을 표출,참지 말고 그 감정사안의 내용,과정, 결과,느낌등을 글로 적어 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