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경상록아카데미 시 문학 교실 강의 자료
제 9강: 달빛화간ㅣ 2017. 6. 1(목) 지도교수 정 숙
달빛화간 1
길다
길어도 너무 길다
혀끝을 깊숙이 밀어 넣어 꿀을 빨아먹기 위해서 인가
꽃 대궁이 속 타액은 원래 나비의 것인데
달은
꽃을 탐하여
그렇게 혀를 길게 내밀고 있는 것이다
그 달콤한 순간을 기다리는 달맞이는
밤마다 제 몸을 열어 서로 연민의 깊이를 음미한다
이제껏 보름달과 꽃의 표정이 좀 수상하다 했더니
그런 부적절한 관계였나
그 까닭으로 달뜨는 밤이면 많은 이들이 가슴 설레고
늑대울음을 우는 것이었구나!
내 시의 혓바닥은
여직 생각이 무디고 짧아서 맛을 음미할 줄 모른다
상처만 주지 내통이 잘되지 않는다
이 외사랑, 아득하여라
통곡
-이상화
하늘을 우러러
울기는 하여도,
하늘이 그리워 울음이 아니다.
두 발을 못 뻗는 이 땅이 애닯아
하늘을 흘기는
울음이 터진다.
해야 웃지 마라.
달도 뜨지 마라.
꽃구경가요 -김형영
어머니 꽃구경가요
제 등에 업혀 꽃구경가요
세상이 온통 꽃 핀 봄날
어머니는 좋아라고
아들 등에 업혔네
마을을 지나고 산길을 지나고
산자락에 휘감겨 숲길이 깊어지자
아이구머니나 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더니
꽃구경 봄구경 눈감아 버리더니
한 움큼씩 한 움쿰씩 솔잎을 따서 뿌리고 가네
어머니 지금 뭐하신데요
솔잎은 뿌려서 뭐하신데요
아들아 아들아 내아들아
너 혼자 내려갈 일이 걱정이구나
길 잃고 헤매일까 걱정이구나
똥패 / 박이화
화투라면
꾼 중의 꾼이었던 나도
다 늦게 배운 고도리 판에서는
판판이 깨어지고 박살납니다.
육백시절의
그 울긋불긋한 꽃놀이패를
그러나 고도리 판에서는 만년 똥패를
미련 없이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늘상 막판에 피박을 쓰기 때문이지요.
그러니까 나는 저 한물간 낭만주의에 젖어
이 시대의 영악한 포스트모던에 영합하지 못했던 겁니다.
사랑도 움직인다는 016디지털 세상에서
나는 어리석게도 아날로그 추억에
젖어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지금 내 생애도
버리지 못하는 패가 하나 있습니다.
젖은 꽁초러럼 미련 없이 던져야 하는데도
홍도의 순정으로 도무지,
내 손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패가 하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이 더 이상 히든패가 아닌 세상!
잊어야 하는 데도
언제 어디서나 흥얼거려지는 당신
흘러간 동숙의 노래처럼
그리움이 변해서 사무친 미움이라면
당신은 분명
내 생애 최악의 똥패인지 모릅니다.
소주병 / 공 광 규
술병은 잔에다
자기를 계속 따라 주면서
속을 비워간다
빈 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거리나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문 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공광규 시인
출생1960년 6월 15일
출생지대한민국 충남 청양군
데뷔1986년 동서문학 '저녁1' 등단
수상2009년 제4회 윤동주상 문학부문 대상
첫댓글 시문예교실 강의자료.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