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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일시: 2016년 1월 30일 (토)
o 날씨: 맑음(안개)
o 산행경로: 장성갈재 - 쓰리봉 - 연지봉 - 방장산(743m) - 고창고개 - 억새봉 - 벽오봉 - 갈미봉 - 양고살재
o 산행거리: 8.5km
o 소요시간: 4시간 15분
o 지역: 전북 정읍, 전남 장성
o 일행: 좋은사람들 산악회
o 산행정보: 방장산
오늘 산행지는 전라북도와 전라남도를 가르는 방장산이다. 방장산은 서해안에 접해있기 때문에 겨울해풍이 빚어내는 상고대가 멋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주에 이 지역에 폭설까지 내렸으니.... 하지만 그후로 날씨가 포근해졌고 심지어 어제는 제법 많은 비가 내린 후라 어떤 모습일지 기대반 우려반이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익산에서 별로 멀지않은 거리라 나홀라 산행이 가능한데도 굳이 서울까지 올라와서 산악회를 따라 나선 이유는 산행들머리와 날머리가 완전히 반대방향이라 원점회귀가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택시를 부르면 되지만 아마도 핑계삼아 한번이라도 집에 더 오고 싶은 심리가 숨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산행은 장성갈재에서 시작하여 쓰리봉과 연자봉을 지나 방장산에 오르며, 이후 고창고개를 넘고 벽오봉을 지나 양고살재로 하산하게 된다. 고창고개에서 방장산자연휴양림으로 하산하는 것도 가능하다.
서울에서 출발한 버스가 천안을 지나면서부터 차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여전히 반쯤은 설국이다. 어제 내린비에 많이 씻기긴 했지만 하얀눈이 덮은 대지는 겨울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산행들머리 장성갈재에 도착한 시간은 10시 30분, 산행시간은 5시간 반이 주어져 4시까지 하산하면 된다. 주어진 시간은 넉넉한데....과연 방장산은 어떤모습으로 맞아줄까.........
▼ 장성갈재 모습 (산행 들머리)
[장성갈재] 장성갈재는 노령(蘆嶺)이라고 하며 전라남도 장성군과 전라북도 정읍시 사이에 있는 높이 276m의 고개이다. 갈재라고도 하며 전남과 전북의 도 경계를 이루기 때문에 도보로 이동하던 시절부터 교통의 요충지였다. 인근에 있는 입암산을 거쳐 방장산으로 연결되며, 노령산맥을 가로질러 곡창지대인 호남평야와 전남평야를를 이어주기 때문이다. 갈재라는 이름은 갈대가 많다 해서 붙은 것이나, 일제강점기에에 지명이 한자식으로 변경되었다. 노령산맥이라는 이름도 노령에서 나온 것이다. 노령의 동쪽은 내장산으로 이어진다.
노령은 높이에 비해 험한 고갯길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위령(葦嶺)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도적이 떼를 지어 살면서 백주에 살육과 약탈을 하는 요해(要害)의 땅이라고 적혀 있다. 과거 이 고개는 유배가는 선비들이 많이 넘었다. 남도의 관문으로 전남 지역에 부임하는 관리를 비롯해 봇짐장수나 과거 보러 가는 선비들이 넘어다니던 장소라 여러 전설이 전해져온다. 목란마을 앞산의 능선에 있는 미인바위 또는 갈애바위에 얽힌 이야기가 유명하다. 주막집 딸인 미인 갈애가 조정에서 보낸 선전관의 칼에 얼굴을 맞은 뒤 미인바위의 오른쪽 눈썹에 해당하는 부분이 칼에 맞은 것처럼 찌그러졌다는 전설이다.
한국전쟁 중에는 조선로동당 전남도당의 일부가 이 부근에 파르티잔 병력으로 은거했다. 전북도당이 입산하여 근거지로 마련한 회문산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조선인민유격대는 노령을 차지하기 위한 전투를 필사적으로 벌였다. 두 차례 공격을 통해 한 번은 노령을 점령했으나 나머지 한 번은 실패했다. 이후로는 군경의 방어선이 완강하여 노령에 접근하지 못했다. (위키백과)
장성갈재 등산로 맞은편에는 통일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장성갈재에서 임도를 따라 약 50m 올라가면 등산로 입구가 있으며, 초입부터 제법 가파르게 시작된다.
▼ 등산로 입구
등산로와 주변에는 아직도 눈이 많이 쌓여있지만, 어제 내린 비와 포근한 날씨탓여 등산로가 질퍽하다. 바닥에 깔린 눈은 많은데, 나무가지에는 눈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오늘도 눈꽃산행은 불발인가 보다.......
들머리에서 약 3~400m를 가파르게 치고 올라가니 눈옷을 입은 나무가지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숲이 깊고 응달이라 어제 내린비에도 견딘 모양이다. 서서히 펼쳐지는 상고대의 향연.....여기저기서 감탄의 소리가 흘러나온다.
고도를 높일수록 나무들은 떄로는 사슴의 뿔처럼, 때로는 솜사탕처럼 千의 얼굴을 만들어내고 있다.
서해에서 불어오는 모진 해풍에 맞서 날카로운 칼날을 드러내기도 한다.
포근한 날씨 때문에 저 날카로운 칼날들이 머리위로 쏟아지기도 한다. 차가운 아픔이다. 등산로에 떨어진 칼날은 거칠게 갈린 팥빙수의 얼음 같은 모습이다.
상고대는 하늘이 내리고 바람이 빚고 시간이 완성시킨다.....
환상적인 상고대에 정신이 팔려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가늠이 안된다. 상고대의 향연은 이렇게 쓰리봉까지 약 1km에 걸쳐 이어진다.
쓰리봉을 앞두고 등산로는 다시 고개를 빳빳하게 든다. 상고대 터널속에서는 아름다움에 홀려 정신없이 지나왔는데, 가파른 눈길에서는 본능이 주변을 압도한다. 쓰리봉 직전에서 뒤돌아보니 맞은편으로 구름에 싸인 국립공원 내장산의 모습이 환상적으로 다가온다.
▼ 쓰리봉으로 오르면서 뒤돌아본 입암산(앞), 내장산(뒤), 백암산(우측)
어떻게 말로 표현할수 있으랴....
산위의 상고대는 모습이 다소 차분하다. 쉴새없이 몰아치는 바닷바람에 맞서 작고 단단하게 야물어진 모양이다.
▼ 동남쪽으로 바라본 백암산(중간)과 병풍산(우측)
드디어 쓰리봉에 도착. 산행 들머리 장성갈재에서 약 1.8km의 거리다. 이 구간의 상고대는 두고 두고 잊지 못할, 오고 또 오고 싶은 환상의 절경이었다.
▼ 쓰리봉 (734m)
쓰리봉 표지석은 등산로 옆 작은 암릉에 자리잡고 있다. 쓰리봉을 지나면 비교적 완만한 능선을 따라 연자봉으로 연결되며, 다시 방장산으로 이어진다.
남쪽을 바라보니 멀리 무등산이 실루엣처럼 다가온다.
▼ 병풍산(중간)과 무등산(중간 뒤) 실루엣
▼ 내장산과 백암산을 다시 한번 바라보고....
쓰리봉을 지나도 상고대는 계속된다. 그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비견할 수 없지만, 보고 또 보다보니 감흥이 나도 모르게 약해진다.
귀한 것도 가까이 있으면 소홀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상고대는 변함이 없는데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주관이 흐릿해진 것 뿐.......
▼ 뒤돌아본 쓰리봉 (맨뒤)
멀리 방장산을 바라보니 온몸에 분칠을 한 방장산이 손짓하며 부르고 있다.
▼ 진행방향으로 바라본 방장산(왼쪽)
정오를 넘어서면서 주변은 안개가 몰려들기 시작한다. 포근한 날씨에 눈이 녹으면서 습도가 높아진 모양이다. 안개에 가린 능선들의 모습이 신성스러워지고, 설국을 지나 霧國의 세계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 뒤돌아본 쓰리봉 방향
방장산을 앞두고 제법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면 연자봉(695m)과 봉수대(725m)가 연결된다. 연자봉은 어디인지 표지석이나 표지목을 보지 못했고, 봉수대는 헬기장처럼 제법 넓찍한 공간에 작은 표지목이 봉수대임을 알려준다. 연자봉에서는 용추폭포로 하산할 수 있다. 용추폭포는 수심이 깊어 용이 승천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우리나라 왠만큼 깊은 계곡에는 대부분 용추폭포가 있다........예전 이 땅에는 얼마나 많은 용들이 살았을까......^^
봉수대를 지나면 완만한 능선이 방장산까지 이어진다.
▼ 방장산으로 오르면서 뒤돌아본 봉수대 방향
다시 작은 암릉을 지나면 방장산이다. 쓰리봉에서는 약 3.4km의 거리. 방장산은 표지석도 등산로 옆 작은 바위 위에 설치되어 있다.
▼ 방장산 (743m)
[방장산] 방장산은 중국 삼신산의 하나에서 빌려온 이름으로 ‘산이 넓고 커서 백성을 감싸준다.’는 뜻이다. 한국은 중국의 삼신산을 본떠 금강산을 봉래산, 지리산을 방장산, 한라산을 영주산으로 불렀다. 호남 지역에서는 방장산, 무등산, 지리산을 삼신산으로 불렀다. 전라북도는 일봉래로 변산을, 이방장으로 방장산을, 삼영주로 두승산을 삼신산으로 하였다.
예전에는 이 산을 방등산 또는 반등산으로 불렀다. 반등산은 산이 높고 장엄해서 절반 밖에 오르지 못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인조때 청나라에게 멸망한 명나라를 숭상하던 조선 사대부들이 중국 삼신산의 하나인 방장산을 닮았다는 이유로 이름을 방장산으로 고쳤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권106 악고(樂考) 17에는 「반등산곡(半登山曲)」으로 나와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와 『고려사(高麗史)』 권71 삼국속악조(三國俗樂條)에 백제 유민이 부르던 노래 5곡으로 「방등산가(方等山歌)」·「지리산가」·「선운산가」·「정읍사」·「무등산가」 등이 나와 있는데, 그중 「방등산가」은 도적 떼에게 잡힌 여인이 자기를 구하러 오지 않는 남편을 원망하며 부르는 노래다. 이곳에 등장하는 방등산과 반등산은 방장산을 지칭하는 것이다.
한편, 방장산에 일제 강점기의 일본인과 임진왜란 때 조선을 지원 나온 명나라 이여송 장군이 방장산의 신령스럽고 수려한 산세를 보고 큰 인물이 나올 것을 우려해서 쇠말뚝을 설치하였다고 한다. 1995년 방장산에 쇠말뚝이 박혀 있다는 신고를 향토사단이 받고 쇠말뚝 탐지 작업을 벌였으나 정확한 위치를 찾지 못하고 제거에 실패한 일이 있기도 하다. (출처: 고창군)
▼ 방장산 정상부 모습
방장산을 지나면 고창고개까지 약 1km의 하산길이 이어진다. 고창고개에서는 남쪽 방장산 자연휴양림으로 하산할 수 있다. 직진하면 벽오봉으로 이어진다. 고창고개에서 임도를 따라가면 문너머재로 이어지고, 임도옆 등산로를 따라가면 패러글라이딩 활강장이 있는 억새봉을 지나 벽오봉과 별봉(갈미봉)으로 이어진다.
▼ 임도길 모습
임도길 옆 등산로를 따라 약 0.4km를 올라가면 억새봉이다. 고창고개에서는 약 0.9km의 거리다. 억새봉은 패러글라이딩 활강장으로 제법 넓은 공터가 있으며, '방등산 가비' 비석과 '방장산 시산제 제단' 등의 시설물이 설치되어 있다. 하늘을 가르는 패러글라이딩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 억새봉 (패러글라이딩場)
▼ '방등산 가비' 비석
▼ 벽오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
패러글라이딩 활강장을 지나면 바로옆이 벽오봉이다. 벽오봉 표지석은 등산안내도와 사람 키 높이의 돌탑과 함께 세워져 있다.
▼ 벽오봉 (방문산)
벽오봉은 방문산이라고도 한다. 억새봉과 벽오봉 주변에는 산악자전거(MTB) 도로도 만들어져 있다. 벽오봉을 지나 약 0.9km를 내려가면 문너머재 갈림길이다. 여기서는 서쪽으로 고창공설운동장 방향으로 하산할 수 있으며, 직진하면 별봉(갈미봉)으로 이어진다. 문너머재에서 갈미봉까지는 약 0.4km의 거리다.
▼ 별봉(갈미봉) 갈림길
별봉(문너머재) 에서는 본격적으로 내리막이 시작된다. 눈이 많이 녹아 등산로는 질퍽한 미끄럼틀로 변해 버렸다. 약 0.6km를 내려오면 왼쪽 위로 방장사가 보인다. 방장사를 구경하기 위해서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 방장사
[방장사] 방장사(方丈寺)는 『고려사(高麗史)』 악지에 전하는 백제 가요 다섯 편 중에 「방등산가(方等山歌)」에 나오는 사찰로, 도적 떼에게 잡힌 아낙네가 남편이 자기를 구하러 오지 않는다고 원망하는 내용만 전하고, 가사는 전하지 않는데 노래 제목에 있는 방등산은 바로 방장산을 의미한다. (백과사전)
▼ 방장사에서 하산하는 등산로 모습
방장사에서 산행 날머리인 양고살재까지는 약 0.7km의 내리막길이 계속된다. 질퍽하게 변해버린 등산로는 미끄럽기도 하지만, 눈과 물(水)이 등산화를 뚫고 들어오면서 발바닥이 축축하다. 이런~
▼ 양고살재 관광안내도 (날머리)
양고살재에는 관광안내소만 하나 덜렁있고 아무런 다른 시설이 없다.
[양고살재] 양고살재는 고창읍과 호남고속도로 백양사 나들목을 잇는 지방도 15호선에 있는 고개로 고창군과 전라남도 장성군과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고창 출신 박의(朴義) 장군이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청나라 누루하치 장군의 사위인 적장 양고리(陽古利)를 사살한 것을 기념하여 붙인 이름이다. 박의 장군은 1599년(선조 32) 고수면 초내리 산양동에서 관찰사 양오공의 종손으로 태어났다. 말을 잘 타고 총을 잘 쏘아 박포수로 불릴 정도였다. 1636년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임금은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였다. 고창 사람 박의(朴義)가 수원 광교산 전투에 참여하여 적장 양고리(陽古利)를 사살하였다.
다른 명칭 유래를 살펴보면 큰 재[峙]와 작은 재[峙] 두 개가 있다 하여 양고령이라 불렸으며, 양고령 발음이 변화함으로 인해 '양고살재' 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백과사전)
산행들머리 부터 펼쳐진 환상적인 상고대의 향연은 연자봉을 지나면서 사그러들었지만 겨울 방장산의 진면목을 볼수 있는 산행이었다. 다음 겨울에도 또 그다음 겨울에도 방장산의 상고대를 만나러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