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남
2022년 3월 10일 ·
김영삼 이후 한국 교회는 늘 '저쪽' 편이었다. 한번도 '이쪽' 편인 적이 없었다. 이번 대선에서 교회가 전처럼 노골적으로 저쪽 편을 들지 못했던 것은 윤석열이 무당과 신천지와 관련되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아무리 형식적인 것이었을지라도 자신들의 오랜 신앙고백과 어긋나는 후보를 대놓고 지지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었겠는가. 그러나 많은 신자들이 아무도 보지 않는 기표소 안에서 슬그머니 배교했다. 그들에게는 억강부약을 내세우는 소년공 출신 이재명보다 우리 사회 기득권 세력의 대표자인 윤석열이 훨씬 더 매력적이었다. 그들은 매력적인 쪽에 표를 주었고 덕분에 윤석열이 이기는 데 일조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이 신앙적으로 파산했음을 만방에 증거했다.
그러나 이번 대선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교회가 아니라 누가 뭐래도 문재인과 민주당에게 있다(교회는 어차피 늘 '저쪽' 편이었다). 문재인과 민주당은 자신들의 이념적 옳음에 집착하느라 우리 사회 약자들의 절박한 필요를 채워주지 못했다. 특히 자기 집을 가지지 못한 이들과 일을 얻지 못한 이들의 절박함 앞에서 철저하게 무능했다. 당장의 끼니가 없어 전전긍긍하는 이들에게 숭고한 복음만 내세우는 교회 같았다. 경제 강국으로 성장했다는 주장은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거야 박정희 때부터 모든 정권이 해왔던 소리다. 가난한 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나라의 부강함이 아니라 당장의 의식주인데, 자기들 신념에 사로잡혀 그 절박한 문제를 해소하는 일에 미지근했다. 대선 기간 중에 이재명이 제안했던 재난 지원금 지급 주장에 대해 보였던 태도가 대표적이다.
나는 처음부터 이번 대선은 지역이나 이념이 아니라 계급 투쟁이라고 보았다. 내 주변의 강자들은 초지일관 윤석열 편이었다. 문제는 약자들이었다. 그들은 그래서는 안 됨에도 자꾸 흔들렸다. '어차피 가능성이 없다면 판이라도 한 번 바꿔보자'라는 식이었다. 문재인과 민주당 정권하에서는 아무 희망도 가질 수 없으니, 쫄딱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판을 바꿔보자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만큼 절박했던 것이다. 한데 정권을 가진 자들이 그 절박함을 외면했다. 지들 신념 지키느라...
우리 국민 중에 윤석열에게 무언가를 기대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그가 이재명을 이긴 게 그의 유능함 때문이 아니라는 것은 동네 강아지들도 안다. 우리 국민은 이재명이 주장했던 유능함 대신 윤석열이 내세웠던 정권 교체, 즉 판 바꾸기를 택했다. 어떤 이들은 민주주의가 중우정치일 수 있다고 하지만, 민중의 어리석음은 단지 미련함이 아니라 생존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 경우가 많다. 1차 대전 패배 후에 독일 국민이 히틀러를 택한 이유가 그것이었다. 그때 독일 국민은 미련했던 것이 아니라 절박했던 것이다. 그 절박함을 히틀러와 나치가 이용했던 것이고, 독일 국민들로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수도 있다.
이번 대선 결과를 두고 민주주의의 허점과 국민의 미련함을 거론하는 것은 그야말로 어리석인 짓이다. 온 세계가 놀랐던 촛불 혁명으로 부패한 이명박근혜 세력을 몰아낸 국민이다. 그 국민이 '이번에는' 선택을 잘못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윤석열을 인정하고 지지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정치판을 바꿔야 한다고 느꼈던 국민의 간절함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간절함마저 외면한다면, 민주당은 조만간 정의당처럼 '옳은 주장'만 남아 있는 식물 정당이 될 수 있다. 유감스럽지만, 이제는 윤석열의 시간이다. 그리고 또한 압도적인 의석을 갖고서도 정권을 잃어버린 민주당의 시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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