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조명으로 바른 길 가기
(마 6:9~11) 2013.07.13. 하나님께서 성도의 삶을 조명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삶을 조명하실까요? 바른 길 가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이 조명은 어떻게 나에게 비춰집니까? 첫째는 “성도가 가야할 내 길”이고, 둘째는 “내 죄”입니다. 성도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부분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떻게 이어져있는 지 전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없지만 항시 내게 주어진 길은 내게 보여주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빛을 비춰주십니까? 요한복음 16장 8절을 보면, “그가 외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첫 번째, “죄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죄에 대해서 보여주심으로, 성도가 회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회개 할 수 있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내 안에 성령께서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성령께서 성도의 죄를 보여주심으로 성도가 회개를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만약 성령께서 내 죄를 보여주시지 않는다면, 자신은 죄인이 아닌 의인의 언저리에 머무는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복음의 전달자로서의 초창기와 중반기, 마지막 사역에 대해서 세 가지로 말했습니다. 첫째,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고후 15:9), 둘째,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엡 3:8), 세 번째, “죄인 중에 괴수다”(딤전 1:15)입니다. 사역 초기에는 사도라고 했던 바울이 점점 자신을 성도라고 하고 나중에는 죄인 중에 괴수라고 하는 것은 성령의 조명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받을수록 자신의 작은 죄까지 보이는 밝음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사울은 자신에게 보인 큰 죄부터 회개하다가 점점 하나님의 성령을 통해서 작은 죄까지 보다보니 결국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하는 단계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시면 회개가 나오며 죄가 보이는 것입니다. 그 후에 점점 이웃도 보이고 가정도 보이고, 교회 소그룹도 보이고, 내 연약한 부분이 보이고 내가 붙들어야 할 것도 보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성령께서 보여주시는 것을 믿고 따라가야 합니다. 성령은 “죄 뿐 아니라 길도 보여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죄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참된 회개를 통해서 깨끗해질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집에 쓰레기는 있습니다. 그런데 깨끗한 집과 더러운 집의 차이점을 둔다면 깨끗한 집은 쓰레기가 쓰레기통에 머물고 있고 더러운 집은 온 집안에 쓰레기가 돌아다닌다는 점입니다. 이런 사람의 집은 자신의 죄를 십자가의 보혈로 해결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방법 저 방법을 통해서 자신의 죄를 피해가려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어떻게 하면, 내 죄에 대해서 정당화 할까? 좀 더 미화를 시켜서 죄가 없음을 알릴까? 하는 통에 이 사람은 죄가 그의 입구부터 온 방안까지 가득합니다. 하지만, 죄 문제는 십자가로 인하여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내 죄를 십자가 아래로 던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길도 가야 하지만 자녀로서 해결해야 할 문제도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한 주간 성령의 어떤 역사하심에 조명을 받으셨습니까? 그 조명 받음이 나에게 어떤 유익이었으며 어떤 길로 인도함 받으셨습니까? 안식일에 거룩한 백성이 하나님께 서기 전에 감사함으로 받은 은혜를 통해 감사하는 거룩한 주의 자녀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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