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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한 사람의 몸으로도 나라를 건질 수 있습니까?
어렵고 어려운 문답
『여자 한 사람의 몸으로도 나라를 건질 수 있습니까?』
일본제국주의가 동쪽 아시아에서 횡포를 부리던 무렵 동경에서 어떤 여자대학을 졸업하고 이제 바로 압박자의 발밑에서 그 마지막 숨을 허덕이고 있는 내 나라로 돌아오려는 한 처녀가 졸업식 날 설교하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감격한 나머지 식이 끝나자마자 그 선생님을 붙잡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그 질문에 서슴치 않고 확신을 가진 태도로 대답을 했습니다.
『물론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믿음으로 될 수 있습니다』
확신을 가지고 간절한 말씀으로 해주시는 대답을 들으면 용기는 나지만 그래도 자신을 돌아보면 너무도 막막해서 그러나 정말 연약한 여자 한 사람으로서 신앙의 동지도 없이 어떻게 하느냐 하는 호소에 그 선생님은 그럼 한국에 있는 훌륭한 믿음의 선배를 소개해 줄 터이니 돌아가거든 그와 의논하고 그의 지도를 받으라고 하고 일러서 보냈습니다. 그 선생님이라는 이는 7,8년전 세상을 떠난 저 일본의 유명한 야나이하라 (矢內原忠雄)이고 그 신앙의 선배란 해방이 되던 해 그 기쁨의 날을 넉달 앞두고 조상의 품으로 돌아간 우리의 김교신입니다.
그래서 그 처녀는 나라에 돌아오자마자 그때 정릉리에 살던 김선생을 찾았고 그의 지도로 평소에 자기의 친한 친구요 홀어머니 밑에 가난한 살림이기도 하고 폐가 약해서 늘 돌봐주던 자기 연배의 처녀인 또한 사람과 둘이서 정릉 골짜기에 조그마한 소학교를 시작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여자 한 사람의 몸으로도 나라 를 건질 수 있읍니까」했던 그 한 마디가 오늘날까지 내 가슴 속에 못같이 박혀 있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그는 그 후에 결혼을 했고 지금은 대학교수의 부인으로 자녀를 길러내고 아직도 사회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남북이 갈라져서 해방의 감격이 거품차럼 꺼지고 이북에 있던 우리는 공산폭풍에 몰려 뿌리 뽑힌 나무처럼 38선을 넘어 어디 생의 뿌리를 붙이나 헤매었습니다. 거기다가 6.25가 터져서 우리가 다 낙엽처럼 경상남도 끄트머리에 몰렸을 때입니다. 그들은 포항 비행장 옆에 자리를 잡고 부인이 미군 부대의 통역을 해서 생계를 이어 갔습니다. 남편인 교수는 신약성경의 개인 번역을 시작해서 벌써 몇해째 되었는데 그는 세간살림에 관해서는 도무지 생각을 할 줄 모르는 이었습니다.
영육 다 바친 마네킹 숭배
그들과 친구인 나는 어느날 그 집을 찾아가서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덧 내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얼굴을 보면「여자 한 사람의 몸으로도 나라를 건질 수 있읍니까」하는 그 말을 잊을 수 없는데 그의 살림을 보면 무어냐? 너무도 잔혹한 현실이었습니다. 말은 아니하고 주고받는 인사 안부 밖에 오고 가는 것이 없지만 그의 가슴 속에서는 입 아닌 입이 그 앉은 지붕을 내려앉을 듯이 뒤흔드는 폭격기의 폭음보다도 더 한 비명으로 하소연을 하고 있는 것이 내 귀 아닌 귀에 들리는듯 했습니다.
그때 마침 그 남편인 내 친구는 그 자리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경번역이 어느 정도 나갔느냐를 묻고 그다음 성경의 번역은 신앙과 학식과 문학의 재주가 다 겸비해야 되는 지극히 어려운 일이요 진리의 세계를 위해서는 의미가 한없이 큰 사업이므로 어떻게 해서든지 완성을 시키도록 해야는데 본인이 세간살림이 재주는 없기도 하지만 그런 걱정에 얽매어 가 지고는 절대 되지 않는 것이니 옆에서 무슨 고생을 하면서라도 맘을 놓고 그 일에 전력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라고 했습니다.
물론 나는 그때에「여자 한 사람의 몸으로도 나라를 건져보자」는 비장한 결심을 했던 그이임을 기억하면서 한 말이었습니다.
말을 듣자마자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퍽 쏟아졌습니다. 그때 그 일을 그는 지금 기억하는지 못하는지 나 모롭니다. 그때 그 이상을 지금도 가졌는지 아니 가졌는지 나 모릅니다. 친구와도 근래에 서로 자주 오고가지 못해 그 성경 번역 어느 정도 됐는지 나 모릅니다. 마는 그날의 그 광경은 내가 사람 사귐에서 얻은 영원히 잊혀 질수 없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거리를 지나가노라면 쇼윈도에 가지가지 꼴을 하고 있는 마네킹의 모양이 옛날에는 지옥이란 것이 있어 거기 사람을 잡아먹는 귀신들이 득실거렸다는데 근래 지옥이 없어졌기 때문에 거기서 모두 헤어져 인간 세상으로 나온 것들이 저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사실 귀신이란 것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나 모르고 정말 사람을 잡아먹었는지 나 모르지만 오늘의 여성의 이상형이 그 괴물들이요 많은 여성이 그 몸과 마음을 거기다 다 바쳐 섬기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 아니겠습니까? 그럼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자유를 잃게하고 사람의 사람된 그 속알인 영혼을 뽑아 흙 속에 석어지게 한다면 그것이 귀신이요 그것이 지육일 것입니다. 즐거움을 몰라서 그리고 아름다움을 소용없어해 하는 말 아닙니다. 삶은 즐거운 것이며 삶은 아름다운 것이지요. 하지만 즐거움이나 아름다움은 그 일이나 물건에 있지 않습니다. 정신에 있습니다.
정신이 빠지면 춤을 추어도 그것은 미친 것이요 장식을 해도 그것은 시체에 달린 부장품(副葬品)입니다. 옥 같은 손가락이라도 한번 내몸에서 끊어지면 더러운 것이되고 꾀꼬리 같은 노래라도 나를 잊게하는 것이면 독한 주문입니다. 즐거움도 아름다움도 전체를 하나로 살리는 의미가 있어서만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전체가 종교적인 말로하면 하나님이라는 것이요, 인간의 살림을 통하여 실현되어 나가는 것으로 하면 나라요 역사입니다. 나라 없이는 즐거움도 아름다움도 참도 어짊도 없습니다. 전체를 잊은 이기주의자가 어떤 향락을 한대도 사람들은 그것을 더러운 것이라 침 뱉습니다. 그리고 민중에게 침을 뺕기우면서도 혼자 즐거우려 하는것은 사람이 아닙니 다.
백귀야행의 지상지옥
그러나 오해해서는 아니됩니다. 내가 나라 없이는 즐거움도 아름다움도 없다할 때는 그 나라라는 것은 정부나 정치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나라에 모든 것을 바치란 말은 정부에 바치라는 말이 아닙니다. 마치 사람이 모두 하나님의 모습을 받아서 된 것이로되 하나님의 뜻대로 온전히 하는 놈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 앞에 자기를 죄인으로 스스 로 고백해서만 사람일수 있듯이, 나라가 있기 때문에 정부도 정치도 있는 것이지만 실지로 정부란 정부는 다 온전히 나라 뜻을 나타내는 것은 드물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내가 곧 나라가 하는 정부일 수록 믿기 어려운 기관이요 우리는 나라를 위해 일하는 것이니 우리 말을 절대 복종해라 하는 정치인일수록 도둑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는 말은 모든 것을 정부 본위로 정치를 위해 하란 말은 결코 아닙니다.
세상이 이렇기 때문에 여자 한 사람의 몸으로도 나라를 건질 수 있습니까 하는 비통한 부르짖음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언제나 정치가 비교적 건전한 때에 국민 더구나 여자에게는 착실하고 검소한 풍이 도는 것이요 정치가 썩어진 때에 들뜨고 사치한 풍이 성한 법입니다. 백귀야행(百鬼夜行)이라 야밤에 도깨비가 떠든다는 말이 있습니다마는 그 도깨비의 나오는 소굴은 지상지옥(地上地獄)인 정치 클럽에 있습니다.
수난의 여왕은 시체처럼.
아름다움과 슬기와 사랑의 샘인 여성을 보고 내가 이런 욕먹을 소리는 왜 합니까? 그 동기는 이렇습니다. 며칠 전 신문에 어떤 일본 상사회사의 사원이 싯가 1,500만원이나 되는 9캐럿 반의 금강석을 밀수출하려다가 세관에 붙잡혔는데 그에게 심문을 한즉 자기 내연의 처인 여자가 원해서 감정을 받으러 가지고 가려던 것이라고 변명을 했다는 것입니다.
내연의 처라니 첩이란 말인데 그 첩 노릇을 하는 여자는 놀라지 마십시오. 모대학의 성악과 출신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그 기사를 읽고 슬프고 분함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물론 까짓 계집하나, 하고 많은 여자 중 하나겠지만, 사람이 이런 것도 있고 저런 것도 있을 수 있다 하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우리 나라에서 그 대학이면 최고최대의 여자 교육기관입니다. 그 일본 사람이란 것을 보면 밀수출을 하려다가 속옷 속에서 발각을 당하는 정도의 인물이면 그 금새가 대개 판명이 되는데, 있다면 돈이 있는 것이 유일의 자격이겠는데 이 어려운 나라에서 최고학부까지를 마치고 한몸을 그렇게 써먹는다! 음악은 그렇게 써 먹으라는 것일까?
정신이 조금 있는 사람이면 제 하나가 그 자리에까지 가는데 이 사회의 보이고 보이지 않는 받들어 고임이 얼마나 했던 줄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잘나서 제가 있었던가? 제 어미 애비가 잘나서였던가? 아닙니다. 사람 하나를 거기까지 길러내려면 5천년 역사의 모든 힘이 다 합해서 된 것입니다. 눈물은 얼마나 한 눈물, 한숨은 얼마나한 한숨이 있었 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쉽게 팔아넘긴다!
나 같으면 일본 전국을 다 준대도 못하겠습니다. 국제결혼 반대가 아닙니다. 배타적 민족주의에서가 아닙니다. 자기의 값과 의미를 어찌 그리도 모르느냐 말입니다. 그것을 「여자 한 사람의 몸으로 나라를 건질 수 있습니다.」하는 마음과 비교해 볼 때 그 차이가 얼마나 합니까? 같은 여자로 같은 대학 교육에, 마음 쓰기는 어찌 이리도 다릅니까?
나는 잃어지는 금강석이 아까운 것 아니라 팔려가는 그 한 영혼, 아닙니다, 배고픈 때에 영양이 못되고 추울 때에 따뜻함이 못되는 그 돌 부스러기 하나에 팔려나가는 이 한국이라는 나라가 기가 막혔습니다.
그까짓 계집 하나 때문에 전체를 그리 낮춰 볼 것이야 없지 않냐 할지 모르지만 어찌 하나입니까? 어느 토굴에 숨어서 하는 것도 아니오 서울 복판에 버젓이 큰 얼굴을 들고 자랑하며 살았을 때, 이 4백만 시민은 사람입니까?
성악가라니「베토벤」을 부르고 「모짜르트」를 부르고「헨델」「바하」를 불렀을 것 아닙니까? 아, 여자란 무엇입니까? 아름다움 즐거움이란 아디 있습니까?
한 여성이 득의양양해서 향락의 살림에 취했을 때 가엾은 이 아시아의 꽃동산 직이 수난의 여왕은 시체처럼 죽어 썩어야 했습니다. 이 아픈 마음을 둘데가 없어서 하는 말입니다.
여자는 우주의 베터하프
여보시오 여성들, 당신들은 나라의 절반입니다. 절반이 없이는 전체가 없습니다. 아내를 보고 베타 하프(better half)라는 말이 있습니다마는 여성은 나라의 베타 하프요 세계의, 우주의 베타 하프, 보다 더 귀여운 반쪽입니다. 내가 남성의 한 사람으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남성 여성을 다 다스리고 있는 이치로서 하는 말입니다. 남성을 보고는 또 할 말이 있을 것입니다. 마는 당신들은 당신들대로 스스로 전체의 운명이 당신들께 있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됩니다.
사람은 물론 공ㆍ사두 면(面)에 삽니다. 나라는 개체를 가진 이상 사사란 것이 없을 수 없습니다. 사실 나라가 잘 되어가려면 개인의 사사로운 것이 전체의 침범을 당하지 않고 잘 보장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개인이 침범을 아니 당하고 자기의 자유를 잘 누리려면 먼저 자기 것보다 공공한 것을 앞세우고 위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요새 우리 나라 여성, 더구나도 지식 여성을 보면 위에 말한 대학의 음악과 출신 모여인 식의 사람이 어찌 그리 많은지 한심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남자는 어떠냐고 반문하지 마십시오. 위에 말한대로 남성은 또 남성대로 보고 할 말이 있겠지만 당신들의 생각할 점은 그렇다는 말입니다.
한 마디를 더 하랍니까? 남자는 사실은 여자의 손에, 손이 아니라 맘씨의 가는 실오라기에 달려 있습니다. 농담만이 아닙니다. 실지로 역사를 돌아보십시오, 위대한 인물은 대개 그 어진 어머니의 영향으로 됐다는 것은 이미 결정된 말입니다.
우리 나라에 할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일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가장 시급한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람을 길러내는 일입니다. 가는데마다 의논을 하고 한탄을 하고 넉두리를 하다가는 마지막에 가 닿는 끝점은「인물이 없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물은 갑자기는 아니 나옵니다. 학문도 급하면 한때 갑자기 빌어올 수가 있고 기술도 그렇습니 다. 그러나 인물만은 그럴 수 없습니다.
어디서 한국 사람을 한국 아닌 데서 빌려올 수 있습니까? 누가 또 빌려주고 대신할 수 있습니까? 10년 가도 100년 가도 우리 나라를 건지는 사람은 우리에서 나와야 합니다. 좀더 분명히 말합시다. 한국중에서도 어디서 나옵니까? 어느 여자의 뱃속에서 나와야 합니다. 나무가 자라는 데 그 서는 땅의 토질이 결정적인 요인이 되듯이 인물에는 그 나오는 뱃속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는 처녀「마리아」가 성령으로 서려서 낳았다는 것이고「석가모니」는 그 나는데 아버지 정반왕의 이야기는 별로 없이 어머니「마야」 부인의 이야기만 있는 것입니다.
씨야 물론 씨가 중요하지 않은 것 아닙니다. 첫째 씨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원하는 대로 어머니의 원하는 대로 되는 것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령이라 하늘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 씨는 어떤 것이냐 하면 예로부터 모든 깊이 생각해 깨달은 말들이 일치하여서 그것은 근본이 거룩한 하늘 모습대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잘되고 못 되는 책임은 인간이 스스로 져야 하는데 그 인간의 주는 영향력에서도 가장 크고 힘있는 것이 우선 어릴 때부터 피를 주고 마음을 정성을 준 어머니의 것입니다.
어머니 기도의 이적
인물 인물 하지만 인물이 결국 무엇입니까? 맘씨 아닙니까? 그런데 그 맘씨의 방향은 말도 하기 전 글도 읽기 전 벌써 어머니의 몸에서, 아니요 벌써 탯집 속에서 거의 결정이 됩니다. 그러고 보면 세상은 어머니의 것이요 역사는 여성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높고 귀한 것을 모르고 귀거리 목거리에 마음을 다 써 버리고 춤바람에 정신을 다 날려버린단 말입니까? 참 아깝습니다. 슬픕니다. 밉습니다. 그래요 미워요. 미워요. 죽이고 싶게 밉습니다.
예수는 한 처녀「마리아」의 아들이 아닙니다. 유대민족 수 천 년 역사의 모든 여성의 기도가 모여서 모여서 나온 아들입니다. 「석가모니」는 인도 몇 천 년 여성의 기도의 결과요 공자는 중국 여성의 정성이 맺혀서 나온 것입니다.
한국에 오늘 나라 일이 위태한데 인물이 없는 것은, 물론 다른 여러 가지 원인도 있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여자들의 생각이 높지 못하고 정성이 두텁지 못하고 기도가 경건되지 못했던 탓이라 할 것입니다. 한마디로 믿음이 부족했습니다. 그것이 위에서 말한 여자 한 사람의 몸으로도 믿음으로 나라를 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믿음은 기적을 낳기 때문입니다.
기적이라니 넘어가던 해가 멎고 불던 바람이 자는 것을 말하는 것 아닙니다. 그런 객관적 사실이 있었으리라 믿는 것은 아마 미신일 것입니다. 그런 것은 믿음으로 인해서 얻은 속의 영적 체험입니다.
그러나 그 토론을 지금 하잔 것은 아니고, 믿음은 정말 기적을 낳습니다. 그것은 죽었던 정신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내가 위에서 예수 석가 공자의 난 것은 몇 천 년 모든 여성의 기도가 쌓여서 된 것이라 했습니다마는 또 다른 면이 있습니다. 몇 천 년을 못했다는 것은 사람이 살지 않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실지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살았지만, 수학적으로 말한다면 정수(正數)로 살지 못하고 부수(負數)로 산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마이너스라는 부호를 플러스라는 부호로 바꾸기만 하면 이때까지의 빚장이가 하루아침 갑자기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빚이 많았으면 많았을 수록 큰 부자가 됩니다.
믿음은 그것을 할 수 있습니다. 큰 죄인이 회개하여 하루아침 거룩한 종교의 위대한 인물이 된 실예를 우리는 많이 알고 있습니다. 개인이 그럴 뿐 아니라 민족도 나라도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여성들, 당신들 기도로 이 아시아의 큰 길 가의 늙은 갈보 계집은 밝은 아침 꽃동산의 여왕이 되어 오는 세계의 그리스도를 낳을 수 있습니다.
여성동아 1968. 12
저작집30 ; 7-285
전집20 ;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