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n)포 세대 / 김석수
젊은 세대를 지칭하는 말은 그 시대상을 반영한다. 사회 첫발을 내디딜 나이에 들어선 요즘 젊은 사람들을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라고 한다. 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까지 포기한 5포 세대, 꿈과 희망도 포기한 7포 세대가 등장한 지 오래다. 청년들은 자기 세대를 가르켜 인생의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엔(n)포 세대라고도 부른다. 최근에는 불필요한 기름기를 제거한 살코기처럼 인간관계를 최소화해서 스트레스를 줄이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다고 해서 살코기 세대라는 말까지 나왔다.
우리 사회 청년들 대부분은 고등학교까지 대학입시로 진이 빠진다. 어렵게 들어간 대학이지만 이들이 안주할 수 있는 종착지는 아니다. 학비를 마련하려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하늘에 별 따기 같은 취업 대비 스펙 쌓기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선택 받은 취업 생존자는 극소수다. 그 어렵다는 취업에 성공해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어도 고달픈 생활은 끝이 없다. 졸업을 앞두고는 취직이 문제고 취직을 하면 결혼을 걱정하며 결혼 후에는 내 집 마련을 고민한다.
베이비 붐 세대만 하더라도 이렇지는 않았다. 고등학교만 나와도 9급 공무원에 어렵지 않게 합격했다. 대학을 졸업하면 여러 군데 회사들 중에서 원하는 곳을 골라 취업을 했다. 심지어 재학 중에 취업해서 학교와 직장을 병행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대부분 정년이 보장되는 평생직장에서 근무한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아도 단칸방 사글세로 시작한 신혼살림은 몇 년 뒤엔 전세로 바꿀 수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출을 받아 작은 아파트라도 장만할 수 있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꿈같은 이야기다.
취업 준비를 하는 청년 10명 중 4명이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소위 공시생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 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년층 취업 준비자 65만 2천 명 중 일반직 공무원 시험 준비자는 25만 7천여 명으로 약 40퍼센트다. 따라서 공무원 시험 응시생 숫자도 매년 늘어나고 있다. 최근 국가공무원 9급 공채 시험에 22만 8천여 명이 지원했다. 2011년에 14만 2천여 명, 2012년 15만여 명이었던 것에 비해 급격하게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합격하는 비율은 1.8퍼센트에 불과하다. 그야말로 낙타가 바늘구멍을 뚫어야 하는 것과 같다. 나머지 98.2퍼센트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시험 준비한다. 1년만 더 준비하면 다행이다. 공시생들 사이에 삼수는 기본이라고 한다.
바늘구멍을 통과한 처자가 우리 원으로 지난달에 첫 발령을 받아 왔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고 노량진에서 컵밥을 먹으며 3년을 공부해서 합격했다. 동기들 중에서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다니다 그만 두고 온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그는 주변에서 대기업 입사를 부러워했지만 반복되는 야근에 하루하루 지쳐만 갔고 회사의 상명하복 문화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사표를 제출하고 노량진에 간지 1년 만에 9급 공무원이 되었다. 친척과 주변 어른들은 명문대를 나와서 기껏해야 9급 공무원이냐며 혀를 찼지만 그는 그런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는다고 했다.
자칭 엔(n)포 세대라고 하는 것은 희망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연애를 포기했다는 것은 지금 이 시간의 행복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는 뜻이다. 결혼은 포기했다는 것은 불가능한 행복을 가능한 행복으로 만들려고 노력할 겨를도 욕망도 없다는 의미다. 출산을 포기한다는 것은 미래에도 내내 행복한 일이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는 것이다. 자기 세대 특징을 ‘포기’로 표현하는 젊은이들은 한국을 가리켜 ‘헬 조선’이라고 부른다. 좌절한 청년들은 우리나라를 탈출하려고 이민 계를 만들기도 한다. 다른 나라로 이민가는 데 필요한 목돈을 만들고 정보를 공유하고 싶어서다.
자조와 조롱을 넘어 탈출까지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지고 있지만 정부는 뾰족한 대책이 없다. 지난달 청년의 날을 만들어 대통령이 방탄소년단(BTS)을 청와대로 초청해 기념식을 했다. 그런 행사를 하는 것도 좋지만, 오늘날 수많은 청년들이 왜 공무원 시험에 내몰리고 있는가를 진정으로 고민해서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아울러, 기성세대는 우리 사회가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가를 함께 진지하게 고민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미래를 생각하고 행복해지려면 꿈과 희망이 없는 젊은이들에게 말 한마디라도 따뜻한 격려가 되도록 해야겠다.
첫댓글 선생님 글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글 공감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