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해 말했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벧후 3:16)
진리의 자기주장은 장엄하다!
(존 머레이)
https://cafe.daum.net/1107/YlDw/39
링크한 윗글은 2021년 새해 첫날에 허리 통증을 참아가며 제 의식이 흐르는 대로 썼던 글입니다. 제 의식이 흐르는 대로 썼던 글이기에 ‘이지끼을 님 세례 중생론’을 두고 ‘이지끼을 님 vs TR-RE 님, 예장 백석 라마드 목사님, 제 토론’을 지켜보시지 않은 분이 읽으시면, 논지를 따라가기 힘든 장황한 글입니다. 지루한 글입니다.
다음은 위 링크 글 답글란에서 옮깁니다.
참고로,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선생으로서 중생의 도리를 당연히 알고 있어야 했던 니고데모”부터는 이곳에서 덧붙이는 글입니다. 이지끼을 님 글은 제가 다듬어 올립니다. 또한 이지끼을 님 글에서 굵은 글씨는 강조하려고 제가 굵은 글씨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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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끼을 (2026.03.27.07:54)
(14) 다음은 사계 님 글입니다.
이지끼을 님은 “사도행전 16장 31절만 말씀하셨네요. 34절까지 보면 좋겠습니다. …(중략)… 제가 이 구절들에서 주목하는 것은 말씀이 전해졌는데 그 말씀을 믿었다는 말 대신 세례를 받았다고 하고 이를 하나님을 믿은 것으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곧 세례를 받았다는 것을 믿음이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고 세례를 받았다는 말이 됩니다.” 하셨습니다. “세례를 받았다는 것을 믿음이 있는 것으로 여기는(간주하는) 것”에서 추출할 수 있는 구원의 서정은 ‘세례를 받음-믿음이 있는 것으로 여김’입니다. 그리고 “믿고 세례를 받았다”에서 추출할 수 있는 구원의 서정은 ‘믿음→세례’입니다.
사도행전에는 세례에 관한 말씀이 9 번 있습니다. ㅡ실제로는 10 번인데 바울의 경우가 중복된 것이므로 9 번이라고 합니다.ㅡ
세례에는 말씀(복음)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하고, 세례는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이니 회개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죄 사함과 성령의 선물ㅡ성령의 내주하심ㅡ을 얻습니다.(행 2:38절)
사도행전 저자인 누가는 사도행전 2장 38절에서 세례와 관련된 요소들을 거의 모두 기록하고, 그다음부터는 세례와 관련된 요소들을 이리저리 생략하며 사도행전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략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사도행전 2장 38절에서 알려준 세례에 관한 요소들을 감안해서, 그 이후에 기록된 세례에 관한 구절들을 읽어야 합니다.
四季 朴埰同 <(14)에 관한 답변입니다.> (2026.03.28.13:28)
그때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행 2:1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해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다.” 하고, (행 2:38~39)
사도행전 2장 38절은 ‘행함(세례) 구원론의 인본주의 구원의 서정’을 추출할 수 있는 공식을 담은 구절이 아닙니다. “약속”입니다. 왜입니까? 사도행전 10장 고넬료와 그 권속들 회심 사건은 그들이 세례를 받기 전에 성령께서 먼저 임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행 10:47)
왜입니까? 사도행전 16장 루디아 회심에서 보는 대로 루디아가 세례를 받기 전 주님께서 먼저 루디아 마음과 귀에 할례를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루디아를 거듭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선물” 중생을 루디아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님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행 16:14 하~15 상)
물론, 루디아 회심 사건에서는 “주님”은 등장하시지만, 성령은 등장하시지 않습니다. 물론, 이지끼을 님 생략론에 억지로 꿰맞추면, 루디아는 세례를 받은 뒤 “성령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즉, 중생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다음부터는 세례와 관련된 요소들을 이리저리 생략”만이 아닌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도 이리저리 생략됐다고 하십시오. 아,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역시 “세례와 관련된 요소들”에서 하나군요.
그러나 칼빈 선생님께서 {기독교 강요}에서 잘 밝히신 대로 성령은 “주님”이십니다. 이사야 선지자와 바울 사도 말씀대로 성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루디아와 그 권속에게 임하신 바로 그 “주님”이십니다.
★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봐도 알지 못하리라.”(사 6:9)
★ 서로 맞지 아니해 흩어질 때 바울이 한 말로 이르되 “【성령】께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봐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행 28:25~28)
Sola Scriptura!
Sola Gratia!
Soli Deo Gloria!
이지끼을 님, 이지끼을 님이 ‘세례 마술론에 꿰맞춰 도식화한 구원의 서정’과 ‘세례 마술론에 꿰맞춘 생략론’은 이토록 하나님 말씀을 훼손하며 중생에서 성령 하나님의 절대 대권을 넘보는 인본주의 이론임을 정녕 모르시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선생으로서 중생의 도리를 당연히 알고 있어야 했던 니고데모에게 중생의 도리를 설명하시면서 성령을 바람으로 비유(요 3:1~10)하셨습니다. 성령을 바람으로 비유해 중생에서 성령의 절대 대권 사역을 강조하셨습니다. 위로부터 태어남인 중생은 죄와 허물로 죽은 인간(엡 2:1) 행위나 믿음조차도 끼어들 틈이 전혀 없는 오직 은혜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사실이 이러합니다.
그러함에도 이지끼을 님 ‘세례 중생론’은 ‘복음을 듣고 믿음을 일으킨 죽은 인간이 물세례를 받는 자리로 나아가 중생한다.’는 행함 구원론의 인본주의 구원의 서정, 마술론입니다. 중생에 영적으로 죽은 인간의 믿음과 행위를 끼어 집어넣음으로써 성령의 절대 대권 사역을 넘보는 패역의 중생론입니다. 성경을 억지로 풀어 하나님 말씀을 훼손한 중생론입니다. 이지끼을 님 스스로 망하게 하는 중생론입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성경 스스로 증명한 진리 앞에 돌이키셔야 합니다. 장엄한 진리의 자기주장 앞에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 오직 하나님 영광!(Soli Deo Gloria!)”을 외치셔야 합니다. 외치며 하나님께 무릎 꿇으셔야 합니다.
진리의 자기주장은 장엄하다!
Soli Deo Gloria!!!
첫댓글 타 카페에서 옮겨오는 글입니다.
사계님
저는 저의 글을 인용하면서 조작한 사계님의 의견을 듣고 싶지 않습니다.
이곳 개혁주의 마을에도 님이 저의 글을 어떻게 조작했는지 알수 있도록 자세한 글을 올릴까요?
예, 올리십시오,
@四季 朴埰同 님이 타 카페에서 제 글에 쓴 댓글을 인용합니다.
"10 년이 지난 뒤 도대체 왜 이러십니까? 10 년이 지났더라도 저와 이지끼을 님이 주고받았던 메시지,
독자들이 독해하기 쉽도록 교정을 허락하신 메시지를 생각하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라고하셨는데
제가 교정을 허락했다고요?
저는 당시에도 오순절에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이 120명이 아니라 12사도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설명을 자세히 할 수가 없어서 아예 쓰지 않았던 것인데
제가 "120 문도"라고 교정하라고 허락했다고요?
거짓말 그만하세요
@四季 朴埰同
@四季 朴埰同
@四季 朴埰同 님은 저의 글
(사도행전 2장의 방언이 전도이면, 그들이 각 출신지별 언어로 들은 방언으로 전도하고,
베드로가 한번 더 전도하는 것이 됩니다) 를
(사도행전 2장 방언이 전도이면 ‘경건한 유대인들이 각 출신지별 언어로 들은 방언’으로 120 문도가 전도를 한 뒤 베드로가 한 번 더 전도한 것이 됩니다.) 로 바꿨습니다.
그리고
(그러므로 사람이 그 방언을 들었다고 해서 기도가 아니고 사람을 향하는 말, 곧 전도라고 쉽게 단정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라는 저의 글을
(그러므로 경건한 유대인들이 ‘하나님 큰일을 말하는 120 문도 방언’을 들었다고 해서 “기도가 아니고 사람을 향하는 말, 곧 전도다.”고 쉽게 단정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로 바꿨습니다.
사계님은 무지하고 무례하고 교만한 일을 한 것입니다.
@四季 朴埰同
오순절에 120명이 아니라 12사도들이 성령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제게 큰 의미가 있습니다.
당시에는 12 사도 라고 쓰지 않았는데
12 사도들이 오순절에 성령세례를 받았다고 그 글에 포함시키면
이에 따른 문제 제기가 있을 수 있고
그 때는 제가 오순절에 12 사도들이 성령세례를 받았다고 설명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오순절에 12 사도들이 아니라 120명이 성령세례를 받았다고 오해하여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20명이 성령세례를 받았다는 오해는
중생의 영역까지 오해하게 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제가 알기로 한 교수님은 그런 오해를 주장하는 교수들에 의해 학교에서 쫓겨나시기까지 했습니다.
그만큼 이와 같은 오해는 사람들의 인생을, 그리고 구원을 바꾸는 오해입니다.
그래서 지난 몇년간 오순절에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이 120 명이 아니라 12 사도라는 것을 밝혀 왔던 것입니다.
@四季 朴埰同
그런데 님은 저의 글을 인용하면서 "120 문도"라는 말을 추가해서
마치 제가 "오순절에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120문도 였다"고 말한 것 처럼 조작한 것입니다.
저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을 님은 한 것입니다.
저는 이런 것을 들은 적도 없습니다.
그동안 님의 글 등에 접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제서야 증거를 얻을 수 있어서 말씀드렸더니
제가 교정을 허락했다는 거짓말로 자신의 교만한 행동을 덮으려고 하시네요
@이지끼을 난독 중증입니다.
@四季 朴埰同
거짓말을 하기가 힘드신가 보네요
제가 방언연구를 한 것은 아시지요
방언연구의 끝이 바로 오순절에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120명이 아니라 12사도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120 문도"로 교정하는 것을 허락했다고요?
그러면 제 방언 연구를 스스로 뒤엎어 버리는 것이 되는데
제가 "120 문도"로 교정하는 것을 허락했다고요?
거짓말하지 마세요
@이지끼을 <에스겔 님, 사과드립니다.>
지금 쓰고 있는 제 아이디는 {다음}이 {카카오}로 넘어간 뒤 새로 가입한 아이디입니다. 그래서 이지끼을 님과 {다음} 카페에서 주고받은 쪽지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증거를 찾아 이지끼을 님에게 제시해 저를 변호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독자들이 독해하기 쉽도록 교정을 허락하신 메시지를 생각하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하는 제 말을 두고는 이지끼을 님 주장대로 “거짓말”로 인정하며 사과드립니다.
@이지끼을
현재 이지끼을 님이 문제 삼으신 글 제목은 <김홍전 [오순절 성신 강림: 방언으로 한 찬송(할렐)의 효과] // 이지끼을 님 해석과 같은 해석입니다.>입니다. 이 글은 2018년 3월에 이 카페만이 아닌 {네이버} 카페 {무물 카페}에 올렸던 글이기도 합니다. 2018년 3월 13일이었습니다.
이 카페에 올린 글은 게시판을 닫아 들어가지 못해 검색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지끼을 님도 활동하셨던 {무물 카페}에 제가 또 올린 글이 있습니다. 2019년 1월 19일에 올린 <김홍전 [고넬료 집에 모인 이방인들에게 성신의 나타나심과 종교적인 황홀경(ecstasy)으로서 방언 찬송(할렐) // 이지끼을 님 해석과 같은 해석입니다.]>입니다.
이 글에는 이지끼을 님 댓글이 두 개 달려 있습니다. {개혁주의 마을} 방언 은사 토론 때 ‘존 맥아더 방언 중지론’을 지지한 ‘내 삶의 전부’ 님입니다.
@이지끼을
제가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이 이야기를 꺼냈을까요? ‘오순절 성령 강림 시 성령을 받은 사람은 열두 사도만이냐? 백이십 문도 전체냐?’ 하는 문제, ‘백이십 문도다.’ 하는 기독교 【정통】 해석을 뒤엎은, 이 시대 【최고】 신학자 이지끼을 님 【혼자만】의 해석ㅡ다른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ㅡ인 “열두 사도다.” 하는, 이 해석은 이지끼을 님이 목숨을 내걸다시피 하며 매달린 문제입니다.
그러면 제가 이지끼을 님 허락도 없이 독자들 이해를 도우려는 의도로 이지끼을 님 글에 “120 문도”를 넣어 김홍전 목사님 해석과 같다 했던 그 당시에 오늘같이 “어떤 영을 받으셨는지 알 것 같습니다.” 하며 발발 뛰셔야 했던 것 아닙니까? 그때는 같은 편이라서 참으셨습니까?
더군다나 김홍전 목사님 강설에는 “120 문도”가 적혀 있는데, ‘열두 사도만이냐? 백이십 문도 전체냐?’ 하는 문제가 그 뒤 사도행전이나 바울 서신 해석에서 극과 극의 해석을 낳으면, 저에게 쪽지라도 주셔서 언급하셔야 했던 것 아닙니까?
@이지끼을
도대체 10 년이 다 돼 가는 이 시점에서 뭐 하십니까? 한가하십니까?
《그런데 제가 “120 문도”라고 교정하는 것을 허락했다고요?》??????? 치료를 받아야 할 난독 【중증】입니다.
제가 ‘이지끼을 님이 120 문도로 교정하는 것을 허락하셨다.’고 했습니까? 미국에 오래 사신 까닭으로 문단 구분도 없이 가독성이 뒤떨어지는 산만한 글을 “독자들이 독해하기 쉽도록 교정을 허락”하셨다고 했지.
@이지끼을 <경고합니다.>
“어떤 영을 받으셨는지 알 것 같습니다.”??? 내란 범들인 재세례파 무리가 흘린 핏물들을 저에게 되돌리신 저주를 이어, 또 이런 말로 또 저를 정죄하실 때는 이지끼을 님을 ‘주님 안에서 한 형제’로 여기지 않겠습니다. 주님 안에서 한 형제가 아닌 주님의 몸 된 교회를 갉아 먹어 허무려고 교회에 가만히 기어들어 온 【쥐새끼】로 여기겠습니다.
제 입이 【쥐새끼】들에게는 인정사정없는 양아치 입임을, 시궁창 걸레 입임을 아실 텐데, 제가 이지끼을 님에게 그 더러운 입 냄새를 풍기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