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부동지不動地와 원바라밀(2)>
- 방편의 자재함 얻어 언제 어디에서나 중생을 구제하시는 8지보살
그 때 금강장 보살이 이 뜻을 다시 펴려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7지에서 방편 지혜 닦아 행하며
도를 돕는 큰 원력을 잘 모았고
세존의 거둬주심 다시 얻어서
나은 지혜 구하려고 8지에 올라,
공덕을 성취하고 늘 사랑하며
지혜가 넓고 크기 허공과 같고나,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다
법 듣고 결정한 힘 능히 내나니
이것이 적멸寂滅한 무생법인無生法忍,
법이 나고 일어남이 없음을 알며
이루고 파괴하고 다함도 없고
생사 없고 평등하고 분별도 없어
마음 작용 초월하여 허공과 같네.
이 인忍을 성취하고 희론戱論을 초월
매우 깊고 동요 없어 늘 적멸하니
모든 세간 아무도 알지 못하며
마음으로 집착함도 모두 여읜다.
이 지에 머무르면 분별이 없어
멸진정滅盡定에 들어간 비구와 같고
꿈에 물을 건너도 깨면 없어져
범천에 난 사람이 욕심 없듯이,
본래의 원력으로 권장도 하고
좋은 인忍을 찬탄하고 관정灌頂하면서
우리의 여러 불법, 그대가 아직
다 얻지 못했으니 노력하시오.
그대는 번뇌의 불 비록 껐으나
세간에는 아직도 번뇌 성하니
본래 원을 생각하고 중생 건지어
좋은 인을 닦아서 해탈케 하라.
법의 성품 참되고 생각 여의어
이승들도 이런 것 능히 얻음에
이것으로 세존이 되는 것 아니니
매우 깊고 걸림 없는 지혜 분이라.
천상 인간 공양 받는 부처님께서
이렇게 지혜 주어 관찰케 하니
그지없는 부처님 법 다 성취하고
한 생각에 예전 수행 뛰어넘더라.
보살이 묘한 지혜 이 지에 있어
광대한 신통의 힘 곧 얻고서
한 찰나에 몸을 나눠 시방에 두루
바다에 떠 있는 배 순풍 만난 듯,
마음은 작용 없고 지혜 힘으로
국토가 성취하고 무너지는 일
여러 세계 갖가지로 모두 다르며
작고 크고 무량함을 능히 다 알고,
삼천대천세계의 4대종대四大種大들과
여섯 갈래 중생의 몸 각각 다르며
여러 가지 보배와 티끌의 수효
지혜로 살펴보아 남지 않으며,
보살이 여러 종류 몸을 다 알고
중생을 교화하려 그 몸 같으며
한량없는 국토도 각각 다른데
형상을 나타내어 모두 두루해,
비유하면 허공에 뜬 해나 달이나
여러 곳 물 가운데 영상 비치듯
법계에 있는 보살 변동 없지만
마음 따라 나투는 영상도 그래,
좋아함이 각각 다른 마음을 따라
여러 중생 가운데 몸을 나투되
성문이나 독각이나 보살들이나
부처님 몸까지도 모두 나타내,
중생 몸과 국토 몸과 업보의 몸과
성인들의 지혜 몸과 법의 몸들과
허공인 몸까지도 모두 평등해
중생을 위하여서 두루 나투네.
- 이하 생략 -
위와 같이 부동지의 경계와 원력으로 이루는 행을 게송으로 거듭 설하셨습니다. 8지 보살의
원력은 삼계는 물론 일체 법계의 중생들을 위해서라면 백 천 가지 몸을 나투시는데, 그 힘은
방편바라밀의 수행을 성취한 공덕이라는 말씀입니다.
「십지품」의 보살의 품격과 경지에 대한 내용은 너무 어려워 몇 줄 소개한다고 이해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라, 위의 게송을 발췌했으니 게송으로 보살의 경지를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재차
설명하면, 8지의 보살은 방편의 자재함을 얻어 어느 법계, 어느 몸으로도 나툼이 가능해 그
원력으로 중생을 구제하신다는 말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방편과 원력의 성취가 완벽해서 구원을 받는 사람은 누구에게 어떻게 구원을
받는지조차 모르게 하신다고 합니다. 이는 부처와 거의 대등한 지위에서나 가능한
능력입니다.
원바라밀은 다른 바라밀과 조금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방편바라밀 이후 네 가지 바라밀은
철저히 이타행에 필요한 대승 최고의 거룩한 수행입니다. 사실상 부처를 이룬 보살들이지만
완벽한 중생 구제를 위해서 닦는 능동적 수행이며, 이 수행을 통해 법의 공함과 법의
불생불멸不生不滅을 알지만, 법계나 중생계의 제도를 위해서라면 분별심을 일으키는
자재함도 보인다는 것이 보살의 원바라밀 수행입니다.
십행품에서 공덕림 보살은 8지보살이 원바라밀을 닦는 내용과 무엇을 성취하는가를 자세히
설하고 있습니다. 내용 가운데 법의 성품에 관한 설명도 있으니, 분량은 많지만 어렵게 찾은
원바라밀의 핵심입니다. 차분히 읽으시면 독자 여러분의 원願은 무엇인지 스스로 나타나지지
않겠습니까? 공덕림 보살이 설하신 내용입니다.
(1) 열 가지의 선근善根을 성취하다
‘불자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 마하살의 얻기 어려운 행인가? 이 보살이 얻기 어려운 선근과
굴복하기 어려운 선근과 가장 수승한 선근과 깨뜨릴 수 없는 선근과 지나갈 이 없는 선근과
헤아릴 수 없는 선근과 다하지 않는 선근과 힘이 자재한 선근과 큰 위덕 있는 선근과 모든
부처님과 성품이 같은 선근을 성취하였느니라.’
(2) 선근을 닦아 온갖 얻기 어려움을 다 얻다
‘이 보살이 모든 행을 닦을 적에 불법 중에서 가장 나은 이해를 얻고, 부처님 보리에서 넓고 큰
이해를 얻고, 보살의 서원에 조금도 쉬지 아니하고 일체 겁이 다하여도 게으른 마음이 없으며,
모든 고통에 싫은 생각을 내지 않고, 모든 마군이 동요하지 못하며, 모든 부처님이 호념하시는
바며, 모든 보살의 고행苦行을 구비하게 행하고, 보살의 행을 닦되 꾸준하여 게으르지
아니하며, 대승에 대한 소원이 퇴전하지 아니하느니라.’
(3) 얻기 어려운 행을 이룬 이익을 말하다
‘이 보살이 이 얻기 어려운 행에 편안히 머물고는, 생각 생각마다 아승지 겁에 나고 죽음에
자주 굴러다니면서도 보살의 대원을 버리지 아니하나니, 만일 어떤 중생이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거나, 내지 보고 듣기만 하여도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퇴전치 아니하느니라.’
(4) 중생을 제도함을 비유로 나타내다
‘보살이 비록 중생이 있는 것 아닌 줄을 알지마는, 일체 중생들을 버리지 아니하나니, 마치
뱃사공이 이 언덕에 머물지도 않고 저 언덕에 머물지도 않고 중류中流에 머물지도
아니하면서, 이 언덕의 중생을 건네어 저 언덕에 이르게 하나니 왕래하여 쉬지 아니하는
연고니라.’
(5) 비유와 법을 합하여 나타내다
‘보살 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생사에 머물지도 않고 열반에 머물지도 않고 생사인 중류에
머물지도 아니하면서, 이 언덕의 중생을 건네어 저 언덕의 편안하고 두려움이 없고 근심이
없고 시끄러움이 없는 곳에 두지마는, 중생의 수효에 집착하지도 아니하며, 한 중생을
버리고 여러 중생에 집착하지도 아니하고, 여러 중생을 버리고 한 중생에 집착하지도
아니하며, 중생계가 더하지도 않고 중생계가 감하지도 않으며, 중생계가 나지도 않고
중생계가 멸하지도 않으며, 중생계가 다하지도 않고 중생계가 자라지도 않으며, 중생계를
분별하지도 않고 중생계를 둘로 하지도 않느니라.’
(6) 까닭을 해석하다
‘무슨 까닭이냐 하면, 보살이 중생계가 법계와 같은 데 깊이 들어가서 중생계와 법계가 둘이
없게 되나니, 둘이 없는 법에는 더함도 없고 감함도 없고 나는 것도 없고 멸함도 없고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으며, 취함도 없고 의지함도 없고 집착함도 없고 둘도 없나니, 왜 그러느냐
하면 보살이 일체 법과 법계가 둘이 없음을 아는 연고니라.‘
(7) 고요하고 움직임이 걸림이 없음을 나타내다
‘보살이 이렇게 좋은 방편으로 깊은 법계에 들어가고는 모양이 없는 데 머물러서 청정한
모양으로 그 몸을 장엄하며, 법의 성품이 없음을 알지마는 일체 법의 모양을 분별하며,
중생에 집착하지 않으면서도 중생의 수를 알며, 세계에 집착하지 않으면서도 부처님
세계에 몸을 나타내며, 법을 분별하지 않으면서도 부처님 법에 잘 들어가며, 이치를 깊이
통달하고도 말로 가르침을 널리 연설하며, 일체 법이 탐욕을 여윈 진정한 경계를 알면서도
보살의 도를 끊지 아니하고 보살의 행에서 물러나지 아니하고, 부지런히 다함이 없는 행을
닦아서 자재하게 청정한 법계에 들어가느니라.’
(8) 비유로써 밝히다
‘비유컨대 나무를 비비어 불을 내거든 불타는 일이 한량없으나 불은 꺼지지 아니하나니,
보살도 그와 같아서 중생을 교화하는 일이 다함이 없으나 세간에 있어서 항상 머물고
멸하지도 않느니라.’
(9) 두 가지의 행의 자취를 쌍으로 떨어 버리다
‘구경究竟도 아니고 구경 아님도 아니며, 집착도 아니고 집착 아님도 아니며, 의지도 아니고
의지 없음도 아니며, 세상 법도 아니고 부처님 법도 아니며, 범부도 아니고 과를 얻은 것도
아니니라.’
(10) 더 수승한 행에 나아감을 밝히다
‘보살이 이러한 얻기 어려운 마음을 성취하고 보살행을 닦을 이승二乘 법도 말하지 않고
부처님 법도 말하지 않고 세간도 말하지 않고 세간 법도 말하지 않고 중생도 말하지 않고
중생 없음도 말하지 않고 때 묻은 것도 말하지 않고 깨끗한 것도 말하지 않나니, 무슨
까닭인가. 보살은 일체 법이 물들지도 않고 집착도 없고 전변하지도 않고 물러가지도
않음을 아는 연고며, 보살이 이렇게 적멸하고 미묘하고 매우 깊고 가장 수승한 법 가운데서
수행할 때에 [내가 현재에 이 행을 닦고 이미 이 행을 닦았고 장차 이 행을 닦으리라]는
생각을 내지 아니하며, 5온五蘊, 18계十八界, 12처十二處에 집착하지 않고, 안 세간, 바깥
세간, 안팎 세간과 일으킨 큰 소원의 바라밀다와 일체 법에도 모두 집착이 없었느니라.’
(11) 고정된 법이 없음을 밝히다
‘무슨 연고냐. 법계 중에는 어떤 법이 성문승에 향한다, 독각승에 향한다 이름 할 것이
없으며, 어떤 법이 보살승에 향한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향한다 이름 할 것이 없으며,
어떤 법이 범부세계에 향한다 할 것이 없으며, 어떤 법이 물드는 데 향한다, 깨끗한 데
향한다, 생사에 향한다, 열반에 향한다 할 것이 없나니, 그 까닭은 모든 법이 둘도 없고
둘이 아님도 없는 연고니라.’
- 이하 생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