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에 받은 은혜
2024년 3월 27일~29일까지 고난주간을 맞이하여 3일 동안 기도성회를 개최했다. 담임목사와 평창지방 내 교역자(尹仁哲, 宋敏哲 목사)를 초청하여 말씀을 듣고 주님의 고난을 묵상했다. 첫째 날에 안미배광교회 윤인철 목사는 요한복음 21:15~19, ‘인생전환’이란 말씀을 전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인생 전환점을 가지게 된 베드로 이야기인데 마치 그의 간증처럼 들렸다. 올해의 고난주간은 그에게 남달랐기 때문이다. 윤인철 목사는 1992년 강원도 양구군 국토정중앙면(당시 남면)의 가오작(佳俉作) 교회에서 첫 목회를 시작했다. 대부분 이 지역처럼 산골이나 시골 마을은 새내기 전도사가 안수를 받기 위하여 거쳐 가는 임지로 여겼다. 부임 후 4년 차에 목사 안수를 받고는 이임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되기 때문에 교인들은 담임목사에게 세례 및 성찬식을 받아보는 게 꿈이었다. 윤 목사 역시 1995년에 안수받고 이임할 기회가 왔다. 그러나 그는 세례식과 성찬식을 여러 번 베풀면서 이 교회에서 11년 동안 목회했다.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일이었다. 이는 그만의 영적 체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끄럽게도 그는 처음 목회 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신하지 못하여 이 문제를 놓고 기도했었는데 어느 날 하나님이 그의 심령에 말씀으로 응답하셨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3:16). 심령에 전기충격기로 가격하는 듯 강력한 말씀이었다. 그 후 자기 마음속에 분명히 살아계신 하나님을 확신하였다. 그때 방언 은사도 받고 기쁘게 목회하다 보니 그 세월이 지났다.
2003년 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중국 선교사로 새로운 사역을 시작했다. 거의 20년 가까운 중국 선교사로서의 사역은 힘들었지만 보람도 있었다. 그러다가 코로나 19가 전 세계를 강타했을 때 그 역병의 진원지로 지목된 중국 공산당은 교회를 핍박했고 해외 선교사를 추방했다. 이때 2020년 윤 목사도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당시로서는 막연한 일이었지만 잠시 숨을 고르면서 새로운 사역으로 말레이시아의 선교비전을 품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윤 목사 내외는 건강검진을 받고는 청천벽력(靑天霹靂) 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평생 동반자 아내(정미경 사모)가 폐암 말기 진단을 받은 것이다. 그것도 100명 중 2명에게나 걸리는 희귀병이었다. 그동안 어떤 증상도 없었으므로 꿈에도 생각 못한 소식이었으니 두 내외가 받은 충격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러다가 2022년 평창지방 안미배광교회에서 새로운 목회의 길이 열려 말레이시아 선교를 접었다. 맡긴 양 무리를 열심히 돌보면서 하나님의 기적을 구했다. 어느 날 그의 아내는 갑자기 언어가 어눌해져서 급히 병원을 찾았다. 뇌에도 암이 전이되어 언어 기능을 건드리는 바람에 생긴 증상이다.
퇴원한 후 지금은 집에서 약으로 항암치료 중에 있다. 매일 15만 원짜리 약을 복용해야 한다. 약값을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차할 때 마침 그 약을 복용하다가 죽음에 이른 어느 환자 가족과 연락이 닿아서 남은 약을 기증받게 되어 두 달 치를 해결하기도 했다. 윤 목사는 하루에도 여러 번씩 하늘과 땅을 오간다고 한다. 기적을 의심하지 않는 믿음이 충만할 때는 힘도 펄펄 생기다가도 또 통증이 엄습하면 낙심의 구렁에 빠진다. 반복적인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그는 믿음이 너무나 없다는 자괴감에 빠질 때가 많았다. 이런 상황이면 누구라도 가지는 인간적인 솔직함이다. 그럴수록 더욱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면서 반석 같은 믿음 위에 우뚝 서서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기적을 기도한다.
지금 그의 아내는 암 진단 당시 의사가 선고한 3년의 삶 중에서 2년 3개월을 지나고 있다. 윤 목사는 아내 곁에서 함께 기도하면서 아파서 울고 감사해서 울고 감격해서 운다. 건강할 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소한 것이 이렇게 큰 감사와 감격의 소용돌이를 일으킬 줄 몰랐다. 남은 목양 사역을 끝까지 완주하고 싶은 갈망이 온몸에 번질 때는 더 간절한 기도로 주님 앞에 엎드린다. 단순히 생명에 연연하여 부르짖는 기도가 아니다. 부끄럽게 살아온 날들을 떠올리면서 남은 인생이라도 더 성숙한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서고 싶은 영적 깨달음 때문이다. 이대로 주님 앞에 설 자신의 수치를 뒤늦게 깨닫고는 조금이라도 만회하고픈 그만의 갈구다. 때때로 아내는 밤늦은 시간에 홀로 성전에 엎드린다. 불면의 시간이 아까워서 주 앞에서 보내고 싶어서다. 하나님께 엎드린 아내를 바라보는 윤 목사도 함께 기도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렇게 그는 인생전환점에서 남들이 모를 그만의 은혜의 삶을 산다.
사람이 죽음 앞에 선다는 것을 확실하게 자각한다면 지금 마구잡이로 살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웅다웅 치고받고, 손익 따져가며 높낮이 재는 삶이 얼마나 유치한 지를 깨닫게 된다. 이해하고 용서하고 살아도 부족한 인생에서 여전히 시기와 질투의 화신으로 성질부리는 무례한 인생의 오점도 남기지 않는다. 윤 목사는 누구보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고난의 주님을 묵상할 때마다 이렇게 특별한 은혜를 경험하고 있다. 성도들은 고난주간에 못난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면서 특별한 은혜에 감사했다. 십자가 주님의 고난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스스로 겸손한 삶을 결단하게 하는 평생 잊지 못할 은혜의 사건이 분명하다.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 유난히 이 은혜의 찬송가가 심령에 메아리친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고린도전서 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