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알후기] 패자의 역습을 꿈꾸며

[동행]

영남알프스 그란폰도 (180km)

아침 출근길마다 나의 시선은 저 멀리 하늘과
맞닿은 산으로 향했고 거뭇하게 보이는 유장한

능선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곡선을 따라 맘껏

달리거나 잔차로 가파른 능선을 넘는다는

상상만으로도 마치 어린아이 마냥 마음이 설레고

입가에는 절로 미소가 번졌다.

험한 산악구간으로 이어지는 국도를 넘나든다는게

나로서는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지만 두 해를 마음

속에만 품고있다 어쩌면 이번 기회가 마지막일수도

있겠다고 생각이 미치니 더는 미룰수가 없었다.
그래서 세 명의 동생들과 함께 한 조가 되어 영알

그란폰도에 출사표를 던졌다.

불안하다는 건 부족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턱 없이 부족한 연습량을 채우기 위해 새벽

댓바람부터 원동2,3고개를 넘고 더보태 천태호를

올랐지만 다른 참가자들이 비하면 새 발에 피에

불과했다.
자영업을 하는 탓에 쉬는 날 없이 일을 해야했고

아침 운동은 늘 출근전에 끝마쳐야했다.

하지만 주어진 환경이 다르기에 최선을 다했다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두 달만에 가게문을 닫고

영알대회 참가 날 잠에서 눈을 뜬 새벽 4시30분

피곤에 지친 몸은 잠을 잔건지 여전히 비몽사몽이다.

혹시나 빠트린 물건은 없나 다시 한번 체크하고
집을 나오니 밖은 아직도 깜깜한 어둠이다.
별들이 이울어가는 새벽을 달려 부산대양산캠퍼스역
에 도착한 후 아침 끼니로 준비한 샌드위치를 먹을려고

가방을 열어보니 어디에도 보이질 않는다.

아~~~~~라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분명 냉장고에서 꺼냈는데 그만 식탁 위에 두고
왔나 보다.
그럼 그렇지 맨날 이 모양 이 꼴이다.
그나마 다행인건 미숫가루를 꿀물에 탄게 있었다는 거다.

동이 트는가 밖은 점점 환해지고 이었다.
자동차에서 내려 잔차 셋팅하고 뒤주머니에 파워젤
파스 그리고 휴대폰까지 챙겨 넣고 대회 배번수령 하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회 출발 30분 전 속도계의 온도는 14도를

가르키고 제법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참가

선수들을 마주하고 보니 마음은 벌써부터 뜨거워지고

설레기 시작한다.

친절하고 사람좋은 얼굴로 안내하는 자봉님들의
도움을 받아 서약서 작성하고 팀원들과 출발대기
하고 있었다.
드뎌 카운터다운 시작 되었고 참가선수 312명은
서로를 배려하며 어곡산업단지로 향해 출발~~~~~~

중간쯤에 끼어 나아가는데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나를 앞서가는 선수들의 면면을 보니 예사롭지가
않다.
그때 문득 든 생각은 내가 왜 여기에 있지?
내가 끼일 곳이 아닌데....
하지만 어쩌겠는가 활의 시위는 내 손에서 벗어 난걸
말이다.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그래 완주만 하자!!

에덴밸리

길게 꼬리를 물고 늘어진 퍼레이드는 에덴밸리가
버티고 선 산 아래 마을에 멈춰섰다.
고개 들어 에덴밸리 산정상을 바라보니 크다마한
풍력발전기 여러 대가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무심히 돌아가고 있다.
약간의 기다림 후 나팔소리와 동시에 오픈~~^^

첫 번째 맞닥뜨리는 어쩌면 영알구간 중에 제일

난코스가 아닐까 싶다.
쉽게 보고 덤벼들었다가 개피 보는 곳이다.
3.5km를 오르는 동안 두 세번은 페달에 끼워진
클릿신발을 빼고 싶은 엄청난 유혹이 찾아온다.

아니나 다를까 중간지점부터는 잔차에서 내려 끌고
오르는 분들도 눈에 띄고 중심을 잃고 넘어지는 경우
도 여럿차례 보았다.
나도 얼굴을 타고 흘러 내리는 땀과 콧물까지 훌쩍이며

페달링을 멈추지않았고 다행히 고통의 시간을 뒤로하고

고개마루 정상에 다다랐다.

도래재고개(48km)

땀으로 흠뻑 젖은 옷 가파른 길을 힘겹게 올라 온 만큼

반대편 내리막으로 쏜살같이 내려가니
첩첩산중 깊은 골짜기의 냉기까지 더해지니 차가움은

배가된다.
브레이크를 움켜쥔 손아귀가 아플 지경이다.
그래도 내리막은 늘 즐겁다.

바람을 가르며 순식간에 밀양댐을 지나 대추가 지천으로

영글어 가는 단장면을 에돌아 첫 번째 보급소인

도래재고개로 향해 나아간다.
나의 무딘 속도에 비해 다들 참 가볍고 빠르게 지나간다.
에덴밸리 보다 조금은 수월한 도래재고개를 올랐다.

넓은 공간에 잘 차려진 보급소 초코파이와 바나나

그리고 콜라 한잔 단숨에 들이켰다.
가뿐숨을 헐떡이며 입속으로 밀어 넣고 있는 나를

대신해서 자봉님이 물통에 생수를 가득 채워 주신다.
친절한 자봉님 감사합니다!!~~~~~^^

석남고개

가파른 내리막길 접어들자 마자 눈 앞에 우뚝 솟은
운문산 그리고 그 아래 터를 잡은 마을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늘 그리운 곳이다.
저 곳이 몹시도 아름다운 곳이었던가?
새삼 감탄스럽다.

남명초등학교 앞에서 우회전 그리고 주위를 둘러

봐도 온통 사과뿐인 얼음골사과 주산지인 남명

마을을 지나 너무나 익숙한 풍경을 눈으로 즐기며

우측 천황산 그 유장한 능선 아래 한여름에도

너럭바위 아래 고드름을 볼 수 있는 얼음골이

한눈에 보이는가 하면 발 아래 계곡에는 호박소가

위치해 있다.

석남사터널로 향하는 다소 지루한 오르막을 유독
팀 동료인 제 쌤은 싫어 한다.
우연의 일치일까?
그때부터 제 쌤이 뒤로 쳐지기 시작한다.
근육경련이 일어난나?
뒤돌아 보아도 보이질 않는다.
별 일 없어야 할텐데...
먼저 석남터널 앞에 도착해서 기다렸다.

얼마지나지 않아 도착한 제 쌤은 무릎통증을 호소한다.
팀 동료를 위해 해줄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
그저 도착할때까지 기다려 주는게 전부다.
그리고 만병통치 약 맨손에담을 통증부위에 듬뿍 바른다.

삽재

깜깜한 석남터널을 빠져나와 비구니들의 도량인
석남사 들머리 지나고 궁근전 삼거리에서 삽재를 향해

반쯤 올랐을까 제 쌤의 통증이 더더욱 심해져

다시 멈췄다.
팀 동료 두 명이 남아 약을 바르는 동안 나는

삽재고개 마루에 먼저 올라 잠시 동료들을 기다렸다.
지금 고통속에서 대회를 이어가는 제 쌤의 마음은

어떨까?
그 마음을 헤아리고 있는데 저 아래에서 자전거를

끌고 오고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안스럽다.ㅠㅠ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전에 삽재 근처 캠피장에서
김 쌤의 가족들의 손을 빌려 점심을 먹기로 했기에
그 곳으로 찾아 들어가 소고기 덮밥에 열무김치

그리고 묵은지에 큼지막하게 썰어 넣은 돼지고기를

얼큰하게 끓인 김치찌개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따뜻한 커피까지 마시고 나니 든든하다.

잘 먹었다는 감사의 말 전하고 길을 떠났다.
경주내남삼거리까지 이어진 길은 수월하게 갔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들녘에는 벼가 익어 황금빛으로
물들었고 길섶에도 코스모스가 활짝 피어 바람결에
흔들리고 있는 모습이 시골에서 나고자란 내

정서에는 정녕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

어느새 다다른 산내삼거리에 잠시 머물렀다.
흩어진 팀 동료들이 다 함께 모이고 나서 또 다시

운문댐으로 출발했다.
골이 깊은 산과 주위의 펼쳐지 풍경들 사이로 난

한갓진 도로는 잔차 타고 달리기에 그저 그만이었다.

순간 우리들을 추월하여 괴성을 지르며 미친둣이

앞으로 나아가는 무리가 있었다.
점점 멀어지는가 싶더니 시야에서 사라지고말았다.
장거리에서 결코 하지 말아야 하는행동인데....
힘을 비축하고 마지막까지 아껴둬야 하는데

울트라마라톤이나 트레일런을 하면서 느낀점이다.
끝날때까지 끝난게 아니다.

운문령

가뭄이 깊은 탓인가 운문댐이 바닥을 훤히 드러내

놓고 있었다.
산골마을에는 청도반시가 말갛게 익어가고 고구마

수확이 한창이다.
계곡 곁으로 우거진 나뭇잎에는 곱게 물들어 가는
모습이 참으로 정겹다.
그때부터였다.

잔뜩 흐린 하늘에서 한 두방울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애시당초 대회 도중 비가 내리면 접는다는

 애기를 나누었는데 그럴수야 있나 싶다.
서둘러 운문령을 향해 나아갔다.
처음가는 길이라 아무것도 모른 채 앞 서 가는 팀
동료 뒷모습만 바라 보면서 고즈넉한 산길을 오르다
살짝 경사도가 있다 싶었는데 코너를 돌고 보니

운문령 정상이다.
상상했던 것보다 쉽게 오르고 나니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온다.

잠시 멈춰 선 사이에 자동차 행렬이 심하게 이어진다.
바닥은 내리는 비로 인해 흥건히 젖었고 내리막길에

자동차와 뒤엉켜 불안하다.
브레이크를 움켜 잡아도 물기에 밀려 내려간다.

배내고개(134km)

앞서가는 자동차를 뒤따라 겨우 내려와 석남사 지나

배내골로 이어지는 배내고개가 저 멀리 보이는가 하면

잔차를 끌고 오르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몇 사람을 추월해 본격적인 오르막을 오르는데
비는 점점 더 거세진다.
이 고개만 넘어면 된다.
하지만 내 의지와 다르게 점점 무거워진 다리로는
더 이상은 버티는게 한계에 다다랐다.

결국 중간에서 내려 200m정도를 끌고 다시 나머지
구간을 타고 넘었다.
고개마루에 올라서니 기진맥진 피똥을 살것 같다. ㅋ
한편으로는 여기까지 왔다니 감개무량 입꼬리가

위로 치켜 올라간다.
두 번째 보급소에서도 반갑게 맞이 해주는 마음

따뜻한 자봉님의 위로의 말을 들어며 초코파이

바나나 하나와 게토레이 한잔을 마시고 다운힐을

시작한다.
흠뻑 젖은 옷 사이로 찬기운이 파고든다.
비는 그칠 기미가 보이질 않고 날은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배태고개

마지막 고개다.
흘러내린 빗물이 입으로 들어오니 짭쪼름하다.
우리가 제일 후미인가 대회차량이 뒤에서 깜빡이를
켜고 따라 붙었다.
괜히 부담스럽다.
먼저 가라고 손짓하고 말씀드려도 뒤따라 오겠단다.

하염없이 내리는 비에 몸은 무거웠지만 그를수록
마음은 후련해지고 통쾌하기까지 했다.
이런게 자유가 아니겠는가?
내 앞에 놓인 은산철벽을 넘고 난 자만이 느끼는 자유 말이다.

뒷 따르는 차량의 보호 아래 배태고개를 안전하게
넘었는가 싶었는데 내리막길에서 행여 빗길에

넘어질까 온 신경을 곤두세울 수 밖에 없었다.
평속 50은 쉽게 나오는 구간인데 엉금엉금 기다시피
겨우 내려와 원동2 고개를 향했고 뉘엿뉘엿 어둠이
내려앉은 비 내리는 저녁을 달려 이윽고 도착한

부산대양산캠프스역 그 긴 여정을 마쳤다.

180km 산악구간을 달렸고 제한시간 11시간을 넘겨
11시간 30분에 피니쉬라인을 통과했지만 지금 나에게

시간은 무의미하다.
좁은안장에 앉아 부지런히 페달을 밟은 것만 기억에
남았다.
빗물이 앞을 가려도 아량곳 하지않고 흘러 내린

빗물이 도량을 만들어 가는 길을 방해해도 마음

졸이며 먼길을 아무탈없이 달려왔다.

이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비록 우리팀이 끄트머리에 들어 왔지만 또 다시

내년에도 당당하게 도전하리라.
순위가 한칸씩 뒤로 밀릴지도 모른다.
다들 긴장하시라~~~ㅋㅋ
끝으로 긴 시간 함께한 팀동료들에게 감사의 말
전하고 재미로 철인클럽 관계자분들과 자봉님들께
무한한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참가 선수분들 모두 수고많았습니다.^^

[동행]

제 잘못으로 글이 삭제 되었고 댓글까지 몽땅ㅠㅠ
다시 글을 올리긴 했는데 댓글 달아주신분들 감사하고 또 죄송합니다~~~~^^

[달무리]

생생한 후기 즐감입니다 ~~^^
영알은 180킬로 타는내내 여 뭐땀시 왔지 하다가도 ㆍ
끝나고 집에오면 또가고싶은 매력이 가득한 ~^
핑크 끌바 접니다 ㅎㅎㅎㅎ
울회원분 끌바를 해서라도 완주 시켜볼라 했는데
영알이 만만하지가 않았습니다 ㅎㅎㅎ

[박이사(박재환@장전)]

비장함과 열정이 느껴집니다.
말로 다 못할 여정의 수고로움과 고통, 즐거움과 상쾌함이 글 사이사이 묻어납니다.
완주하신 것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미스타정]

배내고개 넘지않고선 절대 영알의 의미를 못느끼죠~~~17년 저도 영알 완주했습니다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