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느티나무가/신경림
고향집 앞 느티나무가
터무니없이 작아 보이기 시작한 때가 있다
그때까지는 보이거나 들리던 것들이
문득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
나는 잠시 으아해하기는 했으나
내가 다 커서거니 여기면서
이게 다 세상 사는 이치라고 생각했다
오랜 세월이 지나 고향엘 갔더니
고향집 앞 느티나무가 옛날처럼 커져 있다
내가 늙고 병들었구나 이내 깨달았지만
내 눈이 이미 어두워지고 귀가 멀어진 것을
나는 서러워하지 않았다
다시 느티나무가 커진 눈에
세상이 너무 아름다웠다
눈이 어두워지고 귀가 멀어져
오히려 세상의 모든 것이 더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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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시인의 시집<사진관집 이층>에 실린 시입니다.
제가 사회초년생일 때 다녔던 초등학교에 담임선생님이 계셔서 뵈러 간 적이 있어요. 학교 다닐 때 그렇게 커보였던 건물도,운동장도, 느티나무도, 복도도 모두 작아 보여 놀랐어요. 그 조그맣고 낡은 시골 학교가 시시해 보였다는 표현이 맞을 거여요.
하지만 이 시처럼 세월이 흘러 몇해 전 큰 수술을 받고 요양차 고향에 갔다 다시 들렀을 때는 그 자리에 굳건하게 서 있는 학교가 얼마나 커보이던지요. 학교도, 나무도, 교실도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 넘 감사했어요. 그곳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눈을 마주치자 정겨운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려주었지요. 마음이 참 따스했어요. 언젠가 이 곳을 못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눈에 보이는 모든 풍경이 소중하고 아름다웠지요.
지난 5월 22일에 이렇게 민초들의 애환을 진솔하게 시로 담아냈던 서정시인 신경림 시인께서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금요일 대한민국 문인장으로 치러진 영결식에 다녀왔지요. 그를 추모하는 행사들을 함께 하며 비로소 존경했던 한 시인을 보낼 수 있었어요.그는 갔지만 남긴 시들은 우리 가슴에서 영원히 빛나리라 생각합니다.(감상/어향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