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주의 정선 이야기11
열린 정선, 삶이 묻어나는 풍요로움과 열린 공간 마당
<저녁 먹고, 가족들과 별 헤던 장소>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별 셋 나 셋….”
정선에 살았던 사람, 정선에 사는 사람들이 가진 공동의 추억 중 하나는 마당에 누워 별 헤는 밤이었습니다. 정선 사람들이 가진 여름과 초가을 마당 풍경입니다. 화로에 모깃불을 피우고 감자, 옥수수, 참호박으로 저녁을 먹은 후 멍석에 누워서 휴식을 취할 때입니다. 정선은 어디를 가나 밤하늘에 은하수가 쏟아집니다. 그렇지요. 은하수는 밤하늘의 별 물결이니 당연히 쏟아지지요. 우수수라고 표현할 수 있지요. 은하수 물결이니까요. 그믐날이 되면 어두운 밤길을 은하수 물결이 밝혔습니다. 누구는 꿈 못 이룬 사람이 죽어 간 혼불이 은하수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승의 꿈이 별이 되어 이뤄졌다고요. 정말 수많은 별이 촘촘히 박혀 물결을 이룹니다. 청정 정선의 자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별을 보면서 가족들은 잠시 멍석 위에 누워 누가 별을 더 세나 내기를 합니다.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별 셋 나 셋 별 넷 나 넷~~~.”
숨이 목구멍까지 차서 도저히 셀 수 없으면 별 헤기를 마치지요. 그리고 또 별을 셉니다. 별처럼 빛나는 꿈을 이루고자 우리는 그렇게 밤마다 멍석에 누워 별을 셌습니다. 멍석에 누워 별 헤는 사이마다 가족들은 도란도란 사랑으로 가득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힘든 일과를 마치고 감자 옥수수 참호박으로 배를 채우고도 쉴 수 있는 유일한 낭만의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절 그 꿈이 나이 들어 이뤄졌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만은 세월이 한참 지난 지금 생각해도 참 좋습니다. 초롱초롱 밤하늘에 뜬 별 헤던 마당이 그립습니다.
<손님맞이의 공간>
“아이고, 아재 왔소. 이리 소식도 없이요.”
어머니는 언제나 누가 와도 마당으로 뛰어나가 맞았지요. 버선발이 아니라 신발 신을 새도 없이 맨발로 뛰어나갔습니다. 손에 든 짐을 받고 손을 맞잡고 얼싸 좋아하는 표정이었지요. 문살 창호지에 댄 꽃잎처럼 그렇게 손님을 반겼습니다. 문종이 한 장 바른 문이라 문밖 마당에서 나는 소리가 누군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인기척이 들리면 오매불망 기다린 듯 손님을 맞았습니다. 그러면 아이들도 줄줄이 나가 인사하며 반겼습니다. 정선 사람들이 갖는 따뜻한 마음이었지요. 인정(人情)이 뭐 따로 있나요. 따뜻한 작은 표현이 인정이지요. 먼 길 걸어온 손님은 그렇게 마당에 맨발로 뛰어나와 반기는 어머니를 보면서 피곤한 여정을 모두 풀었습니다.
어찌 손님 맞을 때만 그랬을까요. 가족이 먼 길 출타했다가 와도 같은 반김이었습니다. 얼마나 살가운지요. 정선 사람들의 말 한마디 들어보면 다 넘어갑니다. 꽃잎 바람에 흔들리듯 투박한 말씨에 담긴 따뜻한 정이 말마다 속속 배어 있으니까요.
손님 배웅에도 어른 출타 때도 그랬습니다. 마당을 나와 큰길로 이어지는 신작로까지 무거운 짐 들어주면서 떠나보냈습니다. 아쉬움에 그리고 안전을 바라며 또 보자고 그렇게 마음 전했습니다. 정선 사람들에겐 나를 찾아온 사람은 모두가 사랑하는 임이었으니까요. 멀리 길을 떠나 눈에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며 배웅했습니다.
<잔치로 행복했던 공간>
“기순이 아버지, 좀 더 주세요.”
외양간에 차린 과방(果房)에다 대고 하는 소리입니다. 과방은 잔칫집 음식을 제공하는 공간이며 사람이지요. 과방에서는 잔치가 끝날 때까지 준비한 음식이 떨어지지 않게 잘 배분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손님이 알맞게 먹을 수 있게 잔치 음식을 나누어줍니다. 먹을 음식이 부족했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마당에는 멍석이 깔리고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볕을 가린 그늘막이 쳐졌지요. 그늘막 없는 땡볕 아래에도 좋았습니다. 사람들은 온통 마당에서 잔치 음식을 먹으며 즐거워했습니다. 그리고 마당 가운데에는 초례상이 차려졌고요. 신랑 신부가 초례상을 사이에 두고 수줍게 서 있습니다. 홀기에 따라 신랑 신부는 절을 하고 교배례를 치렀습니다.
“신부가 웃으면 첫딸 낳는데. 하하하.”
가끔 웃긴 입담을 던지는 사람도 있지요. 어쩌면 판소리 마당에서 추임새를 던지는 역할이지요. 누군가 그렇게 입담을 던져야 웃음이 나고, 잔치는 더 재미있습니다. 어디 혼례잔치만 그랬나요. 할아버지 할머니 환갑잔치에도 마당은 연회석이었습니다.
<추수로 풍요로웠던 공간>
“잘 쓸어야 해. 돌 남기지 말고, 깨끗이 쓸어야 한다.”
동이 트고 안개가 자욱한 가을 아침입니다. 마당을 쓰는 할아버지와 손자의 대화입니다. 오늘은 마당에서 타작하는 날이거든요. 태질하고 도리깨질해서 메밀을 터는 날입니다. 행여나 돌이 들어갈까 봐 전날부터 마당에 진흙물을 얹고 빗자루로 깨끗하게 쓸었습니다. 어른들은 빗질이 끝나자마자 메밀 주저리를 지게로 져서 마당에 늘어놨습니다. 아침 먹기 전 한마당 두드리고 들어가려는 심사지요.
저녁이 되자 메밀 타작은 끝을 맺고 가마니 몇 개가 처마 밑 섬돌에 놓였습니다. 추운 겨울 가족들이 막국수를 만들고, 콧등치기 국수를 만들고, 메밀 부치기를 만들어 먹을 양식이 마당 한쪽에 쌓였습니다. 보기만 해도 배부릅니다.
어디 메밀 가마니뿐인가요. 옥수수를 말리는 가리가 마당 가에 서 있고요. 산에서 주워온 도토리도 몇 가마 놓여 있습니다. 1970년대까지 늘 봐왔던 시골 마당의 풍경입니다.
<나뭇가리, 두엄더미, 소말뚝, 아이들, 닭, 개, 고양이의 놀이터>
“음~매~, 멍멍, 꼬꼬댁, 야옹~~”
마당은 온통 가축의 놀이터였습니다. 말뚝에 매인 소 몇 마리가 두엄더미 옆에서 되새김질하고, 닭은 병아리를 데리고 마당 가를 쪼며 꼬꼬댁 소리치고요. 개들은 꼬리를 흔들면서 낯선 이를 보고 짖고요. 고양이와 강아지는 쫓고 쫓기며 놀고요. 아이들은 땅따먹기 놀이를 합니다. 정말 아름다운 마당의 풍경입니다.
아버지는 마당 가에 쌓인 나뭇가리 옆에서 장작 패는 도끼질을 합니다. 퍽퍽 소리를 낼 때마다 하얀 속살을 드러내며 나무가 쪼개집니다. 장작은 특별할 때만 아궁이에 넣어 불 땠습니다. 나무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뭐든 아껴야 했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물동이를 이고 부엌으로 들어갑니다. 저녁때가 되어 밥을 지어야 합니다. 똬리를 머리에 얹고 손도 안 대고 물동이를 인 어머니가 신기합니다.
“학교 다녀왔습 니다.”
학교에 갔던 형과 누나가 집으로 오며 소리칩니다. 노을이 지는 때에 마당의 풍경입니다. 밤이 깊어 날 어두워지기 전에 마당 설거지를 합니다. 다시 마당 위에는 하얀 은하수가 물결을 치고요. 북두칠성이 길을 안내합니다. 아이들은 다시 밤하늘을 쳐다보면서 별을 세지요. 정선 사람들은 마당이 주는 추억을 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