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다칠 수 있는데 / 이임순
손에 깁스를 했다. 생활하는 데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엄지손가락을 물렸는데 손을 쓰지 못하게 그렇게 한다고 했다. 무엇에 당했는지 모른다. 순간 몹시 아팠다. 그런데 아픈 것보다 무엇이 나를 아프게 했는지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벌레인 것 같은데 어떤 것인지 모른다. 당시 아픔을 참으며 주위를 샅샅이 살폈으나 눈에 띄는 해충이 없었다.
전에 보건소 직원한테서 들었던 말이 문득 생각났다. 뱀에 물렸을 때 해독주사가 있는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일단 최악의 사태를 염두에 두고 어느 병원으로 가야 되는지 보건소에 물어본다. 광양읍은 없고 동광양에만 두 곳이 있다고 한다. 주변에 보호자가 있느냐고 묻는다. 혼자라 하니 통증이 있으면 운전하지 말고 119를 타고 응급실로 가는 것이 빠르겠다고 한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아프다. 하늘이 샛노랗다는 말이 실감 난다. 누가 시켜서 물린 것도 아닌데 실없는 눈물이 줄줄 흐른다.
상처 부위에서 피가 흐른다. 작은 체구 어디에 이런 것이 있었을까 싶다. 독이 있는 해충이라고 생각해 왼손으로 상처 부위를 눌러 피를 빼낸다. 독이 퍼지는 것을 막으려고 어깨에서부터 쓸어내리는데 더는 손을 움직일 수가 없다. 주위에 있는 노끈으로 팔목을 묶고 119에 신고한다. 10분쯤 후에 도착 예정이라고 한다.
도로로 나와 기다리는 몇 분의 시간이 길게 느껴진다. 경광등을 켜고 119가 긴급출동한다. 인적 사항을 묻고 왜 다쳤느냐고 한다. 밤나무 밑에 병풀이 이리저리 얼켜 있어 뽑다 무엇인가에 물렸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일단 안정을 취하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함께 갈 보호자가 있느냐고 한다. 병원으로 올 것이라 하니 출발한다.
병원에 도착하여 접수하러 가는데 통증이 온다. 구급대원이 접수한다. 배정된 침대에 누워있는데 손이 너무 아프다. 간호사가 오더니 같은 말을 반복하여 묻는다. 기운이 없고 통증까지 있는데 한 말을 또 하니 참으려 해도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난다. 화를 내지 않으려고 눈을 질끔 감고 대답하는데 겁이 난다. 그래서는 안 되는데 뱀에 물렸으면 어쩌나 싶어 걱정이다. 주사를 놓던 간호사가 보호자는 언제 오느냐고 한다. 근무하다 오는 중이라 하니 혼자 있어 더 불안해 보여서 물었을 뿐이란다. 담당 의사가 상처 난 부위를 유심히 살피더니 독이 있는 벌레일 수 있으니 해독제를 맞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약품비가 워낙 비싸 내 의향을 묻는다고 한다. 해독제는 뱀에 물려야 맞는 것이 아니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하면서 내 손의 상처가 애매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뱀에 물리면 이빨 자국이 두 개가 있는데 흔적은 없고 통증이 있다고 하니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심할 때는 물린 부위가 썩어 손을 자르게 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고 한다. 지인의 오빠가 소한테 먹일 풀을 베다 다리를 물려 의족을 끼고 살다 절망해서 생을 포기했다. 남은 가족도 우울증에 시달리며 평생 고생하다 아들의 뒤를 따랐다. 자꾸만 그의 가족 얼굴이 떠오른다. 해독제를 맞고 나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 의사도 그 주사를 맞으면 손을 절단하는 비극적인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 했다.
간호사가 휠체어를 밀고 오더니 검사하러 가자고 한다. 통증이 가라앉으면 가자고 하니 고개를 끄덕인다. 기본 검사가 이어진다. 가는 곳마다 왜 그랬냐고 묻는다. 치료하기 위해 그런 것인 줄은 아는데 아플 때 같은 말을 반복하니 이제는 대답도 하기 싫어진다. 나는 아프고 걱정이 되어 죽겠는데 구경거리라도 된 양 의사가 보고만 간다. 무슨 담당 의사가 이리도 많은지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한 분이 상처 부위를 보더니 대뜸 “조심하지 그랬어요.”한다. 나는 나일뿐 구경거리가 아니며 어떤 일도 생길 수 있다. 다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다고 참 엉뚱하기도 하다. 얼른 치료받고 나가는 것이 상책이다 싶으면서도 심통이 난다. 물리고 싶어 물렸다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지르니 가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본다. 간호사가 그 광경을 보고 킥킥거리며 웃는다.
딸아이가 세 살 적에 집에서 놀다 시멘트벽 모서리에 이마를 찧어 상처가 크게 났다. 이마라 지혈도 시키지 못하고 수건으로 감싸 병원으로 갔다. 의사가 아이를 보자마자 안아서 침대에 눕히고 많이 놀랐지 하며 안심을 시켰다. 치료를 마치고 피는 많이 흘렀으나 상처는 금방 나을 것이라며 아이를 다독였다. 그리고는 입에 사탕을 넣어 주며 다음에는 위험하게 놀지 말라고 했다.
한기가 든다. 덮을 것을 달라고 하니 이불을 준다. 연락을 받고 달려온 며느리가 나를 보더니 놀란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들이 덥다고 난리인데 이불을 덮고도 웅크리고 있으니 걱정인 모양이다. 간호사가 수시로 손에 부기를 확인한다. 긴장이 풀리니 눈꺼풀이 내려앉는다. 연락을 받은 아들과 딸이 쉴 만하면 전화를 해 댄다. 며느리가 내 핸드폰을 챙기며 신경쓰지 말고 한숨 자라고 한다.
잠에서 깨어보니 손에 깁스가 되어 있다. 내가 잠들기 전에 했다고 하는데 비몽사몽이었나 보다. 조심하지 그랬냐고 했던 의사가 지나가면서 눈이 마주치자 씩 웃는다. 딴에는 미안했던 모양이다. 40년 전에 딸아이를 치료해준 의사와 비교가 되는 것은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