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조미숙
집 나간 기억을 찾습니다. 오래전의 일입니다. 일곱 살에 학교에 갔는데 무덤 옆을 지나가는 게 무섭다며 다시 여덟 살에 입학했습니다. 배급 빵을 받던 시절이었는데 하루는 오빠인지 언니인지 잘 생각나지 않지만, 그이의 교실 앞에서 기다렸더니 담임 선생님이 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빵을 아껴두었다가 집에 가져가려고 책상 서랍에 넣어 두었는데 누군가 가져가 버려 속상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이게 제가 기억하는 초등학교 시절 전부입니다. 물론 산 넘고 물 건너 학교에 다니던 일들과, 학교가 파하면 바로 옆 냇가에서 헤엄치며 놀고 동네 친구들과 산과 들로 뛰어다녔던 것은 기억합니다. 그런데 왜 유독 학교생활만 깡그리 잊어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통편집 당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내게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인공처럼 홍차에 적신 마들렌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머리가 나빠서인지 평소 기억력이 좋지 않습니다. 외우는 데 소질이 없어 남보다 늦습니다. 운동하면서 작품을 익히려면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기껏 체득한 동작도 하루 지나면 도루아미타불이 됩니다. 노래 제목이나 도입부만 듣고는 생각나지 않습니다. 한 소절이라도 지나야 기억이 납니다. 책을 읽어도 남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까마귀를 너무 많이 먹었나 봅니다. 아니면 정말 머릿속에 지우개라도 있는 것일까요? 가끔 오래전에 본 것인데도 다시 중간쯤 가서야 ‘어, 이 책 읽은 것 같은데.’ 하며 알아차리기도 합니다. 그나마 소설은 줄거리라도 기억나는데 그 외는 그대로 안개 속에 묻힙니다. 누가 제대로 일을 안 하는지 궁금합니다. 해마인지 전두엽인지 따져 보고 싶습니다.
부모님 모두 치매를 앓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외할머니도 치매였는데, 한동네에 살아서 몇 가지를 기억합니다. 우리 집에 오면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이 부엌이었습니다. 솥뚜껑을 열어보며 “느그들만 밥 먹고 나는 밥 안 주냐?”며 투덜거렸습니다. 당신 집은 윤기 나는데 가난한 딸네에서 밥 찾으니 참 어이가 없었습니다. 떫은 감을 치마폭에 싸서 가기도 했습니다. 엄마 아부지는 노망 난 노인네 치다꺼리하느라 고생하셨겠지만 어렸던 난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내 부모가 그리되니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두려웠습니다. 유전율이 80퍼센트에 달한다니 그런 전철을 밟지 않을까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모임에 나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결혼 소식에, 누군가 서울에서 하는데 버스를 빌린다고 바람 쐴 겸 다녀오자는 말을 들었던 것이 기억났습니다. 다음 달 피로연을 한다는 이에게 말했더니 그런 소리는 또 어디서 들었냐며 버스 안 빌리니까 여기서 잔치하는 것 아니냐며 핀잔을 주었습니다. 분명히 들었는데 출처를 알 수 없다니 답답했습니다. 엊그제는 이런저런 얘기 끝에 동료 직원이 영암에 빈 집을 빌렸다는 것을 어느 동네 뒷산에 걸으러 갔던 길에 들었다는 이야기를 꺼냈는데 내가 지목한 이는 절대로 나에게 그런 말 한 적이 없다고 큰소리쳤습니다. 정작 당사자도 대표에게만 얘기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되니 내가 거짓말을 하고만 것이 되었습니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큰 혼란을 겪습니다. 과연 내가 온전히 나이 들어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카톡의 문자도 내 편의대로 읽는데 기억은 오죽하겠습니까?
나날이 낱말도 사라져갑니다. 얼마 전에는 산수유라는 나무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서 하루 종일 매달려야 했습니다. ‘산’ 자만 맴돌 뿐이었습니다. 어떤 말은 며칠이 지나서야 조용히 얼굴을 내밉니다. 동화 <<생각을 모으는 사람>>에서처럼 망태기라도 들고 찾아다녀야 할 판입니다.
뇌가 궁금해져 유튜브를 찾아보고 관련 책을 읽으며 제 나름대로 머리에 기름칠해 봅니다. 운동은 살도 뺄 겸 건강을 챙기느라 열심히 하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몇 년 전부터 필사도 시작했습니다. 날마다는 못해도 생각나면 한 쪽이라도 씁니다. 글씨가 날아다닐 때면 팔도 아픕니다. 이번 책은 장장 500쪽이 넘는 거라 1년이 지나도록 못 끝냈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써 보려고 합니다. 또 새로운 것도 시도하려고 노력은 합니다. 하지만 흥미를 끄는 것에만 한정됩니다. 외국어는 게을러서 번번이 실패하고 컴퓨터나 기계의 새로운 기능을 익히는 건 생각만으로도 머리 아픕니다. 기계 앞에선 한없이 작아집니다. 시지프스가 되어 끊임없이 바위를 들어 올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인생은 유한하고, 하고 싶은 것은 많은데 머리가 도와주지 않습니다. 때론 망각의 힘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많이 기억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것도 찾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좀 더 내 인생이 풍성해질 것 같습니다.
첫댓글 선생님, 너무 많이 담고 있어서 조금씩 세는 걸거예요. 하하.
그건 희망사항입니다.
망각을 늦추려고 머리에 기름칠을 한다는 표현이 너무 재미있습니다. 나도 선생님처럼 누구와 대화할 때 들은 것을
얘기할 때 확신히 서지 않아 두리뭉실하게 전하고 끝날 때가 많습니다. 이렇게 좋은 글을 많이 쓰시니 치매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위로 고맙습니다. '좋은 글'은 과찬이시고요.
하하하.
그래도 깡그리 잊지는 않으셨군요. 저보다 훨씬 나아요. 글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