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잡기
이승애
싱크대 서랍을 여는 순간 놈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뜻하지 않게 마닥뜨린 놈의 두 눈빛은 놀라 당황한 빛이 역력하였지만, 기겁한 나와는 달리 담담해 보였다. 옴짝달싹하지 않고 똑바로 응시하는 눈빛이 서늘하게 내 심장을 뚫고 들어왔다. 자지러지듯 요동치는 심장박동, 후들거리는 다리, 머릿속은 텅 비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망연히 서 있다 슬그머니 서랍을 밀어 넣었다. 정신을 차리자 후회가 밀려왔다. 그토록 잡으려고 애쓴 놈이 코앞에 있었는데 모르는 척 눈감아버린 것이 못내 아쉬웠다. 숨을 고르고 빼꼼히 서랍을 열었다. 놈은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
놈과 은밀한 동거가 시작된 건 3주 전이다. 발단은 이랬다. 전기 시설이 고장 나서 전기 수리공을 불렀는데 그들이 현관문을 닫지 않은 틈을 타 집 주변을 기웃대던 쥐가 얼씨구나 하고 집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집은 단숨에 놈의 놀이터가 되었다. 곳간에 있는 쌀이며 보리, 콩, 고구마, 건어물 등 갖가지 곡식과 식품들을 야금야금 털어 덩치를 키웠다. 그것만으로는 놈의 탐욕을 채울 수 없었는지 구석구석에 제 영토를 정해놓고 비상식량까지 쟁여놓는 미래지향적 면모까지 보였다. 놈은 은밀하고 교묘하게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멀쩡한 가구며 물건들을 물어뜯고 갉아놓았다. 이런 행위는 쥐의 입장에서는 대만족할 일이지만, 내 입장에선 심사가 뒤틀리는 일이었다.
놈을 잡으려고 몇 주 동안 벼르고 벼르던 일이었는데 하릴없이 놓쳐버린 것이 분하고 약이 올랐다. 대범하게 놈을 덮쳤더라면 단숨에 끝날 일이었다. 지레 겁을 먹고 포착의 순간을 놓치고 말았다. 침입자를 용인하고 만 꼴이 되고 말았으니 온종일 찬밥에 얹힌 듯 가슴이 묵직하였다.
후회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떠올리지도 않아도 될 오래전에 있었던 일까지 떠올랐다. 본디 나는 미욱하여 실수나 잘못을 자주 저지르고 가끔 욱하는 성미로 사달을 내는 것이 문제인데 그날도 상대가 내 심사를 살살 긁어댔다. 처음엔 깐족대는 그녀를 피해 슬쩍 자리를 피했는데 하필 성당에서 마주치게 되었다. 처음부터 우리는 서로 어울리거나 공존할 수 있는 사이가 아니었다. 일을 하고 있는데 그녀가 자꾸만 콩팔칠팔 신경을 건드렸다. 나는 더는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지르고 말았다. 경건한 성당은 두 사람이 웽겅젱겅 하는 바람에 왁자한 시장통이 되고 말았다. 내 집안을 제멋대로 돌아다니며 어지럽혀 놓은 쥐처럼 서로의 마음에 숨어들어 마음껏 해찰을 떤 것이다. 그 일이 두고두고 후회가 되었는데 저놈이 불쑥 내 심사를 건드려놓았다.
그 후 포착의 기회가 한 번 더 있었다. 놈이 식품창고에 들어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그야말로 독 안에 든 쥐였다. ‘요놈 봐라. 지금 먹는 그 음식이 너의 생애 마지막 만찬이 될 것이다.’ 단단히 마음먹고 빗자루를 집어 들었다. 천연덕스럽게 먹이에 집중하고 있는 놈을 향해 팔을 들어 힘껏 내려치려는데 정수리가 서늘해지고 손에선 찐득한 땀이 배어나왔다. 문치적거리는 사이 놈은 상황을 곧 알아차리고 쏜살같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다 된 밥에 코 빠뜨린 격이 되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자 마음이 두 개로 갈라졌다. 재빠르게 상황을 수습하지 못한 태도의 부끄러움과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자기 합리화. 이 두 마음은 늘 내 안에 공존한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슬쩍 상대에게 돌리려는 못된 마음이나 시기 질투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도 시치미를 뚝 떼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 일말의 양심의 가책을 느끼긴 하지만 곧 잊어버리고 만다.
어젯밤엔 밤새 뒤 베란다에서 빠스락거리며 쏠아대는 소리가 났다. 놈의 소행이라는 것을 짐작하였지만, 이번에도 슬쩍 눈을 감고 말았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베란다 바닥은 온통 놈이 쏠아 놓은 스티로폼 조각들로 어지럽혀져 있었다. 전선에 입혀놓은 스티로폼을 모두 갉아 놓은 것이다. 다행히 전선이 상하진 않았지만, 위험한 일이었다. 내 비겁한 행위가 또 하나의 사달을 내고 말았다. 방관의 결과는 늘 씁쓸하다. 눈에 티가 들어간 듯 까끌까끌하였다.
여전히 쥐와 숨바꼭질 중이다. 나의 계획도 더 치밀해졌다. 놈이 아예 눌러앉아 찌깨미 노릇하기 전에 철저히 응징해야한다. 덫을 대여섯 개 더 사 왔다. 쥐가 특별히 좋아한다는 고구마를 먹음직스럽게 썰어 덫에 꽂고 놈이 다니는 통로에 촘촘히 놓았다. 만약을 대비해 찍찍이도 넓게 펴 바르고 굵직한 멸치를 한 줌 뿌려놓았다. 이제 곧 놈의 최후를 보게 될 것이다.
뜨락에 그윽하게 내려앉은 달빛이 고요하다. 내 마음의 쥐도 곧 숨을 거두게 될 것이다.
첫댓글 결국 마음 속의 쥐를 잡으려는 거지요? 수필의 묘미를 살린 재미 있는 명작입니다.
평범한 소재로 내면의 갈등을 심오하고 멋지게 표현했네요.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콩팔칠팔, 웽겅젱겅, 찌깨미 노릇 등 아름다운 말도 음미합니다. 좋은 글을 우리 카페에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족한 제 글을 읽고 호평을 해 주신 회장님과 이방주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쥐와 씨름하며 내면에 서식하는 쥐에 대해 성찰하였습니다.
고 작은 쥐가 스승이 되었지요.^^
재미있는 단편소설 한 편 읽은 느낌입니다. 유머와 위가 돋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