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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동학,증산 스크랩 해월 삼례교조신원운동-삼암 표영삼
멩이 추천 0 조회 32 08.01.23 23:0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삼례교조신원운동

표영삼__ 서울교구·선도사

머리말

   공주에서 교조신원운동을 마친 동학 지도부는 당초의 계획대로 전라도 관찰사를 상대로 한 교조신원운동을 벌이기로 하였다. 1892년 10월 25일경에 전라도 삼례(參禮)에 동학도회소를 설치하고 준비에 들어갔다. 삼례에는 이명로(李明老) 등 동학도들이 많이 살고 있으며 교통도 편리하고 역참(驛站)이어서 많은 인원이 유숙할 수 있었다. 날짜는 11월 1일로 정하고 10월 27일 밤에 경통(敬通)을 발송하였다. 수천 명이 모여 공주 교조신원운동 때보다 많았다. 그러나 전라감사 이경직(李耕稙)은 답답한 인물로 사태의 추이를 모르고 밀고 당기는 신경전만 벌였다. 10여 일을 끌다 결국 11월 11일에 이르러 해결을 보게 했다. 그는 한때 강제 해산을 하고자 감영군까지 동원했었다. 그러나 동학도들이 의외로 단호하자 뜻을 굽혔다.

삼례에 수천 명 모여

   10월 27일 밤에 전라도 삼례도회소의 명의로 발송한 경통(敬通)의 요지는 ① 우금 30여 년이나 죄 지은 사람처럼 숨어 살아 왔다. ② 충청감사와 전라감사에게 의송(議送)하려 함은 대선생의 신원을 위해서이다. ③ 각 포 접장들은 일제히 이곳에 모이라는 것이었다. 10월 29일부터 의관을 정제한 도인들이 모여들었다. 『천도교서』에는 “11월 1일 각지 두령이 포내(包內) 도인을 솔하고 삼례역에 부(赴)하니 그 시 참회자(參會者)는 수천이라.”고 하였다. 최영년의 『동도문변(東徒問辨)』에도 “임진년 가을에 모여 수운선사의 신원을 하였는데 탐관오리를 제거하고 교당을 세울 수 있게 허가하라는 요구를 내걸었다.”고 했다. 11월 1일(양, 12월 19일)에는 추위가 기승을 부렸다. 수천 명이 며칠동안 먹을 수 있는 양식 준비를 비롯하여 잠자리도 빈틈없이 마련하였다. 이 모임을 위해 전라도 지도자들은 며칠 전부터 총동원되었다. 이번에도 전면에 나선 이는 서인주와 서병학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고부접주 전봉준(全琫準)이란 새로운 인물이 나서게 되어 주목을 끌었다.    전봉준은 금구(金溝) 큰접주 김덕명 휘하의 고부접주였다. 김덕명은 49세가 되자 일선에서 물러나 전봉준을 전면에 내세웠다. 66세의 해월신사도 길을 떠났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도중에 낙상하였다. “이 늙은이가 … 뒤따라 가려고 나섰으나 중로에 낙상하여 … 못 가게 된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고 알려왔다.

감영에 의송단자

   『남원군동학사』에 의하면 11월 1일에 의송단자를 전라감사에게 전달하려 할 때 전봉준·유태홍 접주가 자원했다고 하였다. “소장을 진송(陳送)하야 의송(義訟)코자 할새 관리 압박의 위엄으로 인하야 소장을 고정(告呈)할 인이 업셔서 주저 방황 중에 우도에 전봉준, 좌도에 유태홍(柳泰洪) 씨가 자원 출두하야 관찰부에 소장을 제정한대”라고 하였다. 『의송단자』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① “동학을 창도, 팔도에 편 것은 지난 경신년부터이다. … 동학과 서학은 빙탄(氷炭)의 관계인데 … 천주(한울님)를 공경한다는 이유만으로 선생을 서도로 무함하였다. … 30여 년이 되도록 아직 세상에 창명되지 못했으니 이는 신원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속사정을 몰라 이단으로 지목하나 이 세상에 이단의 학은 많은데 … 동학만을 배척하려 한다. … 서도의 무리가 아닌데도 같은 무리로 취급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② 서학의 여파로 지목하여 열읍(列邑)의 수령들은 잡아 가두고 매질로써 토색하니 연달아 죽어 나간다. 호민(豪民)들도 … 재산을 탈취하니 탕패산업하고 떠돌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 우리들도 열성조의 백성이다. … 동학을 하는 것은 스스로 허물을 고쳐 새 사람이 되어 천지를 공경하고 임금에게 충성하고 스승님과 어른을 높이 받들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도리를 다하자는 데 있다.
   ③ 저희들이 수도하며 한울님께 축원하는 것은 광제창생과 보국안민일 뿐이다. … 억울함을 견디지 못하여 피눈물로써 엎드려 비는 바는 순상이 덕을 베푸시어 상감께 장문(狀聞)을 올려 참된 도(道)라는 것을 나타내게 하여 주기를 … 천만 번 간절히 바라 마지 않는다.

전라감사의 묵살

   의송단자를 받고 난 전라감사 이경직은 정치적 수완을 발휘할 생각은 하지 않고 동학도를 초장에 제압할 궁리만 하고 있었다. 차일피일 미루면서 추위에 지쳐 스스로 해산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동학 지도부는 장기전을 각오하고 만반의 준비에 나섰다. 6일 간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어 7일 만에 독촉하는 글을 전라감사에게 보냈다. “의송단자를 올린 지 이미 6일이나 지났다. 합하의 처분을 고대하면서 연일 찬바람을 맞아가며 길가에서 노숙하고 있다. … 각 고을의 수재를 비롯하여 이서와 군교, 향리들까지 동학도를 수탈하고 있다. … 거의 죽어 가는 중생들을 불쌍히 여겨 임금님께 상소하여 선생의 숙원을 풀게 하여 주소서.”라고 하였다. 의외로 동학도들이 완강하게 저항해 오자 전라감사는 9일자로 제사(題辭)를 보내 왔다. 그러나 이 제사는 퇴산 명령에 지나지 않았다. 이단의 무리인 동학도와 대화를 나누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경직은 청주 사람으로서 1885년에 문과에 급제하면서 요직에 나갔다. 종6품 벼슬인 홍문관 부수찬을 거쳐 정3품 벼슬인 참의내무부사를 지냈다. 전라감사로 온 것은 1892년이며 정치적 수완이 없는 인물이었다. 제사(題辭)의 내용은 “너희들은 … 정학(正學)을 버리고 이단을 추종하여 스스로 금법(禁法)의 죄를 불러들였다. … 곧 물러가서 모두가 새 사람이 되어 감히 미혹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내용으로 해산을 명령하였다. 동학도들은 이대로 물러설 수가 없었다. 그러자 전라감사는 영장 김시풍에게 300여 명의 군졸을 끌고 가서 해산시키라고 명령하였다.
   감영군이 온다 하므로 동학 지도부는 한때 당황했으나 의연히 대처하기로 하였다. 김시풍은 삼례 남쪽 한천(寒川)까지 와서 전령을 보내 동학의 우두머리를 불러냈다. 그러나 동학 지도부는 만나려고 하는 사람이 와야 한다며 버티자 김시풍은 스스로 삼례에 들어왔다.

김시풍과 기싸움

   『남원동학사』에 의하면 김시풍은 서인주에게 “어찌 무리를 모아 태평성세를 어지럽히려는가.”고 일갈하였다 한다. 그러자 서인주는 정중하게 “관리들이 도인을 상해하므로 억울함을 감사에게 의송(議送)하려고 모였다. 이 일이 어찌 민심을 현혹케 하는 일이겠는가.”고 대꾸하였다. 두 사람은 무려 한 시간이나 말없이 째려보며 대치하였다. 김시풍은 끝내 화를 내며 칼을 뽑아들었다. 60세가 다 된 김시풍이 허세를 부리는 것이었다. 서인주가 여전히 공손하게 예로써 대해 주자 김시풍은 한발 물러섰다. 자리에 앉으며 “동학이 난당이라 하기에 금했으나 와서 보니 관대한 도임을 알겠다. 사또께 잘 설명해서 해결해 주겠다.”고 하며 돌아갔다. 김시풍은 감사에게 해산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보고하였다. 동학도들이 더욱 모여든다는 보고를 받은 이경직 감사는 11월 11일에 드디어 감결를 내렸다. “이제 들으니 각 읍 관리들이 금단을 이용하여 전재를 약탈한다 하니 … 나라의 법대로 하면 되는데 어찌 전재를 논하게 되었는가. … 감결이 도착하는 즉시 경내에 명하여 … 한 푼이라도 탈취하는 폐단이 없도록 하라.”고 명령하였다.

정부 상대의 준비

   전라감사로부터 앞으로 침학(侵虐)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받은 동학도들은 일단 해산하기로 하였다. 11월 12일에 동학 지도부는 사후 대책을 의논하였다. 충청·전라 두 감영에서 탄압을 중단하겠다고 했으나 믿어지지 않았다. 근본적으로 해결하자면 정부에서 동학 금령을 철회하게 해야 한다. 그래서 여세를 몰아 정부를 상대로 한 교조신원운동을 벌이기로 하였다. 모든 결정은 법헌(해월신사)에 일임하였다. 11월 12일자로 완영 도회소의 이름으로 요지 다음과 같은 경통(敬通)을 보냈다. “① 신원을 이루지 못했다. … 다시 법헌(해월신사)의 지휘를 기다려 성원을 도모하도록 힘쓰자. ② 지목이 없을지 예측할 수 없다. 지목이 재발하면 작은 일은 접에서 소장(訴狀)을 만들어 본관에 제출하고 큰 일은 도소에 알려 법헌(해월신사)이 의송단자를 올리도록 한다. ③ 대의를 위해 나섰다가 가산을 탕진한 도인들이 많다. 여러 도인들은 의연금을 마련하여 이들을 도와주도록 하라.”고 하였다.

정부 상대의 신원

   예상한 대로 관리들의 탄압은 여전했다. 『해월선생문집』에는 “해산하자 각처에서 지목은 더욱 심했다.”고 하였다. 충청도보다 전라도가 더 심했다. 이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동학도가 많은 삼례나 원평으로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지방관의 속임수에 격분한 동학 지도부는 정부를 상대로 하는 신원운동 준비에 들어갔다. 11월 19일자로 다음과 같은 요지의 통문을 띄웠다. 즉 “도는 비록 창명되었으나 신원을 하지 못했다. 이는 제자들이 정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 대궐에 나아가 복합할 방도를 다시 의논하고 있으니 다음 조치를 기다리도록 하라. … 그리고 서로 도와 떠돌지 않게 하여 원근이 합심하는데 이론(異論)이 없도록 하자.”고 했다. 전라도 관찰사는 동학도가 다시 모인다는 보고를 받고 긴장하였다. 정부를 상대로 하여 대대적인 신원운동을 벌일 것이라 하므로 더욱 놀랐다. 만일 서울로 몰려가 임금님을 괴롭힌다면 그 불똥이 지방관인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 생각하니 아찔했다. 그래서 전라감사는 11월 21일자로 다급하게 군·현에 다시 감결을 시달하였다. “동학 여류(餘類)들이 편히 살도록 해 주라는 감결을 내렸지만 다시 소동을 피우게 되었다. 처음부터 알아듣게 타이르지 않아 그러하게 되었는가. … 진위를 가리지 않고 모두 동학으로 몰아 빼앗는 데만 뜻을 두었으니 떼를 지어 소란을 피우기에 이른 것이다. … 고을 아전들은 즉각 토색을 엄금하라.”는 감결을 내렸다. 정부를 상대한 교조신원운동은 11월 하순부터 준비에 들어갔다. 이런 소식이 전해지자 여러 접주들과 도인들이 보은 장내리 동학도소로 찾아들었다. 육임원은 온종일 이들을 맞느라 손을 놓았다. 부득이 출입 인원을 제한하지 않을 수 없어 12월 6일자로 경통을 보냈다.
   “육임을 선출하고 이곳에 도소를 정한 것은 임금님께 호소할 일이 있어 입의(立義)를 세우기 위해서이다. 의사장(議事場)에는 각 접의 영수들이 오가며 대책을 세워 진행시키고 있다. 그런데 일이 있건 없건 소문을 듣고 몰려오니 온종일 맞고 전송하느라 짬도 없다. 앞으로는 부득이 해당 접주의 준표(信標)가 없으면 왕래할 수 없게 하였다. 이 약속을 지켜 주기 바란다.”고 하였다.

정부에 먼저 건의

   이로부터 찾아드는 수도 줄었고 제대로 일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동학 지도부는 서울로 올라가기 전에 일단 정부에 소장(疏狀)을 올려 보기로 하였다. 12월 초에 장문의 소장을 만들어 정부에 제출하였다. 그러나 정부는 아무런 조치도 없이 이 문건을 도소로 돌려보내 왔다. 규장각 소장 『동학서』 중에 도소 조가회통(都所 朝家回通)이란 문건이 들어 있다. 이때 제출했던 소장이다.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충청감사는 … 돈을 바치는 사람은 무죄 석방하고 빈한한 사람은 유배형을 보낸다. … 영동, 옥천, 청산의 수령은 백성을 괴롭혀 재물을 탈취하니 각 고을마다 많은 수가 가산을 탕진하고 고향을 떠나 흩어지니 나머지들도 또한 이런 처지에 있다. 전라도에는 김제, 만경, 무장, 정읍, 여산 등지에 치우쳐서 탐관오리의 화를 입어 장사 지내는 일이 그치지 않는다. … 공평하게 살펴주기를 기원한다.
   동학 지도부는 정부에 제출하였던 소장이 반려(返戾)되자 곧 서울에 올라가 직접 신원운동을 벌이기로 하였다. 『청암 권병덕의 일생』에는 “정부에서 하등의 회답이 없자 … 포덕 34(1893)년 정월에 신사 청원군 산동면 용곡리(龍谷里, 현 米院 용골)에 있는 청암 권병덕의 집에 유하시니 서병학이 들어와 뵙고 … 선사의 원통함을 신설(伸雪)하지 못하면 우리 도인은 하나도 부지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우리가 경사로 올라가서 복합케 하소서 … 하거늘 신사는 … 허락하시며 봉소도소(奉疏都所)를 청원군 송산리(솔뫼, 南一面 新松里) 손천민의 집에 설하고.”라 하였다.
   결국 공주에서 시작된 교조신원운동은 삼례를 거쳐 이제 서울 광화문 앞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신인간 147.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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