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종류의 비움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가끔 ‘비움’이라는 것이 필요함을 느낀다. 모든 것을 이해하려하고, 모든 것을 해명하려하고, 모든 것을 분명히 설명하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은 침묵을 지키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소크라테스가 보여준 ‘무지의 지(無知의 知)’와 일맥상통한다.
《행동(Action)》의 저자, 모리스 블롱델 역시 인간의 영혼은 비움(vide)을 필요로 한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이 빈 곳을 통해 신성한 빛이 스며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몬느 베이유 역시 ‘비움’에 대해 말하고 있다. 베이유는 두가지 종류의 비움(공허, vide)에 대해 말하고 있다. 하나는 위로부터의 비움이요 다른 하나는 아래로부터의 비움이다.
“모순의 집게들 안에서 우리가 파악하는 공허(vide)는 의심할 여지 없이 위로부터의(en haut) 공허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성, 의지, 사랑의 자연적 능력을 더욱 날카롭게 할수록 그 공허를 더욱 잘 파악하기 때문이다. ‘아래로부터의 공허(vide d'en bas)’는 사람들의 자연적인 능력들이 위축되는 곳으로 떨어지는 공허이다.” (중력과 은총, p. 139)
위로부터의 공허는 인간의 지성과 의지 그리고 사랑이라는 자연적인 능력을 더욱 날카롭게 하지만, 아래로부터의 공허는 이러한 능력들을 위축되게 (무기력하게) 한다. 그렇다. 무어라 딱히 언어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이 세계에는 초월적인 빛이 존재한다. 신비가들은 이러한 초월적인 빛을 수용하기 위해 세상을 벗어난 사람들이며, 침묵을 삶의 원리로 삼았다. 신비가나 구도자들이 비움을 지향한 것은 지성을 초월하는 신성한 빛을 수용하여 세계와 인간의 진리를 더욱 분명히 깨닫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초월적인 빛을 전제하지 않는 ‘비움’은 오히려 생각과 의지와 사랑을 멈추게 한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알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비움을 위한 비움’은 우리가 무엇을 느끼게 하거나 결정할 수 없도록 하는 어둠일 뿐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인간은 ‘종교’라는 것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깨어있어라”는 말의 의미는 바로 이런 뜻이 아닐까? 세계와 인간의 진리를 분명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항상 ‘영혼의 비움’의 자리를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5.02.07 13:33
첫댓글 아델라이더님 반갑습니다. 뎃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