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와 이실직고하건대, 54년 전에 작고하신 어머님 말씀부터, 22년 전에 작고하신 아버님 말씀, 육법전서의 저 수많은 말씀 등, 이 세상이 시키는 말은 무조건 안 듣고 보기로 하고 유유자적하게 살던 나도, 언젠가부터 나이라는 것을 지나 연세라는 것이 생기고부터는 어지간하면 두 사람 말은 듣기로 했다. 의사와 네비안내양의 말이다.^^
물론 투철한 반골정신에 저들이 시키는 대로 계속 따라하려면, 마음 속 저 깊은 곳에서, 야~ 이 싸가지들아. 내가 가만 있으니까 가마때기로 보이냐? 내가 니들 노예로 보이냐? 싶어 체질상 두드러기가 일어나려고 내심의 발작을 일으키기 때문에 가끔 내 의중에는 없던 삐딱선을 타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들의 끈질긴 회유와 겁박은 생각보다도 완강하여,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결국은 그들이 말하는 주도로를 무의식적으로 타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 마련이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나는 운동이란 것을 우습게 알았다. 저 자신의 바깥은 굶어죽든 말든 모르겠고, 그저 막무가내 자신의 입 안으로만 퍼 넣어 배가 남산 만하게 나온 사람들이나,
이 세상에서 좋다고 소문난 것만 골라 많이 챙겨먹어 과잉 영양분이 몸속에 차고 넘치는 사람들이나 해야 되는 강제노동인 줄 알았다. 그러나 10년 전부터는 몸이 예전 같지 않고 말을 잘 안 들어, 그 때서야 급구 알아보니 그런 것들을 따져 묻고 답을 구할 수 있는 데는 병원뿐이라는 위대한 사실을 간파하게 되었다. (퍽도 일찍~)
약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약이라 지칭되는 그 물질들도 먹어보니 단지 먹을 그 때만 효과가 조금 있을 뿐, 약발 떨어지면 도로아미타불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고, 그리하여 우리가 약을 먹는다는 일은 오로지 그 약을 개발한 사람이거나 그 약을 파는 중간상인들, 또는 처방전 발행하는 병원이나 배 불러터지게 하는 일일 뿐,
천지개벽을 10번도 더하여 최첨단으로 진보한 이 세상에서 그 따위 몇 천 년 전부터 있던 하찮은 병을 낫게 하는 약도 충분히 개발 가능하고 남을 일이건만, 내가 보기에 저들의 저 체계화된 진료-처방-약투입 행위는 오로지 저들의 위대한 이윤을 위하여 우리를 계획 살인 시키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이래서 내가 사람들 말을 곧이곧대로 듣기 싫어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우선 이 문제를 해결할 사람은 세상에 오로지 나뿐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었으며, 그리하여 내가 이리저리 여러 방법을 똥인지 된장인지 다 찍어 먹어본 결과, 결국 내 자신의 섭생방법 변화와 운동뿐이라는 점에 귀착하게 된 것이었던 것이다.
숙소 근처에 내가 매일 운동하러 다니는 중학교 하나가 있다. 학교 규모가 작은 것도 아니고 꽤 크다. 4~50년 전에는 수십 개의 주변 크고 작은 동리들을 총망라하여 소똥버짐 핀 아이들이 떼를 지어 이 학교를 다녔음직한, 학교가 깔고 앉은 자리도 넓고 건물도 높고 크다.
그러나 내가 그 따위 허접한 시골핵꾜 풍경이나 보러 거기 다닐 위인은 아니다. 그것은 근처 대기업에서 후원한 티를 대놓고 팍팍 해 놓은 업체 명함 박아놓은 깔끔한 트랙과 짱짱한 인조잔디를 갖춘, 이런 첩첩산중에서는 보기 힘든 먼지 없고 차들이 다니지 않는 산속 청정지역 운동 환경을 그 학교가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색이 중학교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이 학교에서 중학생들을 10명 채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렇다. 둘도 많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고 했던 우리들의 구호에 힘입어 지금 큰 대도시들도 이와 비슷할 풍경이라면, 이 오지 중의 오지에 놓인 이런 중학교라는 곳은 4~50년 중학교와는 판이하게 다르게 아이들이 거의 없다는 말이 사실이다.
근처에 읍내가 있지만 식당과 술집들이 판을 치고, 먹고 죽자 마시고 죽자를 플래카드로 내 건 골목들뿐이라, 그런 주변에서 이마에 핏기 덜 마른 인간을 보기는 하늘에 별 따기보다 힘들다. 이 운동장을 평일에는 늦은 업무 때문에 해가 다 진 늦저녁 컴컴할 때 와서 한 시간정도 트랙을 속보로 걷다가곤 했지만, 오늘은 모처럼의 휴일이라 한 번도 간 적이 없는 오전에 가 보고 싶었다.
밀린 잠 때문에 아침 먹는 것도 귀찮고 먹기도 힘들어, 계란 한 알에 바질 페스토와 올리브 오일을 뿌린 가벼운 샐러드로 대충 아침을 때우고 학교로 향했다. 내 예감이 틀림없었다. 비온 직후 세상의 끝 간 데 없는 쾌청함, 구름 적당히 낀 햇살 따가운 가을 날씨에 조금 추운 듯, 그러나 운동을 하다보면 체온에 아주 적합한 기막힌 온도, 거기 귓전을 스치는 삽상한 바람.
젠장, 하필 이렇게 좋은 날 여기서 죽는다한들 무슨 거한 아쉬움이 남아 있을까 싶은 불경스러운 생각이 들었지만, 죽는 게 불경스러운 일이면 태어나는 것도 불경한 일이었겠느냐? 무시하고 1시간 정도 땀을 빼고 나니, 죽음보다 먼저 허기가 내 몸 속으로 가차 없이 엄습했다. 어쩌랴? 빈민 구제할 곳은 또 읍내뿐이라, 발길이 알아 저절로 그 쪽으로 향한다.
어젯밤까지 먹고 마시고 죽자 판의 이 골목도 정말 그렇게 다 죽어버리고 만 것인지, 그 요란하던 골목도 띄엄띄엄 술병 몇 개와 담배꽁초 서너 개 뒹굴 뿐, 읍내는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용케 젊은 아이들이 다니는 커피집도 경양식집도 아닌 어정쩡한 곳으로 들어가, 그나마 메뉴 중 가장 해깝은 커피 한잔에 설탕 범벅인 불량스러운 핫도그를 하나 시켰다.
아나~ 여깃다. 오늘 내가 너를 위안할 품목은 이것이 최선이니, 너로 하여금 너의 세상을 스스로 평안케 하라. 이 불량스런 것의 달고 감미롭고 씁쓸함을 아는 이들은 알 것이로되, 거기가 천국이 아님도 저 스스로 알고 이토록 천국과 지옥이 저들끼리 은밀하게 내통하고 있음도 알고 결국은 찬양하고 또 헤매다가를 힘들게 반복하겠지만,
어쩌랴? 어느 순간 거짓처럼 아주 쉽게 멈출 것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나지지 않는 몸으로 인해 천국과 지옥 사이를 헤매다가, 이 세상 끝에 있는 휴일, 결국 영혼과 육신이 분리되어 천국도 지옥도 아닌 아주 어정쩡하기 이를 데 없는 이런 오지 그 어디쯤에서, 숨 멎은 너의 육신을 너의 영혼이 발견하게 되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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