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삼상 8:1-22)
1-2사무엘이 늙으매 그의 아들들을 이스라엘 사사로 삼으니 장자의 이름은 요엘이요 차자의 이름은 아비야라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사사가 되니라
사사는 하나님이 지정하는데, 사무엘은 두 아들을 사사로 삼은 것이다. 브엘세바는 라마로부터 80km정도 떨어진 이스라엘 남부지역이었다. 나라의 규모를 통해서 볼때, 사무엘이 남부지역을 다 다스리기 힘들므로 두 아들을 통하여 사사라는 직분으로 그 지역을 다스리게 한 것이다. 요엘은 여호와가 하나님이라는 의미를 갖으며, 아비야는 여호와는 아버지라는 의미를 갖는다.
3-4.그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의 행위(데렉)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
데렉은 그의 길(in his way)이다. 사무엘이 사사로서 하던 길에서 벗어난 것은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고 판결하는 것이다. 이런 것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성경을 자기 생각대로 해석하고 적용하는 자들이다. 인본주의, 율법주의, 영지주의가 그것이다.
5.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
장로들이 왕정을 요구한 이유는 사무엘이 늙었다는 것이고, 두 아들이 사무엘이 가는 길을 가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장로들이 바라보는 사사의 통치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지만, 사사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하나님이 사사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통치하는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무엘이 나이가 많다는 말은 틀렸으며, 두 아들은 사무엘의 역할을 보조하는 것이기 때문에 비록 두 아들이 잘못을 저질렀어도, 그것을 이유로 왕을 요구하는 것은 비논리적인 것이다.
그런데, 장로들이 요구하는 것은 모든 나라와 같이 왕을 요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것은 필요없다는 것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은 이스라엘 땅에서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강력한 세상의 나라를 원한다는 말이다. 이는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그 당시 이스라엘과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보다, 세상 왕이 통치하는 나라가 더욱 더 좋게 보인 것이다. 당시의 사사들은 강력한 권한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사사시대는 외적으로 부터 침략을 많이 받아왔기 때문에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통해서 하나님이 다스라는 나라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나라와는 다른 것이었다.
하나님 나라를 바리고 왕정체제로 들어가면, 백성들은 왕의 종이 되어야 하는데, 백성들은 이를 생각하지 못하고, 오직 하나님이 지배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이것은 우상숭배의 한 모습이 된다. 왕이 우상이 되는 것이다.
6-7.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다스리게 하라 했을 때에 사무엘이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그들을 사무엘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버린다는 표현이다. 보이지 않는 왕은 필요없고, 눈에 보이는 왕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인데, 백성들은 그 정체성을 포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인간들은 하나님을 볼 수 없다. 그래서 대언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모세는 십계명을 받기 위해 시내산으로 올라갔을 때, 백성들은 모세가 장시간 내려오지 않자. 자기들을 위한 우상을 만들었다. 황금 송아지를 만들어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예배했던 것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서 보이는 우상으로 전환하고 싶었던 것이다. 오늘날 여러 종교에서 우상을 만들어서 신이라고 섬기는 이유도 다 이와 같은 것이다.
8-9.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 같이 네게도 그리하는도다 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듣되 너는 그들에게 엄히 경고하고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미수파트)를 가르치라
출애굽 사건의 놀라운 경험을 하고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후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버리고 눈에 보이는 우상을 섬긴 것이다. 사무엘상 7장에서도 사무엘이 백성들에게 바알과 아스다롯을 버리라고 경고했던 것이다. 당시에는 우상을 집에다 두고 살았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우상에게 예배하는 혼합적인 신앙의 형태를 보인 것이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기복신앙에 물들어서 이렇게 하는 것이다.
사무엘이 왕정제도를 수락하기 전에 왕정제도에 대해서 백성들에게 설명하도록 하나님으로부터 지시를 받는다. 미쉬파트는 법률적으로 선언된 판결(호의적으로나 비호의적으로)특히 언도나 공식적 선언(인간의 법, 혹은 율법, 개체적으로나 집합적으로), 그 행위, 장소, 소송, 범죄, 형벌을 포함한다. 즉 왕의 권력과 특권을 포함된다.
10-11.사무엘이 왕을 요구하는(샤알) 백성에게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말하여 이르되 너희를 다스릴 왕의 제도는 이러하니라 그가 너희 아들들을 데려다가(라카흐) 그의 병거와 말을 어거하게 하리니 그들이 그 병거 앞에서 달릴 것이며
사울이라는 말이 샤알에서 유래되었다. 사울은 백성들이 요구한 왕이라는 말이다. 라카흐는 탈취하다, 빼앗다 라는 의미다. 이것은 세상 나라 왕이 갖는 가장 강력한 특권인 것이다. 아들들을 빼앗는 것은 강제 징집이다. 그래서 군대를 만들고, 상비군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래서 백성들은 자유를 잃게 될 것이다.
12.그가 또 너희의 아들들을 천부장과 오십부장을 삼을 것이며 자기 밭을 갈게 하고 자기 추수를 하게 할 것이며 자기 무기와 병거의 장비도 만들게 할 것이며
천부장과 오십부장은 왕을 보호하고, 권력을 강화하는 차원에서의 군대 조직이다. 자기 밭, 자기 추수, 자기 무기, 자기 병거는 모두 왕을 위한 것이다. 자기 밭은 왕이 소유하는 밭이며, 그래서 징집된 백성들 중에 왕의 밭을 추수하게 된다. 이렇게 아들들이 강제 노역되므로 그들에게는 자유가 없게 되는 것이다.
13.그가 또 너희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료 만드는(라카흐) 자와 요리하는 자와 떡 굽는 자로 삼을 것이며
라카흐는 오늘날로 말하자면 기쁨조가 된다. 솔로몬 시대에 왕궁에서 하루에 소가 30마리, 양이 100마리 정도 잡혀졌다고 한다. 이를 위해 딸들이 요리를 만드는데, 강제 노역된 것이다.
14.그가 또 너희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에서 제일 좋은 것을 가져다가 자기의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이 말은 세금을 취하는 것이다. 세금을 거두어서 왕의 신하들에게 주는 것이다. 백성들이 밭과 포도원을 가꿀지라도 그것의 소유는 왕에게 있었다. 왕이 지명하면 무조건 세금으로 취해지는 것이다. 원성이 자자했을 것이다. 만일 응하지 않으면 그 땅을 빼앗아서, 관리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다. 원래 땅 주인은 소작농으로 전락하게 된다.
15.그가 또 너희의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거두어 자기의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
십일조는 율법에 근거해서 거두는 것이다. 이는 레위인들을 위한 것이었으나, 왕이 율법이라는 종교적인 방법으로 착취한 것이다. 레위인들에게 준 것이 아니라, 자기의 관리와 신하에게 준 것이다. 왕들은 하나님의 율례와 말씀을 무시한 것이다. 결국 이스라엘은 왕이 도입된 후에 솔로몬 시대를 지나 남북으로 갈라지게 되고, 북이스라엘은 앗시리아, 남유다는 바벨론에게 멸망당하고 만다.
16.그가 또 너희의 노비와 가장 아름다운 소년(바후르)과 나귀들을 끌어다가 자기 일을 시킬 것이며
바후르는 소년, 청년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힘이 넘치는 황소를 의미하기도 한다.(칠십인역) 황소는 히브리어로 바카르라고 한다. 문맥상문맥 볼 때, 노비와 황소와 나귀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이들은 무거운 짐을 들거나 사역을 시킬 때 필요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번역의 오류로 볼 수 있다.
17.너희의 양 떼의 십분의 일을 거두어 가리니 너희가 그의 종이 될 것이라
왕이 종교적인 방법으로 양을 십일조와 같은 개념으로 가져가더니, 양을 치는 목동을 종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바로의 종으로부터 출애굽했는데, 이제 왕의 종이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그의 소유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왕이었을 때는 하나님 나라가 그들에게 주어졌는데, 그들이 세상 왕을 요구하므로, 이제 억압된 세상에서 살게되는 결과가 초래된 것이다.
18.그 날에 너희는 너희가 택한 왕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되 그 날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니
백성들이 그들이 택한 왕으로 인해서 하나님께 부르짖을지라도 하나님은 듣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들이 왕을 요구한 것은 출애굽한 백성들이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자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자를 진노하셨다. 신명기 17장 16절에서『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구원의 자유(복음)를 주셨는데, 신도들이 다시 율법주의에 묶여서 살기를 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초대교회 당시에 교회 안에서 복음과 율법주의가 섞여서 사도들이 수없이 많은 경고를 한 바가 있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로 율법주의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며, 거짓교사들의 잘못된 전달 때문이다.
19-20.백성이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 우리도 다른 나라들 같이 되어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 하는지라
백성들은 왕의 폐해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그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자기의 의를 바탕으로 스스로 하나님처럼 무엇인가를 해 보고 싶은 것이다. 이는 바벨탑을 짓는 그런 모습이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모두 무너지고 만다.
21-22.사무엘이 백성의 말을 다 듣고 여호와께 아뢰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들의 말을 들어 왕을 세우라 하시니 사무엘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성읍으로 돌아가라 하니라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하여 왕을 세울 경우 수많은 고통이 뒤따를 것이라고 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 오늘날 성도를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칭한다. 그 이유는 왕이신 그리스도가 성도의 심령 속에 재림하여 들어가 그를 통치하는 왕이 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도 중에는 그리스도가 왕이 되는 것을 거절하는 자가 있다. 자기가 스스로 왕노룻을 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스스로 왕노룻을 하고 싶어하는 자들은 세상에 묶여있는 자들이 세상에 대해서 죽지 않고, 살아있는 자들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왕노룻하는 자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세상에 대해서 예수와 함께 육적 몸이 죽은 자들이다. 그래서 영적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부활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왕이 되고 싶은 자는 결국 사탄의 지배하에 있는 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