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시문집 제7권 / 시(詩) - 천진소요집(天眞消搖集)
차운하여 현계 영공에게 받들어 수답하다[次韻奉酬玄谿令公] 학연
여공은 백학같이 생긴 몸으로 / 呂公白鶴身
산수에 길이 눈을 부치었는데 / 煙霞寓長眄
화성에서는 너무도 바빴었고 / 畫省太悤悤
단학은 항상 속으로 연연했었지 / 丹壑常戀戀
스스로 일곱 가지를 감당 못해 / 自言七不堪
당세의 편안함을 모르겠다 하누나 / 未諳當世便
천진사와 만정에서 노닐 적에는 / 琳宮曁幔亭
뛰어난 작품이 새로 책을 이뤘네 / 傑作新裝卷
힘써 늘그막까지 서로 동정하노니 / 共勉白頭憐
흰 실이 변할까 걱정 않는다오 / 不愁素絲變
[주-D001] 화성(畫省) : 상서성(尙書省)의 별칭으로, 전하여 여기서는 관직을 뜻한다.[주-D002] 단학(丹壑) : 적색(赤色)이 어린 산골짜기. 전하여 선경(仙境)을 뜻한다.[주-D003]
일곱 가지 : 무슨 일을 말하는지 자세하지 않다.
[주-D004] 흰 실이 변할까 : 마음이 변하는 것을 비유한 말로, 춘추 시대 묵적(墨翟)이 흰 실은 물들임에 따라서 황색으로도 흑색으로도 변할 수 있듯이 인간의 성품도 환경에 따라 선하게도 악하게도 변할 수 있다 하여, 이를 슬피 여겨 울었던 데서 온 말이다.
ⓒ 한국고전번역원 | 임정기 (역) |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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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가지 : 무슨 일을 말하는지 자세하지 않다.->칠불감(七不堪) : 진(晉)나라 혜강(嵇康)이 그의 친구인 산도(山濤)가 자기의 관직(官職)을 대신하도록 천거한 데 대하여, 이를 거절한 편지 〈여산거원절교서(與山巨源絕交書)〉에서 “반드시 감당할 수 없는 조건이 일곱 가지요, 매우 불가한 조건이 두 가지다.〔必不堪者七也, 甚不可者二也.〕”라고 하면서 그 구체적인 항목을 열거한 데서 온 말이다.
*혜로(嵇老)는 …… 어찌하랴 : 혜로는 진(晉)나라 때 죽림칠현의 한 사람이었던 혜강(嵇康)을 가리키고, 일곱 가지 감당치 못함이란 혜강이 그의 친구인 산도(山濤)가 자기의 관직(官職)을 대신하도록 천거한 데 대하여, 이를 거절한 편지에서, 자신은 성질이 거칠고 게으른 데다, 방종한 생활이 이미 오래되어 예법에 관한 일을 다스리기에 합당치 못하다는 뜻에서 “반드시 감당할 수 없는 조건이 일곱 가지요, 매우 불가한 조건이 두 가지다.[必不堪者七也 甚不可者二也]”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게을러서 벼슬살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상에서 말한 감당할 수 없는 조건 일곱 가지와 매우 불가한 조건 두 가지의 내용은 혜강의 절교서(絶交書)에 자세히 나타나 있다. 《文選 卷43 嵇叔夜與山巨源絶交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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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필재집 시집 제7권 / [시(詩)] / 국화가 부친 시에 화답하다[和國華見寄]
혜강이 글 짓기 싫어함을 괴이케 여기지 마소 / 莫怪嵇康懶作書
친구의 정은 오히려 떨어져 삶이 애석하다오 / 朋情猶自惜離居
헤어진 뒤로 응당 직함은 바뀌었겠거니와 / 別來應得頭銜改
들으니 새 시는 비단보다 아름답다데그려 / 聞道新詩錦不如
들으니, 국화가 문신(文臣)들의 부시(賦詩)에서 세 번이나 장원을 하여 장차 일급(一級)을 가자(加資)할 것이라고 하였다.
[주-D001]
혜강이 글 짓기 싫어함 : 진(晉) 나라 때 혜강이 자기에게 벼슬하기를 권유한 친구 산도(山濤)에게 보낸 절교서(絶交書)에서 일곱 가지 감당할 수 없는[七不堪] 조건들을 죽 열거했는 데, 그중 네 번째의 조건 속에 “나는 본디 글을 잘 짓지 못하거니와 또한 글 짓기를 좋아하지도 않는다.”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嵇中散集 卷二》
ⓒ 한국고전번역원 | 임정기 (역) |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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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산집 제3권 / 시(詩) / 도중에 즉석에서 읊다 2수 〔路中口占 二首〕
수염 끝 수천 이삭 고드름 꽃을 털어 내고 / 拂落鬚端千穗花
역정에서 한낮에 말 먹이니 날이 저물려 하네 / 驛亭午秣日將斜
옛 관리는 말이 있어 모두 타고 다녔다는데 / 古官有馬皆乘傳
금년에는 수레를 끌 수 있는 소도 없다네 / 今歲無牛可引車
산마루 숲은 구름 같은데 추워서 비도 못 뿌리고 / 嶺樹如雲寒不雨
해풍이 눈을 불어 모래보다 자잘하도다 / 海風吹雪細於沙
험한 길에서 애를 쓰며 추위와 더위를 겪었으나 / 險塗役役離寒暑
임금 은혜에 보답하지 못해 백발에 감개하네 / 未答君恩感鬢華
애를 써도 보탬이 없고 봉록만 부질없이 탐하니 / 心勞無補祿空貪
공연히 숲의 조롱과 시내의 부끄러움만 받았네 / 枉被林嘲與澗慙
우연히 푸른 오리 타고 변새 밖에 노닐었는데 / 偶爾靑鳧游塞外
몇 번이나 홍두처럼 강남 꿈을 꾸었던가 / 幾回紅荳夢江南
사람은 일찍이 표성처럼 삼의로 떠나야 하나니 / 人曾表聖三宜去
관직은 또한 혜강처럼 칠불감이라네 / 官又嵇康七不堪
모진 눈발과 거센 바람의 천리 길에서 / 虐雪饕風千里路
돌아가며 일찍 벼슬 못 버린 것을 후회한다네 / 歸來悔未早投簪
[주-D001] 숲의 …… 받았네 : 공치규(孔稚圭)의 〈북산이문(北山移文)〉에 “그 숲의 부끄러워함이 끝이 없고 개울의 부끄러워함이 그치지 않는다.〔其林惭无尽, 涧愧不歇.〕”라고 한 구절을 응용한 표현이다.[주-D002] 푸른 오리 타고 : 지방관을 지낸 것을 말한다. 후한 명제(後漢明帝) 때 선인(仙人) 왕교(王喬)가 신술(神術)이 있었는데, 그가 일찍이 섭현(葉縣)의 원님으로 있으면서 매월 삭망(朔望) 때마다 거기(車騎)도 없이 머나먼 길을 와서 조회에 참예하므로 임금이 그를 괴이하게 여겨 그 내막을 알아보게 한 결과, 그가 올 때마다 오리 두 마리가 동남쪽에서 날아오므로 그물을 쳐서 그 오리를 잡아놓고 보니 바로 왕교의 신이었다는 고사에서 온 표현이다. 《後漢書 卷82 方術列傳 王喬》[주-D003] 홍두(紅荳)처럼 …… 꾸었던가 : 고향을 그리는 꿈을 꾼 것을 말한다. 홍두는 일명 상사자(相思子)로, 옛 시문에서 흔히 애정이나 그리움의 상징으로 쓰였으나, 여기서는 남국에서 자라는 속성을 취하여 고향을 그리워하는 상징물로 쓰였다. 당나라 왕유(王維)의 시 〈상사(相思)〉에서 “홍두는 남국에서 나는데, 봄이 되어 몇 가지나 피어났는지? 바라건대 그대여 많이 따주오, 이 꽃이 가장 그립답니다.〔紅豆生南國, 春來發幾枝. 願君多采擷, 此物最相思.〕”라고 하였다.[주-D004] 표성(表聖)처럼 …… 하나니 : 표성은 당나라 사공도(司空圖)의 호이다. 사공도는 만년에 벼슬을 사퇴하고 중조산(中條山) 왕관곡(王官谷)에 정자를 짓고 은거하면서 그 정자를 삼휴정(三休亭) 또는 휴휴정(休休亭)이라 칭했는데, 스스로 지은 〈휴휴정기(休休亭記)〉에 “재주를 헤아리매 한 가지 마땅히 쉬어야 할 일이요, 분수를 헤아리매 두 가지 마땅히 쉬어야 할 일이요, 늙고 또 귀가 어두우니 세 가지 마땅히 쉬어야 할 일이다.〔蓋量其才一宜休, 揣其分二宜休, 耄且聵三宜休.〕”라고 하였다. 《舊唐書 文苑列傳 司空圖》[주-D005]
칠불감(七不堪) : 진(晉)나라 혜강(嵇康)이 그의 친구인 산도(山濤)가 자기의 관직(官職)을 대신하도록 천거한 데 대하여, 이를 거절한 편지 〈여산거원절교서(與山巨源絕交書)〉에서 “반드시 감당할 수 없는 조건이 일곱 가지요, 매우 불가한 조건이 두 가지다.〔必不堪者七也, 甚不可者二也.〕”라고 하면서 그 구체적인 항목을 열거한 데서 온 말이다.
ⓒ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 김영봉 (역)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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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석관유집 제2책 / 시(詩)
풍고가 글 속에서 보여 준 시에 차운하다〔次楓臯書中所示之作〕
공은 노두처럼 조회 참석에 게으르고 / 公如老杜懶朝參
나는 혜강처럼 감당 못 함이 일곱이라 / 我似嵇康七不堪
어떡하면 맑은 여울 긴 대나무숲 속에서 / 安得淸湍修竹裏
북쪽 두둑 남쪽 두둑 서로 왔다 갔다 할까 / 相追陌北復阡南
[주-D001] 공은 …… 게으르고 : 풍고(楓臯) 즉 김조순(金祖淳)이 조회에 참석하지 않고 자주 빠지는 등 심드렁한 태도를 보인다는 말이다. 노두(老杜)는 두보(杜甫)를 말한다. 두목(杜牧)은 소두(少杜)라고 한다. 두보의 시에 “조회 참석에 게으른 것이 자못 괴이하나니, 어쩌면 원야(園野)의 취미에 푹 빠져서 그러한가 봐.〔頗怪朝參懶 應耽野趣長〕”라는 말이 나온다. 이는 두보가 주인인 하씨(何氏)의 생활을 묘사한 것인데, 죽석관이 두보 자신의 일로 인용한 것은 착오이다. 《杜少陵詩集 卷3 重過何氏4》[주-D002] 나는 ……
일곱이라 : 죽석관이 당시의 정치 상황에 환멸을 느껴 벼슬살이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삼국 시대 위(魏)나라 혜강(嵇康)이 당시에 권력을 장악했던 사마사(司馬師)와 사마소(司馬昭) 등에게 불만을 품고 있었는데, 그쪽 편에 속했던 산도(山濤)가 그를 관직에 추천하자, 이를 거절하며 보낸 〈여산거원절교서(與山巨源絶交書)〉라는 편지에서 “분명히 감당할 수 없는 일곱 가지와 매우 불가한 두 가지가 있다.〔有必不堪者七 甚不可者二〕”라고 하면서 벼슬살이를 할 수 없는 이유를 댄 고사가 있다.[주-D003] 북쪽 …… 할까 : 한유(韓愈)의 〈당정의대부상서좌승공공묘지명(唐正議大夫尙書左丞孔公墓誌銘)〉에, 고향에 돌아가면 “친척 중에 벼슬하지 않는 자와 싫증을 느끼고 돌아온 자들이 동쪽 두둑에 있지 않으면 북쪽 두둑에 있으니, 지팡이 끌고서 왔다 갔다 할 수가 있을 것이다.〔親戚之不仕 與倦而歸者 不在東阡在北陌 可杖屨來往也〕”라는 구절이 있다.
ⓒ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현 (역)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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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보유 제1권 / 시류(詩類) 정미년(1487, 성종18)에 손수 정리한 시고[丁未手稿]
회포를 서술하다
바람은 성긴 창 가득고 비는 주렴 가득한데 / 風滿疎櫺雨滿簾
새 시름 그윽한 흥취가 자연 서로 겸해지네 / 新愁幽興自相兼
공승은 두 가지 떠나야 함을 각오했거니와 / 孔丞已分二宜去
혜로는 일곱 가지 감당치 못함을 어찌하랴 / 嵇老其於七不堪
한가한 때 책을 보자면 눈은 어른거리고 / 靜裏看書花翳眼
시름겨워 거울 보면 머리는 흰 눈빛일세 / 愁來攬鏡雪盈簪
여섯 조정의 성왕 은택 보답기 어려워라 / 六朝聖澤思難報
녹록한 헛된 이름만 스스로 부끄럽구려 / 碌碌虛名只自慙
[주-D001] 공승(孔丞)은 …… 각오했거니와 : 공승은 당 목종(唐穆宗) 때 상서 좌승(尙書左丞)을 지낸 문신(文臣) 공규(孔戣)를 가리키는데, 목종이 외직(外職)에 있던 공규를 이부 시랑(吏部侍郞)으로 불러들인 다음, 좌승으로 임명하였으나, 공규가 늙었다는 이유로 굳이 사직을 청하였다. 평소 그와 친밀했던 한유(韓愈)가 그에게 말하기를 “공은 아직 건강하고, 상께서 세 번이나 공을 만류했는데도 왜 꼭 떠나려고 합니까?[公尙壯 上三留 何去之果]” 하니, 공규가 말하기를 “내가 어찌 임금에게 특별한 대우를 바라는 자이겠습니까. 내 나이 많은 것이 한 가지 마땅히 떠나야 할 조건이요, 내가 좌승으로 있으면서 낭관을 진퇴시키지 못한 것이 두 가지 마땅히 떠나야 할 조건입니다.[吾豈要君者 吾年 一宜去 吾爲左丞 不能進退郞官 二宜去]”라고 하므로, 한유가 다시 말하기를 “공은 남겨 둔 자산도 없는데, 무엇을 믿고 돌아간단 말입니까.[公無留資 何恃而歸]” 하자, 말하기를 “내가 두 가지 마땅히 떠나야 할 조건을 짊어졌는데, 그러고도 어찌 당신의 말을 고려할 여지가 있겠소.[吾負二宜去 尙奚顧子言]” 하고, 그길로 끝내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던 데서 온 말이다. 《新唐書 卷163 孔戣列傳》[주-D002]
혜로(嵇老)는 …… 어찌하랴 : 혜로는 진(晉)나라 때 죽림칠현의 한 사람이었던 혜강(嵇康)을 가리키고, 일곱 가지 감당치 못함이란 혜강이 그의 친구인 산도(山濤)가 자기의 관직(官職)을 대신하도록 천거한 데 대하여, 이를 거절한 편지에서, 자신은 성질이 거칠고 게으른 데다, 방종한 생활이 이미 오래되어 예법에 관한 일을 다스리기에 합당치 못하다는 뜻에서 “반드시 감당할 수 없는 조건이 일곱 가지요, 매우 불가한 조건이 두 가지다.[必不堪者七也 甚不可者二也]”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게을러서 벼슬살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상에서 말한 감당할 수 없는 조건 일곱 가지와 매우 불가한 조건 두 가지의 내용은 혜강의 절교서(絶交書)에 자세히 나타나 있다. 《文選 卷43 嵇叔夜與山巨源絶交書》
ⓒ 한국고전번역원 | 임정기 (역) |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