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 12년, 서북쪽에 자리잡은 여진이 고려 조정에 알려 왔다.
"거란이 군사를 일으켜서 고려를 치려고 합니다."
조정에서는 곧 군신 회의를 열어 이 문제를 논의했다.
대신들은 여진의 말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여진이 우리 고려를 속이려고 그런 말을 한 것이오."
"맞습니다!"
따라서
조정은 여기에 아무런 대비책도 세워 놓지 않았다.
8월이 되어 이번에는 여진이
"거란군이 고려에 침입했습니다." 하고 알려 주었다.
고려 조정은 황급히 발등에 떨어진 불을 꺼야만 하였다.
조정에서는 일이 급해지자
여러 도의 군마 제정사를 나누어 보내기로 하였다.
시중 박양유를 상군사, 내사시랑 서희를 중군사,
문하시랑 최양을 하군사로 삼은 조정은 급히 거란군을 막도록 하였다.
이들을 보내고 난 성종은
친히 서경을 거쳐서 안북부까지 나가 정세를 살폈다.
거란의 장수 소손녕은
80만 대군을 거느리고 압록강을 건너 봉산군으로 쳐들어오는 한편,
고구려군의 선봉장인 윤서안 등을 사로잡았다.
성종은 서경으로 돌아왔다.
서희가 군사를 이끌고 봉산을 구원하려고 하자, 소손녕은 큰소리를 쳤다.
"우리는 이미 고구려 옛 땅에 나라를 세웠는데,
이제 고려가 우리의 영토를 침범하여 빼앗으려고 하니, 너희들을 토벌하겠다."
소손녕은 또 서희에게 글을 모냈다.
<우리는 사방 여러 나라를 모두 통일하고,
아직 우리에게 복종하지 않은 나라를 기어이 소탕할 계획이니, 속히 항복하라.>
서희는 이 글을 보고 돌아와서 왕에게 보고했다.
왕은 하는 수 없이 이몽전으로 하여금 거란의 병영에 들어가서 화친을 교섭토록 하였다.
그러자 소손녕은 콧대가 아주 높아졌다.
"우리는 80만의 대군을 집결해 놓고 있다.
만약 항복하지 않으면 모조리 짓밟아 버리겠다.
너희들이 고려를 침범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몽전이 거란병을 통해 물었더니,
소손녕이 대답해 왔다.
"그대들의 나라 고려는 백성을 잘 보살피지 않아서,
하늘을 대신하여 천벌을 내리려 하는 것이다.
만일 화친하기를 바라거든 모두 와서 항복을 하라!"
이몽전이 돌아오자 왕은 군신회의를 열었다.
하지만 의견이 엇갈려 결론을 내리지 못하였다.
어느 대신은 이렇게 말했다.
"대왕께서 서울로 돌아가신 뒤에
중신들이 군사를 거느리고 나아가 항복하는 게 좋겠습니다."
또 어느 대신은 이렇게 말했다.
"서경 이북의 땅은 그들에게 갈라 주고 화친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왕은 장차 거란에게 서경 이북 땅을 갈라 주고
화친하자는 의견에 따르기로 하고,
백성들이 창고에 있는 곡식을 마음대로 가져가도록 하였다.
그래도 남은 곡식이 많아서,
적이 군량으로 쓰지 못하게 대동강에 버리도록 하였다.
이 때 서희가 나서서 왕에게 아뢰었다.
"식량이 넉넉하면 성은 지킬 수 있고, 싸우면 반드시 이길 수 있습니다.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군사들의 강하고 약함에 잇는 게 아니라,
다만 적의 약점을 노려서 용감히 싸우는 데 달려있습니다.
식량은 백성의 생명입니다.
만약에 적의 군량이 된다하더라도 강물에 버려서는 아니 됩니다.
하늘이 노하면 어찌하시렵니까?"
왕은 서희의 말을 듣고 남은 곡식을 강에 버리는 것을 중지시켰다.
서희는 또 한가지 계책을 왕에게 아뢰었다.
"거란의 동경으로부터 우리 안북부에 이르기까지
수백 리의 땅이 모두 여진의 근거지가 되었으므로,
광종께서 가주, 송성 등에 성을 쌓았습니다.
지금 거란의 군사가 온 것은 이 두 성을 빼앗으려는 계획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들은 우리 고구려의 옛 땅을 빼앗으려는 것은 사실은 우리 고려를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왕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서희는 말을 이었다.
"지금 그들의 군대가 강해 보인다고 해서,
서경 이북의 땅을 갈라 주고 화친을 맺는 것은 좋은 계책이 아닙니다.
삼각산 이북의 땅도 역시 고구려의 옛 땅인데,
거란이 생떼를 쓴다면 그것도 내줄 것입니까?
땅을 갈라 준다는 것은 자손 만대의 치욕입니다.
바라옵건대 대왕께서는 서울로 돌아가시옵고,
신들이 결전을 벌인 다음에 이 일을 논의하는 것이 좋을 듯하옵니다.
그래도 늦지는 않사옵니다."
다음에는 전민관 이지백이 나서 말했다.
"태조께서는 나라를 세우시고 임금들이 대를 이어 오늘에 이르렀는데,
한 번 싸워 보지도 않고 땅을 내 준다면 이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옵니까?
옛날 유비의 아들 후주가 촉나라를 다스릴 때,
그의 신하 초주가 후주에게 권하여
땅을 위나라에게 바치도록 하여 만고의 웃음거리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옵니까?
통촉하옵소서!"
한편,
소손녕은 이몽전이 돌아간 뒤에 오래도록 소식이 없자 안융진을 공격하였다.
이때 고려의 중량장 대도수와 낭장 유방이 소손녕과 싸워 승리를 거두었다.
소손녕은 뜨끔하여 감히 다시 나오지 못하고 사람을 보내어 빨리 항복하라고만 독촉하였다.
그러자
왕은 장영을 화통사로 삼아서 거란군의 병영으로 파견했다.
소손녕이 장영에게 말했다.
"대신을 보내어 면담토록 하자."
장영이 돌아와서 소손녕의 뜻을 전했다.
왕은 신하들을 모아 놓고 물어 보았다.
"누가 거란의 병영으로 들어가서
말로써 옳고 그름을 따져 적을 물리치고 공을 세우겠소?"
신하들은 서로 눈치만 보았다.
서희가 왕 앞에 나아가 말했다.
"신이 비록 민첩하지는 못하오나,
감히 명을 받들어 거란군의 진영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왕은 강어귀에까지 나아가 서희의 손을 잡고 성공하기를 빌었다.
서희는 거란의 진중으로 들어가서 통역에게 면담 절차를 물었더니,
소손녕이 대답을 하였다.
"나는 큰 나라의 귀한 사람이니 마땅히 뜰에서 절을 하라."
서희가 말했다.
"신하가 임금에게 뜰 안에서 절을 하는 것은 마땅하나,
두 나라의 대신이 서로 만나는데 어찌 뜰에서 절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 문제를 가지고 두세 번 실랑이를 벌였다.
소손녕이 끝내 고집을 꺽지 않자
서희는 객관으로 돌아가 누워 있었다.
소손녕은 마침내 당 위에 올라 예를 행하도록 하였다.
서희는 영문에 이르러 말에서 내려 소손녕과 서로 읍절하고,
당 위에 올라 예를 행한 뒤에 마주 대하였다.
소손녕은 서희가 순순히 자기를 따라 주지 않자 이상히 여기며 말했다.
"당신의 나라는 신라의 땅에서 일어났으니, 고구려의 땅은 우리 것이오.
그런 것을 그대들이 침략하였고,
또 우리와 경계를 접하고 있으면서도 바다 멀리 송나라를 섬기고 있으니 치려는 것이오.
만일 내가 말한 대로 땅을 갈라 주고 화친을 한다면 무사할 것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무사하지 못할 것이오."
서희는 소손녕의 말을 공박했다.
"우리 고려는 바로 고구려를 이어받았으므로,
나라 이름도 고려라 하고 평양에 도읍을 정했소.
만약 경계를 논한다면, 그대 나라의 동경도 모두 우리의 땅이오. 어째서 이것을 침략이라 하시오?
또한 압록강 안팎도 역시 우리 땅이었는데,
여진들이 훔쳐 살면서도 간사하게 길을 막아서 바다를 건너 송나라와 사귀는 것보다 힘이 드오.
우리 고려가 지금 그대 나라와 교역을 하지 않는 것도 여진 때문이오.
만약 여진을 쫓아내고, 우리의 도읍지를 돌려주고,
성을 쌓아 도로가 통한다면 왜 그대들과 외교 관계를 트지 않겠소?"
서희의 말은 조리가 있었고, 목소리에는 강한 기개가 서려 있었다.
소손녕은 더 이상 말해 보았자 소용이 없음을 알았다.
마침내 소손녕은 강화를 맺을 것을 허락하였으며,
잔치를 베풀어 서희를 위로하려고 하였다.
서희가 말했다.
"우리 나라는 도리에 어긋나는 일은 없다고 하더라도,
당신 나라의 군사들은 멀리 와서 수고를 하는데 어찌 감히 내가 잔치를 즐길 수가 있겠소?"
소손녕이 말했다.
"두 나라 대신이 서로 만나 보게 되었는데, 어찌 대접하는 예의가 없으리오."
소손녕이 굳이 청하는 바람에 서희는 잔치를 즐겼다.
소손녕은 모든 형편을 자세히 기록하여 거란 왕에게 알렸다.
"고구려국에서는 이미 강화를 청했으니, 군사를 돌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서희는 거란의 진영에서 7일 동안이나 머물다가 돌아왔는데,
소손녕은 서희에게 낙타 10마리, 말 100필, 양 1천 마리, 비단 500필을 선물로 보냈다.
서희가 돌아올 때 왕은 친히 강어귀에까지 나가서 맞았다.
이때 왕은 박양유를 시켜서 예물을 마련해 가지고 거란 왕을 방문하려고 하자 서희가 막았다.
"지금은 겨우 강 안을 되찾았으니 강 밖의 땅을 찾은 뒤에 수교를 하여도 되옵니다."
왕은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오랫동안 강화하지 않으면, 뒤에 무슨 근심이 따를지 모르오."
드디어 왕은 박양유를 거란 왕에게 보내어 외교 관계를 맺었다.
이로써 서희는 한 치의 땅도 갈라 주지 않고 거란을 물리쳤다.
고려에 침입하였던 거란은
오히려 땅만 물려주고 간 셈이 되었다.
이어,
서희는 성종 13년에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 여진족을 몰아내고
홍화진, 용주, 철주, 통주, 곽주, 귀주, 등 여섯 고을을 차지하였다.
고려는 그 지방에 성을 쌓기 시작하였고, 그 일대를 '강동 6주'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