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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그가 자기 땅에 오셨으나, 그의 백성은 그를 맞아들이지 않았다.
12. 그러나 그를 맞아들인 사람들,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13. 그들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욕망으로 나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났다.(요1:11-13)
11 He came to his own country, but his own people did not receive him. 12 Some, however, did receive him and believed in him; so he gave them the right to become God's children. 13 They did not become God's children by natural means, that is, by being born as the children of a human father; God himself was their Father.
히브리인들은 400년 동안 날마다 두들겨 맞으며 살았습니다.
애급 땅에서 흙벽돌 만들며 살았습니다.
그들이 하나님 손으로 구원을 받아 약속의 땅에 갔습니다.
거기에서의 삶도 우리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힘들었습니다.
그 땅에 살던 이스라엘은 주전 721년 앗수르에게 망했습니다.
또 유대인들은 주전 587년 바벨론에게 망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가서 살았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 나라는 로마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우리도 나라 없는 서러움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당한 고통은 사람이 견뎌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과장이 아닙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침략당하고 나라 잃고 방황하고 짓밟히고 죽임당하고 세상에서 자신보다 더 고난받았던 백성들이 어디에 있었냐고 주장합니다.
유대인들은 불에 들어갔다가 망치로 실컷 두들겨 맞다가 물로 들어가고 또다시 두들겨 맞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손에 잡혀서 그렇게 하나님의 백성이 만들어져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부르는 사람이 되어갔던 것입니다.
출애급 때도 그랬습니다.
고통 중에 나 살려달라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 외침을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해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도 꼭 그랬습니다.
그런 핍박을 당하면서 그 일은 내 힘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부른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보내셨던 것입니다.
11. 그가 자기 땅에 오셨으나, 그의 백성은 그를 맞아들이지 않았다.
11 He came to his own country, but his own people did not receive him.
그렇게 기다리던 그리스도가 그들을 찾아오셨을 때 일어난 일입니다.
그는 유대인의 왕입니다.
그리스도를 알만한 사람이었습니다.
16. 헤롯은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몹시 노하였다. 그는 사람을 보내어, 그 박사들에게 알아본 때를 기준으로, 베들레헴과 그 가까운 온 지역에 사는, 두 살짜리로부터 그 아래의 사내아이를 모조리 죽였다.(마2:16)
그가 창조주 하나님을 모를 리 없습니다.
썩고 말 피조물인 주제에 당돌한 짓을 했습니다.
그가 궁궐 안의 성서 학자들을 다 불러 모으더니 그리스도 탄생의 장소를 물었습니다.
바로 그 장소로 군인들을 보낸 것입니다.
수천 명의 아이들을 학살해 버린 것입니다.
청문회를 보고 알았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지도자들은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별로 점치는 이방 나라 박사들이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았겠습니까?
하지만 그들이 그리스도 탄생 소식에 선물을 준비해서 사막을 건너왔습니다.
하나님을 잘 아는 사람이 칼을 들고 그리스도를 맞이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의 소식에 예루살렘은 난리가 나고 말았습니다.
피바다가 된 것입니다.
주님이 그의 고향 마을에서 처음으로 설교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고향 마을에는 예수님의 소문이 파다했습니다.
그 예수님을 모시고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설교를 통해서 신랄하게 자기 민족을 비판하셨습니다.
24.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떤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25.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 시대에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서 온 땅에 기근이 심했을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들이 많이 있었지만,
26.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그 많은 과부 가운데서 다른 아무에게도 보내지 않으시고, 오직 시돈 지방의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만 보내셨다.
27. 또 예언자 엘리사 시대에 이스라엘에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지만, 그들 가운데서 아무도 깨끗함을 받지 못하고, 오직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이 깨끗함을 받았다."(눅4:24-27)
예수님의 설교를 듣던 사람들이 잔뜩 화가 났습니다.
그들은 화를 참지 못하고 예수님을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뜨려 죽이려 했습니다.
28. 회당에 모인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서, 모두 잔뜩 화가 났다.
29. 그래서 그들은 들고 일어나서 예수를 동네 밖으로 쫓아냈다. 그들의 동네가 산 위에 있었으므로, 그들은 예수를 산 벼랑에까지 끌고 가서, 거기에서 밀쳐 떨어뜨리려고 하였다.(눅4:28,29)
그리스도의 생각과 그리스도를 기다리려던 사람들의 생각이 이렇게 다를 줄이야!
그것이 예수님의 첫 설교의 결과였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이방인들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교회 밖에 주님이 원하시는 사랑과 정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2,000년이 훨씬 넘은 거창 마을은 예수님을 환영하면서 받아들일까요?
이 산골 마을 거창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소식에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그 분의 탄생 이야기에 대놓고 비웃습니다.
처녀의 몸에서 사람이 태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배운 생물책의 내용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사람을 만드셨는데 사람 몸 안에 피가 흐르게 만드신 것입니다.
피의 당 농도가 낮아지면 저혈당이 되고 그것이 많아지면 고혈당이 되고.......
그것이 높아져도 혹은 낮아져도 사람은 픽 쓰러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람이 정밀할 줄이야!
그런데 사람들도 대단합니다.
사람이 쓰러지는 원인이 피의 당의 농도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인슐린 주사도 발명했습니다.
그래서 피 안의 당 농도를 조절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한 나절입니다.
하루 24시간도 아닙니다.
아침에 인슐린을 맞은 사람은 또 저녁에 다시 인슐린을 맞아야 합니다.
한나절 정도는 피의 농도를 그럭저럭 유지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과학으로 엄청 잘난 척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제 알고 있는 과학 지식으로 그리스도를 일축해 버립니다.
그럴 리 없다!
귀신은 시대를 초월해서 또 민족을 초월해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이 민족에게는 이렇게 저 시대에는 저렇게!
현대 시대는 과학으로!
혹은 돈으로!
하나님께서 부인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세상 중에도 아브라함 같은 사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12. 그러나 그를 맞아들인 사람들,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12 Some, however, did receive him and believed in him;
달내 교회 건물은 40여 년 전에 과수원에 세워진 네모난 창고 정도였을 것입니다.
스레트 지붕조차 걷어내지 않고 판넬로 덮어버리니 교회 건물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붕 한 쪽에 큰 십자가를 달았습니다.
그 때 가조에 살던 장로님이 목수 경험을 살려서 임기응변으로 지어 놓은 것입니다.
또 교회의 가장 너른 벽에다 방 하나를 달아낸 것이 사택이 된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서 현관도 더 달아내고.......
몇 년 전에 한 분이 교회로 찾아왔습니다.
그 분은 거창읍의 한 목사님인데 자신이 몇십 년 전 이 교회 사택을 달아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유명하다는 사랑의 교회 건물 앞을 지나간 적이 있습니다.
제 입이 쩍 벌어졌습니다.
우리 교회 지어준 목사님 장로님을 100명을 가져다 두어도 그 교회 건물은 지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입니다.
건축 현장을 가면 인부들이 시멘트 가루와 모래를 뒤섞은 다음 그것을 등에 지고 2층으로 날랐습니다.
벽돌도 등에 지고 날랐습니다.
그렇게 2층이 지어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방식으로 저 몇십 층짜리 교회 건물을 지을 수 있을까?
인부가 시멘트를 등에 지고 3층 올라가고 십분 쉬고 다음에는 2층 더 올라가다가 15분 쉬고 다음부터는 층마다 쉬고.......
그렇게 한 20층에 벽돌 몇 장 나르면 하루 해가 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옛 방식으로 이런 건물을 지을 수 없습니다.
그 건축일이 가능한 것은 레미콘과 긴 호스 달린 차 때문입니다.
차에 기름을 넣고 엔진을 돌려버리면 시멘트를 20층 혹은 30층으로 올려서 보내는 것입니다.
애초에 최고의 설계사를 불러다 건축 하중을 미리 계산하고
지진을 고려하고
바람에 흔들림을 고려하고....... 설계 됩니다.
기중기로 H빔을 세우고.......
얼마 전에 고층 빌딩의 외벽 유리가 태풍에 날아가는 것을 뉴스를 통해 보았습니다.
그 뉴스를 보기 전까지 저는 빌딩 꼭대기 창에도 우리 교회 창문의 그 유리를 끼우는 줄 알았습니다.
그랬다가는 난리가 날 것입니다.
불과 100m 위인데 거기에는 일반 사람들은 생각 못 할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초고층 빌딩의 상단 층은 전후좌우로 20-30Cm씩 흔들린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나라가 지상에서 한 100m 위의 30층 꼭대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 차이도 훨씬 넘어서는 것입니다.
호스차가 닿을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너무 깊고 어두운 현실에 놓여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나라는 너무 밝고 높은 곳입니다.
이 깊은 곳에서 그 높은 곳으로 가는 것이 구원입니다.
성경은 그 죽음의 구속을 내 힘으로 벗어나겠다는 생각을 죄로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이 족쇄를 벗어 던지자. 동여맨 이 사슬을 끊어 버리자" 하는가?
4. 하늘 보좌에 앉으신 분이 웃으신다. 내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신다.
5. 마침내 주께서 분을 내고, 진노하셔서, 그들에게 호령하시며 이르시기를
6. "내가 거룩한 산 시온 위에 '나의 왕'을 세웠다" 하신다.
7. "나 이제 주께서 내리신 칙령을 선포한다. 주께서 나에게 이르시기를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8. 내게 청하여라. 뭇 나라를 유산으로 주겠다.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네 것이 되게 하겠다.
9. 네가 그들을 철퇴로 부술 때에, 질그릇 부수듯이 부술 것이다' 하셨다."(시2:3-9)
구원에 있어서 죄인은 낄 자리가 없습니다.
죽음의 족쇄를 벗어버릴 구원이라면 오직 하나님께서 시온산에 그리스도께서 하실 일입니다.
그 일을 바울이 로마서에 좀 어렵게 표현했습니다.
이신득의라고 합니다.
구원의 모든 일은 사람이 그 흉내도 못 낼 일입니다.
시온에 세우신 바로 그 왕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사람이 할 일은 그 그리스도가 하신 일을 믿는 것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가지는 사람에게 구원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구원의 사역에서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하려고 덤벼듭니다.
30층 건물을 건축하는데 벽돌을 등짐 지고 올라가겠다는 것입니다.
또 이층집에 끼는 유리창을 30층 창문에 끼겠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2-3층의 옥상에 있는 줄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사람들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지적하고 있습니다.
2. 나는 증언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데 열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열성은 올바른 지식에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3. 그들은 하나님의 의를 알지 못하고, 자신의 의를 세우려고 힘을 쓰면서, 하나님의 의에는 복종하지 않았습니다.(롬10:2,3)
그 사람은 교회 앞마당에 자신의 의를 기록한 기념비를 남기고 싶었던 것입니다.
세계에서 제일 높은 예수상을 만들어서 그 밑에 이것은 내 작품이라고 이름을 남기고 싶었던 것입니다.
아주 쓸데없는 짓입니다.
그것은 시멘트 덩어리에 대한 우상 숭배입니다.
구원 얻은 사람들은 오직 그리스도의 일을 믿을 뿐입니다.
12. 그러나 그를 맞아들인 사람들,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12 Some, however, did receive him and believed in him;
행위와 믿음은 양립할 수 없습니다.
탕자의 형에게 정말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 동안 그는 아버지의 말을 거역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 선행 때문에 그는 아버지에게 큰소리로 대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형이 대충 의인이었더라면 그렇게까지 격렬하게 아버지께 대들지는 못 했을 것입니다.
탕자의 이야기는 일하지 않았던 탕자가 이제 진정한 자식이 되었다는 기이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아버지라는 관계를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돼지 사료를 훔쳐 먹으면서 관계가 무엇인지 공부를 했던 것입니다.
12.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12 so he gave them the right to become God's children.
현대는 정주영
삼성은 이병철
LG는 구인회
그들은 우리나라의 대기업 창업주들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대기업에 들어가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대기업은 성적이 우수한 아이들만 골라서 뽑아 갑니다.
한국 대학교에서 수석으로 졸업하고 외국에서 공부하고.......
그들은 그 좋은 머리로 밤잠을 자지 않고 회사를 위해 봉사합니다.
그렇게 회사의 실적을 올려놓는 것입니다.
그들이 회사의 높은 고위직을 맡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도 나이 들면 회사는 여지없이 은퇴시킵니다.
유능하고 열심 있는 회사원이 그 회사를 소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슨 실적을 많이 남겼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창업주가 죽으면 회장의 아들 손자들이 그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회장 손자가 좀 꺼벙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회사 주인이 되는 일은 관계의 문제입니다.
아버지 창업주가 세상 뜨면 그렇게 그 아들 손자들이 회사의 주인이 되는 법입니다.
지금 예수께서는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과 손자가 되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의 관계를 획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 회사에 고위직 회사원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나이 들면 은퇴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으면 하나님의 호적 등본에 내 이름이 하나님의 아들딸로 등록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것입니다.
13. 그들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욕망으로 나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났다.
13 They did not become God's children by natural means, that is, by being born as the children of a human father; God himself was their Father.
이렇게 말씀을 드려도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나에게 어떻게 그 일이 가능하냐고 하는 것입니다.
믿는 것이 얼마나 간단합니까?
아멘. 그 한마디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그 한마디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다니!
하나님의 요구가 너무 쉽다 보니 사람들이 의심하는 것입니다.
그 귀한 말씀을 한 귀로 흘리고 마는 것입니다.
믿으면 하나님의 손자 손녀가 된다는 그 하나님의 말씀이 믿겨 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13절에 그 관계의 문제를 다시 다루시는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흙을 빚으셔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이들이 에덴에서부터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주님은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래서 개과천선하도록 엄한 벌을 내리신 것입니다.
물로 심판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천벌을 받고도 그 원인을 제대로 알아채지 못한 것입니다.
그들의 죄는 반복되었으며 그 죄악의 깊이를 더 해갔습니다.
시나르 평야에서 집단적으로 하나님을 적대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그들의 언어를 뒤섞어서 그들을 사용하며 세상으로 흩어지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그 천벌을 받으면서도 자신들의 죄의 내용조차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저들은 제 단결력과 과학을 신봉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그의 기업을 무를 손자로 삼으실 수 없으셨던 것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하나님께서는 그 방식을 바꾸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처음에는 흙을 빚어서 손자를 만들려 하셨습니다.
이번에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약속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른 방식을 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들로 하나님 나라의 민족을 삼으셨던 것입니다.
그런 후손들이 진정한 이스라엘인 것입니다.
1.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이러하다.(마1:1)
세상 사람들은 우리 조상하면 아담을 생각하는데 신약 성경이 다루는 사람들은 흙으로 빚은 아담의 후손을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약속을 믿은 아브라함의 후손을 이르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오셔서 또다시 약속의 사람을 부르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12족장 대신에 약속의 자녀인 예수님의 12제자들로 새 이스라엘의 족장을 삼으신 것입니다.
얼마 전에도 그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기독인인 내 족보에는 야곱의 후손 12 명 중 한 명의 이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즉 내 신앙 족보의 내 시조는 르으벤 혹은 시므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내가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스라엘 백성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은 먼 나라 이스라엘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독교인은 다른 족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족보 책에 예수님의 12 제자 중 한 분의 이름이 내 시조로 쓰여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베드로 혹은 요한을 우리 시조로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 믿음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한 참 이스라엘이 된 것입니다.
그들만이 하나님 나라의 영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