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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첫 설교
사도행전 13:13-25
13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14 ○그들은 버가에서 더 나아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15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
16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
17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사
18 ○광야에서 약 사십 년간 그들의 소행을 참으시고
19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기까지 약 사백오십 년간이라
20 ○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21 ○그 후에 그들이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22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23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24 ○그가 오시기에 앞서 요한이 먼저 회개의 세례를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전파하니라
25 ○요한이 그 달려갈 길을 마칠 때에 말하되 너희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나는 그 발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행 13:13-25 / [밤빌리아로 가다] 바울 일행은 바보에서 배를 타고 밤빌리아로 가는 길에 버가라는 항구에 내렸다. 그러나 거기서 요한은 두 사람을 남겨 두고 혼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렸으므로 14) 바나바와 바울만이 비시디아 지방에 있는 안디옥이라는 도시로 갔다. 안식일이 되어 두 사람이 예배를 드리려고 회당으로 갔을 때였다. 15) 보통 때처럼 모세의 책과 예언서 낭독을 끝낸 예배위원들이 두 사람에게 부탁하였다. `형제들이여, 혹시 우리에게 가르칠 말씀이 있거든 나오셔서 말씀하여 주십시오.' 16) 그래서 바울이 일어나 모인 사람들에게 인사한 후에 설교를 시작하였다. `이스라엘 동포 여러분, 그리고 이 자리에 계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우선 우리 역사에 대한 이야기로 설교를 시작하겠습니다. 17)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께서는 우리 조상들을 가려 뽑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국 땅 애굽에서 이방인의 종살이를 하고 있는 그들을 높이셔서 영광스럽게 구출해 주셨습니다. 18) 그리고 광야를 방황하던 40년 동안에도 그들을 양육하여 주셨습니다. 19-20) 그후에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일곱 민족을 멸망시키시고 그들의 땅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상속 재산으로 주셔서 약 450년 동안이나 사사들을 세워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예언자 사무엘 때까지 이르렀습니다. 21) 이때 백성들이 왕을 세워 주실 것을 요구하자 하나님께서는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그들의 왕으로 세우셔서 40년 동안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22) 그리고 그를 물러나게 하신 뒤에는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찾아냈으니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다. 그가 내 뜻에 복종하기 때문이다' 하고 칭찬하셨습니다. 23) 이 다윗의 후손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이스라엘의 구세주 예수께서 나신 것입니다. 24) 이분이 오시기 전에 침례 요한은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에게 죄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고 선포하였습니다. 25) 요한은 그의 생명이 거의 다해 가던 무렵에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여러분은 나를 메시야로 생각합니까? 나는 메시야가 아닙니다. 그분은 곧 오십니다. 나는 그분의 신발끈조차 풀어 드릴 만한 자격도 없는 사람입니다. 나는 그분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참으로 아무 가치도 없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사도행전에는 세 차례에 걸친 바울의 설교가 나옵니다(행 17, 20장). 그 중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행한 첫 번째 설교는 이방선교사로서 바울의 취임사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 주제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13-25) 구브로 섬의 바보를 떠나 배편으로 밤빌리아로 이동한 바울 일행은 여행을 계속하여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릅니다.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간 바울 일행은 그곳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을 향해 복음을 선포합니다.
바울의 설교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하나님’을 주어로 반복해서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17, 21-23). 바울의 설교는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구원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출애굽사건으로 시작된 설교는 광야시대, 가나안 정복 시대, 사사 시대, 사울과 다윗의 통일 왕국 시대를 거쳐 세례 요한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전 역사를 두루 살피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술 가운데 ‘하나님’을 주어로 계속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이 기나긴 ‘이스라엘의 역사’는 그저 한 나라의 역사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요, ‘구원의 역사’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 후 바울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의 정점에 있는 예수그리스도에게 집중합니다.
특히 17-19절에 기술하고 있는 출애굽의 역사에 드러난 동사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택하시고’, 죄의 종 되었던 우리를 ‘높여’, 주님의 큰 권능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사’, 우리의 소행을 ‘참으시고’, 사단의 세력을 ‘멸하사’,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주실’ 분이십니다. 출애굽의 역사가 그러했듯이 우리의 구원의 역사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가운데 있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바울의 설교는 7장에 나오는 스데반의 설교와 많은 부분에서 그 내용과 뜻을 같이 합니다. 바울이 스데반의 설교를 듣고 그를 돌로 쳐 죽이는 일에 가담한 자였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 얼마나 놀라운 변화이겠습니까? 이제 바울은 복음의 핍박자에서 복음의 증거자로 변화된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가 바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인 것입니다. 내 삶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 가운데 일부분이라는 것을 감사해야 할 하루입니다.
적 용 : 사도바울의 설교는 어찌 보면 간증이었습니다. 오늘 내가 간증을 나누어야 할 대상은 누구입니까? 입술을 열어 간증해 봅시다.
베르나르두스가 웅변하듯이 설교하여 여러 신자들과 학자들의 갈채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그다지 기쁘지 않았으며 쓸쓸했습니다. 다음날은 성경 말씀을 가지고 평범한 말로 설교를 했습니다. 갈채를 받지는 못했으나 그의 마음은 만족했습니다. 그에게 물었습니다. “왜 어제는 갈채를 받고도 기뻐하지 않다가 오늘은 기뻐하십니까?” 그러자 그는 “어제는 베르나르두스를 설교하였고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를 설교했기 때문입니다.”
< 설 교 >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
하나님은 다윗을 향해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다윗은 어떠한 사람이기에 이런 엄청난 칭호를 얻을 수 있었는가?
1.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려면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내 능력, 내 지혜나 내가 가진 재산이나 지위 등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만 의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만 믿고 무조건 순종으로 행한 자들입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다윗입니다. 다윗이 큰 믿음이 있었다는 대표적인 증거는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입증되었습니다. 다윗이 아직 소년티도 제대로 벗지 못하는 때에 이스라엘 나라의 큰 위기가 닥쳤습니다. 불레셋 군대가 쳐들어 왔는데 그 군대 대장은 골리앗으로 당시는 아무도 대적하지 못할 정도에 천하 장수였습니다. 키는 6규빗 한 뼘으로 약 280㎝요, 갑옷의 무게는 5,000세겔로 57㎏이었습니다. 제 몸무게가 59kg입니다. 그러므로 골리앗은 저 같은 사람을 하나 엎고 싸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다가 창은 1,600세겔로 약 20㎏인데 그 창을 마치 막대기를 놀리듯 했으니 상상만 해도 너무나 무시무시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유명한 장수들은 다 나가서 싸웠으나 연전연패했습니다. 골리앗은 이스라엘 장수를 이길 때마다, 이스라엘 장수의 벤 목을 들고 산천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의 큰 목소리로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비방합니다. 그렇게 40일 동안 아침저녁으로 비방했으나, 감히 대적할 사람이 없어서 벌벌 떨면서 수비만 했지 감히 나가는 자가 없습니다.
이제는 이스라엘의 장래는 망하여 불레셋의 속국(屬國)이 되는 길만 남았습니다. 온 국민들과 군대들은 공포에 질리어 얼굴이 사색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소년 다윗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전쟁터에 나가 있는 세 형님들의 식사를 가지고 갔던 것입니다. 가보니 너무나 한심합니다. 골리앗은 연일 나와서 하나님을 모독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이 병신들아, 나와 싸울 자가 없는가?’라고 비방했으나 모두 고개만 쳐 박고 찍소리 못하고 있으니 너무나 분개했습니다.
소년 다윗은 이러한 모습을 보고 분연히 일어나서 형들이 극구 말리는 데도 불구하고 사울 왕에게 가서 자기가 나가서 싸우겠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다윗은 작은지 사울의 갑옷을 입혔더니 갑옷 속에 쏙 들어갑니다. 그 꼴이 너무나 한심합니다. 그런 소년이 싸우러 나가겠다니 모든 어른들이 자존심이 완전히 상할 지경입니다. 사울도 처음에는 말렸습니다. 삼상17:33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기에 능치 못하리니 너는 소년이요 골리앗은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라고 했으나 다윗을 보십시오.
담대히 고백하기를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 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사울은 할 수 없이 다윗에게 말하기를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라고 했습니다. 마침내 다윗은 양 치던 막대기와 물맷돌만 가지고 천하 장수 골리앗을 행해 나갑니다.
이스라엘의 온 군대는 숨이 칵칵 막히는 절박한 상황에서 이 모습을 참담한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상황은 천 번 싸워도 천 번 패할 수밖에 없는 100%의 불가능한 형편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람이나 상황을 바라보지 않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만 믿음으로 바라보고 나갑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담대하게 골리앗을 향해 믿음으로 외칩니다. “골리앗 이놈아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고 했습니다.
구구절절이 믿음의 고백입니다. 그러나 객관적인 입장에서는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만용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럼에도 믿음으로 바라보고 믿음으로 전진하고 믿음으로 물맷돌을 힘껏 던졌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윗을 보고 마치 강아지를 본양 너무 기가 막혀 웃던 골리앗의 이마의 급소에 정통으로 맞고 쓰러졌습니다. 다윗은 달려가서 골리앗의 칼을 빼서 그 목을 베었습니다.
하나님이 마른 막대기를 들어서 쓰시는 순간이요, 홍해 바다가 갈라지고 여리고성이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약속을 철저히 바라보고 믿음으로 나가는 자에게 이런 능력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 강원도 속초에서 10여 년간 ‘대동의원’을 운영하던 강원희라는 의사는 1982년도 갑자기 번성하던 병원 문을 닫고 선교사의 길을 떠나겠다고 하자, 노부모님과 식구들은 물론이고, 주변에 있는 모든 친지들이 눈물로 말렸습니다. 그러나 48세 한창 나의 고집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소신을 밝히기를 “아무 관계도 없는 UN군 병사들도 우리나라에 와서 피를 흘렸습니다. 이제는 우리도 남을 도와야지요.”라고 하면서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마침내 네팔로 떠났습니다. 간호사 출신 부인 최화순씨와 함께 처음 정착한 것은 네팔 제2의 도시인 포카리시였습니다. 그곳에서 부부는 국제선교단체 산하의 병원에서 의료활동을 펼쳤습니다. 말할 수 없이 열악한 환경이었습니다. 때로 피가 모자라 자기의 팔에서 직접 피를 뽑아 네팔인들에게 수혈하기도 하고 차가 다니지 못한 곳에는 왕복 10시간 걸어서 왕진을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네팔인들은 강원희 의사를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는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오직 하나님만 믿음으로 바라볼 때에 하나님이 그 때마다 강하게 붙들어 주심으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들이여 불리한 환경과 조건을 바라보지 마시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강하게 붙잡고 담대하게 믿음으로 순종의 좁은 길로 나감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입니다.
‘경외한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야레’인데 그 뜻은 ‘두려워한다. 존경한다.’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의 엄위하심에 대해서 대단히 어려워하면서도, 동시에 존경하는 자세를 말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존재로만 알지만 우리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했으나 동시에 하나님의 것을 진심으로 존귀하게 여기었기에 하나님 앞에 합당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자기 사위로 맞아 들였으나 다윗에 대한 인기가 자기보다도 10배나 더 높아지자 다윗의 쿠데타가 무서워서 여러 번 면전에서 창을 던지어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얼마든지 힘과 기회가 있었으나 사울을 향해 칼을 들지 않았습니다. 나라가 점점 도탄에 빠져서 온 백성들이 다윗이 왕이 되기를 갈망하였음에도 피해 다닐지언정 끝까지 반역의 칼을 들지 않은 것은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기름 부은 종을 해할 수 있으랴?’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사울 왕이 귀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은 왕이 된 후에 빼앗겼던 법궤를 찾아서 예루살렘에 들어올 때는 법궤 뒤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었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그 부인인 미갈이 비난하기를 “이스라엘 왕이 오늘날 어떻게 영화로우신 지 방탕한 자가 염치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날 그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라면 서 왕으로서 체신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그 때 다윗의 대답은 너무나 유명합니다.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저가 네 아비와 그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로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 한지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위해서는 한없이 낮아질지라도 그리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한 다윗을 하나님은 한없이 높이셨으나, 그러한 하나님 앞에 겸손을 비웃던 미갈은 한없이 버림받는 존재가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이여, 하나님의 것을 업신여기는 잘못을 범하지 마세요. 하나님의 날인 주일, 하나님의 물질인 십일조, 하나님이 맡긴 직책, 하나님의 교회와 교역자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귀하게 여기십시오, 그 때 하나님도 여러분을 귀하게 여기실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는 적은 일에 충성하는 자입니다.
다윗은 무엇보다도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이새의 집에 와서 사울 왕 대신에 왕으로 세울 인물을 여덟 아들 중에 선발할 때에 첫째 아들 엘리압을 보니 키도 크고 용모도 뛰어나서 마음에 들므로 왕의 후보로 기름을 부으려고 할 때에 하나님은 계시를 통해서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식으로 일곱 형제를 보았으나 하나님이 다 불합격을 내리셨습니다. 사무엘은 답답하여 아버지 이새에게 묻기를 “또 다른 아들이 있느냐”라고 물으니 막내가 있는데 지금 들에서 양을 치고 있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형들은 양들을 모두 동생에게 맡기고 택함을 받으려고 달려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아무 불평을 하지 않고 적은 일에 충성했습니다. 때로는 그 양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사자와 곰과 싸우며 피를 흘릴 정도였습니다.
그러한 다윗을 하나님은 택하심으로 사무엘은 그에게 기름을 붇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외모를 봅니다. 인물, 학벌, 재산 유무, 예의범절을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특별히 하나님이 맡기신 일이 아무리 적을지라도 충성을 다하는가, 아닌가, 중심을 다해 충성하는가, 안 하는가를 보시고 더 큰 일을 맡기십니다. 작은 일에 중심을 다해 충성하는 자가 큰일을 맡기어도 충성을 다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적은 일에 충성을 다하지 않는 자는 아무리 큰일을 맡기어도 충성하지 않습니다. 과연, 다윗은 후에 아무리 큰일을 맡기어도 충성을 다했습니다. 왕이 된 후에도 전쟁터에서 앞장을 설 정도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아무리 적은 일이라도 최선을 다해 보십시오. 특히 교회에서 맡기는 일, 즉, 교사나 찬양대, 혹은 기관 임원이라도 최선을 다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의 인생을 반드시 책임을 져 주십니다.
■ 윌리암 부드는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고 일찍 세상을 떠나시므로 가난 속에 성장했습니다. 저는 학교도 중퇴하고 전당포에서 취직하여 심부름꾼으로 가사를 돌보아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최선을 다했고 틈틈이 나가서 열심히 노방 전도를 했고 빈민가에 나가서 축호전도도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위해 중심을 다해 충성을 다하는 윌리암 부드를 하나님은 점점 더 강하게 쓰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구세군의 창설자가 되어 세계적인 사역자로 만드셨던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이여, 젊은 제직들과 청년 여러분들이여, 하나님이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직장에서나 무슨 일을 맡기든지, 크거나 적거나 중심을 다해 충성하심으로 하나님이 점점 큰 달란트를 맡기시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는 덕이 있는 인물입니다.
다윗의 큰 장점은 대단히 후덕한 인물이라는 데 있습니다. 사울 왕 이후에는 사울을 지지하는 이스라엘과 다윗을 지지하는 유다 두 나라로 거의 갈라진 상태였습니다. 이러한 갈라진 민심을 하나로 묶어서 통일된 이스라엘을 만든 것은 총칼로 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다윗의 덕으로 된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이 끝까지 자기를 죽이려고 면전에서 창을 던지는 잔혹한 일을 해도 끝까지 참아 냈습니다.
나중에는 사울이 전쟁터에서 화살에 맞아 중상을 당했을 때에 병기든 자에게 자기를 죽여 달라고 애원해서 결국 죽이었고 그 사실을 다윗에게 고하자 옷을 찢으며 저녁때까지 금식하며 슬피 울었고 다윗은 하나님의 기름 부은 종인 사울을 죽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신하를 죽여 버렸습니다. 또한 삼하3:31에서 보면 다윗의 장군인 요압이 아주 비열한 방법으로 사울왕의 장군인 아브넬을 죽였을 때 함께 있는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띠고 아브넬 앞에서 애통하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윗왕이 상여를 따라가서 아브넬을 헤브론에 장사하고 아브넬의 무덤에서 소리를 높여 울고 백성도 다 울었다고 했습니다. 또한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죽인 자도 붙들어다가 사형을 시키고 이스보셋을 성대히 장례식을 치러 주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다윗의 후덕한 모습이 온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하게 함으로 마침내 모든 지파가 하나가 되어 다윗을 왕으로 추대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만약에 다윗이 자기의 막강한 군사력과 자기의 인기만 믿고 사울 왕과 그 족속들과 그 부하들을 다 멸절시키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쉽게 왕이 되어 큰 권세를 누리었는지 모르지만, 후에 이스라엘 민족의 마음을 사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사울을 하나님의 기름 부음 종으로 높이었고 후대함으로 반대편에 있던 모든 백성의 마음을 살 수 있었고 또한 자기도 기름 부음 받은 종으로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도록 영적 권위를 가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한 마디로 다윗은 온유한 사람이었으므로 땅을 기업으로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맑은 호수에 고기가 모여들지 않습니다.
너무나 옳고 그른 것을 따지는 사람에게는 사람이 모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흐릿해 보이는 호수에 오히려 고기가 많은 것처럼 남의 허물과 남의 잘못을 눈을 감아 주는 이, 어찌 보면 좀 경우가 없어 보이는 자 밑에 많은 사람이 모이는 법입니다. 삼국지에 보면 재주가 많고 똑똑한 조조 밑에는 인재들이 왔다 가도 다 떠나가지만, 유비는 재주도 별로 없고 명민하지 못하나 후덕함으로 제갈량이나 방통 같은 인재들이 꾸역꾸역 모여드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온유한 자, 후덕한 그릇이 됨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5.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는 회개에 능한 사람입니다.
인간은 완전하지 못합니다. 다윗은 다 훌륭하였으나 한 가지 큰 결점은 너무나 정력이 강한 탓인지 후처들이 많았습니다. 그것도 부족한지 어느 날은 신하 우리아의 아내까지 범하고 그 간음죄를 감추기 위해서 요압 장군에게 우리아를 최전방에 보낸 후 갑자기 퇴각하게 함으로 죽게 만드는 아주 비열한 살인죄까지 지었습니다. 다윗의 가장 큰 강점은 부하들과 백성들을 자기 목숨처럼 사랑하는 것이었는데 정력에 눈이 어두워지자 이런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른 것입니다.
그 때부터 다윗 정부는 권력과 인재군단에 누수 현상이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다윗의 식구들이나 부하들이 등을 돌리기 시작하는 것을 성경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단 선지자가 와서 사정없이 회개를 요구할 때 다윗은 그 선지자를 얼마든지 죽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과연 위대합니다. 그러한 나단 선지자의 직언을 듣자마자 그 즉시 회개를 시작하는 데 침상과 베개가 눈물로 적실 정도로 회개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회개한 죄는 용서를 받았으나 다윗이 뿌린 악의 씨는 나중에 자기가 걷어야 했습니다. 불의의 씨인 밧세바의 아이는 낳은 지 얼마 안 되어 죽는 비극이 생기었고 후에는 다윗의 아들인 암논이 이복누이인 다말을 성적으로 범하는 비극이 벌어지고 그 일로 인해서 다말의 오빠인 압살롬이 이복형인 암놈을 살인하는 비극이 생기었습니다. 더 나가서는 압살롬이 아버지를 향해 반란을 일으킴으로 비참하게 쫓겨 다니는 신세까지 되었던 것입니다.
다윗의 범죄로 가정과 나라가 큰 비극의 열매를 거두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철저히 회개한 결과, 가정과 나라가 다시 회복되게 하시고 아들 솔로몬을 통해서 부강국으로 만드시고 그 후손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오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합한 자는 회개에 능한 사람입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장기려 박사는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고 또한 성자 의사라는 말을 할 정도의 훌륭한 인생을 사셨습니다. 그렇게 그러한 인생을 산 비결은 그는 회개에 능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나의 이력서」라는 글에서 고백하기를 “나는 어려서 팽이 하나를 훔쳤다. 그 후 부흥회에서 ‘도적질한 죄를 회개하라.’는 말씀을 듣고 팽이 주인을 찾아가서 사과하고 변상했다. 그 후부터 남의 물건을 탐내지 않게 되었다. 나는 소학교 이 학년 때 담배를 피우다가 사촌형에게 꾸중을 듣고 회개한 후 지금까지 담배를 안 피운다. 나는 학생 때 울긋불긋한 바지가 좋아 보여 2원주고 사 입었다가 선생님께 꾸중을 듣고 후로는 모양을 내지 않게 되었다.”
“나는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속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으니 나의 전 인격을 그리스도께 바치고 그 뜻대로 살겠다고 결심하고 세례를 받은 것이 바로 내 인생관이 이루어진 때라고 믿고 있다.”고 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젊은 제직들과 청년 여러분이여,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기 위해 믿음의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적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 덕이 많은 사람, 회개에 능한 사람들이 다 되므로 하나님이 강하게 붙들어 주므로 성공적인 삶을 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