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시는 바꿔요 어제 같은 식탁은 맞지 않아요 초승달을 키우느라 뒷면이었죠 숨기고 싶은 오늘의 숲이 자라요 깊어지는 동굴이 있죠 전신거울 앞에서 말을 터요 알몸과 알몸이 서로에게 내 몸에서 나를 꺼내면 서로 모르는 사람 우리는 우리로부터 낯설어지기 위해 자라나요 엄마는 앞치마를 풀지않죠 지난 앨범 속에서 웃어야지 하나, 둘, 셋, 셔터만 누르고 있죠 식탁을 벗어나요 눈 덮인 국경을 넘어 광장에서의 악수와 뒤집힌 스노우볼의 노래, 흔들리 는 횡단열차의 끝없이 이어지는 눈사람 이야기, 말을 건너오는 눈빛들과 기울어지는 종탑과 나무에서 나무와 나무까지 밝아지는 모르는 색으로 달을 채워요 접시에 한가득 마트료시카는 처음 맛본 나의 목소리 달 아래, 내가 나를 낳고 나는 다시 나를 낳고 나를 낳고 내가 누구인지 누구도 모르게 --------------------------‐--------------------------------
접시는 바꿔요 어제 같은 식탁은 맞지 않아요
시작이 신선합니다. 다른 것은 그대로 두고 접시라도 바꾸라고 합니다. 접시란 무엇인가를 담는 일종의 그릇이잖아요. 그러니 '접시'를 '마음'이라고 할까요, 아니면 어떤 '자세'나 '태도'라고 할까요? 어제의 나에서 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제목인 '변성기'가 가만 보면 바뀌어야 하는 것이지요. 마음이나 몸은 그대론데 뭔가를 바꿔야 하는 시점이죠.
초승달을 키우느라 뒷면이었죠 숨기고 싶은 오늘의 숲이 자라요 깊어지는 동굴이 있죠 전신거울 앞에서 말을 터요 알몸과 알몸이 서로에게 내 몸에서 나를 꺼내면 서로 모르는 사람 우리는 우리로부터 낯설어지기 위해 자라나요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른 사람일까요? 어제의 나를 지우고 오늘의 나를 거울에 비쳐보면 나는 다른 사람일까요? 시인은 '서로 모르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의문을 품어요. '우리는 우리로부터 낯설어지기 위해 자라나요'라는 부분에서 보면 이제 나에서 우리로 시선이 확장됩니다. 내가 변하면 타인도 낯설어질까요? '자라나요'가 '자랍니다'로 해석이 되는지 아니면 의문형 '자라나요?' 인지가 궁금해집니다.
엄마는 앞치마를 풀지않죠 지난 앨범 속에서 웃어야지 하나, 둘, 셋, 셔터만 누르고 있죠
이제 어머니로 차원이 확장됩니다. 어머니란 존재는 사실 저 위의 '초승달을 키우느라 뒷면'이었던 분일 수도 있겠어요. 그런데 어머니는 늘 앞치마를 하고 자신의 존재를 지워가던 분이셨어요. 사진 어디에도 드러나지 않는 있지만 없는 존재.
식탁을 벗어나요 눈 덮인 국경을 넘어 광장에서의 악수와 뒤집힌 스노우볼의 노래, 흔들리 는 횡단열차의 끝없이 이어지는 눈사람 이야기, 말을 건너오는 눈빛들과 기울어지는 종탑과 나무에서 나무와 나무까지 밝아지는 모르는 색으로 달을 채워요 접시에 한가득
그런 어머니가 동유럽 여행을 떠나셨을까요? 눈 덮인 국경이나 광장, 횡단 열차는 러시아를 종주하는 열차인 것 같습니다. 뒷연에 마트료시카를 끄집어 내기 위해서 '나무에서 나무와 나무'를 불러온 것 같습니다. 나무 인형 마트료시카는 꺼내면 또 인형이 들어있죠. 계속 내가 나오고 또 내가 나옵니다. 이제 어머니는 식탁을 벗어나 마음 한가득 새로운 것들을 채워 넣습니다.
마트료시카는 처음 맛본 나의 목소리 달 아래, 내가 나를 낳고 나는 다시 나를 낳고 나를 낳고 내가 누구인지 누구도 모르게
나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싶어 하는 마트료시카일까요? 여인의 일생일까요? 할머니에게서 나에게로 또 딸에게로 이어지는 역사. 개인에서 출발해서 우리로, 다시 여성으로 의미를 확장시켜 갑니다. 이제 여성들은 앞치마를 벗어던지고 식탁을 벗어나야 할 때라고 주장하는 걸까요?
시를 감상하는 일은 독자의 몫입니다. 우리는 마음대로 상상할 수 있는 권리도 있고 자격도 있습니다. 변성기가 몸과 마음이 그대로 인체 소리만 변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몸과 마음이 더불어 함께 변합니다. 어머니의 일생도 앞치마를 벗어던지고 저 멀리 러시아에서 동유럽으로 가는 횡단열차에 오르는 모험을 원하시겠죠. 여성들의 삶이란 역사에 있어서 너무도 중요한 출산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새삼 그들이 존경스럽습니다. 추상적인 시라서 어렴풋이 내용이 다가올 뿐입니다. 그러나 읽고 또 읽다 보면 뭔가 전달하려는 의미를 알게 됩니다. 물론 이 모든 내용은 제 개인의 주관에서 오는 상상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