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 사로잡힌 반청복명의 지사들
지부 오지영은 인사를 하고 말했다.
[비직은 대인께 알릴 비밀의 군정(軍情)이 있습니다.]
위소보는 '비밀의 군정'이란 말을 듣고서야 그를 안으로 들어오게 했 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가 말하는 것이 만일 비밀스럽고 큰일이 아니라면 볼기를 때려줘야 지.) 그는 안쪽 서재로 가서 먼저 자리에 앉았다. 오지영에게는 앉으라는 말 도 없이 다짜고짜 물었다.
[무엇이 비밀의 군정이란 말이오?]
오지영은 말했다.
[대인께서는 좌우의 사람들을 모두 물리쳐 주십시오.]
위소보는 손을 내저어 친위병들을 물러가도록 하였다. 오지영은 그의 앞에 이르더니 말했다.
[흠차대인, 이 일은 실로 엄청난 일입니다. 대인께서 상관하신다면 커 다란 공로를 세우시는 것입니다. 비직 또한 대인의 덕을 입게 되는 것 이지요. 비직은 무태와 번태 두 대인에게 먼저 알리지 않는 것이 좋다 고 생각합니다.]
위소보는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큰일인데 그와 같이 중요하단 말이오?]
오지영은 말했다.
[대인께 말씀드립니다. 그야말로 황상의 타고나신 복이 크시고 대인께 서 타고나신 복이 크셔서 비직이 이처럼 커다란 소식을 수소문해 내기 에 이른 것 같습니다.]
위소보는 코웃음치며 말했다.
[그대 오 대인 역시 타고난 복이 컸구려.]
오지영이 말했다.
[감당할 수 없습니다. 비직은 황상의 은혜를 입고 흠차대인으로 추대된 몸이라 그야말로 밤낮으로 어떻게 그 커다란 은혜에 보답할까 하고 생 각하고 있던 차입니다. 어제 선지사 밖에서 대인을 모시고 작약을 구경 하고 난 이후 대인의 이야기하시는 풍채를 생각할 때마다 마음속으로 탄복하고 우러러보는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매일같이 대인의 일을 돌봐드리며 시시각각 대인의 가르침을 받았으면 하고 바랄 뿐이었습니다.] [그것은 매우 좋은 일이오. 그대는 지부 노릇도 할 필요가 없소. 내가 보기에 그대는 매우 총명하니 차라리....차라리....]
오지영은 크게 기뻐서 재빨리 인사를 하고는 말했다.
[대인께서 키워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위소보는 미소지었다.
[차라리 나를 위해 우리 집의 문지기가 되도록 하시오. 그렇지 않을 때 는 나를 위해 교자를 떠메도록 하시오. 나는 매일같이 이 집을 나서는 사람이니 그렇게 된다면 나를 매일 볼 수 있지 않겠소? 하하하....]
오지영은 매우 화가 나 안색이 약간 변했으나 곧 웃음을 지으며 말했 다.
[그것 참 더 말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군요. 대인을 위해서 문지기가 된다면 그야말로, 양주에서 지부 노릇을 하는 것보다 훨씬 낫지요. 비 직은 평소 한가한 사람들을 내보내 곳곳에 수소문을 하고 있습니다. 그 래서 만약에 누군가 마음속으로 반역의 뜻을 품어 황상을 비방하거나 대신들을 모함한다면 비직은 그 즉시 알게 됩니다. 요사한 말로 사람들 을 선동하는 자가 있으면 비직은 언제나 엄히 처벌을 한답니다.]
위소보는 '어' 하고, 속으로 이 사람은 문지기나 가마꾼이라는 한 마디 정도만 언급해도 슬쩍 말을 돌릴 줄 알 만큼 벼슬길의 요령을 깊이 터 득하고 있으니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오지영은 다시 말했다.
[만약에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사는 일꾼들이나 시정잡배들이라면 터 무니없이 말을 몇 마디 지껄인다 하더라도 큰 해는 없지만, 가장 경계 해야 할 사람들은 바로 선비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시를 짓고 문장을 쓰는 데 종종 옛날의 일을 빌어 조정을 풍자하지요. 보통사람들은 이를 보고도 종종 그들이 옛날 일을 빌어 오늘날을 풍자하고 있는 악독한 행 위라고 생각하지 못한답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아 이해되지 않는다면 해가 될 것이 없지 않소?]
오지영은 말했다.
[그렇지요. 하지만 역시 따지고, 보면 그 마음은 죽이고 싶도록 간절한 것이 아닙니까? 이와 같은 대역무도한 시와 글이 천하에 독을 입히도록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는 소맷자락 안에서 시를 베껴쓴 표본을 들고 두 손으로 바치며 말했 다.
[대인께서는 이것을 보십시오. 이것은 비직이 어제 얻게 된 한 권의 시 집입니다.]
만약 그가 소맷자락에서 한 웅큼의 은표를 꺼냈더라면 위소보는 대뜸 얼굴을 바꾸고 그를 대했으리라. 그러나 한 권의 책자인 것을 보고 이 미 실망을 하였는데 다시 시집이란 말을 듣게 되자 대뜸 길게 하품을 했다. 그리고 손을 뻗쳐 받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외면하고 아랑곳하 지도 않았다. 오지영은 매우 겸연쩍어했으며 두 손으로 시집을 받쳐들 고 있다가 천천히 말했다.
[어제 술 좌석에서 어떤 여자가 한 수의 해로운 시를 얻게 되었는데 그 시는 바로 양주의 시골 여자들을 묘사한 것이었죠. 그런데 대인께서는 그 시를 듣고 매우 불쾌히 여겼습니다. 비직은 그래서 그 사람이 쓴 시 를 가지고 오게 해서 살펴본 결과 그 시 가운데 아니나다를까 대역무도 한 구절들이 적잖이 있는 것을 발견하었습니다.]
위소보는 온 몸이 노곤한 듯이 말했다.
[그래서?]
오지영은 책자를 뒤적이더니 한 수의 시를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대인, 이것을 보십시오. 이 시의 제목은 흥무동포가(洪武銅疱歌) 라고 합니다. 이것은 사신행(査愼行)이 쓴 것인데 명나라 주원장이 사 용한 구리로 만든 대포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위소보는 그 말을 듣자 약간 흥미가 일어나 오지영에게 물었다.
[주원장 역시 대포를 쏜 적이 있소?]
오지영은 말했다.
[예, 예. 지금 우리 대청나라의 거룩하신 천자께서 제위에 계신데 이 사(査)가는 시를 지어 주원장의 구리로 만든 포를 노래하며 칭송하니 그야말로 여러 사람들로 하여금 전 명나라를 생각토록 하는 것이 아니 겠습니까? 이 시는 주원장의 위풍을 과장되게 칭찬하고 있는데 이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며 최후의 네 마디는 다음과 같은 말까지 하고 있습니 다. '아래견여형극중(我來見汝荊棘中), 병여강산작빙조( 與江山作憑 弔), 금적마사총루류(金狄摩死總淚流) 유정쟁인장등조(有情爭忍長登 眺)' 그러니 마음속으로 다른 뜻을 품고 있다는 것이 명백합니다. 우리 대청나라는 하늘이 점지한 운세를 이어받아 주씨들이 이끌어 온 명나라 를 쳐부쉈습니다. 따라서 백성들이 즐거워하고 기뻐해도 모자랄 판인데 이 사람은 어째서 주원장이 사용한 일 문의 대포를 보고는 강산을 조상 하고 눈물을 흘려야 한단 말입니까?]
위소보는 말했다.
[이 구리 대포는 지금 어디에 있소? 가서 그것을 구경하고 싶구려. 아 직도 쓸 수 있소? 황상께서는 대포를 매우 좋아하신다오.]
오지영은 말했다.
[시에서는 구리 대포가 형주(荊州)에 있다고 하더군요.]
위소보는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양주에 없는데 그대는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는 것이오? 그대가 맡고 있는 것은 양주의 지부이지 형주의 지부가 아니지 않소. 나중에 그대가 형주의 지현(知縣)이 되어 가면 그 구리 대포를 살펴보시도록 하시오.]
오지영은 깜짝 놀라 형주의 지현이 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벼슬이 강등 하는 일인지라 이 일을 더이상 들먹여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즉시 시집을 소매 안에 갈무리하고 다른 두 권의 책을 꺼내며 말했다.
[흠차대인, 그 사씨의 시는 그저 약간 적절하지 못한 것이지만 대인께 서 그토록 은혜를 베푸시니 더 조사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이 두 권 의 책은 결코 못 본 척할 수 없으실 것입니다.]
위소보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것은 또 어떤 작자의 것이요?]
오지영은 말했다.
[한 권은 사윤황이 지은 국수록(國壽錄)인데 이 안의 글들은 모두 청나 라를 반대하여 반역을 일으키는 것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 권은 고염무(顧炎武)의 시집인데 위로 군주도 없고 윗사람도 없는 것처럼 그 야말로 무법천지로 이를 논하고 있습니다.]
위 소보는 속으로 놀랐다. (고염무 선생과 우리 사부님은 모두 살귀대희의 총군사이시다. 그의 책 이 어쩌다가 이 벼슬아치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을까? 그 책에 우리 천 지회에 대해서 언급한 대목은 없을까?) 그는 물었다.
[책 안에 무슨 내용이 씌어 있는지 자세히 말해 보시오.]
오지영은 위소보가 갑자기 관심을 나타내는 것을 보고는 정신이 번쩍 들어서 국수록을 펼치며 말했다.
[대인께 아룁니다. 이 책은 청나라를 반대하는 반역자들을 모조리 충신 이고 의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한 편의 병부주사증감찰어사사자전 (兵部主事贈監蔡御史査子傳)에서는 그의 육촌 형제 사미계(査美繼)가 우리 대청나라에 항거하는 역적질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즉 그가 어떻 게 반역도들과 결탁하여서 왕사(王師)와 적이 되어 싸우게 됐는가를 논 하고 있습니다.]
그는 손가락으로 문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대인, 보십시오. 그는 반역도들을 의사라고 칭하고 있으며 우리 대청 나라의 왕사를 죽여야 한다고 하니 이야말로 죽여 마땅한 일이 아니겠 습니까?]
위소보는 물었다.
[고염무의 책에는 또 무어라 적혀 있소?]
오지영은 국수록을 놓고 고염무의 시집을 들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 다.
[이 사람이 지은 시는 모두 모반과 반역의 언어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시의 제목은 강호(江湖)라고 하는데 명백하게 우리 대청나라를 비방 하는 것입니다.]
그는 손가락으로 시구를 가리키며 읽어 내려갔다.
아국금구본무결(我國金 本無缺) 난지초생자이얼(亂之初生自夷孼) 징병이건주(徵兵以建州) 가향이건주(加餉以建州) 토사일반서촉우(土司一反西蜀憂) 요민일창산동수(妖民一唱山東愁) 이지신주반류적(以至神州半流賊) 수기효실유이추(誰其嚆夫由夷酋) 사입교근린제로(四入郊禁躪齊魯) 파읍도성불가수(破邑屠城不可數) 할복절장(割腹絶腸) 절경접이(折頸摺 ) 이택량시(以澤量屍) 행이득수(幸而得囚) 거내위이(去乃爲夷) 이구아아(夷口阿阿착치거아(鑿齒鋸牙) 건치기(建蚩旗) 승망거(乘莽車) 시천성지류혈(視千城之流血) 옹염여혜여화(擁艶女兮女花) 오호,이덕지잔여차(嗚呼夷德之殘如此) 이위천욕여지국가(而謂天欲與之國家)....
위소보는 손을 내저었다.
[더 읽을 필요 없소.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오지영은 말했다.
[대인께 아룁니다. 이 시는 우리 만주 사람을 오랑캐라 말하고 명나라 조정에서 건주(建州)의 만주 사람들과 싸움을 하기 위해서 할 수 없이 군사를 징집하고 군자금을 거두어들이게 됨으로써 천하가 매우 어지러 워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우리 만주 사람들이 성 안 사람들의 배 를 가르고 창자를 잘라서는 도살하다시피 죽였으며 미녀를 마구잡이로 강탈했다고 했습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랬었군. 미녀를 강탈한다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 아니겠소? 청나라 군사가 양주를 깨뜨렸을 때 많은 백성을 죽이지 않았소? 만약 그 일이 아니었다면 황상께서 어찌 양주에선 삼 년간 세금을 바치지 않아도 좋 다고 감해 주셨겠소? 고염무는 시를 꽤나 솔직하게 쓰는군.]
오지영은 깜짝 놀라 속으로 생각했다. (어린 나이라 무겁고 가벼운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구나. 이와 같은 말 들을 다행히 네가 했으니 망정이지 만약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왔고 내 가 이를 상주하게 된다면 너의 그 머리 위의 사모가 그대로 눌러 있을 것 같으냐?) 그러나 그는 위소보가 무척이나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아는 지라 감히 흠차대신과 맞설 용기를 내지는 못하였다. 그는 계속 '예, 예' 하고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대인께서는 정말 고견을 지니고 있어서 비직으로 하여금 확연히 깨우 치게 하는 바가 크옵니다. 이 한 수의 정중심사가(井中心史歌)는 역시 대인께서 가르쳐 주셔야겠습니다. 이 한 수의 시 처음 부분에는 한 편 의 기다란 서문이 있는데 정말 이만저만 억지를 쓰는 것이 아니었습니 다.]
그는 책자를 들고 고개를 흔들며 읽기 시작했다.
[숭정십일년동(崇禎十一年冬), 소주부성중승천사이구한사정(蘇州府城中 承天寺以久旱俟井), 득일함(得一函), 기외왈(基外曰) 대송철함경(大宋 鐵函經), 고지재중(錮之再重). 대인 이것은 우물에서 하나의 쇠상자를 찾았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쇠상자라고? 그 안에 금은보화라도 들어 있었소?]
오지영은 다시 읽어 내려갔다.
[중유서일권(中有書一卷), 명왈(名曰) '심사(心史)' 칭(稱) '대송고신 정사초백배봉(大宋孤臣鄭思肖百拜封), 사초(思肖), 호소남(號所南), 송 지유민(宋之遺民), 유문어지승자(有聞於志承者), 기장서지일위덕우구년 (基藏書之日爲德祐九年) 송이망의(宋已亡矣), 이유일야망진승상(而猶日 夜望陳丞相), 장소보통해외지병(張少保統海外之兵), 이득대송사백년지 토우(以復大宋三百年之土字). 대인, 고염무는 대만의 정씨 역적들이 해 외의 반란병들을 거느리고 와서 명나라의 토지를 희복해 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다시 읽어 내려갔다.
[이구호원어막북(而驅胡元於漠北), 지어통곡유체(至於痛哭流涕), 이도 지천지(而禱之天地), 맹지대신(盟之大神 ), 위기화전이(謂氣化銓移), 필유일일연이위하자(必有一日變夷爲夏者). 대인, 그는 우리 청나라 사 람들을 오랑캐라고 욕을 하고 있으며 우리들을 내쫓자고 선동하고 있습 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는 만주 사람이오?]
오지영은 말을 더듬거렸다.
[그건....그건....비직은 대청나라 황상의 신하로서 만주대인의 속하입 니다. 이것은 오로지 한마음 한뜻으로 만주를 위하는 일이기도 하지 요.]
그는 다시 읽어 내려갔다.
[어시군중지인견자무불계수경탁(於是郡中之人見者無不稽首驚託), 이순 무도원장공국유각지이전 (而巡撫都院張公國維刻之以傳), 우위소남립사 당(又爲所南立祠堂), 장기함사중(藏基函祠中), 미기이조국난(未幾而遭 國難) 일여덕우말년지사(一如德祐末年之事), 오호(嗚呼), 비의(悲矣)! 대인, 대청나라 군사들이 중원 안으로 들어와 백성들을 위로하고 죄를 벌하는 것을 고염무는 국난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또한 '오호 슬프도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의 마음 씀씀이는 물어 볼 것도 없지 않 습니까?]
오지영은 다시 읽어 내려갔다.
[기서전지북방자소(其書傳至北覩少), 이변고지후(而變故之後), 우다위 이불출(又多謂而不出), 불견차서자삼십여년(不見此書者三十餘年), 이금 복도지어부평주시(而今復도 之於富平朱氏). 석차서초출(昔此書初出), 태창수전군숙부시이장(大倉守嶺君肅賦試二章), 곤산귀생장화지팔장(崑 山歸生莊和之八章),급절동지함(及浙東之陷),장공주귀동양(張公走歸東陽 ), 부지중사(赴池中死). 전군후지회외(嶺君逅之每外), 졸어랑기산(卒於 琅琦山). 귀생갱영조명(歸生更名祚明), 위인우개기격렬(爲人又慨氣鵑 烈), 역종궁아이몰(亦終窮餓以沒). 대인, 이 세 사람의 반역자는 모두 우리 대청나라의 신하로 복종하지 않는 난민들입니다. 일찍 죽어 다행 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온 집안 사람들이 멸족을 당하게 되었을 것입니 다....]
오지영은 위소보를 쳐다보지도 않고 다시 읽어 내려갔다.
[독여부재(獨余不才), 부침어세(浮沈於世), 비년원지일왕(悲年遠之日 往), 치금망지유밀(値禁모媒之愈密)인, 그는 조정에서 반역과 소란을 일으키게 되는 문자를 조사하고 금하는 것이 더욱더 심해졌다고 했습니 다. 그런데 이 녀석은 놀랍게도 간에 털이 난 모양인지 두려워 하지 않 는군요....]
그는 다시 읽어 내려갔다.
[이견현사제(而見賢思齊), 독립불구(獨立不懼), 장발휘기사(將發揮基 事), 이시위인신처변지측언(以示爲人臣處變之測焉), 고작차가(故作此 歌).]
그의 책 읽는 소리를 들으며 위소보는 연신 하품을 하였다. 다만 고염 무의 책에 무엇이 쓰여져 있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에 꾹 참고 듣는 것 이었다. 마침내 그가 한 토막의 서문을 다 읽자 물었다.
[끝났소?]
오지영은 말했다.
[아래는 문장입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별 중요한 것 아니라면 읽을 필요 없소.]
오지영은 말했다.
[중요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중요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는 다시 읽었다.
[유송유신정사초 (有宋遺臣鄭思肖), 통곡호원이구묘(痛哭胡元移九廟), 독력난장한정부(獨力難將漢鼎扶), 고충욕향상루조(孤忠欲向湘累弔), 저 서일권칭(著書一卷稱) '심사(心史)' 만고차심심차리(萬古此心心枇理) 천심유정치철함(千尋幽井置鐵函), 백배단심금미사(百拜丹心今未死), 호 로종래무백년(胡虜從來無百年), 득봉성조재개천(得逢聖租再開天).... 대인, 이 한 마디 '오랑캐는 한번도 백 년을 간 적이 없다'는 이 말은 정말 크게 죽어 마땅한 죄를 지은 것입니다. 그는 우리 대청나라가 나 라를 누리는 것이 백 년이 넘지 않으리라고 말하려 한 것입니다. 그리 고 한나라 사람들 중에서 무슨 성조(聖祖)가 나타나 다시 하늘을 연다 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늘을 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 청나 라를 거꾸러뜨린다는 것이 아닙니까?]
위소보는 말했다.
[나는 황상에게서 들은 적이 있소. 대청나라에서 백성들을 잘 대해주기 만 한다면 이 강산을 편안하게 차지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을 때는 빈말 로 천 년, 만 년 부르짖는다고 하더라도 헛된 노릇이라고 말씀하셨소. 그리고 외국 사람으로서 탕약망(湯若望)이란 사람이 있는데 그는 지금 천감감정(天監監正)에 있소. 그대는 알고 있소?]
오지영은 대답했다.
[예, 비직도 들은 바가 있습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 사람은 한 권의 역서를 지었는데 이백 년을 계산했소. 그런데 누가 그를 고자질하여 말하기를 대청나라는 만 년이나 누리게 될 것인데 어 째서 이백 년밖에 혜아리지 않느냐고 반문하였소. 당시 국정을 뒤흔들 던 사람은 오배였는데 그는 멍청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이라 놀랍게도 그의 목을 자르겠다고 했소. 다행히 황상께서는 거룩하시고 영명하시어 오배를 크게 한 번 꾸짖고 또 고자질한 사람의 목을 잘랐을 뿐만 아니 라 온 가족을 몰살시켰소. 황상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은 누군가 좋은 사람을 모함하는 것이오. 즉 대청나라가 백 년 천하이고, 이백 년 천하 라는 헛소리를 해서 사람을 해쳐서는 안 된단 말이오. 황상께서는 진정 으로 훌륭한 관리라면 반드시 백성을 사랑하고 조정을 위해 힘써 책임 을 다해 일을 처리해야 한다고 하셨소. 그리고 다른 사람을 무고한답시 고 언제나 시나 문장에서 잘못된 것을 꼬집어 내는 사람은 바로 계란에 서 뼈다귀를 찾는 자로 그야말로 커다란 간신이라 하셨소. 그리고 나에 게 분부하시길 그와 같은 녀석을 만나게 되면 즉시 묶어서 목을 자르라 하셨소.]
위소보는 오로지 고염무를 변호할 생각밖에 없었다. 또한 오지영이 자 기에게 고자질을 하다가 안 되면 다시 다른 관리에게 나가서사건을 일 으킬까 봐 말 한마디 한마디에 말투와 얼굴 표정을 엄숙하게 가다듬어 오지영에게 겁을 주었다. 그가 차후로는 다시 이 일을 들먹이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그는 오지영이 지부가 된 것은 바로 장정룡이 편찬하 고 감수한 『명사집략』에 청나라 조정에 대한 불경스러운 구절이 있다 고 고자질해서 얻은 벼슬이란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원래 문자옥을 일 으켜 부귀공명을 누리고자 하는 것은 이 사람이 특기로 삼는 것이기도 했다. 이번에 오지영은 고염무와 사이황 등의 시문 가운데에서 잘못된 점을 찾자 기쁨을 금치 못하고 그야말로 하늘이 자기에게 복을 내리시어 다 시 세 계급이나 오르게 되었다고 좋아했다. 그런데 흠차대인이 뜻밖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는 삽시간에 전신이 식은땀으로 젖는 걸 느 꼈다. (내가 고자질한 명사 사건은 오배 대인이 처리한 것이다. 오배 대인이 황상에게 파면당하고 중한 처벌을 받은 것을 보면 황상의 성격은 확실 히 오배 대인과는 완전히 다른 모양이다. 이거야말로 정말 큰일났구 나.) 강희가 어떻게 오배를 잡았건, 그것이 별로 영광스럽지 못하다는 것은 모두 잘 알고 있었다. 대신들은 그렇기 때문에 황상의 뜻을 짐작하였고 벼슬길에 있는 사람들은 그와 같은 일을 들먹이는 사람이 매우 적었다. 오지영은 벼슬이 높은 것도 아니었고 직책도 보잘것없었다. 더군다나 외지의 주현(州縣)에서 벼슬을 하고 있었던지라 한평생 유일하게 그를 알아준 오배 대인이 바로 이 대인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을 모르 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혼비백산하고 말았으리라. 위소보는 그의 안색이 흙빛이 되어 벌벌 떠는 것을 보고 속으로 기뻐하며 물었 다.
[다 읽었소?]
오지영은 대답했다.
[이 한 수의 시는 아직도....아직도....절반이나 남아 있습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아래서는 무엇을 말하고 있소?]
오지영은 전전긍긍하며 읽었다.
황하기청인불대(黃河己淸人不待) 침침수부유광채(沈沈水府留光彩) 홀견기서출세간(忽見奇書出世間) 우경호기만강산(又驚胡騎滿江山) 천지세도장반복(天知世道將反覆) 고출차서시신혹(故出此書示臣鵠) 삼십여년재견지(三十餘年再見之) 동심동조복동시(同心同調復同時) 육공이향애문사(陸公已向厓門死) 신국인구괘연시(信國捐軀卦燕市) 석일음시조고인(昔日吟試弔古人) 유황낙목수산귀(幽篁落木愁山鬼) 오호(嗚呼) 포황지배하기다(蒲黃之輩何基多), 소남견차당여하(所南見此當如何)?
그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 읽어내려갔고 감히 한 마디의 해설도 덧 붙이지 못했다. 그리고 간신히 다 읽고 나자 책장은 땀방울로 흠뼉 적 셔져 버렸다. 위소보는 웃었다.
[그것은 대단한 게 아니군! 무슨 산귀신(山鬼)과 무슨 얼굴이 누런 노 파(黃婆)라니 꽤나 재미있군.]
오지영은 말했다.
[대인에게 아룁니다. 시 속의 포황(蒲黃) 두 자는 얼굴이 누런 노파가 아니고 송나라 조정에서 원나라 조정으로 투항을 하여 대관이 된 포수 경(蒲壽庚) 황만석(黃萬石)을 가리키는 것으로써 그것은 한나라 사람이 대청나라의 관리를 하는 것을 풍자한 것입니다.]
위소보는 안색을 굳히고 외쳤다.
[내가 얼굴이 누런 노파라면 바로 얼굴이 누런 노파야! 그대 마누라의 얼굴이 싯누런가? 그 누가 시를 지어 노파를 칭송하는데 그대가 어째서 불평이란 말인가?]
오지영은 한걸음 물러나서는 두 손을 벌벌 떨었다. 그 바람에 땀방울에 젖은 시집이 땅에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말했다.
[예, 예, 폐직이 죽을죄를 졌습니다.]
위소보는 더욱더 큰소리로 호통을 내질렀다.
[당돌한 것 같으니! 나는 삼가 황상의 거룩하신 유시를 받들어 너를 깨 우쳐 주려 하고 있다. 그대는 조그만 관리에 불과한데 감히 나의 앞에 서 물건을 던지고 성질을 부리는가? 그대가 황상의 거룩하신 유시를 업 신여기는 것, 이것은 반란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인가?]
오지영은 두 무릎을 땅바닥에 끓고는 연신 큰절을 하며 말했다.
[대....대인,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소인이 멍청한 것을 용서하십시 오.]
위소보는 냉소했다.
[그대가 나에게 물건을 던지고 신경질을 부린 것은 문제가 되지않아. 흠차를 모욕하고 소리를 내는 죄를 짓는 건 기껏해야 무겁게 되면 머리 를 자르게 될 것이고, 가볍게 되면 쫄병이 되겠지. 그것이야말로 작은 일이지.]
오지영은 쫄병이 되고 머리를 잘리는 것보다 더욱 무서운 일이 있다는 말에 기겁을 하여 연신 큰절을 해대며 말했다.
[대인께서는 넓으신 아량을 베풀어 주십쇼. 소....소....소인은 죄를 알았습니다.]
위소보는 호통을 내질렀다.
[그대는 황상의 그러하신 유시를 업신여기니 그럴 수가 있는가? 그대의 마누라, 작은마누라, 아들, 딸, 장모, 고모, 하녀, 정부, 모조리 끌고 나가서 목을 베게 될 것이다.]
오지영은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그 바람에 이빨이 드드득 마주쳐 말을 잇지 못했다. 위소보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다시 호통쳐 물었다.
[고염무란 사람은 지금 어디 있는가?]
오지영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대....대인께 말씀드립니다. 그는....그는....그는 지금....]
오지영은 이빨이 혓바닥을 깨무는 바람에 말을 똑똑히 할 수 없었다. 한참 후에 그는 전전긍긍하다가 말했다.
[비직은 당돌하게도 고염무와 그 사가....그리고....그리고 한 명의 여 가를 모조리....모조리 지부의 아문에 감금하고 있습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는 고문을 했는가? 그들은 뭐라고 말했지?]
오지영은 말했다.
[비직은 그저 아무렇게나 몇 마디 물어 보았습니다만 그들 세 사람은 아무것도 실토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들이 정말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단 말인가?]
오지영은 말했다.
[안....안 했습니다. 하지만....하지만 사가의 몸에서 한 통의 서신을 찾아냈는데 무척 중대한 것입니다. 대인께서 한번 보십시오.]
그리고 그는 몸에서 또 하나의 조그만 베로 싼 것을 꺼내 펼쳤다. 안에 는 한 통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그는 두 손으로 바쳤다. 위소보는 받 지 않고 물었다.
[또 무슨 시고 문장이란 말인가?]
오지영은 말했다.
[아닙니다. 이것은 광동의 제독 오....오륙기가 쓴 것입니다.]
위소보는 광동의 제독 오륙기라는 말에 깜짝 놀라 물었다.
[오륙기도 시를 지을 줄 아는가?]
오지영은 말했다.
[아닙니다. 오륙기는 밀모(密謨)하여 반란을 꾀하고 있습니다. 이 편지 는 바로 무쇠와 같은 증거물이 될 것인즉 그는 다시는 억지를 쓸 수 없 을 것입니다. 비직이 방금 말한 은밀한 군정과 큰 공을 세우게 되었다 는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입니다.]
위소보는 오, 하고 부르짖었다. 오지영은 다시 말했다.
[대인께 알립니다. 독서하는 선비들이 시를 쓰고 문장을 쓰며 또한 반 역의 말을 조금 한다는 것은 대인의 영단으로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 신 말씀에 폐직은 무척 탄복하고 있습니다. 흔히 선비가 반란을 일으키 면 삼 년이 가도 성공하지 못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짐작컨대 커다란 화근이 되지 못할 것이라 여겨집니다. 하지만 오륙기는 한 성의 병부 (兵符)를 쥐고 있습니다. 그가 군사를 모으고 반란을 일으키려고 하는 데 만약 선수를 써서 제압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그것이야말로 큰일이 나는 일이지요.]
오륙기가 반란을 일으키려고 했다는 대목에서 그의 입놀림은 대뜸 영활 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줄곧 땅바닥에 엎드려 있었는데 위소보의 얼굴 이 어두워졌다 밝아졌다 하는 모습을 보고 이 일에 관심이 많은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위소보는 흥, 하고 그를 한번 노려보았다. 오지영은 다시 깜짝 놀라 재빨리 꿇어 엎드렸다. 위소보는 말했다.
[이 편지에 무엇이라고 적혀 있는가?]
오지영은 말했다.
[대인에게 아룁니다. 편지의 글은 매우 은근하게 씌어 있습니다. 그는 서남쪽에서 큰일이 벌어지게 될 것인데 바로 대장부가 큰 공을 세우고 기업을 일으킬 때라고 했습니다. 그는 사씨 성을 가진 사람에게 광동으 로 와서 가르침을 베풀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편지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중산(中山), 도모하고자 하고 천하의 평화를 얻고자 하는 장거에는 청전(靑田) 선생이 계셔서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면 공을 이룰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것은 정말 틀림없이 반역을 꾀하는 편지입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는 또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는구나. 서남쪽에 큰일이 있다는 것이 무슨 큰일인지 알고 있는가? 그대는 조그만 벼슬아치로서 어찌 황상과 조정의 기밀을 안다고 하지?]
오지영은 말했다.
[예, 예. 하지만 그는 편지에서 분명히 반란을 일으키겠다고 말하고 있 으니 진정 소홀히 보아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위소보는 편지를 받아서 편지지를 꺼냈다. 그 편지에는 복숭아씨만한 큰 글자가 씌어 있었는데 먹을 매우 진하게 갈았고 필획 또한 거칠기 짝이 없었지만 그로서는 역시 한 자도 알 수가 없었다.
[편지에는 반란을 일으킨다고 말한 곳이 없는 것 같군.]
오지영은 말했다.
[대인께 알립니다. 반란을 일으키겠다는 말은 물론 공공연히 쓰는 것이 아닙니다. 오륙기가 중산왕(中山王), 개평왕(開平王)이 되고자 하는데 그 사가를 청전 선생으로 삼는다는 것은 바로 반란을 일으키려는 것입 니다.]
위소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벼슬하는 사람 가운데 어느 누가 왕에 봉해지고 공에 봉해지고 싶지 않겠소? 그대는 그럴 생각이 없단 말이오? 이 오군문(吳軍門) 의 공로는 매우 크오. 그가 다시 조정을 위해 커다란 공을 세우게 되면 황상께서 그를 한 사람의 왕야로 봉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인데 이것이 야말로 충성스런 일이 아니겠소?]
오지영은 더욱 겸연쩍어져서 속으로 생각했다. (너같이 무식한 잡배와는 정말 무슨 말도 제대로 할 수가 없구나. 나는 이미 그대의 비위를 거슬리게 하였는데 만약 이 일에서 공을 세우지 않 는다면 나의 앞길은 보장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는 성질을 누르고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대인께 아룁니다. 명나라 조정에는 두 명의 대장군이 있는데 한 명은 서달이라 불리웠고 한 명은 상우춘이라 불리웠습니다.]
위소보는 어릴 적부터 이야기꾼으로부터 대명영렬전(大明英烈傳)을 들 어왔고 또 명나라 개국공신들의 이야기를 외우다시피 들어왔던지라 그 가 서달과 상우춘이란 두 분의 대장수를 들먹이자 흥미가 일어 웃으면 서 말했다.
[두 대장수는 그야말로 위풍당당했고 대단히 무서웠지 않소? 그대는 서 달이 어떤 무기를 사용했으며 상우춘은 또 어떤 무기를 사용했는지 아 시오?]
이렇게 되자 오지영은 그야말로 난처하게 되고 말았다. 그는 명사(明 史) 사건으로 출세길을 달리게 된 사람이라 명나라 조정의 역사에 대해 서는 아는 바가 많았지만 서달과 상우춘이 어떤 무기를 사용하였는지는 알지 못해 울상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비직은 재주가 없고.학문이 얕아서 정말 모르겠습니다. 대인께서 가르 쳐 주십시오.]
위소보는 의기 양양해져서는 미소를 지었다.
[그대는 그저 죽은 책만을 읽기 때문에 이런 일을 모른단 말이오. 내 그대에게 가르쳐 주지. 서 대장수는 송나라 조정 악비 악 나으리가 환 생한 것으로서, 한 자루의 혼철점강창(渾鐵點鋼槍)을 썼으며 허리띠에 는 열여덟 대의 낭아전(狼牙箭)을 두르고 있있는데 백 걸음 밖에서 버 드나무의 가지를 맞춰 꿰뚫을 수 있는 능력을 지녔으며 한 대의 화살도 헛되이 쏘지 않았다오. 상대장수로 말하면 삼국시대 연인(燕人) 장익덕 (張翼德)이 환생한 것으로서 한 자루의 장팔사모(丈八蛇矛)를 사용하였 는데 그야말로 만 명의 사람도 감당해 내지 못할 용기를 가지고 있었 소.]
그는 곧이어 서달과 상우춘 두 장수가 원나라 군사를 크게 깨뜨린 일을 이야기했다. 이런 이야기들은 모두 다 이야기꾼의 입으로부터 전해 들 은 것이었기 때문에 자연히 황당하기만 하고 진실된 면이 적었다. 오지 영은 바닥에 엎드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으므로 무릎이시큰거리고 아팠다. 그러나 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는 매우 재미있게 듣는 것처 럼 하지 않을 수 없었고 찬탄을 토해 내기도 해야했다. 그리고 그가 이 야기를 일단락 짓자 겨우 입을 열었다.
[대인께서는 정말 견문이 넓고 암기력이 뛰어나군요. 비직은 정말 탄복 했습니다. 그 서달과 상우춘 두 사람의 공로는 매우 커서, 죽은 이후에 주원장은 그들 두 사람을 왕으로 봉하였는데, 한 사람은 중산왕이 되고 한 사람은 개평왕이 되었지요. 주원장에게는 또 한 명의 군사(軍師)가 있는데....]
위소보는 그 말을 받았다.
[맞았소. 그 군사는 유백온(劉伯溫)으로서, 위로는 천문을 알고 아래로 는 지리에 통달했으며 앞으로는 삼천 년을 알고 뒤로는 일천 년의 일을 내다보고 계셨지.]
그는 도도하게 설명을 시작하더니 유백온이 어떻게 하여 하늘에 통하고 땅에 통하는 능력을 지니게 되었으며 어떻게 귀신도 예측할 수 없는 지 혜를 가지고 싸움을 했는가를 이야기했다. 오지영은 두 다리가 저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털썩 주저앉으며 웃음을 지었다.
[대인께서 하시는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습니다. 비직온 넋을 잃을 정도 입니다. 대인께서는 은혜를 베푸십시오. 비직이 일어나서 들으면 안 되 겠습니까?]
위소보는 웃었다.
[좋소. 일어나시오.]
오지영은 의자를 의지해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대인께 아룁니다. 오륙기의 편지에 나오는 청전 선생이란 바로 유기 (劉基) 유백온을 가르키는 것입니다. 그 유백온은 절강성 청전(靑田) 땅의 사람입니다. 오륙기 자신은 서달과 상우춘 같은 사람이 되고자 하 고 그 사가의 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유백온이 되도록 하려 는 것입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서달과 상우춘이 되고자 하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 아니겠소? 그 사가 가 유백온이 된다는 것은, 흥! 그와 같은 재간이 있다고는 볼 수 없을 걸? 아무나 유백온이 될 수 있을 것 같소? 유백온은 소병가(燒餠歌)에 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소. '손에 강철칼을 아혼아홉 자루 들고 오 랑캐를 모두 죽이고서야 손을 놓더라.' 하, 대단하지, 대단해!]
오지영이 말했다.
[대인께서는 정말 총명하셔서 단번에 알아맞히시는군요. 서달과 상우 춘, 유백온 세 사람은 모두 다 원나라를 쳐부수고 주원장을 도와 오랑 캐를 쫓은 사람들입니다. 오륙기의 편지 중에서 몇 마디의 말은 분명히 군사를 모아 반란을 일으켜서 만주 사람들을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위소보는 깜짝 놀라 속으로 생각했다. (오형의 의도를 내가 모를 줄 알고 네가 굳이 나서서 이야기하려는 것 이냐? 이 편지는 정말 커다란 꼬투리가 되겠구나. 천만다행으로 내 손 에 걸렸군.) 그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뻗쳐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좋소! 운수가 정말 좋구려. 이 일은 만약 그대가 나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더라면 그야말로 큰일이 날 뻔했소. 황상께서는 나를 보고 복을 타 고난 장수라 하셨소. 아니나다를까 승상의 금쪽 같은 말씀은 틀림이 없 는 말이오.]
오지영은 그의 말을 듣고 전신의 뼈마디가 녹아나는 것 같았다. 그저 어머님 뱃속에서 나온 이래 일찍이 이처럼 영광스러운 일이 없었던 것 같아 눈물이 나을 정도로 감격해서 흐느끼며 말했다.
[대인께서 이토록 사랑해 주시니 이 은덕은 비직의 온 몸뚱어리가 가루 가 된다 하더라도 보답하기가 어렵겠습니다. 대인께서는 복을 타고난 장수이시니 대인을 따를 수가 있다면 그야말로 복을 타고난 병졸이 될 것이고 또한 복을 타고난 견마가 될 것이니, 그 또한 조상들을 영광스 럽게 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위소보는 껄껄 소리내어 웃으며 손을 들어 그의 머리를 만지며 말했다.
[매우 좋소! 매우 좋아!]
오지영은 키가 큰 편이었다. 위소보가 손을 뻗쳐 자기의 머리를 만지려 고 하는데 쉽게 되지 않자 그는 재빨리 고개를 숙여 위소보가 자신의 정수리를 만질 수 있도록 했다. 처음 위소보가 크게 신경질을 부렸을 때 오지영은 꿇어앉아 엎드려 절을 하느라고 이미 모자를 벗은 상태였 다. 위소보가 손바닥을 그의 머리 위에다 갗다대고 천천히 뒤쪽으로 어루만 져 나가는 모습은 마치 한 마리 꼬리를 흔들며 아양을 떠는 강아지를 어루만지는 것과 같았다. 위소보는 오지영의 뒤통수를 만지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나 또한 네가 온몸이 가루가 되는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그저 다만 이 머리통을 칼로 내려쳐 뎅겅 잘라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는 물었다.
[이번 일은 그대 이외에 또 누가 알고 있소?]
오지영은 말했다.
[없습니다. 비직은 사태가 너무 심각한지라 감히 조금이라도 누설할 수 가 없었습니다. 만약에 오륙기라는 반적이 자기의 역모가 이미 탄로났 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즉시 거사를 일으킬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된다면 대인과 비직은 반푼어치의 공로도 없게되죠.]
위소보는 말했다.
[맞았소. 그대는 정말 생각이 치밀하군. 절대로 남에게 알려서는 안 되 오. 서둘러 조정에 품하여 그대의 큰 공을 가로채는 일이 없도록 합시 다.]
오지영은 흐뭇해졌다.
[모두 대인께서 이끌어 주시고 길러 주신 덕택입니다.]
위소보는 고염무의 그 편지를 품속에 집어넣고 말했다.
[이 시집들은 모두 이곳에 남겨 두도록 하시오. 그리고 그대는 몰래 가 서 고염무와 그 몇 사람들을 모조리 데리고 오시오. 내가 모든 사실을 물어 알아낸 이후 그대에게 그들을 압송하여 북경으로 데려가도록 하겠 소. 그리고 내 친히 상소문을 써서 황상에게 품하겠소. 이번의 커다란 공로는 그대가 첫째이고 나는 그대의 덕택으로 두 번째 공로를 세우게 되는 것이지.]
오지영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재빨리 말했다.
[아닙니다. 대인이 첫째이시고 비직이 둘째입니다.]
위소보는 웃었다.
[그대가 황상을 만난 이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내가 자세히 가르쳐 주 겠소. 황상께서 기뻐하시기만 한다면 그대가 순무가 되는 것은 내가 책 임을 지도록 하겠소.]
오지영은 기뻐서 까무라칠 것만 같았다. 두 손으로 시집과 문집(文集) 들을 탁자 위에 놓고서는 쿵쿵쿵 하는 소리가 나도록 이마로 땅을 찍어 큰절을 한 뒤에 물러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