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122) 죽으면 죄가 셋이지만 살면 기회가 셋이다
한편, 망탕산에서 조조의 대군에 포위된 관우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앞으로 헤쳐나갈 일에 골똘하였다.
그러는 중에 한 병사가 관우에게 소리친다.
"장군! 보십시오 누가 이리로 오고 있습니다."
관우가 홀로 말을 타고 달려오는 자를 바라 보니 병사가 이어서 말한다.
"조조군의 장군 같습니다."
조조의 장군이, 그것도 혼자서 말을 타고 달려오니 관우를 비롯한 병사들은 바라보기만 할 뿐 전투태세도 갖추지 않았다.
이윽고 다가온 조조의 장군은 한때 관우와도 친교를 갖던 장료였다.
관우가 장료를 불렀다.
"문원 형! 싸우러 왔소? 도우러 왔소?"
그러자 장료는 말에서 내리며 말한다.
"둘 다 아니오. 운장 형과 술이나 한 잔 하러 왔소! 하하하! "
하고, 말하면서 말 잔등에 얹힌 호리병박을 들어 보이고 가까이 다가온다.
"마침 나도 컬컬하던 참이오."
관우는 걸어 오는 장료앞으로 다가갔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각기 술이 가듣 담긴 호리병박을 부딪치며, 각기 술을 한 모금씩 마셨다.
그리고 갈증이 심했던 관우가,
"하! ~ 좋은 술이군!"
하고, 사막의 오아시스를 만난 듯이 감탄사를 뱉어냈다.
장료가 그 말을 듣고,
"이 술은 특별히 조 승상이 장군에게 보낸 것이오."
하고, 말하였다.
관우는 장료의 말에 대꾸는 하지 않고 이번에는 <꿀꺽꿀꺽> 거푸 술을 마셔대었다.
그러자 장료도 그를 따라 술을 마시고난 뒤,
"운장. 자네가 출병한 후 승상이 하비성을 함락시켰네."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관우는 흠칫 놀라며,
"뭐요?"
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 하자, 장료가 손을 들어 제지 하며,
"그러나 염려 마시게. 성에 들어간 뒤 몹쓸 짓은 안했으니...특히 유현덕의 가족들은 무사 하네. 승상이 명하시길, 유현덕의 집은 밖은 지키되 함부로 들어가지 말며, 감히 침입하는 자는 참 한다는 엄명을 내리셨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사실 조조군과의 대전(大戰)을 앞두고 유비는 그의 두 부인과 자식을 비롯한 모친을 비교적 수비하기가 쉽고 호젓한 하비성으로 옮기게 한 뒤에 관우를 시켜 가족과 함께 하비성을 지키도록 부탁하였던 것이었다.
그런데 장료의 말대로라면 주군의 가족과 영토를 지키지 못하였으니 관우의 심정은 참담하기 이를 데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관우는,
"하비를 잃은 건 내 죄일세."
하고, 자책하며 장료를 바라보며 부탁조로 말하였다.
"문원 형! 우리의 오랜 교분을 봐서 사실대로 알려주시오. 내 형님은 어떻게 되었소?"
그러자 장료는 고개를 흔들며 말한다.
"유비가 대패한 뒤 잔병은 조 승상께 투항했고, 유비 홀로 산속에 드는 걸 본 자가 있다는데, 그의 생사를 알 수는 없소. 장비도 마찬가지고..."?
그러자 관우는 말 없이 엄숙한 표정이 되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장료가 말을 이어서,
"운장! 한 마디만 묻겠소. 이 상황에서 승상이 오만 군사로 공격해 온다면 운장은 뚫고 나갈 수가 있겠소?"
하고, 물었다.
그러자 관우는 담담한 표정과 어조로,
"못 나가오."
하고 현실을 직시한 대답을 하였다.
"그럼 어쩔 셈인가?"
장료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러자 관우는 술이 담긴 호롱박을 들어 보이며 침착한 어조로,
"조조에게 전해주시오. 이 술을 마시고 관우는 힘을 얻어 청룡도를 뽑아 적진으로 달려가 삼백 장수를 칠 테니, 그때 내 목을 가져가라고 말이오!"
하고, 말하고 나서 호리병박을 입에 대고 한잔을 호기롭게 마셨다.
"운장! 이 판국에 죽기는 쉽네, 사는 게 어렵지.. 운장! 자네가 죽어버린다면 세 가지 죄를 짓는다는 걸 아는가?"
장료는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이면서 말했다.
그러자 관우는,
"무슨 죄인가?"
하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장료는 손가락 하나를 펴 보이면서 말한다.
"첫 번째, 유,관,장 삼형제는 도원에서 한날 한시에 죽는다 맹세하지 않았는가? 유비가 패하긴 했어도 생사는 모르네, 행여 형제가 살아있는데 자네가 먼저 죽어버리면 나머지 형제가 따라 죽을 것이니, 큰 죄를 짓게 되는 것이지. 둘째, 유비가 두 부인과 가족을 자네에게 부탁했는데, 자네가 죽어 버리면 두 부인은 어쩌나? 모진 병사들 손에 넘겨 정조를 더럽히려나?"
관우는 유비의 두 부인의 대한 애기가 나오자, 눈을 감고 고개를 흔들며 참담한 심정이 되었다.
그리하여, 장료에게 따지듯이 말하였다.
"조조가 형님 댁엔 발도 못 들이게 명령했다 하지 않았나?"
그러자 장료는 코웃음을 치며,
"헹! 그거야 자네가 있으니 그렇지... 승상은 인재를 존중하네, 왜 나를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말야.
예전에 나는 여포의 부하였네, 여포가 승상에게 패하고 나도 사로잡혀 죽을 위기에 처했는데도 승상이 손수 나의 포박을 풀어주고 놓아 주었던 것을 보란 말야. 승상은 이런 사람이야! 그리고 유비의 두 부인에 대해서도 자네가 죽게되면 그 후의 일은 무지막지한 군사들에 의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 아닌가? "
그러자 관우가 장료의 말에 대꾸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장료는 손으로 관우의 말을 막아서며,
"조급해 하지 말고 끝까지 들어 보게, 세 번째 죄, 한왕실을 돕겠다고 맹세해 놓고, 천하가 어지러운 이 순간, 자네가 먼저 죽을 텐가? 그럼 저승가서 천자와 형님을 어찌 뵙겠는가?"
관우는 고개를 저으며 장료의 말에 부인도 긍정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다시 장료가,
"운장! 자네가 먼저 죽게되면 저지르게 되는 세가지 죄는 내 어쩔 수 없이 내뱉었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관우가,
"죽지 못 한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하고, 자조섞인 말을 내뱉었다.
그러자 장료는,
"죽으면 죄가 셋이지만 살면 기회가 셋이라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관우가 물었다.
"세가지 기회란 무엇인가?"
장료가 대답한다.
"자넨 지금 막다른 길에 놓였네, 차라리 조 승상에게 투항하여, 유비의 행방을 알아본 다음에 찾아가도 늦지 않네. 내가 말한 기회란 첫째, 두 형수의 안전이 보장된 다는 것과, 둘째, 도원결의를 어기지 않고, 셋째, 살아남아서 훗날 한왕실을 돕게 될 수 있다는 거지."
장료가 말을 그치자 관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홀로 산중을 걸으며 대답하기를 망설였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일리가 있군."
하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장료를 향하여 자신의 주장을 토로하였다.
"나도 조건이 있네, 이것을 들어주면 갑옷을 벗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세 가지 죄를 짓는다고 해도 죽겠네."
그 말을 듣고 장료가 말한다.
"말씀해 보시게."
관우가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말한다.
"첫째, 나는 조조가 아닌 한 황제의 부하요, 둘째, 두 형수를 정중히 대해 주시오. 셋째, 형님 소식이 들리면, 세상 어디든지 찾으러 갈 것이오. 이 세가지 중에 어느 하나라도 들어주지 않는다면, 절대 투항은 없소."
장료가 관우의 의지를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네, 자네의 요구를 조 승상에게 그대로 전하겠네."
하고, 말하며 관우와 작별을 하고 말을 돌려 왔던 길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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