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5: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첫 두페이지는 결론이 없는, 하지만 교회의 가시적인것과 비가시적인 특성들의 의미를 하나로 단정짓지 말라는 이야기를 한것같다.
이것은 거의 삼위일체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를 확실히 단정짓지 말자 라는 말과 비슷한것같다; 이러한 말이 나오는 이유는 우리 인간이 그 크고 무한하신 하나님의 모든것을 우리의 작은 뇌로 다 담기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럴것이다.
그러면 이어서 "거룩" 의 단어의 의미를 풀어해석하는 37강은 구약과 신약의 거룩함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풀어 해석하며, 우리가 '거룩' 이라는 단어를 어떤 의미로 인식하는지를 먼저 깊게 새겨주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를 받아, 그의 한 몸 된 지체로서, 거룩히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었을때의 참된 의미를 지나치는 경우가 있다.
"거룩하다"라는 말의 의미를 풀어 해석하는 것에 있어서 처음에, 왜 이 간단한것을 이렇게 길게, 장황하게 설명하실까?? 라는 의문으로 나는 몇일을 생각했다,
"과연 간단하지 않은 단어였나?"
"내가 머리가 커져서 저자를 비판하는 건가?"
"이게 왜 5강의를 덮을만큼 중요하지?" 등등..
어렸을때부터 "거룩하다"라고 이야기를 하면, 도덕적으로 착하고, "인간의 더러움과 다른 존재"로 이해했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이 어느 파장까지 이어지는가 하면, A 라는 사람은 B 라는 사람보다 더 거룩한것같아. 라는 생각들과, 연극하는 배우들이 흰옷을 입을때 "와.. 거룩하다" 라는 언급도 했던것같다.
그리고 말씀중심의 개혁파를 아는 순간부터, "구별된것" 의 의미와 "하나님께 향한 속성" 을 거룩하다 라고 인식했던 터이다.
그러한 인식의 시작으로, 내가 평소에 의식을 하던 안하던,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라는 기도의 시작을 할때에 내 기도의 대상이 과연 누구인가 가 너무나 다르게 인식되어진다.
결국에 그 단어를 얼만큼의 무게를 지니는가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자, 신앙의 깊이가 확연히 달라졌던 나의 과거를 회상했다.
그러면 이번 강의에서, 구약과 신약의 "거룩" 에 대한 해석을 읽으면서, 나는, 이 거룩함에 대한 개념이 결코 쉽지 않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주기도문을 알려주며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의 속뜻이 무엇인지를 더 알게 된것같다.
그 단어가 그렇게 쉬웠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그것을 늘 기억하며, 중요하게 여기라고 가르치지 않을것이라고 생각든다.
도덕적인 순결성과, 구별되어지는 우리 하나님이,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모든것을 지칭하여만 " 거룩하다"라는 단어를 쓸수 있다.
그리고, 성경에서 말하는 율법과 도덕가치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다하여 받기 합당한 하나님께 향하는 것이기에, 그것이 다 성취될 때에야만, 거룩하다 라고 지칭하는것이다..
주일을 거룩히 드리고, 헌상을 거룩히 드릴수 있는것은, 우리는 예배당에 하나님께 온전히, 바르게, 거룩히 인식하며, 드리기에, 하나님이 거룩하기에 우리도 정신과 몸과 마음을 다하여 모든것을 드려 합당한것이 거룩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의 도덕과 인도+비인도 기준으로 거룩을 판별하는것은 쉽다,
37강 218페이지에서 성경을 해석할때, 가나안 사람들을 도륙하라고 말씀하신것, 사울에게 아말렉 사람을 하나도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는 것 등등을 통해, 제 일차 직관적인 해석으로 , 하나님이 이러한 말씀을 하신것에 대하여 "거룩하지 못하다"라는 판별.
하지만, 하나님은 하나님 그 자체로 이미 거룩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그러한 사고방식 자체가 그 크고 무한하신 하나님의 뜻을 다 이해하지 못하는것은, 당연하기에. 하나님이 죄의 싹을 잘라내는 관점과 그 이상의 관점을 당장 생각하지 못하는것처럼, 인간의 기본 도덕으로, 하나님이 하나님되심을 완전히 이해못한다.
하나님은 무한히 크고, 거룩하시기 때문이다..
첫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