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은 아름다워(256) - 조선통신사 옛길 일본기행(4)
15. 인생은 두 번 오는 것이 아니다.
5월 4일, 전날보다 더 따뜻하고 화창하여 산과 들이 투명하게 시야에 잡힌다. 아침 8시에 히코네 시청에서 출발식을 갖고 기후현의 타루이를 향하여 행진을 시작하였다. 지금까지 걸은 구간 중 가장 긴 코스(34km)여서 시작부터 발걸음이 빨라진다. 오늘부터 5일간 새로운 코스리더 요시무라 씨가 선두에서 일행을 안내한다.
시가지를 벗어나 작은 고개를 넘어서 얼마쯤 걸어가니 그제부터 시작된 조선인가도가 끝나고 나카선도(中山道)로 들어선다. 나카선도 길목에 옛 숙박 장소가 자주 보인다. 한 시간만에 그중의 하나인 도리이 숙박점에서 휴식을 취하고 다시 행진에 나선다. 도로변에는 여전히 사찰과 신사가 많고 조용한 농촌풍경이 고즈넉하다.
한 시간 쯤 걸으니 산길로 접어든다. 꽤 가파른 산길을 힘들게 올라가니 비와호가 한 눈에 들어오는 고개 마루에 이른다. 시 한 수가 나올만한 아름다운 풍광이나 갈 길이 바빠서 서둘러 일어선다. 삼나무와 대나무가 우거진 삼림이 풍요롭고 논에서는 개구리 우는 소리가 어릴 적 농촌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산 아래로 내려와 히코네시에서 마이바라(米原)시로 접어들어 한참을 걸어가니 10시 20분경에 연화사라는 큰 절이 나타난다. 입구에 있는 화장실도 이용할 겸 휴식을 취하는 사이에 절의 연혁을 살피니 막부시대의 장군을 따르던 부하들이 패전하게 되자 400여명이 할복하여 절 앞의 개울물이 핏빛으로 변했다는 사연이 적혀 있다. 상사에 대한 부하들의 충성심은 가상하나 어머니를 부르며 할복하는 군사들의 희생적인 삶은 무엇으로 보상받을까. 조선통신사의 길은 막부시대를 여는 치열한 전장의 무대이기도 한 것을 현장에서 확인하게 된다.
연화사에서 한 시간 거리에 사메가이 숙박지에 이른다. 5백여 명의 주민에 1백50여 가구가 산다는 아담한 동네모습이 품위가 느껴진다. 길가의 어느 곳에 '인생은 두 번 오지 않고 오늘도 그러하며 지금도 마찬가지'라는 뜻의 글귀가 눈길을 끈다. 그렇다. 지금, 오늘, 인생은 다시 돌이킬 수 없는 단 한 번의 기회이다. 좋은 글귀를 새기며 인상적인 주변을 살피려는데 이곳에서 이른 점심을 든다는 전갈이다.
출발할 때 수퍼에 들러 준비한 도시락을 꺼내서 경관이 수려한 숙박점 길목에 앉아 드는 밥맛이 좋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는 말처럼 기왕이면 운치 있는 곳에서 먹는 밥이 더 맛있구나.
이른 점심을 들고 일어서니 낮 12시, 오후에 갈 길이 20km나 되니 다시 발걸음이 빨라진다. 최고령자인 한동기 선생과 뒤에서 걷는 중 질문을 하신다. '죽을힘을 다한다.'는 말이 무슨 뜻이냐며. 요지는 '지금 죽을힘을 다하여 걷고 있다.'는 말씀이다. 앞의 글귀를 소개하며 '지금 최선을 다 하니 좋은 것 아닌가요. 다만 너무 무리해서 건강을 해치지 않도록 조절하시지요.'라고 하는 말이 곧 나에게 해당되는 것 아닌가.
한 시간쯤 걸어 가시와바라 숙박지에서 휴식을 취한 후 30여분을 지나니 시가현(濨賀縣)과 기후현(歧臯縣)의 경계지점이 나온다. 사흘간 지나온 시가현이 끝나고 기후현으로 들어서니 세키가하라 전투(1600년, 도요도미 히데요시 세력과 도쿠가와 이에야스 세력이 힘겨루기를 한 전쟁)로 유명한 세키가하라 숙박지에 이른다. 이곳에서 휴식을 취한 후 오후 4시 반에 목적지인 타이루(垂井)의 중심가로 들어섰다.
연휴에 축제가 겹쳐 가마모형의 트럭보다 큰 수레가 양편에서 시가지를 누비며 행진을 한다. 중심가의 빈터에서 간단히 도착행사를 치른 후 바로 앞에 있는 건물에 들어서니 타이루문화재보존협회에서 차와 떡을 차려놓고 일행을 반긴다. 이어서 91세 고령의 대표가 인근의 남궁대사라는 신사(神社)로 안내한다. 신사의 책임자인 궁사(宮司)가 일행을 본당으로 인도한 후 나이 지긋한 악사들로 구성된 연주 팀이 한반도에서 건너간 아악(雅樂)을 공연한다. 청아한 음색의 아악연주에 탈을 쓴 무용수가 춤을 춘다. 신라의 처용무가 저런 것일까. 일본 땅에서 고전의 무대를 접하는 이례적인 기회다. 이어서 신사의 보물관으로 안내하여 조선통신사에게서 선물로 받은 부채 등 희귀한 그림과 공예품 등을 관람하고 숙소로 향하였다.
좋은 경관, 처절한 전장의 무대, 신사에서의 고전음악 관람 등 새 시대 조선통신사로서의 역사, 문화, 교류의 참 뜻을 기리는 소중한 하루였다. 마치 오늘 새긴 글귀처럼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인생의 크고 귀한 발걸음이런가.
* 저녁 식사시간에 깜짝 파티가 벌어졌다. 10여일 전에 우연하게 생일이야기가 나와서 생일이 5월 7일이라고 밝혔는데 착오인지 다른 사정이 있어서인지 갑작스레 생일 케이크가 등장한다. 아무튼 감사한 일, 칠순이기도 한 금년의 생일잔치는 지난달에 동창들과의 남녘여행 때 제1차, 걷기행사 떠나기 전에 제자들이 마련한 제2차에 이어 오늘 생일파티를 열었으니 세 번이나 칠순 맞기를 하는 셈이다. 저녁식탁에서 엔도 일본대표는 인격자라고 과찬을 하였는데 더욱 자중하고 겸손한 삶이 되도록 힘써야겠다. 축하해 준 여러분, 감사합니다.
16. 어린이는 어른의 스승이다.
5월 5일, 주일이자 어린이날이다. 아침에 아내와 함께 기도의 시간을 갖고 성경을 읽는 것으로 주일예배를 가름하였다. 전날 점심을 먹는 길가의 맞은편에 '주의 말씀은 영원한 생명'이라는 뜻의 문구가 눈에 띠었다. 일본에서는 접하기 힘든 기독교의 선교표어다. 이를 살피는 아내에게 동석한 재일동포 고진삼 씨가 크리스천이냐고 묻는다. 고개를 끄덕이는 아내에게 여행 중에는 어떻게 예배를 보느냐고. 오늘 아침처럼 둘이서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다고 답하였다.
아침 7시 40분에 숙소(타이루에서 10km 떨어진 오카기의 GOODY호텔)를 나서 역으로 향하였다. 8시 10분에 타이루 행 JR열차를 타고 타이루 역에 내리니 전날 일행을 마중한 분들과 오늘 걷기행사에 참가할 이들이 먼저 나와 있다. 역 앞의 공터에서 간단한 출발식을 갖고 평소보다 약간 늦은 8시 40분에 타이루에서 이치노미아에 이르는 37km의 긴 행로에 들어갔다.
출발에 앞서 91세 고령의 문화협회 대표는 2년 후에 다시 만나자는 환송인사를 하고 여성회원들이 종이로 접은 한복차림의 인형을 선물로 준다. 어떤 이는 스마트폰으로 배낭에 붙인 페넌트를 찍으며 이름까지 페이스 북에 올려도 되겠느냐고 양해를 구한다. 행진할 때 무슨 행렬인가 호기심을 갖는 분에게 등을 가리키며 페넌트를 보여주면 곧바로 알아챈다.
중심부를 빠져나와 큰 다리에 이르니 강변에 물고기모양의 대형풍선들이 크게 나부낀다. 일본에서는 남자와 여자의 어린이날이 따로 있는데 5월 5일은 남자어린이날, 이날을 기려 곳곳에 이런 풍선들이 많이 달려 있다. 일행 중의 타나구치 와타르(11세) 군은 걷는 중에 한국어를 배워 '아저씨, 괜찮으세요.'라고 인사하고 저녁 때 오빠를 마중 나온 여동생은 과자와 함께 한글로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라고 쓴 카드를 건넨다. 성경은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라고 교훈하는데 '어린이는 어른의 스승이다.'고 말하고 싶다. 자라나는 새싹들이여, 밝은 미래의 주인공으로 건강하고 지혜롭게 성장하라.
두 시간을 걸어 전날 묵었던 오카기 시내의 문화관광센터에서 휴식을 취하였다. 실내의 전광 홍보판에 오카기의 축제와 관광명소를 안내하는 화면이 뜬다. 조선통신사를 재현하는 행사도 소개되고 전날 본 수레행렬도 그 중의 하나다. 시청의 청사에는 자연과 역사, 문화를 보존하고 선양하는 시정방향을 내세운 구호가 큰 글자로 붙어 있고.
낮 12시 지나 녹음 짙은 강변에 이르니 휴일에 소풍 나온 이들이 그늘에 자리 잡아 점심을 들고 있다. 강 맞은편의 일야성(一夜城)에 들어가 나무그늘 밑의 장의자에 앉아 도시락을 들었다. 일본인 1일 참가자가 하나씩 먹으라고 건네준 마늘반찬이 입맛을 돋운다. 성 안에 도요도미 히데요시가 마셨다는 '출세의 샘물'이 있다. 물통에 이를 담으며 한 시대를 풍미한 장부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음을 확인한다.
목적지인 이치노미아(一宮)까지는 이비가와, 나가라가와, 사가이가와, 기소가와(*가와는 강을 뜻함) 등 4개의 큰 강을 지난다. 여러 개의 강을 건너니 어느새 아이치(愛知)현에 들어왔다. 마지막 다리를 건너면 막부의 장군과 조선통신사 일행이 277척의 배를 이어 다리로 사용한 선교(船橋, 정조가 화성행차 때 한강 다리를 배로 이어 건넜다는 주교와 같은 이치) 등의 자료가 전시된 역사민속자료관이 있다.
오후 4시에 이곳에 들러 1748년의 조선통신사가 이 선교를 지난 기록을 포함하여 며칠간 걸어온 나카선도와 이 지역에서 새로 시작되는 미노로(美濃路)의 노선, 숙박지, 이곳에서 나고야를 거쳐 도쿄에 이르는 옛길의 도면들을 살필 수 있어서 며칠간 걸어온 행로를 자세히 이해하게 된다.
목적지인 이치노미아시의 메이테츠 역 앞 광장에 도착하니 여섯시가 가깝다. 며칠간 함께 걸은 11세의 타나구치 와타르 군을 비롯하여 1일 참가자에게 참가증을 교부하고 숙소(도요코 인)에 여장을 풀었다. '힘든 여정을 숨차게 걸어온 일행 모두 수고하였습니다.'
추신,
함께 걸은 1일 참가자중 명함을 받은 이들에게 여행 중에 쓴 '일본기행'을 보내주었다. 재일동포 나카니시 하루요 씨가 답을 보내왔다.
'김태호 선생님께,
안녕하십니까?
교토에서 만나 뵙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걷기를 하시면서 쓰신 글,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번에 보내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그 동안 너무나 바빠서 답신을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저는 12일(일)부터 참가하기로 했습니다.
사모님, 다리가 아프셨다는데... 나으셨습니까?
이제부터 날씨가 더워지고 걷기가 힘드실 겁니다.
건강하게 시즈오카에 도착하시기를 빕니다.
12일에 뵙겠습니다.
시즈오카에서 나카니시 하루요'
17. 일본의 중심에 있는 나고야에 입성하다
5월 6일, 날씨가 맑고 약간 덥다. 아침에 체크아웃을 하니 프런트에서 '도요코 인'회원증을 준다. 오사카에 이어 두 번째 투숙이라고 혜택을 주는가보다. 전날 체크인할 때 사진을 찍었는데 그 사이에 회원증을 만들었나보다. 일본 뿐 만아니라 한국에도 체인이 있다니 쓸 일이 있을지도.
오전 8시에 전날 도착한 이치노미아 메이테츠 역 앞의 광장에서 출발식을 가졌다. 5일간 코스리더로 수고
하는 요시무라 씨의 부인과 이틀 전까지 걸었던 다케이 부부 등 10여명의 1일 참가자가 매일 합류한다. 다음과 같이 인사를 하였다. '날씨가 더워지고 하루 걷는 길이 점점 늘어나 힘이 듭니다. 그런데도 씩씩하게 앞서 걷는 일본여성들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걸으면서 자연과 역사, 문화를 가까이 익히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오늘도 이치노미아에서 나고야까지 힘차게 걸읍시다.'
이치노미아 사가지를 지나는데 나고야까지 16km라고 적힌 이정표가 보인다. 아이치현의 현청이 있고 역사와 문화의 전통이 깃든 일본의 중심지역에 접어들고 있는 셈이다. 미노로(美濃路)라 일컫는 구도로 옆으로 신간선 등 일본의 동서를 관통하는 철길이 이어진다.
세 시간 쯤 걸으니 기오쓰(淸洲)시에 이른다. 기오쓰 성 맞은 편 다리에 기오쓰 시 국제교류협회 임원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반갑게 인사를 한다. 바로 앞에 일본차와 냉수 등을 무료로 제공하는 가게가 있어서 이열치열이라, 뜨거운 일본차로 목을 축였다. 더운 날씨에 감기 증세가 있어서인지 계속 목이 마른 터, 하루 동안 서너 병의 물을 마셨다.
낮 12시 쯤, 강물이 제법 많이 흐르는 내를 건너니 나고야 시계로 접어든다. 40여분을 더 걸어 가토 기요마사 동상(임진왜란 때 조선출병의 선봉장을 맡은 가토 기요마사는 규수의 구마모도 성주로 임란 후 도쿠가와 이에아스를 도와 막부시대를 여는데 한 몫을 하였다.)이 있는 공원에서 각자 구입한 도시락을 들었다. 이때 일본여성 한 분이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며 일행들 쪽으로 다가온다. 혼자서 한국어를 익혔다는 여성은 두 시간 가량 같이 걸으면서 한국어를 어느 정도 할 수 있지만 듣기가 더 어렵다고 말한다.
점심을 든 후 오후 걷기에 나섰다. 오늘의 목적지는 나고야 시내를 관통하여 외곽에 있는 명해(鳴海)역이다. 도심을 지나는 동안 여러 개의 신사와 절을 지나고 넓은 도로 옆으로는 말끔한 고층건물들이 들어서 있는데 이차대전 때 공습으로 도시중심부가 폐허가 되어 새 도시로 탈바꿈하였다는 일본인의 설명이다.
나고야에서 도쿄에 이르는 도카이도(東海道)의 시발점에서 두 시간 넘게 도카이도를 따라 걸어가니 오후 여섯 시 쯤 오늘의 종착지인 명해역에 도착한다. 5시간 넘게 시내를 관통하며 나고야의 여러 모습을 살핀 셈이다.
숙소는 나고야 역 앞에 있는 수퍼호텔, 명해역에서 기차를 타고 30여분 만에 숙소에 도착하였다. 여행자들이 묵기에 편한 숙소에 서둘러 여장을 풀고 역사 안의 식당가에서 저녁을 들고 들어오니 9시가 넘었다. 글쓰기도 힘들어 곧바로 잠자리에 들어 아침까지 곤하게 잤다. 내일은 하루 쉬고 모래부터 걷는다. 힘들고 고단하지만 보람된 하루하루다.
* 일행인 고영성 씨가 침대에서 벌레에 물린 자국이 점점 확대되어 병원에 들렀더니 휴일(일본은 3일부터 6일까지 연휴다.)이라 전문병원에 가보라며 하루치 약 처방만 받아오고 내일 다시 전문병원에 가기로 하였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잠언 27장 1절)는 말씀을 새기며 안전과 건강에 각별히 유의할 것을 깨친다.
18. 사무라이 세 영걸(英傑)을 접한 나고야성
5월 7일, 아침에 일어나니 7시가 넘었다. 하루 쉬는 날이라고 긴장이 풀렸는지 오래 만에 늦잠을 잤다.
아침 식사시간에 선상규 회장이 고영성 씨의 상태가 염려된다며 오전에 같이 병원에 가겠다고 말한다. 엔도 일본대표도 함께. 아내도 동행하려 하였는데 통역까지 네 사람이 택시 한 대에 탈 수 있어서 아내는 빠졌다. 병원에서의 결과가 궁금하여 하회를 살폈더니 대상포진 증세가 있으므로 무리해서 걷지 말고 안정을 취하는 것이 좋겠다며 일주일 분의 처방을 받아왔다고 말한다. 염려했던 것보다 중증이 아니어서 한시름 놓았다.
오늘은 휴식일, 특별한 스케줄 없이 각기 좋을 대로 하루를 보내기로 하였다. 오전에 아내와 나고야 성을 돌아보기로 하였다. 프런트에서 나고야 성 가는 약도를 받아 역으로 갔다. 버스 타는 곳이 어디인지 몰라 길가는 남자에게 물으니 친절하게 정류장까지 안내해준다. 버스에 올라 한참을 가도 시청에서 내려야하는 나고야성이 나타나지 않는다. 시청을 지나는 것이 아니라 인근을 경유하는 버스인데 정확하게 내릴 곳을 확인하지 않아 종점까지 갔다. 덕분에 나고야의 여러 모습을 차창으로 살필 수 있음을 위안으로 삼으며.
종점에서 내려 나이 지긋한 신사에게 나고야 성으로 가는 길을 물으니 지하철의 표 끊는 곳까지 안내하여 상세하게 가는 방법을 일러준다. 버스요금은 200엔, 지하철요금은 기본이 200엔인데 우리가 낸 요금은 230엔이다.
시청역에서 내려 7번 출구로 나오니 나고야 성 동문이 바로 앞이다. 입장료는 500엔, 나고야 성의 상징인 천수각 안으로 들어서니 한동기, 김중석, 손성식 씨와 마쓰무라 도시코 여사가 탐방을 마치고 의자에 앉아 휴식 중이다. 같이 사진을 찍고 그분들은 다음 행선지로, 우리는 천수각안으로 들어섰다. 먼저 들른 분들이 엘리베이터로 5층까지 올라가 7층의 전망대부터 먼저 살피고 계단을 밟아 아래로 내려오는 것이 좋다고 일러주어 그대로 따랐다. 10여일 전 오사카 성도 그렇게 올라갔다 내려온 경험이 주효한 셈.
7층의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시내의 전경이 4통8달의 넓은 평원이다. 16세기에 일본을 평정한 세 사람의 영걸이 이곳을 무대로 등장하였음을 현지에 와서 확실히 알게 되었다. 매표소 입구에 비치된 설명문에 이렇게 적혀 있다. '지형적으로 일본 섬의 중심에 위치한 나고야는 고대로부터 문명이 교차되는 곳이었다. 유리한 위치 덕분에 이곳은 동서양 문명의 만남의 장소이기도 했다. 16세기에 세 명의 사무라이 영웅 - 오다 노부나가, 도요도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모두 나고야에서 태어났다. 현재는 2백2십만 명의 인구가 살며 다양한 산업의 중심지로서 일본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로 번영을 누리고 있다.'
5층의 역사물 전시실에 이들 세 영걸의 일대기가 커다란 초상과 함께 금박의 벽지로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이를 바라보니 이들의 리더십을 간략하게 표현한 문구가 떠오른다. '오다 노부나가(1534~1582)는 울지 않는 새는 죽여라, 도요도미 히데요시(1537~1598)는 울지 않는 새는 울게 만들어라, 도쿠가와 이에야스(1542~1616)는 울지 않는 새는 울 때까지 기다려라.'고 하였다는.
지하에 일본의 이름난 성을 한데 모은 사진이 눈길을 끈다. 하나하나 세어보니 44개나 된다. 몇 년 전에 일본 전문가가 일본을 이해하는 키 워드로 신사(神社), 절(寺院), 성(城)을 예시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번 걷기행사를 통하여 그 본질은 잘 모르겠으나 외형이 그러한 것은 확실히 살폈다.
천수각을 돌아보고 나오니 복원공사 중인 혼마루 어전과 부속건물들의 공사일정을 소개하는 견학장소가 있다. 이곳에서 2009년부터 2018년까지 복원공사가 진행되는 일정과 내용을 상세히 접하였다. 천수각과 혼마루 어전 등이 2차 대전 때 공습으로 파괴되어 옛 모습이 사라진 사실도. 역사의 기록이란 그런 것이다. 어떤 것은 고스란히 보존되고 어떤 것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개인의 삶도 그러한 것 아닐까.
숙소에 돌아와 글을 쓰는 중에 일본인 일행인 고바야시 씨가 방으로 찾아와 전부터 잘 알고 지내는 가와타 시게루 씨에게 전화를 걸어준다. 한국어도 잘 하고 오빠라는 애칭으로 사교성이 있는 그를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데 이번 행사에 참여하지 않아 아쉬운 터,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18일부터 걷기에 참여하니 그때 만나자고 한다.
대마도에서부터 함께 걸은 요시오 지로(76세), 애히라 기요시, 안자이 겐지 씨는 나고야에서 돌아가고 첫 번째 걷기행사의 일본 단장인 고바야시 마사히토 씨가 새로 합류하였다. 요시오 지로(76세) 씨는 70세에 걷기를 시작한 국제통인데 도쿄에 오면 자기 집에 머물라고 몇 차례나 이야기한다. 고바야시 마사히토 씨는 79세의 고령인데도 건장한 체격이고. 열심히 걷고 떠난 분들이여, 또 만납시다.
저녁식사는 호텔 바로 옆의 작은 음식점에서 들었다. 노령의 주방장이 요리를 하고 중년의 지배인과 젊은 청년이 서비스하는 등 3대가 힘을 모은 듯. 즐거운 분위기에서 저녁을 들며 병원에 다녀온 고영성 씨의 건강을 기원하는 뜻을 담아 일본인들이 이에 걸맞는 노래를 부르고 아리랑 합창으로 내일부터의 걷기에 힘을 모았다.
* 69회 생일을 나고야에서 맞는다. 일본에서는 만 나이로 계산을 하여 생일이 되면 태어난 해에서 한 살을 빼야하므로 이제 69세가 된 셈인데 우리 풍습으로는 칠순으로 여기니 헷갈린다. 며느리와 동생, 처제 등이 메일과 문자로 축하메시지를 보내왔다. 건강 잘 챙기고 도쿄까지 무사히 완주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아서. 사랑하는 가족들은 삶의 버팀목, 메시지를 보낸 모두가 고맙다.
나고야 성을 살피고 돌아오는 길에 역 지하에 있는 백화점 상가에 들르니 어머니날을 앞두고여서인지 가게마다 많은 이들이 줄을 선다. 찹쌀떡과 과자류를 파는 상점들도 붐비고. 생일기념으로 찹쌀떡을 사서 오후에 방별로 돌렸다. 저녁식사 시간에 일행들과 건배하며 진짜 생일을 축하하였다. 그런대로 의미 있게 보낸 칠순생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