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별러왔던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왔다.
4월 16일 결혼 32주년 기념여행을 어디로 정할까 고민했는데
유행가 가사같은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찍고 식의 유럽여행보다는
그나마 한 나라만 돌아보는 게 후회가 없을 것 같아
처음부터 한 나라 일주여행으로 갈 만한 곳을 고르다보니 자연스레 택한 곳이다.
애초에 아테네나 스파르타 같은 도시국가가 통일을 해서 만든 나라였으니
가는 지역마다 개성이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된 것이다.
성지 순례 이외의 낯선 나라에 처음 갈 때는 남편과 간다는 내 나름의 소신에 따라
요번 파트너도 남편이었다.
혹여 서로를 사랑할 시간이 부족할 때 추억을 공유할 사람으론
시도때도 없이 곁에 있을 남편이 가장 합리적이라 믿는 까닭이다.
몇년 전 성지 순례도 함께 가기를 종용해 보았지만
남편은 여행 내내 늘 거룩함을 유지해야하는 게 부담스럽다고 당당히(?) 말했다.
여행, 맘 편히 즐거워야지 싶어 그 땐 순순히 그의 뜻을 수용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가장 가치있다고 여기는 것에 시간과 돈을 쏟아 붓는다.
우리 부부는 50대, 인생에서 그나마 여성과 남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
마지막 시기를 잘 보내는 방법으로 함께 국내외 여행하기를 택했다.
육체적 정신적 건강이 아직 허락되고, 자녀 부양의무를 성실히 수행했으므로 그럴 자격은 갖췄다.
얼마전 암치료로 인해 죽음이라는 묵상을 해야만 했을 때
내게 가장 위로가 된 것은 가족들의 사랑이었고
내 자신에 대해서는 언제든 꿈꾸는 것들을 미루지 않고
최선을 다해 여건이 허락하는 한 실천해서 후회가 없다는 점 덕택에
삶에 대한 구차한 미련이 별로 없었다.
또 다시 내게 과거의 어느 날이 다시 주어진다해도
그 이상 잘 살아내지는 못할 것이라고 지금도 믿는다.
난 언제나 하루를 꽉 차게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왔다.
그것을 관통한 관념은 언제나 사랑이었다.
누구에 대해서건 무엇에 대해서건....
또 다시 그런 날이 온다해도 초연히 그날을 받아들이기 위해
올해는 이탈리아 여행을 실천한 것이다.
출발 이틀 전부터 수술한 후부터 늘 복용해야하는 호르몬 제재와
사랑하는 이들이 선물로 준 여행을 위한 목욕용품과 화장품등을 준비하고
여행때 입을 편한 옷, 그리고 모자와 스카프도 정리해서 챙겼다.
무엇보다 발이 편한 신발도 준비했다.
당일은 오후 네 시에 이륙한다는 비행기에서 편한 좌석을 배정 받기 위해
아침 일찍 서둘러 공항에 미리 나갔지만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큰 애에게 선물할 백팩하나를 공항 면세점에서 구입해서 남편이 손에 든 짐을 챙겨 넣었고
나는 서점에서 이탈리아 여행 가이드북을 한 권 사서 챙겼다.
앞뒤로 배정된 이코노미석, 옆자리 청년에게 양해를 구해 자리를 옮겨 나란히 앉아 갔다.
자그마치 12시간.... 온 몸이 뒤틀리고 힘이 들었다.
이코노미석을 택할 땐
아직 건강해서 싼 가격의 자리에 앉아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는 체력이 있음을 감사했다.
그러나 분명한 건 해마다 견디기가 더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작년에도 남편은
"다음엔 우리 비지니스석에 타자."
였는데 절약이 몸에 밴 우리 부부는 막상 결제를 해야할 때가 되면
"그냥 가자."
가 된다.
일부러 그 전날 저녁에 잠을 줄이고 짐을 챙기는 내 작전을
요번엔 제대로 활용안한 탓에 비행 시간 내내 몸서리를 치며 지겨워하는 벌을 받았다.
좌석 앞에 붙어 있는 모니터 영화는 봐도봐도 집중도 안되고,
자리는 비좁게 여겨져서 애써 편하게 입고 온 헐렁한 긴 치마조차 갑갑하게만 여겨져 전혀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위로가 되는 건 도착 하자마자 호텔로 직행해서 잠을 잔다는 것이었다.
설레는 마음은 비행의 고통으로 다 잊고
괜히 간식으로 주는 땅콩도 먹고, 와인도 마시고, 세 끼 식사마저 다 챙겨 먹어봤지만
시간은 더디 가기만 했다.
그러나, 마침내 이탈리아에 도착했다.
苦盡甘來? 그렇다.
이제 즐기기만 하면 된다.
일찍 잠 들고 내일부터는 똘망하게 깨어 하나도 놓치지 않고 듣고 구경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