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
은 희 경
1
우편물은 모두 네 종류였다. 셀로판지를 통해 인쇄된 주소와 이름이 내비치는 창봉투가 하나, 흰 사각봉투 둘, 그리고 우표가 두 줄로 길게 붙어 있는 두툼한 서류봉투.
사신이 거의 없는 요즘은 봉투만 봐도 우편물의 내용을 대충 알 수 있다. 한성문화재단, 이것은 아마 내가 예심을 맡았던 문학상 시상식의 초대장일 것이다. 비씨카드 주식회사, 이건 뜯어보나마나 청구서이다. 명세내역까지도 짐작할 수 있다. 결혼기념일에 백화점에 가서 아내에게 화이트골드 목걸이를 사주었고 후배들이 찾아와서 그리 즐기지 않는 단란주점으로 2차를 간 적이 있다. 주유소에서 세 번, 그리고 학교 앞 일식집에서도 두어 번쯤 카드를 사용했을 것이다. 어머니에게 보내드린 500리터 냉장고의 마지막 할부금도 포함돼 있을 테고 말이다.
또 하나의 사각봉투에는 올빼미 모양의 마크 옆에 '아이센스 안경'이라는 상호가 박혀 있다. 빳빳한 걸 보니 컴퓨터에 입력된 고객이라는 이유만으로 받게 되는, 진심과는 별 관계가 없는 결혼기념일 축하카드쯤인 모양이다.
나머지 하나만은 쉽게 짐작이 가지 않는다. 서류봉투에 '국어교육과 이진찬 교수님'이라고 쓴 단정한 글씨나 '강동구 둔촌동 주공아파트 303동 208호'라는 주소 아래 적힌 이름으로 보아 발신인이 여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현정? 그러나 기억에 없는 이름이다.
나는 연구실 문을 따고 들어와서 우편물을 책상 위에 던져놓는다. 그리고는 언제나 그렇듯이 먼저 가방을 책상 옆에 내려놓고 재킷을 벗어 옷걸이에 건 뒤 컴퓨터의 전원을 켠다. 다음은 팬히터의 온 스위치를 누를 차례, 그런 다음에는 전기포트에 물을 붓는다.
의자에 앉자 바퀴가 제 발끝에 힘을 주느라 삐익 소리를 낸다. 등을 기대고 연구실 안을 무심히 둘러본다. 그리고 어느 순간엔가 내 눈길은 창밖을 향해 돌려져 있다. 적정한 산소량이 유지되지 않는 수족관 속의 열대어가 수면 바깥을 향해 주둥이를 내미는 듯한 본능적인 동작이다. 그냥 숨을 한번 들이마시려고 했을 뿐인데 뱉으려고 보니 어깨가 흔들리도록 깊은 숨이 새어나온다. 아내 생각을 해서가 아니다. 거기까지가 이 방에서의 일과를 시작하는 순서에 포함되는 것이다.
또 하루가 시작된 건가.
서랍을 열고 카메라 렌즈닦이를 꺼내 안경을 닦는다. 안경닦이를 누르고 있던 은색 편지 칼의 차가운 감촉이 손끝에 닿는다. 몇 년 전 경복궁에서 열린 '마야 잉카전'에 갔다가 산 물건이다. 그 칼을 천천히 서류봉투 모서리에 끼워 넣으면서 나는 포트 쪽을 흘끗 본다. 포트 속의 물이 우물우물 불평하는 듯한 성마른 소리를 내더니 어느 순간 격앙된 듯 바르르 끓기 시작한다. 한현정이란 이름을 이마에 새긴 누런 서류봉투도 칼날을 물고 몇 번인가 지직지직 버티더니 이윽고 단념한 듯 투두둑 입이 뜯어진다.
봉투 안에 내가 놀랄 만한 것은 역시 들어 있지 않다. 원고로 보이는 A4 용지 묶음이다. 겉장에는 15포인트에 장평을 80쯤 주고 '진하게'를 선택해서 인쇄한 신명조체로 '멍의 기억'이라고 씌어 있다. 소설 원고인 모양이다. 이런저런 지면에 평론가라는 직함으로 이름을 들이미는 만큼 안면이 없는 사람에게서 원고가 부쳐져오는 일은 종종 있었다. 멍의 기억 한현정이라는 이름만큼이나 인상을 남기지 못하는 제목이다. 겉장을 들춰보니 맨 앞에 시구가 인용되어 있다. 이런 시작 역시 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방식이다.
'단 한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여기까지 읽어가는데 갑자기 날카로운 소리가 방안의 정적을 깬다. 화면보호 상태에서 조용히 흰 구름만 흘려보내던 컴퓨터가 내 주의를 끌기 위해 '삐리릭' 소리를 낸 것이다.
원고를 그대로 봉투 속에 집어넣고 나는 컴퓨터 앞으로 의자를 당긴다.
연구실의 개인 컴퓨터에 인터넷을 깔아준다고 했을 때, 모든 것을 돈과 연관시키는 재단의 그 결정이 첨단정보를 제공하려는 배려만은 아니라고 짐작하긴 했다. 짐작이 맞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삐리릭' 하는 호출음이 교수들을 원격조종당하는 로봇처럼 컴퓨터 화면 앞으로 불러 앉히는 것이다. 학교 기물을 아끼도록 지도해라, 학장에게 인사를 잘하도록 지시하고 교수들도 모범을 보여라, 엘리베이터 사용 억제와 물 아끼기 실천에 적극 나서라 등등. 이 모두의 끝에 따라붙는 '협조 바란다'는 정중한 문장은 우락부락한 팔뚝에 새겨진 해골 문신이나 뒷골목 담벼락의 가위 그림보다 훨씬 더 으스스하다. 이제는 공문을 분실했다거나 전화연락을 못 받아서 미처 몰랐다는 핑계도 통하지 않는다.
회식 자리에서 한 동료가 '여긴 학교가 아니라 군대'라는 불평을 했다. 육사 교관을 거친 다른 동료는 '군대도 안 그래요, 소년원이라면 몰라도'라고 반박했다. 학교와 군대와 감옥의 가장 나쁜 점이 함께 발달되어 있는 곳이 소년원이라는 주장을 나도 어느 소설에선가 읽었다. '그게 조직의 속성인데, 그러려니 해야지 뭘'하고 누군가 시큰둥하고 무난하게 그 화제를 마무리했던 기억이 난다.
엔터 키를 누르니 화면보호가 걷히며 교무처에서 보낸 공지사항이 뜬다. 내일 있을 교양강좌에 학생들의 참여를 적극 유도하라는 내용이다. 물론 교수들의 참석도 '협조 바란다'고 명기돼 있다. 이틀 전부터 같은 내용이 벌써 세 번째 올라온다. 교수들까지 전원 교양강좌를 듣게 함으로써 강연료 12만원에 대한 아까움을 덜어보겠다는 발상이다.
이 달의 교양강좌. 제목은 '문학과 나의 인생'이고 강사는 소설과 박정환이다.
내가 전화를 걸자 정환은 반가워했다. '야, 동기 중에서 이 판에서 밥 빌어먹는 건 우리 둘뿐인데, 연락 좀 자주 하고 살면 입 부르트냐? 는 그에게 나도 가까이 하고 싶은 인간이라야 말이지. 아쉬울 때 한번씩 전화하는 거 보면 몰라? 라며 허물없이 대꾸해주었다. 나는 동향이라거나 동창이라는 이유로 누군가를 특별히 가깝게 생각해본 적은 별로 없었다. 비록 강연 좀 맡아줄 수 있냐? 하고 물어보자마자 그가 ‘강연료가 얼마야? 너같이 싸가지 없는 동창한테 술처먹일 돈은 돼야가지ꡑ라고 동창임을 강조하며 선선히 받아 주었다 하더라도 말이다.
나는 머그잔에 디카페인 커피 두 숟가락을 넣고 포트를 기울여 뜨거운 물을 붓는다.
창밖의 하늘은 잔뜩 흐리다. 몇 개인가의 거리, 건물들 저편으로 부옇게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그중 한 아파트에서 지금 아내는 헛구역질을 다스려가며 물에 만 밥을 삼키고 있을 것이다. 다섯 살 난 딸애는 그 옆에서 신나는 한글나라인지 한글세상인지 하는 이름의 학습지를 펴놓고 빈칸에 닿소리 스티커를 붙이느라 이마를 찡그릴 테고.
현관을 나서는 내 등 뒤에서 아내는 말했다. 저 오늘 병원 가요.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내가 마치 더러운 가래침을 내뱉듯 한 말투로 오늘 가겠다고 하는 병원. 그곳이 작년에 불면증 때문에 드나든 적이 있던 정신과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 산부인과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내의 우울증이 심해진 것은 피임에 실패한 뒤부터이니까.
딸애를 가졌을 때 아내는 임신 6개월의 몸으로 자궁 속의 물혹을 떼어내는 수술을 했다. 물혹이 태아와 비슷한 속도로 자라고 있어 태아를 압박해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태아의 안전을 위해 수술은 마취 없이 이루어졌다. 그 수술 후 아내는 출산의 고통에 대해 번번이 코웃음을 쳤다. 자연이 주는 고통은 다 견딜 만하게 만들어진 거예요. 생각해봐요. 사람이 번히 두 눈을 뜨고 있는데 배를 부욱 찢더니 뱃속에 있는 것을 다 헤치고는 덩어리 하나를 찾아내서 잡아당겨갖고 싹둑싹둑 잘라낼 때 그 고통, 남이 상상이나 할 수 있겠어요? 아내는 텔레비전 드라마 속에서 아이를 끌어안고 입을 쭉쭉 맞춰대는 엄마들을 멍청하니 바라보곤 했다.
내가 전문대학에 임용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아내와 나는 서울을 떠나 이곳 경기도로 이사했다. 토박이로 서울에서만 살아왔고, 더욱이 친정과 같은 동네에 살며 모든 가사에 친정어머니의 도움과 간섭을 받아온 아내는 젖 뗀 아이처럼 불안해했다. 아내는 낯선 변두리 도시에서 외톨이가 된 채 혼자 힘으로 첫아이를 키워야 했다. 몸까지 약했으므로 살림을 꾸리고 아기 키우는 일이 너무 힘에 부쳤다. 누구나 다 겪는 일이라고 힘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내는 아기가 잠이 드는 금쪽같은 시간에도 아기와 함께 잠들지 못했다. 제 인생이 어디로 가버린 것인지 슬퍼하느라 잠으로 시간을 축낼 수가 없었다.
그때만 해도 말상대를 해줄 수 있는 것은 전화기를 뺀다면 나뿐이었다. 아내는 나와 마주앉아 있는 시간을 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기가 자줘야 했고 또 내가 피곤하지 않아야 했다. 두 가지 다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나는 늘 피곤했다. 임용조건으로 기부금이나 기자재 구입을 강요하고 그럴 형편이 안 되면 매달 급여에서 발전기금 명목으로 얼마간의 금액을 제하는 재단이고 보면 학교 돌아가는 품새는 뻔한 일이었다. 열악한 조건에서 별 의욕 없는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치는 일도 쉽진 않았다. 무엇보다 쓸모없는 잡무와 심부름과 신경전과 수모에 적응하는 일에 치여서 다음 학기에 마칠 작정이었던 논문을 포기해야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나를 더욱 피곤하게 만들었다. 교수도 되었고 하니 대출받기가 쉽지 않냐며 사업자금을 돌려달라는 형의 전화가 걸려온 날엔 어머니에게서도 전화가 왔다. 제 뱃가죽 뜨뜻하다고 하나밖에 없는 형을 모른 척하다니 먼저 간 아버지를 볼 낯이 없어 죽지도 못하겠다며 어머니는 우는 소리를 냈다.
일주일에 이틀쯤은 내가 밤에 아기를 돌봐줘야만 자신도 생존을 위한 최저 수면시간을 채울 수 있다는 게 그 무렵 아내의 주장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늘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잠결에 아기를 어르는 아내의 기척에 깨어서 기저귀 가는 일을 돕거나 분유를 타는 일은 자주 해준 편이지만 그것을 주기적인 의무로 삼기에는 나 자신의 삶의 고달픔도 만만치가 않았다.
아내는 언젠가는 아이가 네 살이 되는 날이 오리라는 기대만으로 그 시절을 근근이 이겨냈다. 유아원에 보낼 나이가 되면 일자리를 찾을 작정이었다. 6년간의 직장생활이 지긋지긋하다며 결혼과 함께 대학병원의 약사 자리를 그만둔 아내는 약국을 차리고 싶어 했지만 그럴만 한 돈이 없으니 다시 취직을 해야 했다. 파트타임 자리 정도는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작년부터 아내는 친구들과 선후배에게 부지런히 전화를 했다. 그러나 마땅치 않은 눈치였다. 거울 앞에서 아랫배를 손바닥으로 눌러대며 짜증을 내고 콜드크림 마사지를 하다가도 곧잘 한숨이더니 전에 없이 이웃에 대한 험담을 즐겨 했다. 어느 집 아이는 키가 너무 작은데 엄마가 직장에 다니므로 애정결핍 때문임이 분명하다는 악의 섞인 주장까지 했다. 또 아무것도 아닌 일에 풀이 죽는가 하면 툭하면 공격적이 되었다. 몸이 훨씬 더 고단했던 시절보다 부부싸움도 오히려 잦아졌다. 약국을 차리고 싶다는 말은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늘 담뱃재를 아무데나 떤다는 등 화장실 변기 위에 신문을 두고 나왔다는 등의 문제로 다퉜지만 알고 보면 그게 그거였다.
아내는 볼링을 배우기 시작했고 단소 강습 같은 데에도 기웃거렸지만 여성문화센터 회원모집의 광고전단에서 보장하는 것처럼 삶이 윤택해진 것 같진 않았다. 이웃 아줌마에게서 바티칸 여행 중에 사왔다는 장미나무 묵주를 선물 받고는 그녀를 따라 성당에도 몇 번 나갔지만 영혼의 안식 같은 건 얻지 못했다. 아내는 아기 키우는 일에 치여 모든 것이 유보되어 있던 때보다 더 불행했다. 아내를 가장 견딜 수 없게 만드는 것은 그녀가 불행해진 데에 남편인 나를 비롯하여 그 누구도 잘못한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피임에 실패한 것을 알게 된 것은 보름쯤 전이었다. 아내는 이제야 불행의 원인을 알았다는 듯이 맹렬하게 제 운명을 저주했다.
아내는 애초부터 둘째아이를 원하지 않았다. 나 역시 아내가 이제 겨우 지나쳐온 고통스러운 시간을 다시 반복하도록 우길 마음은 없었다. 어찌 보면 간단한 문제였다. 그러나 아내는 선뜻 산부인과에 가지 않았다. 대신 자기 자신을 괴롭혔다. 지금까지 찾아 헤매던 증오의 대상을 자기 안에서 발견해낸 모양이었다. 아내의 혈관들은 나날이 내압이 높아가더니 말초신경에서부터 실핏줄이 터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내 제 가슴속의 멍이 되었다.
멍의 기억.
창밖을 보고 있던 내 시선이 반사적으로 책상 위로 떨어진다. 누런 서류봉투 속의 소설 원고는 조금 전 내가 놓은 자리에 그대로 있다. 머그잔 속의 커피는 차게 식어버렸다. 나는 커피를 마시려고 찻잔을 든다. 지금처럼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이른 시각에는 식은 커피를 마시는 것도 그럭저럭 습관이 되었다.
그러나 싸늘한 찻잔에 입술을 대던 나는 갑자기 어리둥절한 표정이 된다. 한현정이란 이름이 누구의 것인지 떠올랐던 것이다.
2
생선 지느러미를 띄운 뜨거운 술이다.
정환은 눈을 내리깔고 잔의 가장자리를 후후 불어가며 조금씩 입술을 축인다. 머리를 숙인 탓에 가르마를 중심으로 퍼져 있는 흰머리가 유난히 무성해 보인다. 피어오르는 김을 피해 이마를 찡그릴 때마다 눈가로는 순식간에 잔주름이 모이곤 한다. 형제 많은 집의 장남이라서인지 정환은 대학 다닐 때부터도 어른스러웠다. 마흔이 되려면 한두 해 남았는데 영락없이 사십 줄로 깊이 휘어진 사내의 모습이다. 하긴 내 모습도 남 보기엔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매일 보는 얼굴이라 눈에 익어서 느끼지 못할 뿐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만큼 자신의 나이를 실감하게 해주는 것도 없다. 10년 만에 만난 친구의 변한 얼굴을 보면 자신은 의식 못했던 10년 나이를 그 자리에서 한꺼번에 떠맡는 것 같다. 20년 만에 만나는 친구라면 더할 것이다. 갑자기 자신이 살아온 20년에 대해 무거운 희한에 휩싸이게 마련이다.
얼마 전 아내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우연히 대학동창을 슈퍼마켓에서 만나 몇몇 친구의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참, 너 미경이 알지? 걔도 우리 단지 사는데, 남편이 치과 원장이야. 남편이 몇 살인데 그렇게 일찍 자리 잡았어? 글쎄, 마흔쯤 됐을걸. 마흔? 아내는 깜짝 놀랐다고 한다. 순간 자기도 모르게, 어머, 걘 왜 그렇게 늙은 남자한테 시집을 갔다니? 라는 말까지 튀어나왔다. 그 얘기를 전하며 아내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고 보니 내년이면 당신 나이도 마흔이고 내가 서른여섯 되잖아요. 하루하루 치여서 살다보니 정작 세월이 뭉텅이로 가버린 것은 모르고 있었어.
"세월이 많이 흐르긴 흘렀구나."
농어회를 집으며 정환이 하는 말이다. 시장바닥에 앉아서 깍두기 하나 놓고 막걸리 퍼마시던 놈들이 회에다 히레라니, 더구나 요즘 같은 시절에 말야. 그러더니 불현듯 무슨 생각이 났는지 헛웃음 같은 게 입가에 어린다. 사실은 며칠 전에도 일식집에서 한잔 했거든. 중학교 동창 중에 카센터 하는 돈 많은 친구가 하나 있는데 나 술 못 사줘서 안달이야. 소설가가 뭐 소설만 쓰냐. 사보에 콩트 쓰고 여기 저기 강연 가고 여성지 수기 심사하고, 먹고사는 일이 바쁘지. 근대 걔는 바쁘다고 하면 내가 작품 구상하러 여행이나 다니고 뭐 소재 찾아서 사람 만나 술 마시고 그러는 줄 안다구. 어쩌다가 내 인터뷰기사 같은 거 나면 코팅해서 가게에 붙여놓고 저하고 둘도 없는 친구라고 침을 튀기나봐. 그걸 보면 손님들이 아저씨! 하려다가 사장님 한다나 어쨌다나.
정환은 젓가락으로 철판 위에 있는 팽이버섯을 찢으며 가볍게 덧붙인다. 새 책이 나올 때마다 어떻게 알고 먼저 연락을 해오는데, 늘 열 권씩 사서 단골손님한테 선물한다고 생색이지. 젠장, 내가 꼬박 꼬박 일년에 책을 세 권씩 낸다고 얼마나 존경하는지……. 적당히 식은 술이 정환의 목울대를 단숨에 넘어간다. 이사철마다 한권 내고 마누라 애 낳을 때 한권 내고 막내동생 대학 갈 때 한권 내고, 그 덕에 내가 불후의 명작을 벌써 몇 권이나 쓴 거야? 혹시 천재 아냐? 잔을 비우며 내가 대꾸한다. 당대에 아무도 안 알아주고 요절해야 천재지 나이 사십에 무슨 수로 요절하려고? 그러게 말야. 라며 정환이 피식 웃는다. 이 나이까지 살아버렸으니 이제 욕되게 생을 끌고 가다 내려놓는 것 말고 무슨 선택이 남아 있겠어.
우리는 동창과 써클 선후배의 소식으로 화제를 바꾼다. 소식을 전하는 것은 주로 정환이다.
광고회사를 그만두고 우동집을 차린 누구는 하루 40만원 매상을 채우는 데 재미를 붙였다가 허리 병이 나서 자리보전중이고, 누구는 전교조에 관련해 학교를 그만둔 뒤 생활설계사로 나선 마누라 덕에 먹고사는가 싶었는데 그 새로운 가장이 그만 바람이 나서 가출했고, 또 누군가는 아버지가 물려준 시내 노른자위 땅에 6층짜리 주차 빌딩을 지어 부러움을 산 것도 잠깐, 허가가 안 떨어져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여자 동기 중 누구는 방송국에서 구성작가 하다가 가수 매니저하고 결혼한 지 몇 달 만에 이혼했고, 제일 예쁘고 똑똑하고 콧대까지 높던 누구는 남편 따라 미국에 가서 빨래방을 하고 있는가 하면, 또 한동네 산다는 것을 잡지 기사를 통해 안 누구는 학습지 구독을 권하러 와서는 자기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담겼다는 습작 소설을 내밀며 눈물바람을 하고……. 전환은 이렇게 덧붙인다. 다들 사는 게 그래. 꿈도 사라지고 떠나온 길은 멀고, 다 그런 거지.
뜨거운 히레술을 세잔이나 마신 나는 머리가 조금 아파온다. 소설을 써들고 찾아왔다는 여자 동기 얘기를 들은 뒤부터였을까. 나는 정환에게 한현정의 얘기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이름은 뜻밖에도 정환의 입에서 먼저 나온다. 금방 담배에 불을 붙이고 첫 모금을 깊이 빨아서인지 목소리가 조금 칼칼하다.
"너 영규 소식 들었냐?"
"심영규? 글쎄, 출판사인가 기획사인가 다닌다고 들은 것 같은데 시로 등단했다는 말도 있고 발표된 걸 본 적은 없지만."
"그 자식이 무슨 시를 써, 한현정 마음에 들려고 폼 잡은 거지."
정환의 말투는 퉁명스럽다. 한현정이라는 이름만은 약간 어색하게 발음한다.
어느 시기에 나와 정환, 한현정은 같은 캠퍼스 안에 있었다. 나는 석사장교로 국방의무를 때운 뒤 막 박사과정에 들어갔고 군복무 기한을 꼬박 채운 정환은 4학년에 복학해 있었으며 한현정은 2학년인가 그랬다. 그리고 그 시기에 정환과 나의 동기로는 유일하게 캠퍼스에서 마주치는 사람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가 심영규였다. 그는 복교생이었다. 신입생 때 데모에 끼였다가 제적당했던 것이다. 겨우 한 학기만 같이 다녔으므로 나는 영규를 깊이 알지 못했다.
한현정에 대해서는 더욱 몰랐다. 정환이 문학회의 후배라고 챙기면서 어울려 다니는 걸 몇 번 보았을 뿐이었다. 한 번인가 두 번인가 학생식당에서 점심을 함께 먹은 적이 있긴 했다. 물론 정환과 함께 였고 그 자리에 영규도 있었던 듯하다. 그녀는 유복하고 사랑이 많은 집안에서 깨끗하게 씻겨가며 키워진 푸성귀 같은 인상을 주었다.
불어터진 자장면을 먹는 데도 반듯하고 탐스러워 보였다. 그녀가 졸업도 하지 못한 채 뱃속에 4개월 된 아이를 지니고 심영규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내가 놀라지 않은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녀는 순진하게 보였고, 그런 만큼 제 인생을 감당하려는 고지식함이 엿보였던 것이다. 남의 일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나는 한현정을 그 정도로만 기억했다. 두어 모금밖에 빨지 않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끄며 정환이 영규얘기를 계속한다.
"한 달쯤 됐나, 교통사고를 크게 당했다고 하더라."
"어쩌다가?"
"넌 정말 영규 어떻게 사는지 통 모르는 모양이구나, 어쩌다가? 그렇게 묻는 놈은 네가 처음이다. 다들 기어코? 그러더라.“
정환의 얼굴에는 노골적인 경멸이 나타난다.
"이 나이에 처자식 먹여 살릴 궁리는 제껴두고 혼자 바람같이 싸돌아다니니 팔자야 좋은 놈이지, 회사를 다니는 건지 여기저기 기웃대면서 술이나 얻어마시자는 건지, 곧 엄청난 사업 벌일 거라고 허풍이나 치고, 너한테는 찾아온 적 없었나보구나."
"나야 뭐 친한 사이도 아니니까."
"누군 친한 사이고? 사십이 돼서까지 곤드래가 되어 길바닥에서 자는 놈한테 그런 걸 따질 염치가 어딨어."
몇 년 전 정환은 자정 넘은 시각에 영규를 우연히 만난 적이 있다고 말해준다. 신촌 기차역 앞의 택시정류장에서였다. 엉망으로 취해 길바닥에 너부러진 남자를 택시기사 둘이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남자는 정류장의 쇠기둥에 기대고 있다가 거꾸러진 모양으로 머리가 차도 위까지 내려와 몹시 위험했다. 그러나 아무리 흔들어도 꼼짝하지 않았다. 택시기사들이 욕설을 퍼부으며 거의 발로 차다시피 해서 그를 인도 쪽으로 굴려놓았다. 그 바람에 엎어져 있던 그의 얼굴이 위를 향해 돌려졌다. 솔기가 뜯어진 더러운 양복에다 침이며 흙이며 잔뜩 묻어 어느 거지 못지않은 부랑의 연조를 과시하는 그 얼굴은 영규의 얼굴이었다.
다음날 아침 정환의 집에서 깨어난 영규는 정환 처가 끓여준 콩나물국을 먹고 나서도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출근 안 해도 돼? 라고 정환이 묻자, 나가면 잔소리만 들을 텐데 뭐, 라며 태평스럽게 돌아누웠다. 한현정을 의식한 정환이 약간 어색한 목소리로, 집에 연락해야지, 라고 말한 데에는, 상관없어, 간단히 대꾸했다. 라디오 방송에서 “문화 초대석”이라는 코너에 출연하기로 한 정환이 나갈 차비를 마쳤는데도 따라나서기는커녕 제집처럼 현관에 나와 정환의 어린 아들과 함께 빠이빠이를 하는 거였다. 오후에 돌아와 보니 전날 밤과 비슷한 지경으로 취한 채 책상 다리 옆에서 소주병과 사이좋게 고꾸라져 자고 있었다. 그가 돌아간 다음 정환은 한동안 잠잠하다 싶던 아내의 잔소리를 다시 뒤집어써야 했다. 정환의 표현에 따르면 여자란 싸움의 원인이 된 일만 따지는 게 아니라 거기에 평소의 불만을 엮고 비약시켜서 문제 해결을 비켜가는 일에는 타고난 족속이었다.
정환의 사정에는 아랑곳없이 영규는 자주 연락을 해왔다. 정환은 문학에 대한 열정과 신념을 토로하는 영규의 장광설을 참을성 있게 들어주기도 하고 경멸과 연민의 와중에서 그의 사업구상이란 것도 그런대로 고개를 숙이고 들어주었다. 술을 사고 잠을 재워준 것은 물론 돌려받을 기약 없이 푼돈을 빌려줘야 할 때도 있었다. 정환은 영규가 그렇게 오랫동안 우정을 강요할 줄은 미처 몰랐다고 한다. 어느 날은 동네 개들이 짖어 대서 나가보니 대문 앞에 토사물을 쏟아 놓고 쓰러져 있었으며, 또 어느 날은 정환과 함께 자던 요에다 오줌을 흠뻑 누기도 했다. 포장마차에서 우연히 만난 여자를 ‘내가 소설가 아무개의 친구인데 그 집에 가서 술 한 잔 더하자’고 꼬드겨 데려와서 밤늦게 벨을 눌러댈 때는 아무리 ‘진국’ 소리를 듣는 품 넓은 정환도 얼굴이 일그러졌다.
영규가 제적당했을 때 우리는 모두 갓 스물을 넘긴 나이였다. 스무 살의 가슴에 영규는 끌려가는 친구를 보고도 방관했던 자의 부끄러움을 새겨놓았다. 우리 동기에게 있어서 영규는 굳이 달라고 하면 갚지 않을 수 없는 선대의 빚 같은 편치 않은 존재였다. 당시 과대표였던 영규에게 한현정을 잃고도 아직 다 못 갚았다고 생각될 정도인지는.
"사고 난 날도 술을 엄청 마셨다고 하더라구. 용악문학상 시상식에 나타났더래. 수상자가 모교 교수이긴 해도 그거야 우리 졸업한 후에 들어간 교수인데 지가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런 자리에 얼굴을 내미는지 몰라. 후배가 와서 전하는데 삼차까지 따라가서 저 혼자 기분 다 내고 아주 볼만했다더라."
당연한 일이지만 그 후배는 처음에 영규를 몰라본 모양이었다. 영규 쪽에서 먼저 다가와, 너 시 쓰는 아무개지? 나 79학번 심영규다라고 인사를 청했다. 후배는 그럼 박정환 선배하고 동기시겠네요? 하고 알은체를 했다. 다음 순간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후배는 그 밤 내내 영규와 함께 움직여야만 했다. 뒤풀이 자리에 가 앉자마자 영규는 술을 급하게 마셔댔다. 꼬부라진 혀로 쉴 새 없이 떠들었다. 그런 자리에서 듣기에 민망한 험담투성이였고 음담패설에 욕설도 섞였다. 후배는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 영규와 결코 친한 사이가 아님을 증명해야 할 필요를 강하게 느꼈으므로 안절부절못했다. 그는 화장실 다녀오는 길에 슬쩍 다른 자리로 가 앉았다. 술이 거나해지면서 좌석이 마구 뒤섞이는 분위기였다. 후배가 앉았던 영규의 옆자리에도 계속 누군가가 앉았다. 그러나 하나같이 얼마 안 가서 분연히 혹은 싸늘히 일어서곤 했다. 영규는 춤까지 추었고 생전 처음 보는 음전한 여자 문인들의 팔을 끌어당기며 구애도 하고 굴욕적인 박대도 받았다. 나중엔 훌쩍거리기까지 했다.
후배가 새로 옮겨앉은 자리는 마침 그날의 수상자와 같은 테이블이었다. 누군가가 영규를 가리키며 수상자에게 물었다. 선생님 제잔가요? 그 대학 출신이라던데요? 아뇨. 나도 처음 봅니다. 그런 저 작자가 아는 사람도 없이 여긴 왜 와서 주접을 떨죠? 점잖은 시인은 너그럽게 대답했다. 놔두세요. 배반낭자라고 술이 극에 이르면 흐트러지고 즐거움이 극에 이르면 슬퍼지는 거 아닙니까. 그러고는 입속말로 조용히 덧붙였다. 원래 잔칫집이란 거지로 오는 데니까요.
"그러니 그래 무슨 망신이야. 그러고도 마지막까지 남아서 아무나 붙잡고 한잔 더 하자고 설치더래. 그런 놈이 차도라도 안 뛰어들겠어?"
"병원엔 가봤냐?"
"그럴까 하다가 말았다. 소식도 좀 늦게 들었고, 한현정이 망가진 모양 그것도 대하기 좀 그렇고……."
정환은 식어버린 매운탕을 한 숟갈 떠먹더니 고춧가루가 목에 들러붙었는지 헛기침을 몇 번 한다.
"이젠 세월도 지나고, 이런 말해도 되는 시절이 온 것 같아 말이지만……. 사실 걔가 데모나 제대로 한 거냐? 멋모르고 우쭐해서 전단 나눠주다가 짭새들 덮칠 때 도망 못가서 잡힌 거잖아."
물 컵으로 손을 뻗는 그의 표정은 아무래도 떨떠름하다.
"아무튼 영규 그 자식은 인생 전체가 다 포즈야. 현실이라고는 없어. 직장생활을 어떻게 하는 줄 알아? 왜 김범수라고 영구한테 전단 들려 보냈던 선배 있잖아. 실형 살고 나와서 사회과학 출판사 다니다가 몇 년 전에 사식집 한 옆에다 기획회사라고 조그맣게 차렸나봐. 영규 그렇게 빌빌거린다는 소식 듣고 데려다가 사보 만드는 일을 맡긴 모양인데……. 처음에는 대충 호감을 사나봐. 창의적이고 신선하다 이거 물건이 되겠는데. 이런 식으로 말이지. 근데 중요한 순간에 사고를 친대.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고 자료를 다 가져가서는 그날부터 며칠 동안 얼굴도 안 비친다는 거야. 시안 한번 못내 보고 클라이언트한테 잘린 게 몇 번이나 된다더라. 뒷감당도 못하면서 큰소리부터 치고 보는 거나 일 저지르고 나서 몰래 숨어 있는 거, 그거 응석 아니냐? 그래도 주제에 술집에 가면 아가씨들한테는 인기 많다더라. 인간이 순수하다나 어쨌다나."
정환은 몇 가지 얘기를 더 전한다. 딸 낳을 병원비까지 제 뱃속에 술로 처넣은 놈이야. 한현정이 어디서 급히 돈을 돌려갖고 혼자 병원에 가서 애를 낳았대. 애비라는 놈은 다음날인가 그 다음날인가 또 잔뜩 취해갖고 나타나서 병원 경비하고 한판 붙고 있는 걸 산모가 나와 애걸복걸해서 겨우 돌려보냈다고 하더라.
"솔직히 난 지금도 이해가 안 가. 한현정은 대체 뭘 보고 영규를 받아들였을까. 그 허풍에 넘어갈 정도로 머리가 빈 여자도 아닌데 말야."
벽시계를 보니 벌써 열한시를 가리키고 있다. 나는 말머리를 돌린다.
"제수씨랑 애들은 다 잘 있지?"
"마누라야 늘 그 타령이고, 밑엣 놈이 올해 국민학교 들어가. 참, 초등학교. 나 원,소학교나 공민보통학교나 국민학교나, 원고에 썼다 하면 출판사에서 전부 다 초등학교로 바꿔버리니 나도 이젠 자동으로 거기 맞추게 되네. 왜 컴퓨터에서 불현듯이라고 치면 삐릭, 소리가 나면서 불현과 듯을 띄어버리고 신호등이라고 치면 신호와 등 사이를 재까닥 떼놓잖아. 나중에는 그 단어를 잘 안 쓰게 되더라구. 이런 걸 무슨 경우라고 하는지, 혹시 '반항'인가?"
"이 나이에? 아마 '적응'일걸, '포기'거나."
시간이 늦어지고 술기운이 올라서인지 우리의 이야기는 맥이 없이 시들하다. 지금까지 화제를 주도해가던 정환이 특히 말수가 적어진다. 나는 불이 꺼진 내 연구실과 책상, 그리고 서랍 속에 은색 편지 칼로 눌려 있는 한현정의 원고를 생각한다. 한현정은 왜 정환이 아닌 내게 소설을 보냈을까.
술집에서 학교까지는 십여 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이다. 나는 연구실에 있는 그녀의 원고를 정환에게 양도하려는, 사실은 떠맡겨버리려는 생각을 잠깐 해본다. 그 소설이 어떤 내용일지는 짐작할 만하다. 여자의 신세타령에 호의를 가질 수 없는 나보다는 애정을 갖고 읽어주는 사람에게 맡겨지는 편이 그녀를 위해서도 훨씬 나을 것이다. 나는 정환을 힐끗 본다. 정환도 자기 생각에 골똘해서 말이 없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한잔을 더 주문한다.
말없이 술잔을 만지작거리던 정환이 시선을 잔에 둔 채로 중얼거린다.
"마찬가지였을 거야."
나는 새로 날라져온 뜨거운 술을 한 모금 마시고 그의 다음 말을 기다린다.
"뭐가 그렇게 다르겠어. 똑같이 악다구니를 쓰다가 한편 서로 불쌍해하기도 하고, 그렇게 늙어갔겠지. 데려다 고생시키기는 지금 마누라나 마찬가지였겠고……. 마누라가 나한테 하는 잔소리를 그 여자가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끔찍해. 차라리 뺏기기를 잘했다는 생각도 들고……. 그래도……."
말을 끊더니 정환은 한참 동안 다시 물끄러미 술잔을 내려다본다. 술잔에 비친 제 얼굴에 당황하는 표정 같기도 하다. 갑자기 쓸쓸하게 웃고는 잔을 쳐들어 술을 기울이는데 뺨에 홍조가 어려 있다.
"그래도 한번 같이 살아봤더라면 하는 생각은……. 지금도 같아. 그런 건 죽을 때까지 안 변하는 모양이야."
"그것도 일종의 멍 같은 건가?"
"멍?"
나는 아무 대답 없이 영규의 사고소식에 대해 마저 묻는다.
"퇴원은 했대?"
"수술했다는 소식까진 들었는데 그 다음은 모르겠다. 지금쯤 퇴원 했겠지 뭐. 왜, 가보게?"
"아니, 그건 아니고……."
종업원 아가씨가 자리로 오더니 치워도 되겠냐고 묻는다. 계산서 갖다드릴까요? 라며 단골인 내 쪽을 바라본다. 내가 지갑 안에서 카드를 꺼내는 걸 보고 정환도 제 가방을 끌어당기려 한다. 나는 가볍게 손을 저어 만류하고 아가씨에가 카드를 건넨 다음 하던 말을 마무리한다.
"그냥, 멍 때문에……."
"왜 자꾸 멍 이야기야?"
"그런 제목으로 소설을 써서 보내온 여자가 있어."
"누군데?"
"응……. 그냥 그런 사람이 있어."
정환도 더 이상 물어볼 생각은 없는지 아무 말 없이 양복저고리의 소매에 팔은 집어넣는다.
밖으로 나오자 차가운 밤이 기다리고 있다. 몇 개의 간판에 불이 켜져 있을 뿐 거리는 무섭게 조용하다. 이 시간에 서울까지 어떻게 가려구, 그냥 우리 집에서 자고 가라. 내말에 정환은 신림역까지 택시 타고 나가면 아직 심야버스가 있어라고 하더니 무슨 친한 사이라고 자고 가, 아쉬울 때나 또 연락하면 되지 하며 껄껄 웃는다. 어둠속에서도 주름살이 뚜렷한 음영을 만든다.
택시가 와서 선다. 정환이 먼저 이어서 그의 낡은 가방이 택시 안으로 구겨져 들어간다. 택시는 바로 출발하지 않는다. 택시비를 흥정하는 모양이다. 보고 있기가 어쩐지 민망해진 나는 신호등이 푸른색으로 바뀌자마자 횡단보도를 건너간다. 다 건너간 다음 돌아보니 정환이 택시에서 도로 내리고 있다. 그리고는 다른 택시를 향해 손을 쳐들며 뛰어간다. 그의 무릎께에서 외투자락이 경망스럽게 벌어져 펄럭거린다. 옆구리에 가방을 낀 채 한쪽 손은 주머니 속에 들어가 있다. 그 손끝은 강연료 봉투에 닿아 있을 것이다. 11월인데 밤공기가 꽤 차다.
3
한현정의 원고를 읽은 것은 그러고도 며칠이 지난 뒤이다.
아침에 아내는 현관 신발장에 기대서서 오늘은 정말 병원에 가야겠어요. 라고 말하더니 대답이라도 기다리듯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산부인과에 가려는 모양이었다. 이미 아내가 결정을 내린 문제라고 생각했으므로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딸애 때 아내가 치렀던 고통을 생각하면 출산이 부부 모두의 일이라고는 해도 어쨌든 아내의 몸에서 이루어지는 일인 만큼 그녀가 일차적인 당사자로서의 권한을 갖는 것은 당연했다.
하늘은 여전히 흐려 있다.
올 겨울은 유난히 흐린 날이 많다. 공기가 포근해서 눈이 올 것 같지는 않은 날씨이다. 출제한 시험문제를 컴퓨터로 전송해놓고 생각 없이 창밖을 보다가 눈에 띈 김에 역시 별 생각 없이 꺼내든 것이 한현정의 원고이다.
멍의 기억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김중식
'이탈한 자가 문득' 중에서
그는 지금 여기 없다. 여행 중이다.
항상 떠나고 싶어 했으므로 그는 분명 행복할 것이다. 이곳에서 그는 조그만 상자 속에 첩첩이 몸을 구겨 넣은 서커스의 거인처럼 말없이 신음해왔다. 그러므로 어디에 있든 이곳에서보다 행복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런데도 나는 그가 빨리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돌아오면 나는 그에게 먼저 물감을 사주고 싶다. 그가 물감을 갖고 싶어 했던가? 그건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에게는 물감이나 나무, 돌, 뭐 그런 따위의 정 붙일 이름이 필요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너무 늦어버린 걸까. 그러나 나는 끝까지 그를 기다릴 것이다.
얼마 전 그날도 그는 술에 취해 들어왔다. 그는 벨을 누르는 법이 없다. 문을 발로 찬다. 새벽에 자기 집 문을 발로 차면서 자기 아내를 ‘거기 누구 없어?'라는 객쩍은 호칭으로 부르는 것은 근동에 그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문을 열자마자 그는 마치 옷장 속에 숨겨두었던 시체처럼 뻣뻣이 내 몸 위로 쓰러졌다. 나는 이력이 붙은 침착함으로 그의 몸을 마루까지 부축해 끌고 와서 소파에 눕혔다.
구겨진 물건처럼 소파에 부려져도 그는 고개만은 번쩍 쳐들고 있다. 그는 술이 취하면 절대로 고개를 눕히지 않는다. 아무리 머리를 눌러도, 때론 좀 흉하지만 배를 타고 올라가서 두 무릎으로 그의 어깨를 찍어 누르고 양손으로 힘껏 눌러보는데도 소용없다. 죽은 듯 늘어져서 눈을 감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고개만은 철심을 박은 듯 빳빳했다. 그리고 구두를 벗기려고 하면 여지없이 나를 걷어찼다. 그런 날이면 나는 두 손을 바닥에 축 늘어뜨리고 고개만 약 30도 각도로 비스듬히 쳐든 채 쓰러져 있는 그를 소파 위에 놓아두고 혼자 방에 들어가서 잔다.
그런 날이면 또 나는 자명종 시계바늘을 여섯시에 맞춰놓는다. 어린 딸애가 깨어나기 전에 일어나 그의 모습을 수습하기 위해서다. 나는 모든 것을 이를테면 삶의 자잘한 수고로움과 고단함, 가난 같은 것을 딸에게 다 보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술에서 깨어나지 못한 아빠의 모습은 되도록 감추고 싶었다. 아빠가 치르는 삶의 엄숙한 형질변화를 이해하기에는 아직 그 애는 어린 아이였다.
딱 한번 딸애가 나보다 먼저 일어난 적이 있다. 마루로 나가보니 딸애는 웅크려 잠든 그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엄마, 왜 아빠는 구두를 신고 자?"
"글쎄, 계속 걸어가려고 그러나보지."
"꿈속에서?"
딸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가만히 그의 구두를 벗겼다. 아빠 밤새도록 걸어서 다리 아프겠다. 라고 중얼거리면서.
지난밤에 그는 어떤 잠을 이루었을까. 내가 혼자 편안한 이부자리에서 일어나며 맨 먼저 떠올리는 것은 불편했을 그의 잠. 그 잠의 체위이다. 이제라도 그를 이부자리에 눕혀야 한다. 이제는 제아무리 뻣뻣한 그의 고개도 탄성을 잃었을 것이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먼저 옷을 벗긴다. 그의 맨살 속에 아른아른 비치는 부드러운 누르스름함이 있다. 멍의 흔적이다. 자주 헛발을 딛고 모르는 곳을 헤매고, 그러는 동안 그의 양복마다 짜깁기 자리가 늘어가듯 그의 몸에서는 멍이 떠나지 않는다. 멍은 거무튀튀할 때까지는 욱신거리다가 푸르스름해지면 거의 아무렇지도 않다. 이렇게 아른아른한 누르스름함으로 남아 있을 때는 언제 어디서 그 멍을 얻었는지조차 잘 기억나지 않는다. 처음 멍이 되던 순간의 타박은 잊혀진 통증이 되고 만다. 그러면 그는 또 새로운 멍을 만들어 온다.
따뜻하게 적신 수건으로 그의 몸을 닦으며 나는 몸속에 자리 잡은 주름살을 보았다. 세월이 일그러뜨린 뼈의 순서와 각도의 변형도 본다. 그와 함께한 십여 년 동안 그는 많이 변했다. 숱 많던 갈색머리는 성글어졌고 앞이마는 벗겨질 준비를 하고 있다. 몸의 선 역시 굽어가는 어깨와 불러가는 배의 균형을 잡을 수 없어 무정형이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은 그러나 그 혼자만의 일이 아니다. 자기와 함께 태어난 사람들과 더불어 늙어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는 그가 자신의 늙어가는 겉모습처럼 그렇게 일반적인 삶에 편입되기를 바란다.
어찌어찌하여 1959년 4월에 그는 태어났다. 손 귀한 집에 시집와서 아들 다섯을 낳고 또 하나를 보탰다고 그의 어머니는 숟가락도 드높이 미역국을 먹었다. 전라도 한 소읍의 부농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여섯 아들에게 가난 같은 삶의 신산은 안겨주지 않았다. 아들 많은 집에 얼굴이 각각이라고 여섯 명의 아들이 누구는 크고 누구는 작고 누구는 실하고 누구는 허했다. 노자 장자를 즐겨 읽었다는 아버지의 아들들답게 두드러지는 점도 거스르는 점도 별로 없었고 있는 듯 없는 듯하여 불효할 일도 따로 없었다. 막내아들만이 해 넘어 간 뒤에도 부르러 가야만 집에 들어오는 역마기에 엉뚱한 짓을 곧잘 하고, 뭔지 모르게 금방 시작했나 싶으면 이내 싫증내는 일이 많기도 많아 어이없는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그것 역시 그런 애도 한 명쯤 있으려니 하고 심상하게 넘어갈 만한 정도였다.
그는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자랐다. 열두 살 때인가 병을 앓아서 학교를 한 해 쉰 적이 있다. 그것을 빼고는 누구나 겪었을 평범하기 그지없는 유년이었다.
상급학교로 진학해서도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학교생활을 갑갑해하긴 했다. 그러나 방구석에 틀어박혀 김수영 시를 베껴 쓰고 기타 반주에 맞춰 CCR의 노래를 불러대는 일로 그럭저럭 사춘기를 보냈다. 친구는 거의 없었기에 교우관계는 무난했고 성적은 그럭저럭 중위권을 웃돌아 누구의 기대도 모을 필요 없이 눈에 안 띄게 대학은 갈 수 있을 정도였다. 뭐든 심각하게 생각하는 일이 없고 집착하는 것도 없는 그이고 보면 친구나 성적 같은 일로 갈등을 느끼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그의 천연덕스럽고 선량한 정신을 구속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까지는.
그가 대학에서 제적당한 것은 신입생 때였다. 그래서 스물두 살에 그의 학력은 고졸이었다. 직업을 가질 만한 기술이 있을 리도 없었으므로 취직은 여의치 않았다. 친척이 경영하는 조그만 제조회사에라도 들어가려 했지만 위장취업으로 오해받느니 어쩌니 하는 어처구니없는 말로 꺼려했다. 결국 그는 책을 만들어주는 사식집에서 일했다. 처음에는 대지작업을 하는 칼잡이로 일하다가 선을 긋게 되었고 대단찮은 손재주 덕분에 간단한 컷까지 그리게 되었다. 몇 달간의 견습생활이 끝나 제대로 된 첫 월급을 받은 날 밤에 그는 청량리에 가서 여자를 샀다.
새벽에 그는 거리로 나왔다. 야릇한 쓸쓸함과 노곤함, 그러면서 밑도 끝도 없이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 따위의 말을 중얼거리게 만드는 생뚱한 생의 의지 같은 것이 밀려왔다. 불이 켜져 있는 성바오로 병원을 끼고 돌아서 그는 청량리 시장으로 갔다. 지난밤 일로 남방셔츠가 너무 구겨졌으므로 새벽시장에서 새 티셔츠를 사 입었다. 그러고 버스정류장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그는 불현듯 자기가 쫓겨난 학교를 향해 가고 있는 버스를 보았다.
버스는 마악 정류장을 출발하고 있었다. 그는 그 버스를 향해 맹렬히 뛰기 시작했다. 사이드 미러를 통해 운전사는 뛰어오고 있는 그를 보았다. 운전사는 멈출까도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멈췄다가는 다음 신호등에서 삼십초 정도를 더 기다려야 한다는 판단이 들었던 게 틀림없다. 멈출 듯하던 버스는 다시 속력을 내며 멀어져갔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버스를 향해서 뛰었다. 죽어라고 뛰었다. 사이드 미러로 계속 그를 지켜보던 운전사는 혀를 한번 찼다. 마침내는 차를 세우고 필사적으로 뛰어오던 젊은이를 차에 태웠다.
차에 타자 그는 우선 현기증을 느꼈다. 간밤에 이어 체력소모가 너무 컸던 탓에 잠시 그의 눈앞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헐떡이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아직 아침이 완전히는 밝지 않은 시각이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앞가슴에 손을 대고 한참 숨을 고르고 나자 조금 진정이 되어 손바닥에 좀 빠른 듯한 박동만 전해왔다. 그때 그는 보았다. 방금 꺾어져 들어온 종로 거리를, 그리고 학교에 가기 위해 버스에 앉아있는 자기 자신……. 깜짝 놀라서 자기의 낯선 티셔츠를 내려다보는 그의 얼굴은 새빨개졌다.
처음 그 얘기를 할 때 그는 피식 웃었다. 그러나 무지막지하게 취한 어느 날엔가 내 품에 안겨들며 울었다. 나는 깃발을 들고만 있는데 꼭 흔드는 것 같았어. 무서워서 떠는데, 근데 내손에서 깃발이 막 흔들리는 거야. 그래도 난 도망 같은 건 안 갔어, 라며 머리와 팔을 흔들흔들 내젓더니 그대로 내 스커트에 코를 박고 잠들어버리는 거였다.
나에게 그는 복사씨 같은 사랑을 주마고 말하곤 했다. 너에게서 복사씨 살구씨 같은 단단한 아름다움을 본다고 했고, 나는 너의 나무 아래서 우리 아이들에게 사랑의 음계를 가르쳐주고 싶다고 했고, 나는 너를 만나 콧구멍이 넓어졌나봐, 숨이 너무 잘 쉬어져, 라고 했다. 나는 그와 결혼했다.
결혼한 지 3년이 지나서야 그는 대학을 마쳤고 첫 직장에 들어갔다. 오래 붙어 있진 못했다. 번번이 감탄할 만한 아이디어를 냈지만 자신이 생각하기에 세상은 항상 그의 뒤에서 한 발짝 뒤쳐져서 돌아가고 있었다. 그는 자주 동료들에게 경계나 따돌림을 당했다. 또한 윗사람들에게 그의 근무태도는 언제나 문제였다. 그는 직장을 자주 옮겼고, 옮길 때마다 새 직장에 신나했고, 신나서 술을 마셨고, 새 직장과 함께할 많은 유쾌한 계획을 세웠고, 유쾌해서 술 마셨고, 얼마 안 가 자신이 빌붙지 못할 곳임을 알았고, 그러니 또 마셨고, 여기저기서 상처 입었고, 술 마셨고, 지각한 김에 결근했고, 윗사람한테 혼날까봐 계속 결근했고, 그래도 마셨고, 두고 보자 혹은 에라 하며 마셨고, 나중에는 뭘 마시는 줄도 모르고 마셨다. 그러는 동안 그는 집 바깥을 헤매었으며 잠을 재워주는 만화가게나 오락실 같은데서 가출 소년들과 함께 '버림받은 인생'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나는 그의 외박과 잠적에 적응해야 했다. 처음에는 밤새 잠을 못 이루고 그가 갈 만한 곳에 전화를 해댔다. 파출소에, 그리고 182에까지도 연락을 해보곤 했다. 저, 주민등록번호가요, 오구공사일칠에 일사팔공일일팔인데요, 네, 신고 들어온 거 없다구요, 고맙습니다, 하고 전화를 내려놓으며 보낸 불면의 시간이 짧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가 일주일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은 적이 있었다. 시숙에게 전화를 했다. 이렇게 오래 안 들어온 건 처음이라 서요, 시숙이, 한심한 놈, 언제나 정신을 차릴는지, 아무튼 제수씨, 내가 알아볼 테니 걱정 말고 하루만 더 기다려보지요, 그러고 있는데 누군가 현관문을 차는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그였다. 아주버님, 그이 지금 들어왔어요, 그래요? 그 자식 꼼짝 말고 있으라고 하세요, 내 지금 갈 테니까, 한 시간쯤 후에 시숙이 와서 그를 집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시숙의 얼굴에는, 나는 지금 너를 단단히 야단치려고 벼르노라, 고 씌어 있었다. 그는 내가 굵은 때를 밀어주는 대로 얌전히 목욕을 하고서 대기하고 있다가 형을 따라나섰다. 형의 등 뒤에서 신발을 꿰며 그는 울상을 지어 보였다. 내 귀에 대고, 난 이제 죽었어, 나 어떡해, 라고 속삭였다. 나도 따라 목소리를 낮춰서, 괜찮을 거예요, 하고 속삭이며 등 뒤에서 그의 오른쪽 어깨에 살짝 손을 얹었는데, 그는 그 힘에도 몸이 휘청 떠밀리는 것이었다.
베란다에 나가서 내려다보니 고개를 푹 숙이고 초등학생처럼 형을 따라가는 그의 굽은 등 위에서 가을 햇살이 천진하게 뛰놀고 있었다.
우리는 가난했다. 그리 형편이 좋지 않은 출판사에서 촉탁으로 일하던 나는 아이를 가진 뒤 이러저러한 눈총을 견디지 못해 그 일마저 그만두었다. 그때부터는 짜디짠 수고비를 받으며 삯바느질 하듯이 교정을 보고 번역을 했다. 여성잡지에 ‘내 순결을 앗아간 남자’라는 제목의 ‘가라’ 수기를 써서 원고료를 받기도 했다. 내가 그런 수기를 쓰고 있으면 그는 밤늦게 비틀거리며 들어와서, 너 그따위 개칠 계속할 거냐? 내 앞에서 한번만 더 그따위 글 쓰면 다 찢어버린다, 알겠지, 응? 해놓고 다음날 변변찮은 아침상을 대하면, 원고료 언제 나와? 반찬 좀 만들어서 밥 좀 잘 먹자. 너 병 걸리거나 일찍 늙으면 난 인정사정없이 이혼해버릴 거야, 알았어? 라고 아닌 협박을 했다.
아이가 태어나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나는 첫 아이를 유산시켰다. 그가 학생의 처지였기 때문이었다. 후유증 탓인지 두 번째 임신이 된 것은 몇 년이나 지난 뒤였다. 그러나 형편이 나쁘기는 첫 번째나 마찬가지였다.
딸아이 이름은 반드시 아버지가 지어야 한다며 역순사전, 갈래사전, 속담사전을 다 빌려다놓고 그는 며칠을 끙끙댔다. 우리 어머니 이름이 좋았는데 박분이라고, 분이, 참 이뻐, 가루 같기도 하고 향기가 날 것 같잖아? 반디는 어떨까, 반짝반짝 빛이 나게, 아냐, 해가 환히 든 인생을 살라고 해든이? 그것도 아니면 아예 해맑은 아이라고 지을까.
그러더니 보름쯤 뒤에 내가, 출생신고 기한이 다 됐길래 정인이라고 지어서 올려버렸어요, 라고 하니 그는 무릎을 치며 그래, 바로 그 이름이야, 심정인, 하는 것이었다.
딸애가 혼자 앉게 되었을 무렵 나는 그의 책상을 정리하다가 처음 보는 노트 하나를 발견했다. 두툼한 비닐표지의 노트였다. 그는 새 노트나 연필을 좋아하여 곧잘 사곤 했지만 이내 싫증을 내고 팽개치기 일쑤였다. 책꽂이에 꽂혀있는 노트들 대부분이 앞의 두어 장만 채워져 있거나 이름만 써놓은 것들이었다. 표지를 넘겨보니 역시 서너 장만 채워져 있었다.
3월 19일 수요일.
정인아. 오늘부터 아버지는 살아가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적기로 했다. 나의 삶을 헛되이 흘려보내지 않으려는 마음에서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살고 있는 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일을 네게 알려주기 위함이란다. 너는 분명 나와 같은 시간을 살고 있다. 그렇지만 내가 사는 세상과 네가 사는 세상은 다른 것이다. 앞으로 펼쳐질 네 앞의 세상에 비한다면 아버지의 세상은 시궁창의 구정물보다 더 더럽고 싸구려 주간지의 폭로기사보다도 더 하찮은 것이겠다. 다만 아버지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아니 더러운 역사일수록 그것이 주는 교훈은 값진 것이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는다.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으니까. 정인아, 너의 엄마는 이름을 아주 잘 지었다.
3월 26일
정인아. 일주일이 지나서야 너를 만나는구나. 어제는 월급날이었다. 아버지는 월급만 받으면 화가 난다. 아예 빈 봉투가 더 떳떳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화를 내고 돌아다니다보니 오늘에야 들어왔구나. 가난한 엄마를 기다리게 해놓고.
너는 어려서 사치가 뭔지 모를 것이다. 아버지가 가르쳐주마. 그것은 문명된 아내에게 '실력'을 보이려고 발을 씻는 일이다. 냉수를 마시고 맑은 공기도 마셔두고 말이다. 길고 긴 오늘밤에 나의 사치를 받기 위하여 어서어서 불을 끄는 네 엄마의 뒷모습이 저기 있구나.
4월 2일.
정인아. 아버지는 어제 훌륭한 아저씨를 만났다. 소설가 아저씨란다. 그러나 소설가라서 훌륭하다는 게 아니다. 사랑이 있는 아저씨이기에 훌륭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 아저씨는 아버지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제 것을 나눠준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직 네 것을 가져보지 못한 너는 모를 것이다. 아버지는 그 아저씨처럼 훌륭한 사람을 만나면 곁에서 떠나기가 싫어진다. 그런 아저씨들이 있는 세상에서 같이 산다는 게 행복하기만 하다. 비록 아버지는 그 아저씨처럼 훌륭하게 되지 못하지만 말이다.
아버지는 너무 많은 것을 모르고 생각도 짧다. 그러나 앞으로 네가 이 글을 읽고 아버지의 못남을 비웃어준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것이다. 어머니는 내 얼굴의 사마귀를 빼주었다. 그런 사마귀가 네 눈 아래에 있으면 나는 꼭 빼줄 것이다. 그런데 내 눈 아래 다시 생긴 사마귀는 구태여 빼지 않을 작정이다. 정인아.
4월 13일.
할말이 많은데 정신이 흐리구나, 정인아. 이번에는 시에 대해 말하고 싶은데. 정인아. 사랑에 대해서도 철자법을 틀린 시, 철자법을 틀린 인생. 정인아. 다 나중에 엄마한테 물어봐라.
딸에게 주는 그의 글은 거기에서 끝나 있었다. 노트 아래께에 낙서가 몇 개 더 있었지만, 푸른 플러스 펜으로 쓴 글씨가 지저분하게 번져 있거니와 군데군데 얼룩이 많아 더는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가 이틀째 인사불성이 되었던 4월 13일은 나도 기억이 난다. 그는 아침이 되어도 눈을 뜨지 못했다. 나는 하나 남은 사과를 냉장고에서 꺼내 당근과 함께 강판에 갈았다. 정인이를 먹일 때처럼 베에 짜서 주스로 만들었다. 내가 윗몸을 부축해 일으켜주자 그는 눈꺼풀을 들어올릴 힘도 없는지 두 눈을 꾹 감은 채로 그것을 달게 마시고는 다시 누웠다. 한잠 자고 일어나더니 이번에는 '찬밥에 김칫국물을 넣고, 먹다 남은 나물 같은 것하고 같이 들들 볶아서 참기름 한 방울 떨어뜨려 김에다 싸먹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해주었다.
그는 이따금 그런 식의 음식을 주문했다. 으응, 여름인데 엄마한테 야단맞고 건넌방에서 낮잠 잔 다음 깨어보니 저녁이야, 근데 식구들이 안채 마루의 밥상 앞에 둘러앉아 나를 불러, 그래서 마루를 건너가는데 갑자기 이마 위로 빗방울이 톡 떨어지는 거야, 그럴 때 먹는 밥 같은 게 먹고 싶어, 라고.
어쨌든 그것까지 먹고 나더니 그는 시계를 보았고 오후 두시가 넘은 것을 알았다. 나는 밥상 치운 자리를 훔치고 있었다. 갑자기 그가 내 어깨를 당겨 안았다. 불쌍한 사람, 하고 중얼거렸다. 또 잠든 정인이를 한참 동안 내려다보더니 딸의 얼굴에 가만히 코를 갖다대기도 했다. 그의 콧김에 아이의 가느다란 머리카락 몇 올이 파르르 떨렸다. 그는 그 자세로 한참 동안 하염없이 앉아 있었다.
어렵사리 몸을 일으켜 회사에 갈 준비를 하고 있는 그에게 나는 모처럼 고액권을 몇 장 쥐여주었다. 그는 그 돈을 물끄러미 보더니 아까처럼 또 한번 길게 콧김을 내뿜었다. 나는 어쩐지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아서 정인이를 둘러업고 버스정류장까지 배웅을 나갔다. 첫 번째 버스를 그냥 보내버리는 그. 두 번째 차가 오자, 가긴 가야겠지? 나직하게 말하며 구두코를 한번 내려다보는 그. 버스에 억지로 발을 올리며 또 한번, 정말 가기 싫다, 하며 돌아보는 그. 차창으로 정인이가 손 흔드는 모습을 너무나 슬픈 눈으로 바라보는 그.
버스가 떠한 후까지도 나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조금 전의 그처럼 낡은 슬리퍼 앞부리에 한참 동안 눈길을 주고 있다가 포대기를 풀어서 정인이를 다시 단단히 업은 다음 버스를 탔다. 미장원은 세 정류장 너머에 있었다. 미장원에 가는 것은 거의 일년 만이었다. 그런 것이 그에게 무슨 위로가 될 것인가. 하지만 달리 그가 삶의 무게를 견디도록 도와줄 방법이 내게는 없었다.
그날 밤 그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여행을 떠나기 전날. 그날도 그는 현관문을 걷어참으로써 가장의 귀가를 알렸다. 문을 열자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날 그는 이미 마음속에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랑하는 것들과 작별하려 했기 때문이다. 가까스로 그를 소파 위에 눕힌 뒤 나는 여느 때처럼 혼자 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방문 손잡이를 잡고 언뜻 뒤를 돌아보았을 때, 순간 머리가죽이 짝 잡아당겨지는 듯한 쭈뼛함. 조금 전까지 소파 위에 너부러져 있던 그가 어느 틈에 일어나 단정하게 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 모습은 얼어버린 시신이거나 아니면 육신에서 분리돼 나온 혼령처럼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더욱 놀란 것은 그의 무릎 위쪽으로 빛이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는 두 손을 둥그렇게 오므려 무언가를 쥐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 사이로 흔들리던 작은 빛은 얼마 안 가 위로 치솟았다. 불길이었다.
그는 웃었다. 널름거리는 불빛에 이빨의 켜가 드러났다. 불길이 높이 쳐들어진다 싶더니 다음 순간 그것은 탁자 위의 신문지 더미로 떨어졌다. 오그라들며 타들어가는 신문지 더미를 두 손으로 집어 허공으로 내던지기 시작하는 그. 불길은 신문 한 장 한 장에 쉴 새 없이 옮겨 붙었고 그는 그것을 마술사처럼 계속 정신없이 허공으로 던졌다.
등 뒤에서 가느다란 탄성이 들려왔다. 딸애가 나와 있었다. 딸애는 그의 손동작에 따라 흔들리는 불을 보고 있었다. 엄마, 아빠한테서 불이 나와. 그 애는 마치 아름다운 불의 춤을 본다는 듯이 황홀한 표정으로 말했다.
다음날 아침 집안 구석구석에 날아가 박혀 있는 타다 만 신문지 조각과 재를 훔치는 것으로 그날 밤의 일은 말끔히 다 지워졌다. 그러나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가 여행을 떠난 지 벌써 보름이 넘었다.
여행을 떠난 그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것일 뿐인데 내가 왜 이렇게 슬퍼하는지, 이제 그 이유를 말해야겠다. 그의 여행은 지상의 것이 아니다. 그는 육신은 이곳에 놔둔 채 영혼만 갖고 여행을 떠났다. 그가 버려둔 육신은 지금 바로 내 앞, 이곳 4인 병실의 맨 오른쪽 침대 위에 눕혀져 있다. 친친 동여맨 붕대 아래 두 눈이 고집스럽게 감겨 있는 걸 보니 그는 아직도 자기의 여행에서 돌아올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아니면 그날 밤차에 치일 때의 멍이 너무 커서 누르스름해지기를 기다리는 데 시간이 이렇게 많이 걸리는 건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는 돌아올 것이다. 다시 한밤중에 문을 걷어차고 새 노트와 펜을 사고, 콧물을 질질 흘리면서 딸애에게 반성문을 쓰다가 그것마저 그만두어버릴 것이다. 그는 반드시 그렇게 돌아올 것이다. 늘 입버릇처럼 말하지 않았는가. 너와 함께 늙어가는 것은 거룩한 희망이라고.
지난주부터 나는 뜨개질을 시작했다. 밤이고 낮이고 그의 곁에 앉아 같은 자세로 뜨개질을 한다. 그가 자신의 여행에서 돌아와 맨 처음 찾을 사람이 바로 나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잠시도 자리를 뜰 수 없다. 그는 내가 뜨개질하는 것을 좋아했으니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생각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하도 여러 번 그의 몸에 대보아서일까. 내가 뜬 스웨터를 입고 있는 그를 수없이 본 것만 같다. 이 스웨터가 그의 옷이 아니라 몸이라는 느낌까지 든다.
몸판을 다 뜨고 팔을 뜨기 시작한 날 나는 갑자기 입속으로 비명을 지른다. 뒤판과 앞판, 양팔 그것들이 꼴을 갖추지 않고 하나하나 떨어져 있는 모습. 마치 그의 사지가 찢겨져 뒹구는 듯해서 날카로운 통증을 느낀 것이다. 그 뒤부터는 스웨터가 완전한 모양을 갖출 때까지 손을 멈출 수가 없다. 밤을 새워서라도 완성된 스웨터, 아니 온전해진 그의 몸을 이어 맞춰놓아야만 마음이 놓인다.
하지만 이 스웨터가 그의 마음에 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올이 촘촘하여 조여드는 옷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완성된 스웨터 올을 다 풀어내고 다시 뜨기 시작한다.
다시 스웨터가 완성되었다. 내 등과 어깨, 손가락의 굳은살 아래까지 뚫고 들어온 통증을 달래며 나는 그와 얘기를 나눈다. 그는 이 스웨터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한다. 목이 너무 좁게 뜨였어. 입을 때 머리가 잘 안 들어가서 짜증이 난다구. 나는 다시 풀고, 다시 뜬다. 이제 됐어요? 그는 볼멘소리를 한다. 넌 틀렸어. 네가 뜬 스웨터 속으로 나를 억지로 구겨넣으려고 하지 마. 난 절대로 스웨터에 몸을 맞추지는 않을 거라구.
나는 깜짝 놀란다. 그는 이미 돌아와 있다. 그런데 자기의 몸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어린 시절 잠든 동생의 얼굴에 수염을 그려 넣었다가 몹시 야단맞은 일이 있다. 잠든 사이에 얼굴이 달라지면 살짝 빠져나갔던 혼령이 제 몸을 못 알아봐서 영영 돌아오지 못한다고 했다. 그가 이렇게 오래 내 곁을 떠나 있을 리는 없다. 그는 돌아왔다. 남의 옷이 입혀진 탓에 자신의 몸을 찾지 못하는 것뿐이다. 나는 그의 몸에서 병원의 로고가 어지럽게 박힌 환자복을 벗기기 시작한다. 내 손은 부들부들 떨린다.
그의 맨살은 따뜻하다. 그는 이 맨살 속에 멍이 아른아른한 누르스름으로 남아 있을 때쯤이면 늘 새로운 멍을 만들어오곤 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새로운 멍을 만들지 않은 덕분인지 그의 몸은 아주 깨끗하다. 멍이 없다! 내 손이 멍을 찾아서 그의 몸 이곳저곳을 다급하게 헤맨다. 그의 가슴, 그의 배, 그의 팔과 다리, 아아, 그의 하얗고 투명한 몸속!
내손은 갑자기 멈춘다.
멍의 기억은 사라지고 없었다.
4
어떤 인연이 아직도 그 둘을 엮고 있긴 한 걸까. 얼마 후 정환과 한현정은 같은 날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정환이 먼저였다. 그는 슬퍼하기에 앞서 황당해하고 있다.
"끝까지 사람 속을 뒤집는 놈이야. 어떻게 그렇게 속절없이 죽냐. 한 달이나 자났다는 거야."
"……
장례는 치렀대?"
"가족들끼리만 대충 해서 치웠나봐. 강에다 뿌린 모양이더라구."
정환은 한숨을 내쉰다.
"그날, 우리는 이미 죽어버린 놈의 인생을 갖고 이래라 저래라 한 거였어."
"……."
"어쨌거나 살아는 있어야 할 거 아냐. 그래야 사람 구실을 해볼 기회도 있지. 한심한 자식……."
정환의 말끝이 흐려진다. 영규가 변변치 않은 존재인 채로 생을 마감해버린 사실이 안타까운 모양이다. 그는 매처학자를 운운하며 땡전 한 푼 남겨놓지 않은 영규를 대신해 동창들이 가족을 위해 돈을 조금씩 모으고 있다는 말도 전한다. 자신이 주동이 되었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영규의 존재는 영원히 금치산자가 되어버린다 나도 이런 말을 입 밖에 내지는 않는다.
죽은 자에게는 산 자의 호의를 거절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산 자들이 자신의 삶을 새로 짜 맞추더라도 거기에 대해 소명할 권리가 없다는 게 죽은 자의 가장 큰 비극이다. 하긴 죽은 자는 그런 일에 관심이 없다. 애도는 살아남은 자들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것이다.
한현정의 전화는 저녁 어스름에 왔다. 처음에는 나는 잘못 걸려온 전화라고 생각했다. 무척 머뭇거렸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지 발음이 또렷하지 않다. 누구라고요? 다시 한번 말씀하시겠어요? 읽고 있던 신문에 그대로 눈길을 둔 채 나는 얼마간 역정이 섞인 목소리로 대꾸한다. 그러나 '멍의 기억'이란 단어를 알아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창 쪽을 바라본 모양이다.
창은 이미 어두워져 있다.
거기에 영상 하나가 나타난다. 까마득한 기억 저편에 저물어 있던 그 영상은 마치 암전되어가던 무대에 불이 켜진 듯 갑자기 나타났다. 알루미늄 식판을 내려놓으며 한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던 그녀. 하얗게 드러나던 뺨과 가지런히 솜털이 나 있던 귓볼, 그 위에서 반짝이던 작은 금귀고리. 그리고 둥근 깃이 달려있던 자주색 원피스와 흰색 벨트. 영규가 나무젓가락을 두 개로 가른 다음, 나뭇결에 난 거스러미를 과장된 어깻짓으로 비벼 다듬어서 건네주자 눈을 맞추며 지어 보이던 환한 웃음.
그녀의 말은 두서가 없다. 결혼은 하셨지요? 아이는요? 라며 친근한 인사를 건네는가 싶더니 그이한테 말씀 많이 들었어요, 라며 마치 전혀 모르는 사이인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 나는 한참만에야 그녀의 용건이 무엇인지 겨우 알아듣는다. 그녀는 원고를 돌려받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인다. 저 지금, 여기, 정문 앞의 공중전화예요.
그럼 이쪽으로 올라오세요. 서관 삼백사호인데, 제가 아래층으로 내려가 있지요. 아녜요. 저기, 그냥 다방 같은 데서 뵀으면 좋겠는데, 학생들만 드나드는 곳이라 갈 데가 마땅찮을 텐데요. 아녜요. 그래도 그게 좋을 것 같아서……. 말은 느렸지만 그녀는 고집이 세다.
전화를 끊고 난 뒤 책상 위에 펼쳐져 있던 신문을 다시 내려다본다. 세로상자 속에 들어 있는 기사의 제목은 '발기부전, 87%가 심리적 원인'이다. 바로 옆의 기사는 '가을, 왜 쓸쓸한가'라는 큰제목 아래 '기온에 적응 못한 신체적 영향도 큰 이유'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몸이 마음 때문이든 마음이 몸 때문이든, 아무튼 건강에 관한 이야기이다. 지금쯤 아내는 병원에 갔을 것이다. 나는 무심코 손을 입술로 가져간다. 올 봄에 담배를 끊은 뒤 처음 있는 일이다. 나로 하여금 담배를 끊게 만든 게 바로 이 신문의 건강 면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컴퓨터의 전원을 끄고 나는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난다.
다방 안에 들어서자 안경에 김이 확 올라온다. 안경을 벗어들고 대충 실내를 살핀다. 입구 자리에 앉아 있던 여자가 어정쩡하게 일어서는 게 시야에 들어온다. 그쪽으로 한걸음 다가가자 여자는 안심한 듯 가만히 자리에 앉는다.
나는 안경을 쓴다. 그리고 깜짝 놀라고 만다. 나도 모르게 다시 안경을 벗었고, 그녀의 앞자리에 가서 앉자마자 먼저 주머니에서 안경닦이부터 꺼낸다. 내가 천천히 안경알을 닦는 동안 그녀는 아무 인사도 건네지 않고 참을성 있게 기다려준다. 둥글고 흰 깃이 달린 자주색 원피스와 단정하게 허리를 감싸고 있는 흰색 에나멜 벨트, 게다가 차를 주문받으러 온 여종업원을 올려다보며 한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올릴 때 언뜻 드러나는 금귀고리. 마치, 그녀는 지금 막 십수 년 전의 시간에서 빠져나와 이 장소로 곧바로 질러온 것만 같다.
"너무 안 변해서 못 알아보겠군요."
"이 옷 말인가요? 저는 그냥……. 지금도 잘 맞으니까요."
그녀는 조금 웃는다. 그제서야 눈가와 입언저리에 세월이 자연스럽게 물살을 일으킨다. 그 세월처럼, 커피 잔을 드는 소맷부리의 자주색도 수없이 빨아 심하게 바래 있다.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는 그녀의 눈 속 흰자위만은 너무 깨끗해서 푸른색이 돈다.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그냥 가져가시겠다고요?"
"……
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한참 동안이나 말없이 커피 잔만 쥐고 돌린다. 여학생 둘이 카운터
로 가며 나를 흘끗거리는 게 느껴진다. 나는 그녀가 눈물이라도 흘린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궁리하지만 고개를 쳐든 그녀는 그냥 멍한 표정이다.
"……
다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네?"
"동창들이 돕겠다고 할 때요."
"……."
"도움 같은 건 필요 없어요. 아무도 그이를 이해 못해요."
입술을 몇 번 침으로 적실뿐 그녀는 울지는 않는다.
"다들 그이를 나약하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그이는 자신을 내팽개칠 수 있는 사람이에요. 마지막 선까지요. 그거 강한 것 아닌가요. 저는 못 그래요. 제가 그이만큼 강하고 솔직했다면……. 벌써 헤어졌겠죠."
그녀는 내가 탁자 위에 내려놓은 봉투 속에서 자기가 보냈던 원고를 꺼낸다. 그녀의 손은 가냘픈 몸매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거칠고 매듭이 굵은 손이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 표정을 읽을 수는 없지만 나는 그 손이 말하는 바를 알아듣는다. 내 시선은 그 손을 따라 움직인다. 봉투에서 반쯤 빠져나온 원고의 겉장을 만진다. '멍'이라는 글자 위에 한참 동안 얹혀져 숨을 죽이고 있다. 그러더니 한순간 가늘게 떨린다. 봉투를 기울이는 바람에, 원고와 함께 딸려 들어가 있던 나의 은색 편지 칼에 가볍게 찔린 것이다. 그녀의 손은 차가운 편지 칼의 날을 잡더니 몸을 녹여주듯이 다정하게 만지작거리기 시작한다.
"이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하세요?"
"예?"
"그이는……. 열심히 살았어요. 자기로서는 최선을 다해 감당한 거라구요."
원고를 챙겨 일어나며 그녀는 편지 칼을 도로 봉투 속에 집어넣는다. 분명 무심한 동작은 아니다.
찻값을 계산하고 밖으로 나오자 낡은 구두코를 내려다보고 섰던 그녀가 비스듬히 고개를 든다. 나는 빤히 쳐다본다.
"편지칼 말예요. 선생님 건가요?"
"예? 아, 예."
"그이도 갖고 있었어요. 마야 잉카전에서 샀죠?"
한현정의 말은 나 역시 영규 같은 사람과 인생의 접지 면이 전혀 없지는 않다는 뜻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아내는 침대에 누워 있다.
"병원 갔었어요."
"괜찮대?"
"네."
"잘됐군."
아내는 약간 수척하다. 내가 이불을 끌어당겨주자 기운 없이 웃으며, 얘기 좀 해요, 한다. 나는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는다.
"당신, 내가 두려워하는 거 알았어요?"
"미워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아녜요. 그냥 두려웠던 거예요. 난……."
"……."
"혼란스러웠어요. 내가 애를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 알 수가 없었거든요. 사람에게는 정말 여러 가지 면이 있나봐요. 때로 나 자신도 내가 누군지 알 수 없을 만큼요."
아내는 오랜만에 긴 얘기를 한다.
"나 자신이라고 해서 나의 전부를 알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니 그냥 내가 알고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자고요. 그 생각을 하니까 마음이 편해지고 결정하기가 훨씬 쉬웠어요. 의사도 일단 결정을 내렸으면 빨리 잊어버리라고 하던데, 그 말이 옳은 것 같아요."
대체 아내가 오늘 간 병원이 정신과라는 건지 산부인과라는 건지 알 수 없다. 그것을 물어보기 위해 나는 아내 쪽으로 조금 얼굴을 숙인다. 아내가 애써 웃음을 지어 보이며 이불 속에서 손을 빼내 내 손을 잡는다. 아내의 손등에 푸른 멍자국이 있다. 주사를 꽂았던 모양이다.
(tanb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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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부탁해요 ^^
역시 지나친 감수성에 감각적인 문체의 작가네요. 내용도 좋고. 부럽다.
잘 읽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