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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일본의 란도셀이 우리나라에도 들어와서, 일본강점기시대에는 넉넉한 집 아이들이나 가질 수 있었고,
배낭(색)이 책가방으로 유행하기 전까지는 초등학생들이 모두 란도셀을 메고 다녔습니다.
물론 란도셀이라고 부르는 건 옛날 어른들뿐이고,아이들은 그냥 책가방이라고 불렀지요.
1950년대 초 6.25 한국전쟁이 끝난지 얼마 안돼 국민학교에 입학하게 된 나는 근사한 란도셀을 선물받았습니다. 외할아버지께서 첫외손녀인 저에게 그 당시엔 흔하지 않은, 가죽으로 만든 멋진 란도셀을 사주셨던 것입니다.
상점을 운영하셨던 외할아버지께,어느 날 수제품 란도셀을 들고와 현금이 필요하니 사달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답니다. 마침 첫외손녀가 입학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던 터라 그 사람의 요구를 선뜻 들어주셨다고 합니다.
그 당시엔 란도셀을 메고 다니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네모 보자기에 책과 필통을 싸서 허리에 질끈 동여메고 다니는 아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란도셀은 품질면에서 조잡하여 마분지에 코팅한 재료로 제작해 실밥이 잘 뜯어지고 가방두껑에 그려넣은 무궁화 꽃그림도 색상이 원색으로 유치했습니다.
외할아버지께서 선물해 주신 내 란도셀은 친구들 것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가죽제품이라 가죽냄새가 나고, 가방 겉표면의 그림도 유치한 원색이 가미되지 않은 브라운톤의 가죽색상 그대로였고, 거북선 무늬가 입체적으로 양각되어 고급스러워 보였습니다.
우리 학교를 통틀어 나와 같은 란도셀을 멘 학생은 단 한 명도 본 일이 없었습니다.
대량으로 만든 제품이 아니고, 수제품으로 소량만 만드는, 요즘말로 표현하자면 '명품란도셀'이었던 것입니다.
일학년이던 그 당시 나는 명품란도셀에 대한 자긍심은 커녕 친구들 것과 너무 달라, 많이 튀는 내 란도셀이 몹씨 부담스러웠습니다. 심한 내성적인 성격에 조그만 일에도 심하게 부끄러움을 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곤 했습니다.
친구것과 다름에 주목받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으니까요.
60년이 훌쩍 지난 옛날 일입니다만, 왜 그리 당당하지 못하고 소심했는지, 외손녀를 사랑하시는 외할아버지의 크신 사랑을 고스란히 느끼지 못했는지, 참 철없고 어린 마음에 지녔던 지난 잘못에 대한 때늦은 후회를 해봅니다.
외손녀에게 명품란도셀을 선물하시던 외할아버지의 연세보다 더 많은 나이가 되어서야 말입니다.
첫댓글 그 때는 란도셀 메고 다니면 맵씨도 나고 좀 우쭐했었지... 나는 아버지가 은행에 계셨는데 은행 앞이 가죽 란도셀도 울러메고.. 요즘엔 흔하고 흔한 가방이고 섹이제...옥덕아,
무영당 백화점이라 언니들 때부터 백화점 물건과 옷등을 입혀서 나는 내려받아 쓰도 멋진것을 많이
내려 받았다
철이 환갑 넘어야 든다드니 그 말이 딱 맞아
저는 '우쭐'의 반대였어요.럽고 부담스러워서요.
남이 안메는 가방 메는 것이
지나고 보니 후회스러운 것이 참 많습니다.
저하고 상황이 똑 같네요,,대구에서 공무원이신 아버지가 시골에서 초등학교 입학한다고 사주신 가방 저도 혼자만 메고 다니는 가방이 부담스러워 떡 하루만 메고 그다음날부터는 보자기 로 다녔답니다,,
시키면 시키는대로 해야만 되는줄 알았거던요.
옥덕씨는 어려서부터 엄마덕에 호강했네요.
저는 엄마덕에 고모님들이 못매본것이라 감히 구경도 못해
ㅅ읍니다.
다섯고모님을 키우신 우리엄마는 고모님들 하신후 큰딸인 언니는 새 책보를 주셨지만
나는 그것도 물러받는 신세였어요.불쌍하지요.
덕분에 멋진가방 얻을 이댁 귀한 손녀는 가방없이 등교하는 학생이 되겠네요?
언니,어머님께선 다섯시누이 키우시느라 얼마나 노고가 많으셨을까요.라진 요즘입니다.
시누이가 못한 것이라 자녀에게도 마련해줄 수 없다는 원칙에 묶여 있더 시대...
요즘 며느리들에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생각도 많이
대구 미나까이 (일제때 백화점}에서 구두와 란도셀을 사주셨던 아버지가 2학년때 돌아가셔서필통, 크레용 들여다 보느라 몰려들 오고,또레보다 어린 나이에 입학했는데 시골에서는 호적을 늦게 올려 두세살이 많은 아이들 틈에서 얼마나 러워 했던가
동촌 해안초동학교로 전학했는데 지금은 동촌이 대구 시내지만 그 시대는 산골 같았어요.
바지 저고리에 집신 신고 운동화도 귀한 시대라 모두 책보에 싼 보자기 어깨에 매고 다니더군요. 세이라복에 란도셀 매고 구두 신은 내가 구경거리였으니까.
상상이 가지요
ㅋㅋ 격세지감이 느껴지네요! 세상 참 많이 변했습니다~
백화점에서 산 구두와 란도셀을 멘 언니의 일학년 때 모습,상상을 해봅니다.러워했지요.
요즘 아이들 같으면 자랑스러워 할텐데,그 당시 순진했던 아이는
제것은 국화꽃이 한다발 새겨진 란도셀이었지요.
2학년 지나니까 손으로 드는 책가방이 얼마나 부럽던지
3학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손에 드는 책가방을 가질 수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어깨에 메는 그 란도셀이 꽤 훌륭한 가죽가방이었던 것 같아요.
국화이 그려진 건 새 모델인 것같네요.이었는데...
우리 땐 무궁화
손에 드는 가방이 부러웠던 건 나도 마찬가지였어요.
어깨에 매는 것이 편하고 좋은데도,손에 드는 가방이 참 멋져 보이고 좋아 보였지요.
야 무궁화꽃이 새겨진것 아니냐? 손에 드는 것이 좀더 어른스러웠잖아!!! ㅋㅋㅋ
아니야 내것은 분명 국화꽃이었어.
여러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