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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의 갈대밭
1997년 11월, 순천만 갈대밭을 처음 찾았었다. 희귀한 철새를 만나러 간 천수만에선 철새보다 먼저 광활한 갈대밭에 마음을 빼앗겼다.
좁은 수로만 남기고 습지를 모두 메워버린 광활한 갈숲. 새벽 안개가 파도처럼 낮게 깔린 물길을 타고 와서 펄떡거리는 생선을 부려놓고 다시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고깃배. 나지막하게 갈대숲을 울리던 철새들의 울음소리….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의 무대가 됐다는 순천만은 그렇게 가슴 속에 깊은 울림을 남겼다.
그때부터 해마다 이맘때 쯤이면 순천만 갈대숲을 찾아갔다. 풍경도 세월 따라 변하는 법. 그동안 순천만도 많이 변했다. 대대포구 입구에 여행안내센터 신축공사가 한창이고, 뒤편의 논바닥은 주차장이 될 모양이다. 관광버스는 매일 철새를 관찰하러 온 학생과 갈대밭을 보러 온 여행자들을 쏟아내고 있다. ‘갈대의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둑방길에선 탐조여행을 온 학생들이나 데이트를 하는 연인들을 언제나 만날 수 있다.
이 정도로 이름난 여행지가 됐는데 갈대밭이 온전할 수 있을까. 그러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오히려 97년 15만평이던 갈대숲이 지금은 70만평으로 더 늘어났다.
“순천 시내에서 흘러든 하수로부터 영양분을 공급받아 갈대가 급속하게 퍼져나간 거죠. 그렇다고 개펄이 오염된 것이 아닙니다. 갈대가 수질 정화작용을 하고 있는 겁니다. 3년 전 하수처리장이 생겨 이제 갈대밭도 안정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순천만 가이드 서관석씨(49)는 “순천만 갈대밭은 개펄 발달과정을 볼 수 있는 우리 개펄의 원형”이라고 설명했다. 강물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퇴적층이 쌓여 염습지가 생기면 갈대나 함초 같은 습지생물이 군락을 이룬다. 그 너머로 개펄이 생기고, 다시 개펄은 모래밭으로 바뀐다. 순천만은 바로 이런 개펄 발달의 전과정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고 한다. 외국의 지질·지리관련 연구자들까지 순천만을 찾는 까닭이다.
순천만 갈대밭을 한눈에 내려다보려면 해룡면 농주리 용산에 오르면 된다. 바다를 마주한 야트막한 산. 들머리에 음식물 쓰레기를 사료로 쓰는 오리농장이 들어서 고약한 냄새를 풍기지만 워낙 경관이 좋은 까닭에 사진작가들이 자주 찾는다.
수로를 따라 형성된 갈대밭은 옛날부터 있던 갈대밭이다. 갈대씨가 바람을 타고 개펄 한가운데까지 날아와 뿌리를 내린 새 갈대밭은 ‘O’자 모양을 하고 있다. 마치 세포분열을 하며 증식하는 원생동물처럼 ‘O’자의 갈대숲이 커져나가 서로 합쳐지면서 갈대숲이 커져가는 것이다.
갈대는 한때 마을사람들의 수입원이었다. 7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갈대를 꺾어 인삼밭의 차양막으로 내다팔았다. 빗자루를 만들기도 했고, 땔감으로 쓰기도 했다. 갈대 뿌리가 항암작용을 한다고 해서 캐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80년대 들어 형편이 나아지면서 갈대밭에 인적이 끊겼고, 무성해진 갈대밭으로 철새들이 날아들었다.
갈대숲에는 벌써 겨울철새가 찾아왔다. 민물도요새가 떼를 지어 비행을 하고, 천연기념물 228호인 흑두루미 가족이 개펄밭에 앉아 쉬고 있다. 처음 순천만은 철새 때문에 알려졌다. 순천만에서는 우리나라에 사는 텃새와 철새 400여종 중 절반 가량을 만날 수 있다. 이중 겨울철새는 모두 40여종. 10월 말 10여마리였던 흑두루미는 11월 중순 150여마리까지 늘었다. 97년 59마리가 관찰됐는데 3배나 늘어난 셈이다. 올해는 7년만에 처음으로 천연기념물 199호인 황새 한마리가 발견됐다. 천연기념물 201호 고니는 8마리, 205호 저어새는 4마리가 보인다. 검은머리 갈매기도 요즘 100여마리가 머물고 있다. 전세계에 5만마리 정도 살고 있다는 혹부리오리는 1월쯤 5,000여마리가 날아온다. 또 봄·가을에는 1만5천여마리의 도요새를 볼 수 있다.
갈대숲을 끼고 있는 대대포구는 쇠락한 옛 포구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한때는 일본을 오가는 고깃배가 많이 드나들었던 곳. 이제는 고깃배 몇척이 드나들 뿐이다. 지난 8월부터는 관광안내선 3척이 관광객들을 실어나른다.
“대동아전쟁 때 일본 군함이 이곳으로 들어왔을 정도로 큰 항구였어. 일제때만 해도 포구 앞에 고기를 부렸어. 한때는 대단했는데 지금은 명맥만 겨우 유지하고 있는 셈이지.”
저물녘, 대대포구 앞 강변장어구이집을 찾았다. 갈대밭뿐 아니라 와온, 화포 등 순천만의 아름다운 풍경을 조목조목 설명해주던 주인 조순임씨(55)가 앞치마를 입은 채 달려나왔다. 장사는 둘째치고 순천만이 망가지면 안된다며 개발 바람에 노심초사하던 사람이다.
그의 집에는 순천만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은 사진이 걸려 있다. 6년 전 사진 공부를 시작한 막내딸이 찍은 작품이다. 수줍음을 많이 타던 딸은 이젠 두살배기 딸을 가진 아줌마가 됐다. 조씨는 갈숲을 스치는 바람처럼 한마디를 건넨다. “갈대밭 여전히 좋지요….”
〈순천/글 최병준·사진 박민규 기자bj@kyunghyang.com〉
물길은 평화롭고 일몰은 따스하다
순천만 끝자락에는 화포와 와온포구가 있다. 순천 별량면 학산리 화포는 ‘순천만 전망대’로 불릴 만큼 아름다운 포구다. 순천만의 서쪽 끝머리. 40여호 정도 사는 작은 마을이지만 물이 빠지면 40㎞의 해안선을 따라 광활한 개펄이 펼쳐진다. 새벽녘 화포 앞바다에 서면 산 위로 솟구쳐 개펄을 물들이는 바다를 볼 수 있다. 황금빛으로 물든 개펄은 수없이 많은 유리파편이 깔린 것처럼 반짝거린다. 물이 빠진 바다에는 구불구불한 진짜 ‘물길’이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산을 휘돌아가는 강줄기처럼 보인다. 뱃길을 표시하기 위해 박아놓은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철새, 다리 하나 쳐들고 갯구멍에 숨은 짱뚱어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백로와 왜가리…. 새들의 모습도 평화롭고 행복하다.
화포는 ‘꽃피는 포구’라는 뜻이다. 옛날엔 화포 뒤편 야산자락에 진달래가 무리를 지어 피었단다. 요즘은 진달래나 야생화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바다에 꽃이 핀다. ‘바다의 꽃’으로 불리는 고막. 순천만 화포 앞 개펄은 고막의 종패를 생산할 정도로 기름지다. 화포를 돌아나가면 고흥의 벌교 여자만으로 이어진다. 여자만 역시 국내에서 가장 기름진 개펄이다.
“서울양반이 꼬막 맛을 쪼까 알구마 잉. 무조건 큰 것이 좋은지 아는데라, 사실은 알이 작은 참꼬막이 훨씬 맛이 좋아요. 바다는 찬바람이 불어야 제철인디 지금 한창 꼬막 맛이 들 때구만….”
토종 고막인 참고막이 맛있다는 얘기다. 순천만에선 참고막과 새고막이 모두 나온다. 참고막은 크기가 작으면서 껍데기의 골이 깊고 색깔이 진하다.
드넓은 바다에 밀물이 쳐들어왔다. 거세지 않은 파도가 슬그머니 개펄을 삼켜버렸다. 밀물이 든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하다. 기다랗게 펼쳐진 장도, 여자도, 소여자도가 파도를 걸러주기 때문이다.
야산자락 아래 제비집처럼 붙어있던 화포는 변변한 밭뙈기 하나 찾기 힘들던 갯마을이다. 그러나 요즘은 화포의 풍광이 알려져 여행자들이 부쩍 늘었다.
해룡면 와온리는 순천만 건너편에 앉아있는 포구마을이다. 순천만의 동쪽 끝마을. 100여호가 터잡고 산다. 와온은 요즘 도로가 넓어졌고 대형 해수탕까지 들어섰다. 화포가 일출때 보기 좋다면 와온은 일몰때 찾을 만하다. 뜨는 해보다 지는 해가 더 크고, 더 붉다. 개펄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와온의 일몰은 장관이다. 포구 바로 앞의 상섬 너머로 지는 해를 담으려는 사진작가들이 셔터를 눌러댄다.
일몰은 겨울바다를 달굴 정도로 따뜻해 보인다. 그래서 이름에도 따뜻하다는 뜻의 ‘온(溫)’자가 들어간 모양이다. 그렇다면 누워있다는 뜻의 와(臥)는 어디서 유래했을까. 뒷산이 바로 소가 누워있는 모습이다. 와온 포구 못미쳐 있는 용산도 용이 누워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용산에 관한 전설 한토막. 용이 하늘로 승천하기 위해 꿈틀거리는데 한 아낙네가 그 모습을 보고 산이 움직인다고 했더니 용이 그 자리에서 산이 돼버렸다는 것이다.
와온 역시 참고막과 새고막이 나오는 고막의 주산지. 한번 빠지면 가슴 깊이까지 들어갈 정도로 개펄이 질퍽해 썰매처럼 기다란 판자인 ‘널’을 타고 들어가서 참고막을 캔다. 순천만의 널을 여자만에선 ‘뻘차’라고 한다. 새고막은 깊은 바다에서 그물로 건져낸다. 이 마을에 고막잡이배가 10여척 있다. 주민들은 요즘 고막이 예전처럼 많이 잡히지 않아 ‘꼬막금’이 올랐다고 귀띔했다.
와온 못미쳐 해룡면 농주리에 가면 칠면초 군락이 펼쳐진다. 한반도에 개펄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8,000년 전. 개펄과 육지의 중간단계인 염습지에 자라는 칠면초는 붉은 색이다. 칠면초는 일곱번 색이 변한다는 뜻. 마을 사람들은 ‘기진개’라고 부른다. 철새들이 좋아하는 먹이다. 봄에 새순을 뜯어다 나물로 무쳐 먹기도 한다.
‘
불빛들이 빛나기 시작한다. 저 불빛은 화포의 불빛이고, 저 불빛은 거차의 불빛이며, 저 불빛은 와온마을의 불빛이다. 하늘의 별과 순천만 갯마을들의 불빛을 차례로 바라보며 나는 어느 쪽이 더 아름다운가 하는 싱거운 생각에도 잠겨본다. 당신 같으면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나의 선택은 마을의 불빛들이다.’(곽재구의 포구기행)
시인처럼 포구에 서서 아름다운 것들을 세어본다. 수만개로 쪼개져 개펄 바닥에 누워버린 햇살, 바람이 쓸고가는 갈대숲, 개흙을 뒤집어쓰고 뻘밭을 달리는 문절구(짱뚱어), 널을 타고 달리는 아낙, 아침 저녁으로 타오르는 개펄, 황혼녘 새들의 비상…. 이 정도면 누구나 한번쯤 가볼만한 곳 아닌가.
▲여행길잡이
▶교통
호남고속도로~광주 톨게이트~순천 방향 고속도로~서순천IC에서 나오면 정면에 오른쪽으로 휘어진 길 2개가 나란히 나타난다. 순천 방향 국도 17호선을 타고 3거리에서 순천시청 방향으로 우회전한다. 다시 3거리에서 벌교 방향으로 좌회전, 국도 2호선을 타면 청암대학 3거리. 좌회전한 뒤 300m쯤 가면 순천만 이정표가 있다. 이곳에서 좌회전해 계속 직진하면 순천만이다. 3거리가 많아 헷갈리기 쉽지만 무조건 벌교 방향으로 달리면 된다. 와온포구는 여수 방향으로 국도 2호선을 타고 가다 상동표지판을 보고 우회전, 863번 지방도를 타면 된다. 화포는 벌교 방향으로 가다가 왼쪽에 진입로가 있다.
서울역에서 하루 10여회 순천행 열차가 떠난다. 철도청 홈페이지(www.korail.go.kr/). 철도청 1544-7788.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30분 간격으로 순천행 고속버스가 떠난다. 광주 종합버스터미널에서 순천역 가는 직행버스가 수시로 있다. 순천 버스터미널과 기차역에서 66번이나 76번 버스를 타면 대대포구 앞까지 간다. 택시 요금 7,000원 안팎. 대대포구에서 30분 정도 갈대숲을 돌아보는 여객선 3척이 운항된다.
순천시에서도 무료 관광버스를 운영한다. 순천역 광장 종합여행안내소를 출발해 순천시내 명소를 돌아보는 셔틀버스. 오전 9시30분 출발, 오후 5시쯤 돌아오는 1코스는 순천역~낙안읍성~송광사~ 선암사~순천역. 오전 10시쯤 출발하는 2코스는 순천역~순천만~상사댐(고인돌공원)~선암사~낙안읍성. 예약자를 먼저 태우기 때문에 미리 확인을 하고 가는 것이 좋다. 순천시 관광과 (061)749-3328.
▶먹거리
대대포구 바로 앞에 식당이 있다. 강변 장어구이집(061-742-4233)이 유명하다. 10여가지 양념을 한 뒤 구워낸 장어구이 맛이 별미. 구이에 앞서 고소한 장어죽으로 입맛을 돋워준다. 겨울에는 국물이 시원한 ‘순천식 오리탕’을 맛볼 수 있다. 대대선창집(061-741-3157)에선 짱뚱어탕 등을 내놓는다. 갯마을가든(061-741-3121)에서는 청둥오리 요리와 장어요리를 한다.
▶숙박
대대포구엔 여관이 없다. 순천시내 쪽에 여관과 호텔이 있다. 남내동에는 시티호텔(753-4000), 장천동엔 로얄호텔(741-7000)이 있으며 풍덕동에는 보영각(745-5531~2), 청운장(744-2943), 거북장(743-0984), 동천장(745-5161~2), 삼호장(744-2903) 등이 있다.
▶볼거리
순천 여행에서 낙안읍성은 빼놓을 수 없는 명소. 평지에 세워진 석성으로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성 중 하나이다. 조선 태조때 김빈길 장군이 처음에 토성으로 쌓았으며 인조때 임경업 장군이 석성으로 중수했다. 성곽 길이 1.4㎞. 성 안의 78가구를 포함, 성 주변에 모두 108가구 280여명이 살고 있다. 순천과 여수를 잇는 해룡면 성산리에는 검단산성이 있다. 옛이름은 조선산성으로 정유재란 때 조선과 명의 연합군이 왜군을 막기 위해 쌓은 성곽이다. 산봉우리에 테를 두른 것처럼 산성을 쌓은 ‘테뫼식’ 성곽이다. 해룡면 신성마을 앞에는 임란 당시 왜군들이 쌓았던 26개 성 중 하나인 순천왜성이 남아있다. 육전에서 패퇴한 왜군 선봉장 우키다 히데이와 도오다 가도라가 호남을 공략하기 위한 전진기지로 삼았다. 송광면 우산리 내우마을 앞에는 국내 최초로 조성된 고인돌 공원이 있다. 주암호가 생기면서 주변에 있던 구석기 집터, 신석기·청동기 움집 6동, 선돌 등을 호수변 1만7천여평의 부지에 옮겼다. 야외 전시장, 유물 전시관, 묘제 전시관 등을 갖췄다.
〈순천/글 최병준·사진 박민규기자 bj@kyunghyang.com〉
순천만 지킴이 서관석씨
서관석씨(49)는 순천만 지킴이로 통한다. 1997년 순천만 갈대밭에 골재 채취사업이 시작되자 고향 앞바다가 망가지는 것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에 골재 채취 반대운동에 뛰어들었다.
“처음엔 고니를 보고 거위라고 했을 정도로 새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땐 그렇게 중요한 새들이 있는지도, 순천만이 그렇게 중요한 개펄인지도 몰랐다니까요.”
당시 그는 순천에서 조그마한 가방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순천만을 보존해야 할 근거를 찾기 위해 시작한 것이 철새 공부. 무작정 배를 타고 나가 새 사진을 찍었다. 서울에서 열린 ‘국제람사회의’에 참석한 교원대 김수일 교수, 개펄전문가 고철환 교수에게 사진을 보여줬다. 개펄에 관한 책도 많이 봤다.
조류학자들이 순천만으로 달려왔다. 그의 사진에 도요새 등 희귀종 20여마리가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한 지역에서 희귀조들이 한꺼번에 관찰된 것은 처음이라며 놀라워했다. 그후 순천만 보존운동이 벌어졌다.
학자들은 순천만 개펄이 철원평야, 을숙도, 강화도 개펄을 합쳐놓은 것과 같다면서 중요성을 강조했다. 결국 골재 채취 허가는 취소됐다.
서씨는 순천만 때문에 사업체를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결국 IMF사태 바람에 문을 닫아야 했다. ‘속없는 남편’을 원망하던 부인과도 별거하게 됐다. 3년동안 건축현장을 돌며 막노동을 하던 그는 결국 순천만으로 돌아왔다. 개펄과 갈대가 그리워서.
지난해부터 서씨는 순천시 관광안내원으로 일하고 있다. 순천만 얘기가 나오면 말을 그칠 줄 모르는 서씨. 그는 철새나 갈대처럼 순천만의 일부가 되어 살고 있다.
순천의 자랑‘조계산’
순천에는 조계산이 있다. 한적한 산길과 잡목숲을 스쳐온 바람소리, 산행길에 박혀 있던 바윗돌, 그리고 억새밭…. 발부리에 승보사찰 송광사와 태고종찰 선암사란 거찰을 안고 있는 조계산은 높지 않아도 곱고, 깊지 않아도 아름답다.
순천에 가거든 조계산에 꼭 올라보시라. 예전에 비해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사찰길. 그래도 여전히 아름답다. 괴목마을에서 오르는 선암사 길에는 체로 쳐낸 듯 결 고운 늦가을 빛이 여리게 비친다. 고만고만한 나무들도 다양한 표정으로 서있다. 말채나무, 이팝나무, 서어나무, 대팻집나무, 금식나무, 팽나무, 굴참나무, 조팝나무…. 왼쪽으로는 작은 개울이 흐른다. 돌다리 하나가 계곡 전체를 환하게 꾸며놓는다. 선녀가 올라간다는 뜻을 가진 승선교(昇仙橋)다. 승선교는 건축학자들이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꼽는 무지개다리. 다리 아래서 아치 사이로 강선루(降仙樓)가 빤히 보인다. 판소리에서 추임새를 붙이듯, 서로 어울리는 모습이 곱다.
선암사는 백제 성왕때인 529년 아도화상이 세운 고찰. 당시에는 비로암이란 암자로 시작됐다. 신라 경문왕 때 도선국사가 선암사로 바꿨다. 태고종의 본산인 대찰로 법당 등이 옛멋을 간직하고 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등 많은 영화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400년 전 지어진 해우소도 명물. 전국에서 유일하게 문화재로 지정된 화장실이다. 선암사를 빠져나와 산길을 서붓서붓 걸으면서 땅을 밟는 기분이 좋다. 틱낫한 스님은 ‘입가에 작은 미소를 띠고 천천히, 편안하게 걸어보라. 그러면 모든 슬픔과 불안이 사라지고 평화와 기쁨이 가슴 속에 차오른다’고 했다. 스님의 말이 가슴에 닿는다.
임진왜란 때 타버렸다는 향로암터를 지나 정상 장군봉에 서면 맑은 날 남해바다가 환히 보인다. 굴목재와 마당재를 지나면 송광사 길. 송광사 윗녘의 삼나무숲은 등산객이 아니면 잘 모르는 길이다. 송광사는 이제 호젓하다는 말을 붙이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 몸살을 앓는다. 국사만 16명을 배출한 명찰이니 사람 많은 것도 당연하다.
그래도 가람에선 꼿꼿한 법통을 이어온 절의 내력이 보인다. 800년 전 보조국사 지눌이 당시 타락한 불교를 바로잡고 불교의 전통을 새롭게 하기 위해 정혜결사를 벌였던 도장이다. 목조문화재가 많은 사찰로 16국사 영정을 봉안하는 국사전과 목조삼존불감, 고려고종제서 등 국보 3점과 하사당·약사전·영산전 등 보물 16점, 천연기념물인 쌍향수 등 국가문화재 21점이 있다.
참, 산행길에 보리밥 한그릇은 꿀맛이다. 푸성귀에 고추장을 얹어 먹는 맛은 사찰 구경 못지않은 재미다.
〈최병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