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佳 人〉
(미인)
杜甫(두보)
절세(絶世)의 가인(佳人) 있으니
빈 계곡에 숨어 사네
스스로 말하길 양가집 자식으로
몰락하여 초목에 의지해 있다오.
"지난 번 관중에 난리가 있을 때
형제들은 죽임을 당했어요
벼슬이 높은들 무슨 소용 있겠어요
골육조차 거두지 못했는걸요
세상 인정이란 몰락한 거 싫어하고
세상만사 바람 따라 촛불 흔들리듯 하지요
남편은 경박한 사람이었고
새 여자는 옥 같이 아름다웠지요
합혼꽃도 오히려 때를 알고
원앙새도 홀로 잠자지 않건만
새 여자의 웃음만 보고 있으니
옛 아내의 울음 어떻게 듣겠어요."
산에 있어야 샘물이 맑은 법이지
산을 나서면 샘물은 탁해진다오
여종이 구슬 팔아 돌아오고
덩굴 가져와 집을 수리해 산다오
꽃 꺾어 머리에 꽂지 않고
측백나무 잎 따 언제나 두 손 가득할 뿐
날 추워져 푸른 옷 얇은데
저물녘에 긴 대나무숲에 기대어 있네
絶代有佳人(절대유가인)
幽居在空谷(유거재공곡)
自云良家子(자운량가자)
零落依草木(령낙의초목)
關中昔喪敗(관중석상패)
兄弟遭殺戮(형제조살륙)
官高何足論(관고하족논)
不得收骨肉(부득수골육)
世情惡衰歇(세정악쇠헐)
萬事隨轉燭(만사수전촉)
夫婿輕薄兒(부서경박아)
新人美如玉(신인미여옥)
合昏尙知時(합혼상지시)
鴛鴦不獨宿(원앙부독숙)
但見新人笑(단견신인소)
那聞舊人哭(나문구인곡)!
在山泉水淸(재산천수청)
出山泉水濁(출산천수탁)
侍婢賣珠回(시비매주회)
牽蘿補茅屋(견나보모옥)
摘花不揷發(적화부삽발)
采柏動盈掬(채백동영국)
天寒翠袖薄(천한취수박)
日暮倚修竹(일모의수죽)
[通釋]
그대는 절세미인인데 산골짜기 속에 숨어 산다. 그대는 말한다.
“저는 양가집 여자인데, 불행을 만나 신세가 영락해 다만 수풀 속에 몸을 맡기고 있어요. 지난 번 관중 일대가 병란(兵難)을 만나, 제 형제들이 모두 피살당했으니 벼슬이 높은 집안이라 한들 또 어찌할 수 있었겠어요. 변고를 만나 골육들조차 수습해 묻을 방도가 없었지요. 인정이란 대체로 쇠퇴해 무너지는 것을 싫어하고, 세상사 변화가 많은 것은 바람 따라 흔들리는 촛불과 같아요. 제 집안의 경박한 남편은 또 새 여자를 데려와 저를 버렸답니다. 합환화도 저녁이 되면 꽃잎을 움츠려 합칠 줄 알고 원앙도 짝을 이루면 혼자 자지 않는데 남편은 새 여자가 웃고 기뻐하는 걸 보고만 있으니 어떻게 제가 울고 있는 것을 듣겠어요?”
샘물은 산에 있어야 맑지 산을 나가면 혼탁해져 버리니, 생활을 위해서 여종은 주옥(珠玉)을 전당잡히고 간혹 초가집이 무너지면 푸른 넝쿨을 가져와 고친다.
그대 다시는 꽃 꺾어 머리에 꽂지 못하고 항상 측백나무 이파리만 가득 따온다. 날이 추워 푸른 옷은 홑겹이라 얇을 텐데 해지는 황혼녘 긴 대나무에 기대어 있으니 그대의 곧고 굳은 절개를 알겠다.
[解題] 이 시는 숙종 건원 2년(759) 가을, 두보가 관직을 버리고 진주(秦州)로 피난 갔을 때 쓴 것이다. 두보는 전란에 휩쓸려 떠도는 사람들의 사회현실을 형상한 작품을 많이 썼는데, 이 시처럼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은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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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역주1> 關中昔喪亂(관중석상란) : 관중(關中)은 섬서성(陝西省)의 함곡관(函谷關) 이서(以西) 지방으로 장안(長安)을 이르는 바, 안록산(安祿山)이 난을 일으켜 장안을 함락시킨 일을 가리킨 것이다.
역주2> 萬事隨轉燭(만사수전촉) : 세상 일은 마치 바람 따라 흔들리는 촛불과 같이 변화가 심함을 이른다.
역주3> 合昏(합혼) : 꽃 이름으로 合歡(합환)이라고도 한다. 꽃은 색이 붉은 데 새벽에 피었다가 저물녘에 오므라든다.
역주4> 鴛鴦(원앙) : 물오리 종류로 암수가 짝을 이루면 서로 헤어지지 않는다.
역주5> 在山泉水淸(재산천수청) 出山泉水濁(출산천수탁) : 이 구절은 후대에 ‘在山水淸 出山水濁’이라는 성어가 되어 널리 쓰였는데, 여자의 마음을 샘물에 비유한 것으로 맑은 물처럼 굳은 마음을 가지고 산에 살 것을 나타낸다.
역주6> 采柏動盈掬(채백동영국) : 측백나무는 소나무와 함께 겨울에도 잎이 떨어지지 않고 푸르러 志節이 있는 사람을 비유하므로 남편의 지조와 절개를 축원하는 뜻에서 측백나무의 잎을 딴 것이다. ‘掬(국)’은 두 손으로 잡는 것이다.
하늘빛이 이미 차가운데 푸른 소매가 아직도 얇으니, 세상에 난리가 나서 군자가 밖에 있음을 비유한 것이다. 측백나무와 대나무는 날씨가 추워져도 지조를 바꾸지 않으니, 측백나무잎을 뜯고 대나무에 의지했다면 생각하는 바가 원대한 것이다. 군자가 군주에게 쫓겨났으나 지조를 지켜 바꾸지 않는 것과 같으니, 이러므로 충성스러운 신하와 정절있는 부인이 되는 것이다.
역주7> 修竹 : 긴 대나무를 말한다.
본 자료의 원문 및 번역은 전통문화연구회의 동양고전종합DB(http://db.juntong.or.kr)에서
인용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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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당시삼백수/고문진보]가인(佳人) - 두보(杜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