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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언덕 봄 아지랭이가 그리워 지던 어느 해 봄날 동창생들과 부부 동반으로 겨우 선운사
경내만 잠시 들르곤 이내 청보리 축제를 보기 바쁘게 풍천 장어 요리집에서 이곳 전북 고창
에서 기관장으로 근무를 하고 있는 동창놈이 준비해 온 복분자를 원 없이 마셔 댔던 기억이
여태도 아심 삼삼하다. 그때는
지방 목민관으로 제법 출세한 동창생을 위한 위로 방문 이라 선운산은 구져 멀리서 바라만
보았던지라 추석을 전후하여 만개를 한다는 꽃무릇도 볼 겸, 여태도 올라 가 보지 못한
선운산 산행도 할 겸 해서 일찌거니 느림보 강 대장님께 방부를 디 밀어 두었었다.
우리 사회는 파티 문화가 발달하지도 않았고 조선 시대 부터 남녀는 내외를 했던 관습의
뿌리가 깊어 부부 동반 모임은 그리 활성화가 되지 못한 점도 있지만 좌우당간 이너무 부부
동반 모임은 모였다 하면 득 보단 실이 헐 많은 모임이다.
구체적으로 거론을 하지 않아도 잘 아는 사실 이지만 모임을 쭈욱 둘러 보았을 때 내
예폔네가 제일 예뻐 보이거나 내 옆지기 놈이 그중 가장 늠름하게 보이기만 하문 물론
아무런 문제가 당연 없겠지만 학창 시절 뒤에서 고문관 노릇이나 하던 놈이나 짝다리
흔들 적에 껌이나 짝짝 씹으면서 남학생들과 연애하기 바쁘던 년이 참으로 괜찮아 보이는
동반자를 옆자리에 터억 앉히고 나타 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득 문득 떠 오르는 괴로움의
상념 덕분에 힘들어 지기 시작한다.
120 여명 동창생 중에서 약 10%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두 놈은 무신 사연인지 여태도 독신
으로 사타구니에 날젖 냄시나 풍기고 있고, 어떤 이는 외국에서 생활을 하고 있으며
또 어떤 이는 사별을 했다거나 아니면 본의 아니게 이혼을 한 친구도 여럿 있는지라 일년에
한번 정도 있는 모임엔 대충 15쌍 정도가 자리를 함께 하는데 그 날은 재수가 옴이 붙었는지
막판에 헤쳐 모여 동창생 부부 뒷자리에 내가 앉게 되었다.
이 막판 헤쳐 모여가 몬 말이냐 하면 요즘 젊은이들은 막상 결혼을 하고도 자기 스타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면 그날로 사요 나라 빠이 빠이 쨔이찌엔 하곤 돌씽(돌아 온 싱글) 생활을
구가 하면서 투 돌씽이 되는 그날 꺼정 자알 즐기면서 살지만 우리 세대는 밉던 곱던 꾸욱
참으면서 살 수 밖에 없었던 형편이어서, 어영 부영 나이 오십을 넘겼지만, 세월이 바뀌면서
남의 밥에 콩이 커 보이기 시작하면서, 핸펀이란 걸 손에 쥐면서 하시라도 접선이 가능해
지면서, 주간 대실료는 엄청 싸게 해 주는 모텔들이 즐비해 지면서 새로운 풍속도가 그려
지기 시작하게 되었다. 구래서
가로 늦게 눈이 맞은 두 년놈이 각자의 가정으로 돌아 가서 일단 헤쳐를 하곤 이내 싸서 나온
짐 보따리도 채 풀지 않은 상태에서 모여를 선언하는 것이다. 내 앞자리에
앉은 헤쳐 모여 부부 중 새로 온 마누라는 자신이 정실 부인이 아니란 사실이 엄청 찜찜했었
던지 옆자리에 앉은 내 친구놈을 향해 연신 여보 여보 하면서 교태를 부리는데 참으로 가관
이다.
원효 대사의 유심론이 문득 생각 난다.
의상 스님과 함께 중국 유학을 가던 길에 날이 어두워 들어 간 토굴에서 목이 말라 마신 물이
다음 날 아침에 날이 밝아 다시 보니 해골에 든 송장 썪은 물.
모르고 마셨을 땐 그리도 달고 시원했던 물이 막상 해골에 든 물이란 걸 알고는 토악질 부터
해 대기 시작한다. 세상사 일체가
본인의 마음에 달렸다며 원효 스님은 중국 유학길을 포기 하기에 이르는데 내가 뒷좌석에서
이 막판 헤쳐 모여 부부를 넘겨다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으 으 음
또 다른 어떤 놈팽이놈이 물경 삼십년 이상을 아침 저녁으로 빨아 대던 그 수도 꼭지에 입술
을 대고 쭉 쭉 빨면 과연 가나안의 꿀물이 흐를까 하는 것이다. 헤쳐 모여 부부 입장에선 당근
마냥 사랑스럽기만 할 앵두 같은 입술이겠지만.
새로운 가정을 꾸린 동창 부부를 구태여 나무래는 의도는 분명 아니다.
이승에서 저승 문턱을 두드려 보는 길이 딱 두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번째가 대학병원
중환자실이라면 두번째가 바로 땅벌 구녕에 거시기를 드리 박고 사는 것이 헐 낫다고 하는,
원진살이 얼키고 설킨 악연을 배필로 맞이 하는 일이라고 하는데 이승에서 천국 생활의
일부를 맛 보는 것 또한 딱 한가지 밖에 없다고 한다. 당근
찰떡 궁합이 서로 만나서 함께 사는 일이다.
전북 고창이 가까워 지자 느림보 리무진 전 사장님께서 횐님들의 편의를 위해서 고인돌
휴계소에서 한번 더 쉬는 시간을 주었는데 용무를 마친 횐님들이 탑승을 시작하자 이곳도
예외 없이 잡상인이 차내로 들어 오셨는데 홍삼 파스와 미세모 칫솔을 파는 중년 부인이였다.
갈 길이 바쁘다며 채근을 하는 전 사장님의 성화에도 생글 거리는 미소로 화답을 하며 제법
많은 매상을 올리고 하차를 하는 아주머니를 향해 차마 던지고 싶었던 한마디가 있었다.
가방에 들은 모든 상품에 아줌마를 원 플러스 원으로 끼워서 대체 얼마를 드리면 파시겠냐는
그 말이였는데 키,얼굴,피부 그리고 몸매 등등이 공작 부인을 연상시킨다.
신언서판이라고는 하지만 사람 팔자 참으로 알 수 없는 묘한 노릇인데 절멋던 시절
서소문에서 강남 서초동까지 택시를 타고 가는 길에 정오 라디오 방송에서 못된 사이비
종교에 심취한 부인이 급기야 전 재산을 헌납하곤 부부 싸움이 격해 지다 남편이 아내를
살해하게 되었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들은 오십대 중반의 택시 기사분 왈.
저룬 사람들은 진즉에 자기 같은 사람을 만나서 인생 카운셀링을 잠시만 받았어도 저렇게
어리석은 짓을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사연을 물은즉
자신은 하나 밖에 없는 막둥이 아들로 어렵게 태여 난지라 장래가 궁금키도 한 어머니가
누나를 시켜 서울역 인근 염천교 부근에서 당시 이름을 날리던 봉사 점쟁이에게 팔자를
물었더니 이 아이는 여자하고는 합(合)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 보아도 없으므로 결혼 생활은
불가라는 것이다. 집안의 대가 끊길 위기를 맞은 어머님이 마침내 몸소 맹인 점밭이를 찾아
길을 찾아 보라며 통사정을 했더니 한참을 육갑을 짚어 보고 또 짚어 보던 이 봉사가 하는
말이 나이 오십을 넘겨야 일생 해로를 할 인연이 나타 난다는 것이다.
젊어서 한 첫번째 결혼은 일년을 넘기지 못하고 갈라 섰 버렸고 이어서 한 두번째 결혼에선
급기야 아내는 황천길로 떠났고 본인은 과실치사죄로 감방으로 직행을 했었는데 오랜 수감
생활을 마치고 난 후 참으로 우연히 동네 이름도 잘 모르는 어느 시골에 사는 지금의 부인을
만났게 되었는데 부부 금술이 말로 표현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예폔네가 얼마나 이뿐지 자신은 점심도 기사 식당에서 먹지를 않고 꼬옥 집에 들어 와서
맛난 점심을 먹고 나오는데 그 사이에 이미 부인께서 영업용 택시를 깨끗하게 세차를 해
놓는다는 것이다.
자신은 오전에 번 돈은 점심 시간에 오후에 번 돈은 일을 마치기 바쁘게 몽창 부인에게
주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담으로 하는 말이
비록 나이 오십이 넘었지만 이틀에 한번은 영낙 없이 부인의 공장문을 돌려 주는데 부인의
기계 성능은 가히 천만불 짜리란 것이다. 생침을 꼴까닥 거리며
서초동으로 언제 왔는지 모를 정도로 넋을 놓고 들었던 실화 한토막 입니다.
사람이 살아 가면서 겪는 고통 중에서 참으로 감내하기 어려운 괴로움이 바로 애별이고와
원증회고 라고 하여 눈에 넣어도 아푸지 않을 그 님을 만나지 못하는 괴로움과 잠시 흘겨다
보기만 하여도 금새 어금니가 벅 벅 갈리는 인간과 만부득 한 이불 밑에서 잠을 자야 하는
무간 지옥 보다 더 힘든 나날을 사는 것.
꽃과 잎이 피는 시기가 제각각 이여서 서로가 서로를 결코 만나지 못한다는 상사화와
꽃무릇이 바로 애별이고를 대표하는 식물이여서 인지 유독 이 두 꽃은 독신 생활을 하는
스님들이 계시는 절집에서 많이 볼 수가 있는데 어쩜 자기 팔 자기 흔들면서 푠하게 사는
것이 찌지고 뽂으면서 사는 아비규환 보다 헐 더 나은 삶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상사화와 꽃무릇은 같은 구근 식물이지만 개화하는 시기나 색갈 모양 등등이 완전히 다른
식물입니다.
이 세상에서 예외가 거의 없는 경우가 따악 두가지 있다.
세상에 이름을 떨친 남정네들 중에서 변변치 못한 부인을 만난 사람을 본 적이 있으십니껴?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고 하여 좋은 남편을 만나면 다시 말해서
뒤웅박에 포도주를 넣으면 샴페인이 되는 것이고 재수가 없어서 어리삐리한 인간을 만나면
막걸리통 신세가 된다는 것인데 이 세상엔 지나 가는 거지를 삼년만 델꼬 살면 금새 그
거지를 정승 판서로 맹글어 버리는 여인네 또한 제법 많이 있다고들 합니다. 참고로
우리 느림보 산악회에서도 바보 온달을 순식간에 장군으로 둔갑시킨 평강 공주 같은 여성
회원을 몇 분 본 적이 있습니더. 흐 흐
솔잎 그득 달린 청목엔 솔향 만이 그윽하다는 것이져.
이 세상에서 저승 사자 보다 더 무서운 것이 가난이라고 합니다.
일제의 식민과 동족 상잔의 비극을 떨치고 대한민국이 쓰레기통에서 장미를 피운 기적의
주연 중에는 박 대통령의 선친이신 고 박 정희 대통령이 계신데 영부인이셨던 육 영수 여사님
은 어쩜 이 어르신 보다 더 훌륭하셨던 분이 아닌 가 생각이 왕 왕 든다.
이 박 정희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는 아직도 약간의 갑론 을박이 있다고 하지만 예외가
없는 두가지 중에서 마지막으로 이 육 영수 여사님을 나쁘게 평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으십니껴?
1974년 8월 15일 장충 체육관에서 있은 광복절 행사 도중 문 세광의 흉탄을 맞고 쓸어 지신
육 여사님을 치료하셨던 서울대 병원 간호사님들의 증언에 의하면 공식 행사에 나오신, 그
누구도 감히 들쳐 볼 수가 없는 대통령 영부인의 속치마에 여러 군데 기워 입은 흔적이
있더란 겁니다. 후일
서거하신 선친 박 대통령의 내실에 있는 화장실 변기 물통 속에서는 물을 애끼느라 넣어 둔
벽돌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정치적인 쑈가 아닌
참으로 진솔한 삶을 사셨던 두 분이 좀 더 해로를 하셨으면 하는 생각이 참으로 간절합니다.
언젠가 제 딸년이 아빠! 아빠는 어떤 사윗감을 원하세요? 하고 물었을 적에
군대 안 갔다 온 새끼만 빼고 아무 놈이나 델꼬 온나 하면서 호기를 부리긴 했지만 사실은
요즘 들어 딸아이가 과년하다 보니 걱정도 여간 걱정이 아니다. 나도 이젠 나이를
먹었는지 마니 약해진 것 또한 사실이다. 지난 번엔
맞선을 보고 온 딸아이가 남자가 키가 넘 작고 어쩌고 하면서 자기 방문을 쾅하고 닫고
들어 가 버리길래 혼자서 딸년 방문 앞에서 뻘쭘하게 서서 비 맞은 중놈처럼 중얼 중얼
거렸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고 박 정희 대통령도 키가 그리 크지는 않았다는 것과 좆도 방위로 군대를 갔다 왔으면...
그만 하면 됐다 하면서 에휴
어떤 분은 말씀 하시길 가장 복된 결혼의 지름길은 내가 죽도록 그립고 사랑스러븐 사람과
결혼하기 보단 나를 끝없는 사랑으로 대하는 그런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라고 하긴 하지만
말이 구렇지 기왕이면 다홍 치마라꼬 선운산 상사화가 불그락 푸르락 저리도 아름다우니
사람들이 귀경들을 오고 난리지 몬 생겨 보셔요 어느 놈이 쳐다를 보나?
한국 사람들이 처음으로 미국엘 살러 가서 주로 하는 일이 껌둥이 주방장 밑에서 일을 하는
주방 보조 노릇인데 이 먹통 주방장 한테 가장 많이 야단을 맞는 일이 한국 사람들은
스테이크나 햄버거를 구울 적에 혹시나 탈까 해서 자주 뒤집는 그 일이다.
미국 사람들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맞다. 미국 사람들은
한쪽 면의 고기가 완전히 익었다 싶을 때 딱 한번만 뒤집어서 마무리로 다른 면을 굽고는
끝내 버리기 때문에 수고도 덜 뿐 아니라 연료도 많이 절약을 할 수가 있다.
국내 식당에서 자주 보는 광경이다. 삼겹살을 우선 뜨거운 철판에 올려 놓으면 치르륵
하면서 일시적으로 철판에 들러 붙는데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이때 잠시를 기다리지
않고 채 기름이 흘러 나오지 않아 철판에 들러 붙어 있는 고기를 억지로 떼어 낼려다가
오히려 일부 고기가 철판에 들러 붙어 버리기 때문에 이내 이모 고모를 외치면서 철판을
갈아 달라고 아우성이다.
여기에서 묘한 인생 철학을 잠시 엿볼 수가 있다.
철판과 고기의 만남은 청춘 남녀의 상봉과 너무나 유사하다.
처음에 만나서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노름판의 붙은 갑오처럼 처억 들러 붙어서 육수
마져 뻘뻘 흘리면서 지랄 발광을 해 대지만 가만 내 버려 두어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철판의 고기처럼 자동으로 떨어져 버린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길 망태 안에 잡아서 넣어 둔 고기에게는 떡밥을 뿌려 주지 않는 다고들
한다.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결혼이란 걸 하고 나면 남편이나 아내를 내 소유물 정도로 생각
하며 우습게 알기 시작한다. 심한 경우엔 남편과 겸상을 하는 자리에서
양푼에다 보리밥을 그득 비벼서 입이 찢어져라 쓸어 넣고는 이빨 북 북 쑤시면서 개트림을
하는 것도 모잘라서 방구 마져 벅 벅 뀌어대는 여자분이 있다. 철판에서 한동안 잘 델꼬
살았던 그 고기 일찌거니 떨어져서 옆집 철판이나 건너 집 양은 냄비에 신경 쓰기
시작합니다.
삼강 오륜에서 부부 유별이란 말이 왜 생겨 났겠습니껴?
가파른 능선길에 좌우로 잡목들이 많아 힘겹게 찾은 점심 자리가 어느 분의 음택(분묘)
이였는데 봉분의 크기나 검은 오석에 지붕돌을 얹은 비석이 서 있는 걸로 보아 당시엔 이
지방에서 꽤나 세도를 부렸던 집안 같아 보이지만 무성하게 자란 억새풀이 방치된 걸로
보아선 절손이 되어 묵묘가 된지 오래인 듯 해 보인다.
인생 죽어 자빠지면 말짱 도로황이다.
폭풍의 여파로 약간의 빗방울이 보이기 시작할 무렵 마침내 그 유명한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
께서 성큼 나투신다.
불상은 만드는 재질에 따라서 철불,목불,석불 혹은 종이로 만드는 지불과 입적을 한 스님의
시신을 그대로 모시는 등신불이 있으며 도솔암의 경우 처럼 낭떠러지 절벽을 갈아서 만드는
불상을 마애불이라고 하는데 도솔암 마애불의 경우 일반적인 좌불을 모실 때 처럼 부처님 배
안에 복장 유물을 모셨는데 감실 형태로 구멍을 뚫어 비결을 넣고 뚜껑을 닫아 두었다고
하는데 이 마애 부처님은 도솔천 용화수 아래에 계신다는 미래의 부처 미륵불인 점으로 보아
이 지방 민초들의 여망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가 있다.
비결 즉 감결과 미래에 나타 나셔서 많은 중생을 구제하신다는 미륵불은 힘든 삶을 사는
민중들의 희망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어느 관광회사 가이드의 마애불에 관한 유창한 설명을 듣고 있노라니 우리 느림보 횐님 중의
한 분께서 내 앞을 지나 치시면서 스님이 아닌, 수행을 하지 않은 일반인들도 죽어서 사리가
나오느냐고 선문답을 던지신다. 나옵니다.
우선 사리가 왜 어떻게 생기는지에 대해 정확한 답은 없는데 어떤 스님은 생사리 라고 하여
살아 계실 적에 손가락 끝을 뚫고 사리가 나온다고 하고 아주 오래 전에 본 불교 신문의
기사는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천태종 구인사를 다니던 여신도가 교통사고로 사망을 하여 아마도 당시 사정으로 보아 형편이
어렸웠던지 화장을 했었던 모양인데 엄청난 양의 사리가 나왔다고 한다. 참고로 말하면
천태종은 조계종과는 달리 화장이 아닌 매장을 하며 돌아 가신 여신도는 평소에 정신이
온전치 못한 분이였다고 한다.
사리에 관한 일화는 중국의 단하 천연선사가 유명하다.
천연 스님이 객승으로 어느 절에 머물렀는데 그 절의 살림이 어려웠는지 아니면 절의 살림을
사는 원주 스님의 눈에 이 천연 스님이 곱게 보이질 않았는데 머무는 방에 군불을 때 주지
않았던 모양이다. 법당에 들어 가서
앉아 계신 나무로 만든 부처님 즉 목불에 모셔 내려 와선 도끼로 몇 차례 내려 쳐서 아궁이에
쓸어 넣자 기겁을 하고 달려 온 원주 스님이 길길이 날 뛰자 천연 선사 왈.
사리를 찾을려고 불에 넣었다고 ... 원주 스님 왈 나무로 만든 부처님이 사리가 어디 있냐고
만약 사리가 없는 부처라면 아궁이에 넣은들 무신 상관이 있냐는 것인데 후일
이 일화에 대한 어떤 스님의 말씀이 참으로 의미가 깊다.
원주 스님은 오직 부처님 만을 보았고 천연 선사는 단지 나무 토막을 태웠을 뿐이란 것이다.
꽃무릇의 잎은 꽃잎의 화려한 자태를 보지 못하는 아쉬움은 있을 지언정 시든 꽃잎의 추한
모습 또한 아니 볼 수 있는 고마움이 있어 좋고 꽃잎 또한 잎사귀의 싱싱한 모습만을
가슴 속에 간직하기 때문에 더욱 그립고 애절한 사랑이 움트는 것이 아닌 가 한다.
다음 주는 문경 부봉 종주산행이 예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우리 또 즐거운 마음으로 다시 만나요.
명품 느림보 산악회엔 도솔암 미륵불의 자비가 항거석 넘치기를 간절히 빌어 보면서 이만
분당 탄천변의 신천옹 돌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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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돌삐님의 구수한 입담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습니다.
긴 글 읽다보면 이게 뭔 소린고?할 때도 있지만
빙빙돌아 원점을 찾오는 글 솜씨에 얼굴엔 미소가 가득해집니다.
같이 걸었던 산길..함께 먹던 점심도 좋았지만
돌삐님으로부터 듣게 되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더욱 즐거웠습니다.
세상이 변하면 변함을 따라가야 스트레스 덜 받습니다.
다음주에도 돌삐님과 발걸음 맞춰가고 싶어집니다.
다음주엔 단양 마늘도 한주먹..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