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천에서 차를 끓이며(石泉煎茶) 】초의선사(草衣禪師)
天光如水水如煙 천광여수수여연
此地來遊已半年 차지래유이바년
良夜幾同明月臥 양야기동명월와
淸江今對白鷗眠 청간금대백구면
嫌猜元不留心內 협시원불유심내
毁藝何會到耳邊 훼예하회도이변
神裏尙餘驚雷笑 신리사여경뢰소
倚雲更試杜陵泉 의운경히두능천
하늘빛은 물과 같고 물은 연기와 같다
이곳에 와서 지낸 지도 어느덧 반년일세
좋은 밤 몇 번이나 밝은 달 아래 누웠나
맑은 강가에서 물새를 바라보며 잠이 드네
시기하고 미워하는 마음 원래 없었으니
비방하고 칭찬하는 소리 응당 듣지 않았네
소매에는 뇌소차가 아직 남아 있으니
구름에 기대어 두릉의 샘물을 담는다네
조선시대의 유명한 다인으로는 초의 선사,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를 꼽을 수 있다.
초의 선사(1786-1866)는 흥성 장씨로, 이름은 意恂, 자는 中孚子이다.
그는 한국의 茶經으로 불리는 「東茶頌」과 차의 지침서인 「茶神傳」을 저술하여
우리나라에 차를 재배하고 보급하는데 적지 않은 공헌을 하였다.
초의는 당시 불교를 배척하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도 정약용, 김정희, 김명희 형제,
신위, 홍현주 등 당대의 유수한 유학자들과 교류하며 화운한 시가 60여 수에 이른다.
시로 이름을 남긴 승려가 적지 않으나 초의는 진정한 시승이라고 이를 만하다.
그의 <석천에서 차를 끓이며(石泉煎茶)>란 시이다.
이 시는 석천의 물로 차를 달이는 심회를 읊고 있다.
젊은 시절 전국의 산천을 유람하였던 초의는 두륜산으로 돌아와
일지암 일대에 두어 칸 모옥을 짓고 그곳에서 차밭을 일구며 늘 차를 마시면서 생활하였다.
일지암에서 자연과 동화된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다.
물빛처럼 푸른 하늘, 맑은 강물이 흐르는 곳에차 끓이는 연기 피어오르고,
밝은 달 아래 눕기도 하고 백구와 짝이 되어 잠들기도 한다.
그러니 어찌 세속의 소리가 들리겠는가?
석천의 샘물을 길어다 차를 끓이며 다도를 즐기면서 티없이 맑은 정신을 잃지 않는
이 생활이야말로 다선일미(茶禪一味)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차를 마시는 것은 곧 선의 참 맛을 느끼는 것과 같다고 한다.
불법은 고차원의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가고 머물고 앉고 눕고 하는 곳에 있으며,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데에 있다는 것이다.
본래 '다선일미'란 표현은 趙州 선사에게서 유래한 것이다.
어느 날 두 스님이 조주 스님을 방문하였는데
조주가 한 스님에게 '일찍이 이곳에 온 적이 있는가'라고 하니
'예, 왔었습니다'라고 하자
'그럼 차나 마시고 가게'라고 하였다.
또다시 다른 스님에게 '일찍이 이곳에 온 적이 있는가'라고 묻자
그 스님은 '한번도 와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하자
조주 스님이 '그렇다면 차나 마시고 가게'라고 하였다고 한다.
옆에서 이를 지켜본 스님이
'어찌하여 이곳에 온 적이 있는 사람이나 온 적이 없는 사람이나
차나 마시고 가라고 하시는 것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조주 스님이 '자네도 차나 마시고 가게'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훗날 '끽다거(喫茶去)'라는 화두가 되었고
조주차는 선가차의 대명사가 되었다.
초의 선사는 해마다 봄이 되면 차를 법제하였는데
그 솜씨가 대단하여 차맛이 가히 일품이었다고 한다.
첫댓글 한 잔의 茶를 마시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생활 속에서도
도(道)와 선(禪)을 추구한 선사의 정신 떠올려봅니다.._()_
저희 법우님들과 공유하려고 모셔 갑니다.. 감사합니다.^^*
잘배우고 갑니다,,
님의 고운손길에 정성에 늘,감사드립니다,,
오늘도 부처님 자비광명 충만하시구 고운 부처님 되소서..
南無阿彌陀佛 觀世音普薩 南無阿彌陀佛 觀世音普薩 南無阿彌陀佛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