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는 『님의 침묵』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님’의 함축적 의미에 대한 해명과 시집의 집필 목적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시집의 서시(序詩)에 해당된다.
시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 부분에서는
“님”이 모든 기룬 것을 총칭하는 개념이며,
중생과 부처와 불법, 그리고 자연과 생명, 조국 등의 외연을 지니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러고는 이어서 그러한 님에 대해 접근하는 것은
번뇌와 무명에 사로잡혀 있는 중생들에게 어려운 과제임을 토로하면서
그들을 구제하기 위해 이 시집을 집필했음을 밝히고 있다.
<名 문장>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어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이 기루어서 이 시를 쓴다.”
날은 저서 어두워지는데 길을 잃어 갈 곳 몰라 하는 중생들의 마음을 애틋하게 표현하고 있다.
해지는 벌판에서 헤매는 어린 양은 번뇌와 불안으로 가득 차 있는
어리석은 중생들의 심정을 형상화하고 있다.
시적 자아는 그들에게 연민의 정을 표현하고 있으며,
이러한 정신이 바로 자비의 실천일 것이다.
한용운 시인은 불교도임에도 불구하고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이라는 기독교적 비유를 자유롭게 구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막힘없는 그의 사유를 확인할 수도 있다.
한용운과 작품 해설
1879년 충청남도 홍성에서 출생한 한용운은
1905년 불교에 입문했으며,
1918년 월간교양잡지 『유심(唯心)』를 창간하여 편집인과 발행인이 되었다.
1926년 회동회관(滙東會館)에서 『님의 침묵』을 출간하여
김소월과 함께 한국 근대시의 정초를 놓았는데,
시 「군말」은 이 시집에 실려 있다.
김소월이 한국적 정서를 담아내는 적절한 형식에 도달했다면,
한용운은 불교적 사상에 기반을 둔 작품을 창작함으로써
한국 근대시에 사상적 깊이를 달성했다고 평가된다.
이 시는 『님의 침묵』이라는 시집을 쓰게 된 계기와 의도,
그리고 시집에서 가장 중요하게 빈출하고 있는
“님”의 의미 자장을 해명하는 등의 내용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시집의 서문(序文)에 해당하는 서시(序詩)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시에 대한 이해는 시집 『님의 침묵』의
전체 작품의 의미와 가치를 해석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시의 제목인 ‘군말’이란
원래 하지 않아도 되는 쓸데없는 군더더기 말을 지칭하는데,
시집을 엮고 나서 시에 대한 전체적인 언급을 하는 것이기에
‘군말’이라고 표현했으나,
이 군말은 시집 전체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시는 산문시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모두 3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연은
님의 의미에 대한 해명, 님의 의미에 도달하지 못하는 중생들의 태도가 지닌 문제점,
그리고 『님의 침묵』을 쓰게 된 시인의 의도와 목적 등이 제시되어 있다.
시 「군말」은 시집의 요체인 ‘님’에 대한 시인의 다양한 생각을
직접적으로 접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중요성이 지니고 있다.
1연은
시집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님’이 지니고 있는 함축적 의미를 해명하고 있다.
총체적인 의미에서 ‘기룬 것’은 모두 님이라고 진술하고 있는데,
여기서 ‘기룬’이라는 기표는 ‘기룹다’를 기본형으로 추정할 수 있는데,
‘그립다’는 의미를 토대로 해서
‘기릴 만하다’,
‘안쓰럽다’,
‘기특하다’ 등의 다양한 기의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기룬 것”은
시인에게 그리움의 대상이자 존경의 대상이며, 동정과 자부심의 대상이기도 한 것이다.
1연에는
“기룬 것”의 구체적 외연도 제시되어 있다.
종교적 차원에서 구원의 대상인 “중생”,
혹은 철학자들이 사랑하는 대상인 지혜로서의 “철학”이 하나의 외연을 형성하는데,
시인이 불교적 상상력에 기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님은 불법(佛法)이자 그것의 체현인 부처를 지칭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님은 “장미화”와 “봄비”로 상징되는 자연과 생명을 포괄하기도 하고,
“마니시”의 “이태리”가 내포하는 조국과 민족이라는 외연을 함축하기도 한다.
2연에서는
님의 진면목에 접근하지 못하는 중생들의 어리석음을 질타하고 있다.
시인이 보기에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며,
자신의 욕망에서 벗어나 자유자재한 경지에 도달했을 때 가능한 일이 된다.
이럼 점에서 “님”도 자유의 영역에 속한다.
부처나 불법, 혹은 자연과 생명, 그리고 조국과 민족 등 님을 구성하는 외연들은
주체의 깨달음을 필요로 하며,
그리하여 깨달은 자들만이 자유롭게 님에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번뇌(煩惱)와 무명(無明)에 가려진 어리석은 중생들은 님의 실체에 접근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중생들이 상정하는 님은 실체가 아니라 “그림자”일 수밖에 없다.
3연에서
시인은 이처럼 어리석음에 빠져 헤매고 있는 중생들을 인도하기 위해서
『님의 침묵』이라는 시집을 펴내게 되었음을 고백한다.
“해 저문 벌판에서 돌어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양”이라는 표현에는
번뇌와 불안에 사로잡혀 있는 어리석은 중생의 이미지가 잘 드러나 있다.
시인은 그들이 “기루어서 이 시를 쓴다.”고 고백하고 있거니와
이러한 표현은 『님의 침묵』의 궁극적 목적이
중생의 구제에 있음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하겠다.
- 황치복, 한국현대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