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서울大 의대서 '多面 인·적성 면접'
"살아온 모습 결국 드러날 수 밖에..." 수능 만접자 떨어진 서울대의대 면접法
좋은 머리만큼 '따뜻한 심장'도 지녔는가… 달라진 醫大 면접
뭘 물어보나 친구가 입시 자기소개서에 허위내용 쓴 것 알게 되면? 친구들과 인도여행 간다면… 돈 마련·역할 분담 어떻게?
핵심은 人性과 소통능력 60분간 6개 면접실 돌아… 교수 12명이 속사포 질문 학생들 "답변 꾸미려고 해도 본모습 드러나게 되더라"
고득점 많은 의대서 비중 커져… 캐나다·미국 등 이미 시행 국내 의대들도 도입 늘어나, 일부선 변별력 놓고 의문
|
지난 1월 18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 의대 교육관의 2014학년도 정시 모집 면접 현장. 복도 양측에 각 6개씩, 총 12개의 면접실 앞에는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수험생들이 한 명씩 문 앞에 섰다. 벨 소리가 울렸고, "지금부터 문에 붙어 있는 종이에 적힌 내용을 읽으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정확히 2분 뒤 다시 벨과 안내 방송이 나오자 수험생들은 문을 열고 면접실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엔 교수 면접관 2명이 앉아 있었다. 면접관들은 8분 동안 수험생에게 속사포 같은 질문 공세를 펼쳤다. 종료 벨 소리와 함께 수험생들은 한 칸씩 옆방으로 이동했고, 질문만 다를 뿐 똑같은 과정이 되풀이됐다. 수험생들은 이런 식으로 60분 동안 모두 6개의 면접실을 돌았다. 모든 과정은 마치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듯했다. 중간에 쉬는 시간도 없었다.
|
서울대 의대가 2012학년도부터 도입한 이 면접은 '다면(多面) 인·적성 면접(MMI·Multiple Mini Interview)'. 의사로서의 기본적인 인성과 적성을 검증하는 면접법이다. 처음엔 의학전문대학원 수시에 적용했고 이후 2013학년도 의대 수시, 2014학년도 의대 정시로 확대했다.
이 면접은 올해 유독 큰 주목을 받았다. 예상치 못한 이변(異變)이 속출했기 때문이다. 화제가 됐던 것은 수능 자연계 유일 만점자의 불합격이었다. 서울대 의대는 이번 정시에서 수능 100%로 입학 정원(25명)의 2배를 선발한 뒤 학생부 10%·수능 60%·면접(MMI) 30%로 최종 합격자를 선발했다. 그런데 자연계 수능 만점자가 최종 합격자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던 것이다. 오종운 이투스 청솔 평가이사는 "1단계 통과자들은 모두 수능 성적 최상위권으로 점수 차(8점)가 크지 않아 2단계 MMI 점수(30점)가 합격과 불합격을 결정적으로 좌우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서울대 의대 수능 점수 합격선이 연세대 의대보다 낮았다는 사실도 널리 회자됐다. 이투스 청솔에 따르면 서울대 의대 정시 합격선(2차 추가 합격자까지 포함)은 상위 누적 0.06%로 연세대 의대(0.05%)보다 낮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수험생의 반발이 거셌던 점도 MMI의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정시 면접 이후 대입 수험생 커뮤니티 '오르비스 옵티무스'에는 "과연 이런 면접이 무슨 변별력이 있는지 의문" "이 면접이 의대 혹은 의사랑 무슨 상관이 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찰나의 면접으로 수능 만점자를 떨어뜨리는 것은 악당들이나 하는 짓" 등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런 논란에도 서울대가 MMI를 고수한 까닭은 무엇일까. 강대희 서울대 의대 학장은 "의사가 전문적 의학 지식과 의료 기술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의사로서의 인성이 올바른지도 중요하다"며 "MMI는 이런 부분을 평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의사, 인성과 적성이 중요하다
서울대 의대는 MMI 도입 취지에 대해 "의사소통 능력과 라포르(rapport·의사와 환자의 심리적 신뢰) 형성 능력이 있는 지원자를 선발하고, 공부만 잘하는 지원자는 걸러내기 위한 시도"라고 밝혔다.
의대생을 뽑을 때 인성과 적성을 중시해야 한다는 것은 의학계의 오랜 화두(話頭)다. 사정은 외국도 마찬가지다. 뉴욕타임스는 몇 년 전 '의사 지망생을 위한 새로운 인성·사회성 테스트'란 제목의 기사에서 "미국 의대 가운데 MMI를 도입하는 곳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그 이유로는 ▲실력 좋은 의사들이 환자·간호사 등과 소통이 안 돼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환자의 죽음을 막지 못하는 사례가 늘고 있으며 ▲현대 의술이 갈수록 팀플레이 위주로 전개돼 의사에게 소통 능력이 요구되고 있는 점을 꼽았다.
MMI는 지난 2001년 캐나다 맥마스터 의대가 처음 도입했으며, 현재는 캐나다 대부분 의대가 시행하고 있다. 이후 미국으로도 넘어가 뉴저지, 캘리포니아, 버지니아, 오하이오 등의 주요 주립 의대가 실시 중이다. 미국 명문 사립 의대 중엔 스탠퍼드가 2010년 도입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강원대 의전원이 2008학년도 입시에서 처음 시행했고, 한림대 의대가 2011학년도 입시에 도입했다. 그 외 인제대 의대, 가천대 의대 등이 시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최근 발표된 서울대 2015학년도 입시전형 안내에 따르면 이 대학 수의대·치대도 수시 전형에서 MMI를 실시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MMI 도입이 앞으로 점점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인성 면접 강화는 서울대뿐 아니라 다른 의대에서도 꾸준히 진행돼 온 큰 흐름이기 때문(오종운 이투스 청솔 평가이사)"이라는 것이다.
◇학생들… "살아온 모습 드러나더라"
서울대 의대의 MMI는 총 6개의 방으로 구성됐다. 이 학교 입학 관계자는 "면접실 6개 중 1개는 학생들이 제출한 서류나 학생부 등을 확인·검토하는 방"이라며 "나머지 5개 방에서는 의대 산하의 문항개발위원회가 자체 개발한 문항으로 면접을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서울대 의대 신입생들은 "면접에 나온 문항은 수학·과학 능력을 검증하는 것이 아니었다"고 입을 모았다. 예를 들어 '친구가 대학 입시 자기소개서에 허위·과장 내용을 기재해 제출한 사실을 알게 됐다. 어떻게 할 것인가' '친구 5명과 인도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경비 마련, 역할 분담 등을 어떻게 할 것인가' 등 일상적인 내용을 담은 문항이 주로 제시됐다고 했다. 방에서는 문항과 관련된 추가 질문이 쉴 틈 없이 이어졌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인성과 적성을 위장(僞裝)할 경우엔 무용지물 아니냐'며 의구심을 표한다, 거짓말을 하거나 연습을 통해 가짜 연기를 펼치는 사람에 대한 우려인 셈이다. 그러나 서울대 의대 관계자는 "국내외 여러 연구 결과 MMI에서 면접실을 4개 이상 돌게 될 경우, 결국 본래 모습이 드러나게 돼 있다"고 말했다. 또 "쉬는 시간 없이 빡빡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생각하고 고민하며 임하기 어렵다"며 "어느 순간, 혹은 어느 방에서는 기존의 경험과 생각을 그대로 내보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실제 MMI를 경험한 학생들의 생각도 비슷했다. 2014학년도 수시를 통해 의대에 입학한 한 여학생(19)은 "굉장히 빠르게 진행돼 연습한 대로 임하기가 매우 힘들다"며 "결국 내가 살아온 모습 그대로가 드러나더라"고 말했다. 재수를 해 올해 의대에 입학한 한 남학생(20)은 "'어, 어' 하며 이것저것 말하다 보니 한 시간이 물 흐르듯 흘러갔다. 끝나고 나니 '어? 벌써 끝났네?' 하는 생각만 들었다"면서 "내 본모습을 감출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MMI를 해본 학생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2013학년도 수시에 합격해 의전원에 입학한 최모(24)씨는 "한 방에서 한두 명의 교수에게 평가받지 않고, 6개 방에서 총 12명의 교수를 거친다는 점이 공정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 밖에 "'의대 면접은 이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6개의 방에서 나오는 질문들이 모두 흥미로웠다" "성적 지상주의식 선발 방식을 탈피한 점이 인상 깊었다" 등의 의견도 있었다.
MMI 문항은 현직 의사인 교수 8명으로 구성된 문항개발위원회가 수개월에 걸쳐 만든다. 전에 나온 문제가 다시 반복될 가능성은 없다고 한다. 면접에는 모두 24명의 교수가 투입되는데 원활한 진행을 위해 사전에 1박 2일간 합숙 교육을 받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