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군요.
은으로 만든 펜과 연필이 만들어 내는
사람들 사이의 미묘한 권력관계라!!
밤 늦게 졸며 봐서 제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만,
사실 "물건이 권력이다"라는 명제를 입증하는 사례는 우리 주위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물건은 일종의 '신분상징(Status Symbol)이지요.
과거부터 신분을 나타내는 표식은 바로 옷이었습니다.
왕은 왕의 옷, 귀족은 귀족의 옷, 평민은 평민의 옷..
평민이 귀족의 옷을 입을 여유도 없었겠지만
함부로 그랬다가는 맞아죽기 딱이었겠지요?
신분제가 사라진 현대에도 근본적으로 바뀐 건 없습니다.
그래서 남자들은 비싼 수입차와 명품 시계에 관심을 갖고
여자들은 값비싼 가방과 구두에 관심을 갖는 것이지요.
과거 IVY리그 대학생들의 패션이
아메리카 캐주얼의 대명사가 된 것은
동부 명문 대학을 다니는 부잣집 도련님들이 만들어 내는
권력의 아우라 덕분이었습니다.
그들은 대학을 졸업하여 한 기업의 사장이 되고, 국회의원이 된 이후에도
중요한 자리엔 자신의 학교를 상징하는 타이를 메고 나오죠.
그 것을 가장 잘, 그리고 가장 빠르게 인식하고 모방을 했던 사람들이
이미 오래 전에 아시아의 유일한 명예 유럽인으로 인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동양인으로서 자신들의 한계를 인지하고 있었던 일본인들이었다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귀결일 것입니다.
일본인인 T. Hayashida가 무려 1965년에 장차 IVY 패션의 바이블이 될
'Take IVY'라는 사진집을 낸 것은 지금 생각해도 재밌는 일입니다.
지금도 일본은 아메리카 캐주얼을 본토보다 더 잘 구현해 내고 있지요.
미국과 유럽의 유명 브랜드의 멋진 별주판이나 오리지날 복각판을 찾으려면
미국이나 유럽이 아니라 일본에 가야할 정도니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일본의 미국과 유럽에 대한 열등감이
일본의 고급 패션, 잡화 시장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나라에도 지난 10년간 고급 편집매장들이 들어서고
패션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소득과 계층에 따라 맞는 옷을 입는 문화가 생겼다고나 할까요?
좋게 생각하면 전반적인 패션의 수준이 높아지는 것이지만
않좋게 생각하면 패션이 하나의 권력 코드가 되어가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동일한 몸을 갖고 있지만
우리 몸에 걸친 것과 우리가 들고 다니는 것,
그리고 우리가 타고 다니는 것은
부지불식간에 우리가 서로 다른 사람들 임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지요.
또한 물건은 동료의식을 만드는 데 사용되기도 합니다.
소속감을 나타내는 유니폼이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끝나는 게 아니죠.
예를 들어 미국 정치인들은 다소 저렴한 브룩스 브라더스의 양복과 알덴 구두,
그리고 투미 가방을 자신들의 유니폼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고
월가의 뱅커들을 기본 천만원대의 키톤이나 브리오니, 로로피아나를 일종의 유니폼으로 생각하지요.
베트맨의 멋진 미남 크리스찬 베일이 출연했던 2000년 작 '아메리카 사이코'를 보면
그 놈들의 문화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다소 과장도 있지만 섬짓할 정도로 엘리트 뱅커들의 세계를 잘 묘사했지요.
(참고로 서민을 늘 생각하시는 우리 각하는 평소 로로피아나나 브리오니를 입으십니다..)
재밌는게 1천만원짜리 시계를 차는 사람은 1천만원 미만의 시계를 귀신같이 구별해 냅니다.
100만원짜리 구두를 신는 사람은 100만원 미만의 구두를 역시 정확히 구별해 내지요.
반대로 5만원짜리 전자시계와 3만원짜리 옥션표 구두를 신는 사람은
자신의 물건이 상대방에 의해 정확히 식별되고
결국 자신의 물건에 의해서 자신의 가치가 판단되고 있음을 모릅니다.
그래서 일방적이고 은밀한 정치적 관계가 성립합니다.
실제로는 5만원짜리 중국산 전자시계가 1억짜리 기계식 뚜르비옹 시계보다 더 정확하고 편리하지만
현실에서는 하루에 무려 0.01초의 심각한 오류가 생기는 스위스 명품 시계를 찬 사람이
10년에 0.01초 오류가 생기는 성능 좋은 전자식 시계를 찬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물건이 주는 권력 관계 속에서는
그 물건의 효용과 경제성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하수들은 ***똥과 같은 겉으로 드러나는 물건들을 통해 타인들로 부터의 인지를 즐기는 반면
고수들은 브랜드가 드러나지 않는 더욱 은밀한 방식의 자기 만족을 더 즐긴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 사이에서도 권력의 서열은 존재하게 됩니다.
고수는 티가 안나죠. 대신 아이러니 하게도 상대방은 더욱 무시당합니다.
티가 안나는 명품은 돈 플러스 고상한 취향의 결과입니다.
취향이 고상한 사람들은 고상하지 못한 사람들을 말 그대로 개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돈은 어떻게든 벌 수 있지만 취향은 쉽게 생기는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국내의 한 유명 패션 블로거는 어떻게 옷을 입어야 하는가 질문하는 대학생에게
'먼저 부자가 되라!'는 멋진(?) 명언을 남긴적이 있습니다.
음..옷을 잘 입으려면 먼저 부자가 되어야 되는군요.
부자가 될려고 아둥바둥 살면 고상한 취향을 익힐 시간은 있을려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처음부터 매우 불공정하고 불편한 게임입니다.
이러한 물건이 주는 권력관계는 직장생활에서도 나타납니다
직장인이라면 상사들 보다 한단계 낮은 차종,
그리고 자신의 직급에 맞는 옷과 구두, 가방을 선택하게 됩니다.
특히 상사가 브랜드에 대한 상당한 지식이 있다면 더 조심해야 되지요.
그래서 주말에는 포르쉐를 타지만
주중에 출퇴근 할 때는 일부러 아반떼를 이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보험 영업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주고객 성향에 따라
들고다니는 가방과 볼펜도 결정합니다.
자신의 고객 수준보다는 낮게, 하지만 너무 낮아서는 안된다는 것은
영업을 하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상식입니다
영업사원이 고객이 사용하는 볼펜보다 더 비싼 볼펜을 들고 다니면
고객을 심히 불쾌하게 만들 수 있고
반대로 너무 싼 볼펜을 들고 다니면
정작 자신이 무시를 당해서 계약이 성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대차 매장과 벤츠 매장 딜러의 옷차림이 다르고
아울렛 매장과 명품 매장 직원의 경우 고객에 대한 태도도 다르지요.
이처럼 물건과 그것을 둘러싼 이 미묘한 권력관계는
사람들의 관계 속에 매우 은밀하게 스며듭니다.
펜 얘기가 나오니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하나 생각나는군요.
국대 재벌기업 회장실에서 있었던 실화입니다.
한 회장님께서 취향이 고급스러워 일반인들은 쉽게 구입할 수 없는
수천만원짜리 고가의 만년필을 사용했지요.
그런데 회장님께서 결제를 하실 때마다 곁에서 늘 회장님의 만년필을 동경했던
비서실 직원 한명이 그만 물욕(?)을 이기지 못하고 회장님의 만년필을 훔치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회장님께서는 홈즈 빰치는 추리력으로 결국 범인을 잡아냈고
범인을 회장실로 부른 후 양손에 가죽 장갑을 끼시더니 그 직원에게 펀치를 날렸다고 합니다.
도둑놈을 실컷 두드겨 팬 후, 회장님이 하신 말씀!
"그리 펜이 갖고 싶었나? 그럼 니 가져뿌라!"
(그 회장님이 누구냐구요? ㅋㅋ 네..그분 맞습니다.. 주먹 잘 쓰시는..ㅋㅋ)
물건이 주는 주술적 힘을 아는 사람들은 결국 더 강한 물건을 원합니다.
허영심을 채워주고 당당함을 더해주는 미묘한 물건의 주술적 힘을 빌려
자신의 권력에 대한 욕망을 채우고 상대방을 통제하고자 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대방 또한
상대방 물건이 주는 아우라와 그 아우라에 힘입은 상대방의
고양된 자아인식의 피해자가 됩니다.
만나고 나면 왠지 껄끄럽고 불편한 사람이 있습니다.
언듯 생각하면 과도한 물건의 잉여가 주는 부작용인 것 같지만
사실은 물건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의도한 껄끄러움입니다.
이처럼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를 의식적으로 무시하지만
무시 당하는 그들은 그것을 명시적으로 깨닫지 못합니다.
위축이 되는 느낌..기분나쁜 눈빛?
아마 그 정도 겠지요??
P.S. 늙은 권력자들도 발가 벗겨 놓으면 참 볼만 할텐데 말입니다.
대통령 선거에서 수영복 심사도 하면 재밌을 거 같습니다.
오늘의 글은 그냥 재미로 읽어주세요~~
첫댓글 이해가 되니 쏙쏙 들어옵니다. ^^! 고맙습니다.
반강제로 티비를 적게 보고 자라서 화면에 별 영향을 받지 않는 편입니다. 그래서 은펜과 연필의 차이가 뭔지 모르겠더라구요. 갠적으로 연필을 좋아하기도 하고요. ㅋㅋㅋ 4H와 HB 연필의 차이를 뒀다면 이해했을텐뎅~* 좋은 꿈 꾸세요~*~*~*
비빔밥님. 기호학적인 분석과 예리한 관찰력이
흔히 일상에서 지나치는 것들을 일깨워주는군요.
저도 살다보니 몇가지 물건에 대한 집착이 형성되더군요.
과시용은 아닌데 나름 기준이 생겨 그 물건만 고집하고,,
부자가 아닌데도 자기만족감은 누구에게나 조금씩은 있는 것같습니다.^^
저도 사실 물건에 대한 집착이 좀 있는 편입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오래 쓸 수있고 나중에 자식에게 물려 줄 수 있는 것으로 사려고 합니다만,
역시 돈이 문제죠..ㅋㅋ
결국.......... 껍데기를 추종하다보면......본질과 멀어지게 됨을 느낍니다......
아래friend님글에서의 인류의 존엄과도 멀어지게 된다는..............
추종하는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멋을 추구하는것이....존엄을 지키는것이라 생각합니다......
부언)1. 유행을 선도하는이들을 폄하하는것이 아니라..............무턱대고 따라하는것을 경계하는것입니다....
2. 아리까리옛날이야기에나오는 공작을 흉내낸 까마귀처럼....자기의 멋을 살리지않고 따라함을 경계함 입니다..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쉽게 말해 돈**하는 게 문제인 것이지요. 그리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가는 데 반드시 명품을 사야될 필요는 없지요. 자기만의 멋을 살리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이런글 좋아해요^^
할인마트 옷을 애용하는 저는 서민이고 돈버는만큼 쓰는게 당연하지하며 합리적 라이프라고 여기지만 반대로 어머니나 비슷한 처지의 다른이들은 돈없어도 옷만큼은 좋은거 입어야 한다라고 생각하시죠 사실 둘다 정답은 없고 어떤 상황에서는 다 정답일수도 있죠 재테크 책조차 가난해도 부자들이 가는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라고 하는데 ㅎㅎ
어떤게 맞는지...
하지만 확실한건 지금 사람들이 부자아닌 서민이나 가난한이들까지 다 자신의 처지 이상으로 과소비를 하고 필요이상의 좋고 비싼걸 소비하는것같습니다 자신의 만족을 채우기위해서 기왕사는거 좋고 비싼거로~~하는 자기합리화^^
둘다 맞는 말인 것 같아요..저도 20대 때는 옷사는 돈까지 아껴서 제가 좋아하는 일에 썼었는데, 직장 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부류의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유니폼으로서 옷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더라구요. 문제가 옷이 자기 만족으로만 끝나면 되는 데 은근히 상대방을 분류하고 무시하는 기준이 된다는 점이겠지요?!
고수들은 브랜드가 드러나지 않는 다는 말에 공감! 생전 들어본적도 없는, 일반인은 알수없는 브랜드 이야기를 하더라는....그나마 소탈?한분이었는데 ...스스로 그들과는 안어울리는 부족한 사람이란 생각을 갖게만든다고 하더군요
일진들의 노스페이스 문화와 뭐가다른지 ...
ㅋㅋ..소탈해 보이는 분들도 어느정도 사회적 지위가 되거나 소득이 되면 자기들만의 문화가 생깁니다. 요새 50~60대 아저씨들 사이에는 닥스가 갑이라는 말이 있더군요..최소한 그정도는 입어줘야 어디 모임에도 끼워주고 골프장에도 낄 수 있지요..참 재밌는 세상입니다..일진들의 노스페이스 문화가 그냥 생긴게 아니죠! 다 어른들한테 배운거라는!!ㅠ
안그래도 오늘 점심때 화장도안하고 옷도대강 입고 조직사회에 끼여있다고 4차원이란말을 들었습니다 문제는 제가 별로 개의치않는다는게 상대를 껄끄럽게하겠죠^^
비빔밥님 명절잘보내십시오
물건과 신분이라... 공감이 갑니다. 그런 세상이 없어야 할텐데 그런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서글픕니다.
저는 해외에 있기에 간혹 한국에 나올 때마다 랜트하기도 그렇고 해서 소형차를 하나 샀습니다. 기름값도 적게들고 차도 잘나가 아주 좋더군요, 그런데 이번에 나오니 신분이 꽤 놓은 분이 해외에서 고생했다며 서울 어느 고급음식점으로 초대를 해서 내 차를 가지고 갔는데 주차원이 만차라고 들여 보내주지 않아 주변을 몇바퀴 돌아도 주차할 곳이 없어 전화를 했더니 그분이 내려와 주차장으로 직접 안내해 줘 들어가 보니 주차장이 많이 비어 있는데도 보내 주지 않았더군요 ,주차원 혼 좀 나기는 했지만 밥맛이 씁쓸했습니다.
이런~ 쥑일 ××같으니라구!
기분이 아주 꿀꿀하셨겠어요~ 우리 훍사랑님 같은 분을 몰라보구 그런 속보이는 짓을 하다니~!!
아하~ 그래서 사람들이 그렇게도 명품 명품하는거였군요!!
저는 사람들이 참으로 별나구나~ 생긴데로 살지~ 그랬거든요!
비빔밥님이 그문제를 집(짚?찝?)어 주시니 왜그러는지 이제야 그런 행동들이 이해가 가네요!
저는 사람들이 열등감이 지나쳐서 그렇게 함으로써 겉포장하려는 줄로만 생각했어요!
지나친 열등감? 뭐 이런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