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가득한 어느날 오후.
제가 매우 좋아하는 동료에게서 전화가 옵니다.
"가?"
"뭘?"
"그거"
"그거?"
"엉 그거"
"알써.그거"
그거라고 하니 가야하지 않겠습니까 ㅋ.
그게 뭐냐구요? 제목에 있잖아요. 그거.
우린 보통 강제집행을 잘 안해요. 말로 해도 될걸 굳이 돈들여서 할 이유가 있을지 모르겠어요. 제 동료도 오랜 경매생활을 이어가면서 강제집행따위는 안했지요. 하지만 예외없는 법칙은 없다는 말 그대로 어쩔수 없이 집행을 할 수 밖에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3년을 참고 기다린 끝에 강제집행을 한다는 군요. 기회비용 쩔어...
강제집행을 하는 경우에는 강제개문을 해야하겠지요. 강제 개문 한 이후에는 살림살이를 들어냅니다.
법원에서는 그런 절차를 밟아야 할때 그 사실이 있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입증해야할 두명의 증인이 있어야 한다고 하네요. 그 증인중의 한명으로 제가 발탁된거죠.
난 존재감 쩔어 ^^V!
산넘고 물건너 현장에 도착합니다. 서울 요지에 자리잡은 아파트입니다. 요지의 아파트면서 층수도 짭짤하네요. 로얄층이라나 뭐라나. 난간을 밟고 올라가서 낙하산을 매고 뛰어내려도 한강을 바라보며 한참을 내려가야 할겁니다. 절경이지!
물건 들어낼분들 먼저 오시고. 그 이후 집행관 오십니다. 채권자부르고 증인의 주민등록증을 달라고 합니다. 증인 인적사항 기재하네요.
집행관이 등장한후 열쇠장인 오십니다.
뚜껑 개봉하기전, 문을 연거푸 두드리며 집행관의 쫄깃한 경고가 이어집니다. 대답이 없고 문이 열리지 않네요.
전문가 투입!
개봉해야할 잠금장치는 전자장치네요. 전자장치는 어떻게 따는지 아시죠?
요즘은 나름 첨단장치를 이용합니다. 현관문 안에서 밖을 내다볼수있는 미니 망원경은 어떤 집이든 장착되어 있어요. 일단 그 미니 망원경을 밖에서 뜯어냅니다. 그거 별로 어렵지 않아요. 뺀치로 돌려서 빼내면 나오게 돼있어요. 나온 자리만큼 구멍이 뚫리겠지요. 그 구멍에 열쇠장인이 나름대로 만든 특수장치를 삽입합니다. 특수장치는 내시경이지요. 카메라를 보면서 더듬거리며 잠금장치를 찾아요. 찾아낸 잠금장치를 찍어누르면 문이 열리겠지요 ㅋ.
이번에는 특이하게도 열쇠장인이 말합니다.
"안에 사람있네요. 락걸려있어요"
그 말들으니 등줄기가 오싹합니다. 집행관의 수차례 경고에도 반응이 없었는데 사람이 있다고 하면?
시체를 봐야 하는것이 아닐까.
...
...
문을 열었더니 채무자이자 집행 피신청인이 빤스급의 옷차림으로 딱 서있네요. 일단 시체를 안봐도 되니 다행입니다.
피신청인이 허리춤에 손을 집고 무언가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아...
그 말을 듣다보니 경매고수인 저의 동료가 왜 집행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갑니다. 그리고 왜 저를 불렀는지 이해도 갑니다. 혹시라도 맛이간 채무자가 칼을 들고 난동을 부릴때 로우킥을 잘할수 있는 제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제가 다리가 짧거든요 ㅋㅋㅋ.
피신청인은 하늘이든 땅속이든 본인의 정신을 훌륭히 가져다 놓을수 있는 그런 분인듯 했습니다.
"내귀에 도청장치가 있다."
뉴스 생방 중에 갑자기 들어와서 앵커의 마이크를 빼앗아 그런 말을 한 사람이 있었지요. 아주 오래전에.
이분은 더 한듯도 합니다.
본인은 눈에서 레이져를 쏠수 있답니다. 다 죽어 아주! 그리고 본인의 눈에는 cctv가 장착되어 있다네요. 방송용 장치래요. 송출하면 다죽어! 그러면서 난 세금 잘내고 관리비도 잘내고 있는데 왜 내가 나가야하는지 모르겠답니다. 그에 대해 집행관이 여러가지로 납득이 가게 설명합니다. 그러나 상대방은 집행관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본인의 주장만 해댑니다. 모두 난감한 상황에 빠져들어요.
왜!
대화로 풀어갈수 없었고 3년을 기다린 끝에 마지막에는 집행을 강행할수 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갑니다. 피신청인은 시세에 근접한 금액을 배당받을수 있음에도 불구하고.(3년이란 기간과 배당 부분은 오프라인에서 말해줄수 있음. 내막 설명하자면 매우 길어요)
난감한 상황.
쉽지 않습니다. 집행관과 그 일행은 더 이상의 일을 진행할수 없습니다.
그때 똘똘한 저의 동료는 민사집행법 제5조를 떠올립니다. 그중에서도 제 2항.
그 조문은 다음과 같아요.
민사집행법 제5조(집행관의 강제력 사용)
① 집행관은 집행을 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채무자의 주거·창고 그밖의 장소를 수색하고, 잠근 문과 기구를 여는 등 적절한 조치를 할 수 있다.
②제1항의 경우에 저항을 받으면 집행관은 경찰 또는 국군의 원조를 요청할 수 있다.
③제2항의 국군의 원조는 법원에 신청하여야 하며, 법원이 국군의 원조를 요청하는 절차는 대법원규칙으로 정한다.
<저항을 받을때 출동할지도 모를 국군. 로우킥 준비중>
누구도 어찌할수 없는 이 상황은 강력한 저항을 맞이한 경우라고 보면 된다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동행한 또다른 증인에게 부탁을 합니다.
"112에 전화를 걸어 경찰 또는 국군의 원조를 받을수 있도록 해주세요"
또다른 증인은 전화기를 들어 원조를 요청합니다. 저도 전화기를 들고 싶었지만 언제든지 짧을 다리를 이용해 로우킥을 할수 있도록 준비자세를 취해야 해서...
그러나 원조자체가 쉽지 않네요. 민사집행법 제5조가 있다는 사실에 대해 경찰은 인지를 못했을수도 있고 설사 알고 있다 하더라도 민사문제에 개입하는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듯 합니다. 느낌상 그렇다는겁니다. 제가 오해할수도 있고.
어찌되었든, 한참을 이야기하던 증인은 벽에 부딪혔음을 느끼고 잠시 말을 잇지 않다가 드디어 무엇인가를 떠올립니다.
"채무자가 난동을 부리고 있어요. 아아! 이거 어떡하지~~~!"
큰소리로 외칩니다.
그말을 듣고 경찰은 바로 출동합니다 ㅋㅋㅋ.
경찰의 입장에서 드디어 확실한 명분이 생긴 것이죠. 민사문제가 형사사건으로 된것입니다. 민사집행법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난동에 얼마나 힘을 주었던지. 경찰차 세대가 앞을 다투어 달려오는게 보입니다.
대충 경찰 한개 분대가 출동한것 같아요. 합이 8명.
경찰이 도착하자 눈에 레이저가 나가고 cctv가 장착되어있다고 하는 우리의 피신청인. 한마디도 못합니다. 아니 안합니다. 한개 분대의 힘에 압도되었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끝까지 이른바 '영어'를 했었는지.
현명하고 책임감 강한 경찰이 말씀하시길, 피신청인은 우리가 책임질테니 집핻을 이어가라고 하네요.
덕분에.
그 이후는 별다른 저항없이 순조로운 집행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집행이 끝나고. 집행관이 채권자를 부르고 정자세 하랍니다. 시상식이죠.
마주하고 서서.
문서를 읽어내립니다.
"...본 사건, 사건번호 채권자 아무개는 이 시간부터 주소 어디에 대한 소유자로서의 권리를 정당하게 행사할수 있습니다..."
경건한 순서였고 채권자인 동료는 감격의 눈물을 흘립니다. 믿거나 말거나...
그리고 절차에 대해 상기시켜줄 한가지
집행을 하고 집행물 창고에 보관을 한 이후 절차는 다음과 같아요.
집행관은 보정명령서 하나를 줍니다. 그 명령서는 다름아닌 채무자의 초본을 발급받을수 있도록하기위한 증서이지요. 그 증서를 동사무소에 들이밀고 초본을 발급받으면 채무자의 마지막 주소를 알수 있겠지요. 그 주소로 내용증명을 발송합니다. 내용증명의 문구는 별거없어요. 당신의 짐을 어느 장소에 보관하고 있으니 찾아가라는 것이죠. 상대방이 받든 안받든 내용증명을 발송한지 일주일 정도 지난 후에 법원에 환가신청서를 제출합니다. 창고 보관 물건을 만에 하나 채무자가 찾아가지 않는 경우에 대한 대비책이죠. 그리고 강제집행추가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합니다.
그건 그렇고.
음식물은 집행물 창고에 보관하지 않아서... 산더미 처럼 쌓인 음식물 처분에 피똥 질질...
첫댓글 생생현장 정보네요
집행까지 가는 일은 없어야할테데요..
현장 정보 감사합니다~
생중계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읽는 내내 저두 긴장했네요~~~
ㅜ잘 해결되서 다행입니다!!!
현장에 있는거 같습니다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할 수 있는 일이라..
아직 그런 경험은 없지만 혹시 모를 일에 대해 대비를 할 수 있을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의미있는 일 하셨네요.
글 재밌게 쓰셨네요.
잘봤습니다
파딩님 글 넘 재밌습니다. 정말 별의 별 일이 다 있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