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도봉에서 이렇게 사진을 찍고 배낭을 풀고 울퉁불퉁한 바위에 앉았다. 조금이라도 편편한 자리를 찾아보려고 했지만 그런 돌이 없었다. 성삼재로 내려오는 버스 안에서 4시간 동안 한숨도 잠을 자지 못했도, 새벽 3시 부터 죽 걸어 여기까지 왔다. 잠시 앉았다 가려고 앉은 바위에서 나는 울퉁불퉁한 바위 위에 배낭을 놓고 그냥 누웠다. 잠이 왔으면 좋겠다, 잠시라도, 그런 생각 뿐이었다. 눈을 감고 있는데, 지나는 사람들 말소리 사이사이로, 나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뭐지? 내가 잠이 들었나? 아닌데, 주위의 모든 소리가 들리는데...생각했다. 그러다 제발 5분 만이라도 잠을 잤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러다 일어났다. 30분쯤 흘렀나? 생각했다. 그리고 시간이 궁금해 시계를 봤다. 12시쯤 되었겠지 생각하면서. 시간을 보고 놀랐따. 오전 9시 11분.
옆에서 같이 누었던 지인이 말한다, 코를 크게 골았어..
나도 들었다, 내 이상한 숨소리를. 그리고 그 순간에도 주위 사람들의 말소리, 움직임 소리가 다 들렸던 것을.
다시 걷기 시작했다. 반야봉을 그냥 지나치고 뱀사골로 들어설때까지 죽 걸었다. 반야봉을 지나친건 아주 아쉬웠다. 하지만 원래 게획에 없었던 일이다.
이런 산을 여럿이 오르면 지체하는 시간이 꽤 될텐데, 둘이 걸으니 ... 누굴 기다리고 할 시간이 없어도 되니, 그저 쉼없이 걸었다.
자주 걷는 나도 30킬로미터 정도의 거리를 걸으니 다리가 뻐근하다.
긴 시간 걸어내려온 초록 숲, 계곡의 초록 물, 내가 사는 곳에선 들리지 않는 낯선 새들의 울음 소리 ... 너무나도 커다란 숲에서 나는 그날 하루를 숲의 여왕처럼 거닐었다. 얼마나 황홀한 일인가, 성큼 걸어들어간 자연 속에서, 나의 몸과 마음에 초록이 배어, 내가 초록 잎이며, 초록 줄기며, 초록 물이 되어버린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