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날 필받아서 끝까지 썻다가, 일부만 올리고,
다시 수정하고 덧붙여 쓰려고 했더니. 게을러서 안하게 됐네요 -_-;
그냥 버려두긴 아까워서, 처음에 썻던글을 그냥 올리게 되었습니다 ^^;;
--------------------------------------------------------------------------------------------------------------------
“60만원”과 “큰 비전, 도전, 은혜”.
후방에서 기도하던 그 곳, 태국. 교회에서 그 곳으로 “러브타일랜드 비전트립”을 떠나기로 결정이 되었을 때, 그리고 내가 명단에 추가되었을 때. 나는 사실 망설였다. 넉넉치 않은 형편에, 온가족이 다 가면 300만원이 넘는 돈을 감당하기가 힘들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트립을 통해 주님 께서 내게 주실 것들에 대한 의심 또한 한 몫했다. 위해서 기도를 하고, 아버지께서 내게 결정하라고 했을 때, 함께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사단의 방해
한국 남자들은 불쌍하다. 군대 문제 때문에 힘들어 하는 사람이 많은데, 외국 한번 나가려고 해도 군대는 걸림돌이 된다. 협이형과 민호형은 그 것 때문에 병무청을 오가며, 허가맞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나마 나는 87년생이어서 다행히 그런 절차를 밟지 않고 쉽게 다녀올 수 있게되었다. 이것도 사단의 방해라고 볼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민호형이 지원한 인천기능대학교의 면접 날이 우리가 떠나는 다음날로 정해져서 민호형은 못갈수도 있는 상황이었고, 청년실업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이 때, 안나누나는 감사하게도 가까운 곳에 위치한 회사에 취직하게 되었는데, 신입사원 모임이 우리 트립 중간에 있었다. 어쩔수 없이 안나누나는 트립을 포기하게 되었고, 민호형은 하루 늦게 혼자라도 출발하기로 했다. 그리고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으나, 비전트립팀의 회계를 맡은 미진이 누나도 못가게 될수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역시 다행히 함께하게 되었다.
설레임과 기대.
거의 10년만에 타보는 비행기. 어릴 때 몇번이나 타봤음에도, 너무 어릴적 일이라 잘 기억도 나지 않았는데, 오랜만에 타보는 비행기와 트립에 대한 기대감과 설레임으로 가득했다. 대한항공에 근무하시는 조종수 집사님 가정은 먼저 출발하시고, 다음 날 출발하는 민호형을 제외한 16명은 인천공항에서 모여 출발했다. 6시간이 넘는 비행끝에 도착한 태국. 비행기에서 내리자 마자 습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런데, 짐을 찾는 과정에서 우리 엄마의 짐가방이 하나 없어졌다. 제일 큰 가방이었는데, 말도 통하지 않는 그곳 직원들과 계속 얘기하고, 찾아봤지만 결국은 포기하고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미리 와서 우리를 기다려준 조집사님 가정. 그리고 근 2년만에 만나는 김락희 선교사님.
우리, 청년 형, 누나들과 학생은 어른들과는 따로, 트럭형 자동차 뒤 짐칸에 타고 숙소로 향했다. 도착한 시간은 새벽 2시간 넘은 시간이라, 우린 바로 잠에 들었다.
“주여, 이 땅을 고쳐주소서, 구원하소서”
우린 7시도 안되어 일찍 일어나, 태국에서의 첫 날을 준비했다. 말씀을 묵상하고 찬양하고… 그리고 차를 타고 식사할곳으로 이동했는데, 볶음밥이었는데, 걱정했던것과 달리 입맛에 맞아서 맛있게 먹었다. 알고보니 그 옆은 다른 전도여행팀(경기대,천안대YM)의 묶고있는 곳이었다. 그 곳에서, 예배를 드렸다. “존귀하신 주, 주는 거룩, 주는 거룩 하신 주, 놀라우신 주, 주는 존귀, 주는 존귀하신 나의 주.” 한국땅에, 그리고 우리에게 놀랍게 역사하신 주님의 역사가 이곳에도 일어나기를 기도하며.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 어른들과 함께, 방콕 시내로 향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방콕의 사원. 우상들이 세워져 있는 곳, 쓰러져야 할 곳 이었다. 들어가고 나서 정말 불국사, 석굴암은 아무것도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네스코 어쩌고 저쩌고 했던 석굴암은 이곳에서는 세워지지도 못할 것 같았다. 그 큰 곳에, 그 엄청난 건물과 형상들에 얼마나 많은 돈이 들었고, 얼마나 많은 이들의 땀과 피가 섞여 있을까. 많은 수도사들이 있었고, 기도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변화될수 있을까? 그 후 식사는 수끼라고 했나? 샤브샤브 비슷한 음식을 먹었는데, 여러가지 음식을 데쳐서(?)먹는 그런 것이었는데, 맛있는 건 맛있었고, 가끔 잘못 선택한건 우리 입맛에 안 맞기도 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방콕 시내의 번화가. 선교사님께서 가이드를 해주셨는데, 정말 기도가 필요한 곳 같았다. 정상적이지 않은 성문화가 자리잡고 있고, 술집이 난무하고, 그 위에는 숙박업소가 존재하는, 퇴폐한 땅. 태국이었다. 우리의 발로 그 곳을, 한 발 한 발 그 땅을 밟으며 기도했다. “이 땅 고쳐주소서”
하늘과 땅에, 아니 태국 땅에 주의 영광 나타내소서
나는 하루 늦게 도착하는 민호형을 픽업하기 위해, 용욱이와 이신우 선교사님과 어제 우리가 도착한 타이공항에 갔다. 혹시나.. 하고 잘못 나올까 해서 원래 나오는 곳의 반대쪽으로 내가 서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민호형은 그쪽으로 왔다. 그래도 내가 그 쪽에 서있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마냥 반대쪽에 서있었다면. 그 곳에서 당황할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나서 숙소로 돌아오니 3시가 넘은 시간. 4시간도 안되는 시간을 자고 7시경에 일어나 우리 숙소쪽으로 온 경기대분들과 함께, 오늘 가게될 라차몽콘 대학 행사를 준비했다. 우리가 korean day를 할 수 있을지 불투명했는데, 그래도 할 수 있게 되었다니 참 다행이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한 라차몽콘 대학교. 많은 학생들이 보였다. “내가 이들에게 전할수 있을까?” 다른 분들은 학교 학생들에게 오늘 행사를 홍보하러 가고, 나와 몇 명은 행사를 위한 다과를 사러 갔다. 그런데 태국교통이 얼마나 안좋은지 우리가 들어오다가 본 세븐 일레븐을 가려면 분명히 몇분 안걸리는 거리인데 뺑뺑돌아서 가야 한다. 다시 돌아와서 준비를 하고, 나도 홍보를 했다. 처음엔 역시나 머쓱하고 말도 잘 안나오고해서, 잘 못했는데, 하다보니 어느새 나는 계속해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마다 “싸왓디캅. 투데이 이스 코리안즈 데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우리가 그 행사를 위해 준비한 것은 찬송이었다. “하나님의 나팔소리” 와 “온 세상 위하여”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그곳에 피아노가 없어서 기타로 대체할 수밖에 없어서 우리가 준비해 온 것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해 안타까웠다. 하지만 경기대분들이 정말 열심히 준비하시고 많은 것들을 보여주셔서 다행이었다. 락희 선교사님이 오늘 가입하신 분이라면서 어떤 여자분을 소개해줬는데, 우린 그분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영어를 잘 못해서 불편함이 있었지만, 같이 웃고, 같이 이야기하는 시간이 너무 즐거웠다. “이 영혼을 구원해 주시기를”. 아 참, 이번 태국 여행에서 확인한 것이 있다면. 뻔, 벤츠간사님은 확실히 자매였던 것이다. 항상 예전에 선교서신을 통해서 봤을 때, 왜 인지는 모르겠으나 항상 남자라고만 생각을 했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이름도 여자 같은데, 그때는 당연히 남자라고만 생각을 했었는데, 언젠가 선교서신에서 여자분들이었다는 걸 알고 황당했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그 후로도 뻔, 벤츠하면 형제의 모습을 먼저 떠올리곤 했었다. 준비한 것들이 끝나고 라차몽콘에서의 행사는 끝이났다. 이 행사를 통해 그들이 바로 느끼고 하나님을 믿게 되는역사, 그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것을 보고 듣고, 조금이라도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행사 마무리 후에 우리 교회 사람들끼리 모여 과일도 먹고, 저녁도 먹고,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다. 점점 태국이 적응되어가고 있다. 아, 아까 말한 태국의 불편한 교통은 어느정도냐면, 분명히 어제 아침 차를 타고, 고가도로까지 타서 도착했던 센터가, 알고보니 우리 숙소의 바로 맞은편이었다. 육교를 통해 건너면 15분정도 걸리는 거리. 아직은 개발중인 도시라서 그런가보다. 그 후에 센터에서 늘푸른가족끼리 예배를 드렸다, 선교사님도 같이. 태국을 더 체험해보고 했던 중보기도라서인지, 내마음에 안타까움이 있었다. 태국을 위해 부르짖었다. 그리고 선교사님께서 이곳 사역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는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하나님의 부르심이 없으면 할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다음날은 까셋대학교로 가는날, 이번에는 천안대 분들과 함께 했는데, 이번에는 그 전날부터 오셔서 같이 준비했다. 그렇게 또 피곤한 하루를 마치고, 다음 날. 이번엔 어른들도 함께 숙소에 도착해서, 버스를 타고 까셋대학으로 향했다. 까셋대학에 대한 사전정보. 우리나라에서 명문대라는 서울대는 세계 100위안에도 못든다는데, 세계 40위라는 학교. 세계 40위 학교에 다니는 그들은 어떨까? 도착한 곳은 어제 라차몽콘에서의 행사장소보다, 열악했다. 라차몽콘에서는 위에 지붕(?)도 있었고 바닥도 쇠면바닥이었고, 바람이 많이 불어서 시원했는데, 그날 따라 덥고 햇빛도 쩅쨍하고, 땅은 울퉁불퉁한 곳이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열심히 홍보를 했다. 나도 많이 능청스러워 져서, 얼굴에 철판깔고 열심히 홍보했다. 어제는 홍보장소와 행사장소가 가까워, 그냥 끌여드렸지만, 오늘의 무기는 음식이었다! 코리안 푸드가 프리라는 것을 강조하며 열심히 홍보를 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김치를 알고 있더라. 홍보를 하다보니 어느새 시간이 다되어서, 행사장소로 이동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우리는 어제완 다르게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사람을 불렀다. 그들이 우리 말을 알아듣진 못했겠지만. 그들은 알까? 자신이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것을…. 오늘은 일찌감치 태국사람들 옆에 자리잡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역시나 잘 안되는 영어로 이것저것 대화를 나누었는데, “are you univerty student?” 라고 물어서 충격받았다. 오 근데 반갑게도 그들이 원빈도 알더라. 가을동화가 태국에서도 방영되었는지 원빈 팬이란다. 하지원도 알고 송혜교도 알고 송승헌도 알았다. 공감대형성! 그 와중에 열호형의 사교성은 태국에서도 발휘되고 있었다. “우리가 태국형 미남”이라고 이름 붙일만큼, 태국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행사가 끝나고 그들에게 태국어로 된 성경책을 선물로 주었다. 꼭 읽어보라고 했는데, 읽어보지 않았더라도, 이렇게 이어지게된 하나님과의 인연(물론 그들이 태어나기전부터 태초부터 그들과 하나님의 인연은 계속 되고 있엇지만, 그들은 이제 알게 되었겠지?). 더욱 더 깊어졌으면 좋겠다.
늘푸른가족의 아름다운동행.
까셋대 행사도 마치고 또 트럭 같은 짐차의 짐칸에 타고,(이번엔 좀 위험했다. 짐들도 많고 자리가 적어서 다들 불안한 자세로…) 찬양을 하면서 숙소로 향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태국땅에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있었다. 숙소에 도착해서 우리는, 너무 힘들고, 더웠지만, 모처럼 늘푸른가족이 가진 여유로운 시간. 우린 숙소동네에 있는 농구장으로 농구하러 갔다. 중학교 3학년이 되는 용욱이부터, 청년, 30대, 40대까지, 함께하는 농구였다. 경기의 승패를 떠나서,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다. 한참 농구를 하니 정말 너무너무 힘들어서. 숙소에 뻗었다. 하루에 샤워를 몇번씩 하는지. 그래도 즐거웠다. 그리고 이것저것 태국음식들과 과일을 함께 한 후, 가진 예배. 태국을 위해 중보하는 시간, 찬양, 기도, 말씀 모두 좋았지만, 서로 축복하는 시간이 너무 귀하고 좋았다.
다음날은 파타야에 갔다. 태국의 관광 명소 파타야. 겨울에 여름바다를 간다는 느낌이 색달랐다. 신나게 놀고, 점심도 먹고, 또 파타야에 히트는 바나나보트였다. 두번이 타게 되어서 나중엔 많이 요령이 생겼는데, 한가지 재밌는 에피소드를 이야기하자면, 이제는 떨어질 때 멋있게 뛰어내리자고 서로 약속하고 탔는데 많이 꺽여서 떨어질뻔했는데, 다들 역시 요령이 생겨서 안떨어지고 잘 갔는데 협이형이 떨어질 것 같아서 혼자 날라버린 것이다. 우린 유유히 그냥 가고. 너무너무 웃겼다. 몇시간동안 바다에서 즐겁게 놀고, 또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다음 장소는 저녁식사를 할 부페! 선교사님 분들과(김락희선교사님, 이신우선교사님, 김애아선교사님, 박대성선교사님. 맞나?), 태국분들. (뻔,벤츠,디아우)과 함께 식사를했다. 비록 그분들과 함께 이야기하면서 먹지는 못했어도. 그분들과 함께 할수 있어서 좋았다. 배부른 식사를 하고, 식당과 같은건물에 있는 쇼핑센터에 들려서, 간단한 선물을 샀다.
아쉽게 마지막으로 다른선교사님 분들과도 작별 인사를 하고 우리는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했는데, 이게 왠일? 내 이름이 리스트에서 누락이 되었다는 것이다. 자칫하면 난 한국으로 못 돌아갈 상황이었다. 목사님께서 나서서 해결해주셔서 다행히 마무리 되었다. 하지만 또 그 일을 해결해 놓으니 다른 사람들도 누락된사람이 많았던 것이었다. 게다가 비행기 시간은 연기되고. 어떻게 어떻게 겨우겨우 표를 구했는데, 종진이형고 홍성호형제님은 한국으로 하루 늦게 출발하게 되었다. 죄송했고, 걱정도됐지만, 이왕 그렇게 된거 태국에서 하루 더 즐겨야지!
2시가 넘어서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우린 태국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왔다.
나를 세상의 빛으로 부르신 주님, 비추소서, 나도 주님의 빛을 비추리라!
첫댓글 이녀석! 나의 묘기대행진을 잊지 못하는구나.!ㅋㅋㅋㅋㅋㅋㅋ
와...멋있다. 잊지 않고 글 올려줘서 고맙다 세진. 너희 학생들을 보면 왠지 부끄러운 맘이 든다. 정말 빛이 나는것 같다 ^^ 우리 오늘도 세상의 빛으로 열띠미 살아가자꾼! ^__________^
아! 그 때의 그 감동이 다시...세진이 글은 감동 그 이상의 뭉클함까지 느껴진다.
세진 그대의 소중한 글은 낼 읽도록하지... 오늘은 사정이 좀 있어서리...평온하시게나.
묘기 대행진이라니??그게 무슨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