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포교에 앞장서고 있는 불교계 대표적인 스님, 서울 광림사 주지 해성스님이 장애인 포교를 한지 20년이 넘었다. 불교계에서 장애인에 대한 용어조차 어색하던 시절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의 휠체어를 밀며 전국 산사를 순례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해주던 스님은 지금도 그때 마음에 새긴 초발심을 유지하면서 서울 송파구 석촌동 광림사에서 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메르스로 어수선한 강남 지역이지만 광림사에 자리 잡은 연화직업재활원에서 장애인들이 만들어 내는 다양한 상품들은 생동감있는 삶의 현장을 보여주는 듯 했다. 장애인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스님을 지난 5일 만나 그동안 활동해 온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출가 후 40여 년 동안 장애인 포교에 진력해 온 해성스님은 장애인을 위한 문화공간과 장애어르신을 위한 양로원 건립 발원을 세우고 있다. |
1993년 원심회서 수화 배우며
청각장애인과 인연 맺어
20년 넘게 장애인포교 앞장
광림사에 복지법인 설립해
자활 돕는 다양한 사업 진행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 위해
1999년 우리나라 최초로
청각장애인 무료 운전교육
“출가 후 동국대학교와 강원을 졸업한 후에 부처님 제자로서 참선을 하고 살아가야 겠다고 생각하다가 1993년 우연한 기회에 조계사 원심회를 통해 수화를 배우게 됐어요. 법회 때 발원하는 사홍서원과 관세음보살의 원력을 살펴봐도 불교의 가르침은 어려운 이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것과 상통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장애인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겠다고 원을 세우고 그들을 도반으로 혹은 스승으로 여기며 지금까지 수행자의 길을 걸어오고 있습니다.”
해성스님은 불교수화를 통해 장애인과 인연을 맺었다. “포이동에서 광림사를 창건한 후 현재 석촌동으로 이사를 했어요. 장애인 포교활동을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서 2003년 사회복지법인 연화원도 설립했어요. 그리고 동국대학교 불교사회복지학과에서 입학해 공부도 했습니다. 원심회에서 청각장애인들을 만나면서 그들이 간절히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고 싶어해서 법회만 열겠다고 생각하고 장애인을 위한 법당 문을 열었습니다.”
초창기에 스님은 ‘조계사에 청각장애인들이 다닐 수 있으니 강남인 광림사에도 청각장애인들이 법회를 보면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시각장애인들을 만났고 할 일이 더 많아졌다.
“1995년부터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는 중증지체장애인들을 위해 자원봉사자 차량을 준비해 성지순례 법회를 하기 시작했어요. 부처님오신날 연등축제 때는 지체장애인들이 휠체어를 타고 동참하면서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심을 봉축해 오고 있습니다.”
스님은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법회를 시작할 때의 열악함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개신교의 전용교회가 200여개가 있었어요. 이에 비해 우리 불교계는 부산에서 개인이 활동하는 1곳과 서울 조계사, 그리고 광림사 이렇게 3곳만 있었어요. 처음에는 많이 망설였어요. 이거 해야 되나 하고 말입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원력을 세워 열심히 하기로 마음먹고 시작했어요.”
청각장애인들을 만나기 전에 해성스님은 말하고 듣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건지 몰랐다고 했다.
“당연히 누구나 말하고 들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청각장애인들을 만나 그들이 가족들과 대화도 하지 못하고 불교를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고, 가르쳐 주는 이도 없는 상황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스님은 장애인들의 문화복지 향상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수화로 연극을 만들어 공연했어요. 매년 수화사랑 음악회에서 발표되는 노래를 수화로 통역하며 들을 수 없는 청각장애인들이 수화를 통해 불교를 접할 수 있게도 했어요.”
‘불교수화용어집’ 발간 이어
불교수화연구위원회 구성
불교수화 영역 넓히기도 …
출가 40여 년 ‘중생 위한 삶’
“불자장애인 위한 ‘문화공간’
장애 어르신 위한 양로시설
건립위해 기도정진하며 발원”
열성적인 활동의 성과는 결과물로 나타났다. 1998년에는 수화전문 교재인 <자비의 수화교실>과 <불교수화용어집>을 발간했다.
“기존의 수화교재에는 불교단어가 3개에서 5개 정도만 표기되는 안타까운 실정이었어요. 불교수화가 정립되지 않아서였지요. 이런 상태에서 불교교리를 수화통역자들도 올바로 설명할 수도 없었어요. 그래서 불교수화연구위원회를 구성해 장애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불교단어를 정리하고 사용하지 않는 100여개의 단어를 만들어 책을 만들어 냈습니다. 물론 이 용어들이 불교수화를 하는 분들의 시각차이로 아직 논란은 있지만 불교수화 영역을 넓힌 것은 분명합니다.”
해성스님은 장애인들을 만나 그들을 교육시키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궁극의 이유는 장애인들이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이라는 한계를 넘어 비장애인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라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1999년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청각장애인들에게 무료로 운전교육을 실시해 면허를 취득하게 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장애인들이 면허를 취득하면 배달업이나 자영업을 하는데 보탬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또한 장애인들이 사회생활을 적응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갖출 수 있다고 보았어요. 이 사업을 4년간 약 400여명이 운전면허를 취득하는 성과를 거두었어요.”
장애인들을 만나면서 스님은 다양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냥 부처님의 가르침만 전하는 게 다는 아니더라고요. 삶의 어려움이 있는 장애인들이 세상을 좀 더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컴퓨터, 한문교육도 했어요. 이들이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일을 찾다 보니 꽃꽂이 교육이 있더라고요. 이 방면에 청각장애인들의 잠재된 능력이 무척 많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러다가 이분들에게 더 좋은 교육방법을 찾기 위해 원예치료사 과정을 공부해 꽃꽂이를 통해 마음치료를 하는 방법을 찾기도 했어요.”
스님은 원예치료사 과정을 공부하면서 청각장애인들이 일하며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인 직업재활원을 2008년에 설립한다. “꽃누름 즉 압화(壓花)를 배우면서 식물에 대한 고마움도 느끼게 되었어요. 고양시 꽃박람회에 출품해 상을 받기도 했어요. 상품으로 만들 수 있고 마음치료도 할 수 있어요. 더 나아가 보존화(保存花, 시들지 않는 꽃)를 상품으로 출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제품들은 국내는 물론 외국인들에게도 관심을 받고 있어요.”
해성스님은 장애인을 위한 포교활동과 더불어 질병과 노환으로 고통 받는 이들에게도 자비의 손길을 전하려 노력했다. 그 일환으로 2006년에는 호스피스 간병인 교육을 실시해 자원봉사자를 양성해 서울대병원 호스피스 병동과 서울시북부노인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다. 2007년에는 서울시북부병원 내에 불교법당을 설립해 질병의 고통에서 힘들어하는 환우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출가 40여 년 동안 숨 가쁘게 살아 온 ‘중생 위한 삶’이었지만 아직도 스님은 하고 싶은 일이 두 가지 있다.
“뭔가 새로운 것을 하려는 것은 아니고 지금까지 해 온 일들을 갈무리 하고 싶습니다. 그중 하나는 장애인들이 나이가 들어 편안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는 양로원을 건립하고 싶습니다. 우리사회가 노인 소외현상이 두드러지는데 장애인들이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연로한 장애인 어르신들이 자식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부처님의 품 안에서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드리고 싶어요. 또 하나는 우리 법당을 찾는 불자 장애인들이 마음놓고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문화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사찰 살림으로는 어려울 것 같아 신심 깊은 불자기업이 나서서 이러한 공간을 마련해 주시면 콘텐츠는 저희들이 채울 수 있을 것 같아요.”
해성스님이 광림사에 설립된 연화장애인직업재활원 장애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 해성스님은 …
1978년 서울 보현사에서 명식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사미니계를, 1986년 범어사에서 구산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지했다. 1983년 동국대학교 선학과, 1986년 삼선승가대학을 졸업했다. 불교사회복지에 관심을 가진 스님은 1993년부터 청각장애인 불자들의 신앙생활을 열어주기 위해 수화법회를 열었다.
2003년에는 사회복지법인 ‘연화원’을 설립해 본격적으로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을 보듬기 시작했으며 2008년 연화장애인 직업재활원과 요양보호사 교육원을 설립하면서 장애인 포교에 앞장서는 대표적인 불교계 인사로 알려졌다.
1997년 제11회 불이상, 1998년 보건복지부 장관 감사장, 2000년 대한불교조계종 포교대상 원력상, 2014년 대원상 특별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서울 광림사 주지로 있으면서 사회복지법인 연화원 대표이사와 연화직업재활원 원장, 서울시북부병원 지도법사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