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경상남도 거제도 포로수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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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3.12.31. 05:08조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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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 포로수용소
거제시 신현읍 고현리에 한국전쟁의 상흔이 짙게 밴 거제도 포로수용소가 있다. 이 수용소는 1950년 국제협약인 「포로의 대우에 관한 1949년 8월 12일자 제네바 협약」에 따라 세워졌다. 이 협약에 밝혀놓았듯이 ‘포로들에게 위협이 없을 정도로 전투 지역에서 충분히 떨어진 지역에 소재’하게 되어 있어 수용소를 당시의 신현면, 즉 오늘날의 신현읍 고현리를 중심으로 한 장평리, 문동리, 양정리와 동부면의 저구리, 다포리의 농토 및 임야 1,200정보쯤을 징발하여 세웠다. 그 때문에 당시 그곳에 살던 주민 2,116세대가 수용소 대지 밖으로 쫓겨났다.
이처럼 큰 이동 뒤에 그 자리에 수없이 많은 막사가 들어섰고, 뒤이어 포로가 된 인민군과 중공군이 30만 명쯤 들어왔는데, 시인 김수영도 그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거제도에 살던 사람이 10만여 명쯤 있었는데, 미 해군 함정이 흥남 부두에서 싣고 온 피난민과 육지에서 건너온 피난민 20만 명쯤이 합쳐지면서 거제도는 하루아침에 사람들로 들끓는 섬이 되었다.
1951년 5월 포로수용소 내 제76수용소에서 수용소 사령관 F. T. 도드 준장이 포로들에게 납치되어 4일 만에 석방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인민군 대좌 이학구가 주동한 이 사건에서 그들은 포로의 대우를 개선해줄 것과 자유의사에 따른 포로 송환 방침을 중지할 것, 포로대표위원단을 인정할 것 등을 요구하며 유엔군과 대치하는 한편, 반공 포로를 인민재판에 붙여 처벌하였다. 그때 고현리 제64수용소에 수용되었다가 반공 포로로 석방되어 거제도에 자리를 잡고 살아온 장낙봉 씨의 말을 빌리면, 사건이 일어난 제76수용소에서는 즉결인민재판의 결과에 따라 처형된 반공 포로의 송장이 날마다 몇 구씩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훗날 밝혀진 바로는, 그때 죽은 반공 포로가 105명에 이른다. 유엔군 쪽의 강력한 저지로 도드 준장이 구출되면서 사건은 매듭지어졌으나, 반공 포로와 공산 포로 간의 싸움은 더욱더 극렬해져서 마침내 따로 떼어놓게 되었다. 당시 이 수용소의 참담한 분위기는 반공 포로로 석방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소설가 강용준의 장편소설 『멀고도 긴 날의 시작』에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고, 최인훈의 장편소설 『광장』에서는 등장인물인 이명준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1953년 7월 27일 북한과 유엔 사이에 체결된 휴전협정에 따라 전쟁은 무기한 휴전에 들어갔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남북 양쪽은 전쟁 포로를 교환하였는데, 남과 북 그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고 거부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남과 북 어디에도 안주하지 못한 채 ‘중립국’을 택했고, 소설 속에서 이명준은 중립국으로 가는 남중국해에서 그 푸른 바닷물과 하나가 된다. 북한군 포로 74명, 남한군 포로 2명, 중국군 포로 12명은 인도로, 남미로 흘러들어가 신산했던 세월을 겪었다.
마산 앞 바다
거제군은 1965년 6월에 착공하여 1971년 여름에 준공된 거제대교 덕분에 육지와 연결되었다.
팔색조도 깃을 치는 아름다운 섬 거제도는 그러한 상처뿐 아니라 역사 속에서도 유배의 땅이었다. 『고려사』에 따르면, 1170년 무신정변으로 고려의 18대 임금 의종이 지금의 거제시 둔덕면 거림리로 유배를 왔다. 그를 따라 들어왔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임금 왕(王)’ 자와 비슷한 ‘구슬 옥(玉)’ 자를 쓰는 성씨들이 거제도에 꽤 많이 살고 있다. 그 뒤 조선 연산군 때 우찬성 벼슬을 지냈던 최숙이 기묘사화로 유배를 와서 일생을 마쳤고, 숙종 때 송시열 또한 당쟁에 밀려 이 섬으로 유배를 왔다.
바다를 건너면 마산시에 이른다.
금산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사천시에 속한 삼천포에 이른다. 3번 국도가 시작되는 삼천포는 사람들에게 ‘잘 나가다 삼천포로 빠지다’라는 속담으로 더 알려졌지만, 한번 가본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에 빠져 다시 가고 또 가는 곳이다. 통영대전고속도로가 개통된 뒤 싱싱한 회를 맛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줄을 잇는 삼천포는 남해를 잇는 다리의 개통으로 더욱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
옥포대첩 기념공원 임진왜란 당시 왜선 26척을 격침시킨 옥포대첩을 기념하여 거제시 옥포동에 기념공원을 조성하였다. 옥포해전은 당시 조선의 첫 승첩으로 이후의 전황을 유리하게 전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거제도 포로수용소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3 : 경상도, 2012. 10. 5., 신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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